세계 여성의날 맞이 ④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 여성의날 투쟁의 기록

세계 여성의날 맞이 ④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 여성의날 투쟁의 기록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사회운동의 목소리들

2023년 3월 29일

[읽을거리]페미니즘, 사회운동페미니즘, 사회운동, 임신중지권, 민주노총, 퀴어, 여성의날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에는 윤석열 정부가 곳곳에서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것에 맞선 목소리들이 울렸다. 윤석열 정권 이래 구조적 성차별의 현황과 정부의 퇴보를 막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회운동의 오늘을 짚어본다.

올해 세계 여성의날에는 윤석열 정부가 곳곳에서 성평등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에 항의하는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울렸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 정책에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퇴출시키며, 젠더 관련 정책들을 후퇴시키고 있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선 “성평등 사회”와 같은 피상적인 문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부처 출범 후 20년간 정책목표로 내세웠던 ‘성평등 가치 확산’은 올해 주요 업무 계획에서 처음으로 빠졌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조차 ‘양성평등 실태조사’,‘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UN Women 성평등센터’를 인용하거나 설명할 때 딱 3번 등장했다.

여성 관련 정책은 ‘출산⋅양육’, ‘피해 지원’, ‘경력단절예방’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성평등’을 ‘성에 대한 편견’,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로,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보장’은 ‘성·생식 건강과 권리’로 대체했다.

여가부는 건강가족기본법의 협소한 가족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사실혼 및 동거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개정안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로 규정하는 조항을 삭제해 가족에 대한 정의를 넓혔고, 장애인·이혼 가정 등에 대한 차별 인식을 확대한다는 비판이 있던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가족'으로 수정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러한 건강가족기본법 개정안을 번복한 것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려는 시도를 봉쇄하고, ‘전통적 가족’과 그 가치관을 강조해서 개별가족에게 양육과 노인, 환자, 장애인 등의 돌봄 책임을 떠넘기고 복지 삭감을 정당화하려는 목적과 관련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정부는 국공립 어린이집 예산을 20% 삭감하는 등 양육과 아이돌봄 정책을 후퇴시켰다.

퇴보

이와 같은 중앙정부의 행보는 지방정부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의 경우 25개 자치구 가운데 8곳에서 ‘여성’이란 단어를 이미 뺐거나 2023년에 뺄 예정이다. 서울시의회는 ‘성,생명윤리규범조례안’을 발의해 서울시교육청에 검토를 요청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역시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과 통합돼 ‘부산여성가족과평생교육진흥원’으로, 울산시 ‘여성가족개발원’도 ‘사회서비스원’과 통합돼 ‘복지가족진흥서비스원’으로 새로 출범했다. 경기도의회는 ‘경기도 성평등기본조례’가 “동성애⋅트랜스젠더⋅제3의성 등 젠더를 의미하는 ‘성평등’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개정조례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이러한 정책들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하지만,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다르게, 한국의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은 매우 성차별적인 구조 아래서 산다. 여성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64.9%인 220만원(남성 339만원)에 불과하고, 월평균 166만원 이하인 저임금 노동자의 여성 비중은 무려 29.3%(남성 비중 9.9%)에 달한다. OECD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29개국 중 만년 꼴찌로, 2014년 조사 이후 한 번도 꼴찌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코로나 감염병 시기를 거치며 더욱 무거워진 돌봄의 책임과 역할이 여성에게 전가되는 현실은 악화되고 있다.

OECD 회원국 유리천장지수 순위
OECD 회원국 유리천장지수 순위

생계문제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늘어나, 서민경제 위기 시기에 노인과 더불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의 상태를 드러냈다. 작년 8월 수원 세모녀, 11월 서대문구 모녀, 지난 1월 성남 모녀 등 생계에 대한 비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러한 사례들은 현 상황이 낳은 참극으로 젠더 문제의 위기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은 계속 퇴보하고 있다.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현행 형법상 강간죄가 '억울한 성범죄 피해자'를 만들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도 무산되었다. 지난 1월 26일, 여가부는 오전에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이 포함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같은 날 오후 법무부가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며 반대취지의 의견을 제시하자 9시간 만에 “동과제는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이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과제가 아니”라며 “정부는 개정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알리는 해프닝을 벌였다.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반대합니다.”라는 공식논평을 내고 “여가부 폐지 명분이 증명됐다”(2023년 2월 1일)고 어깃장을 부렸던 것이 여가부의 갈지자 행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보도가 넘쳐났다.

대학가도 성폭력, 성차별에 관해서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작년 7월 인하대학교에서 끔찍한 강간살인이 벌어졌던 직후,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 사건은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 프레임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며, "여성 폭력은 아니" 라고 말했다. 더불어 “안전의 문제"일 뿐이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남성 피해자 비율이 20%가 넘는다" 는 말로 사건의 본질에서 빗나간 답변을 하면서 구조적 성차별을 애써 외면했다. 이후 비난이 빗발치자, 사건 한달 후인 8월 18일 김장관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출석해 인하대 사건과 관련해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인하대 내에서 학내 성차별 문화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연이어 부착되었지만, 대학 측은 ‘미승인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철거하였다.

2022년 7월 인하대학교 교정에 부착되었던 대자보
2022년 7월 인하대학교 교정에 부착되었던 대자보

지난 2월 24일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졸업하는 심미섭씨는 학내 교수들의 성폭력을 규탄하고 성폭력 전수조사 요구했다. 심씨는 졸업식장에서 피눈물 분장을 한 채 ‘자연대 신교수, 자연대 K교수, 경영대 P교수, 사회학과 H교수, 수의대 H교수,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B교수와 C교수... 교수 성폭력 멈출 수는 없나? 서울대는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실시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진행했다.

서울대학교 내 다수의 교수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 돼왔는데, 이 과정에서 '학교가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방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학교측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전엔 명확한 징계가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피해자를 학내외의 다양한 2차 가해에 무방비하게 노출시키거나 성폭력 혐의를 받는 '교수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서류를 제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료제출을 거부한 바 있다.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항의행동을 하고 있는 심미섭씨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항의행동을 하고 있는 심미섭씨

최근에는 한성대학교 공과대학의 한 강사가 강의도중 “요즘 여학생들 대가리가 텅텅 빈 것 같은데 에이쁠 받아서 뭐 할 거냐, 시집갈 때 남편한테 보여줄 거냐, 누구 인생 망치려고”, “여자는 눈도 멍청하게 뜨고 여학생들 때문에 학력이 떨어진다”, “여자애들은 컴공(컴퓨터 공학과) 와서 젊은 애들 자리 뺏지 말고 딸기 농사나 지어라” 등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들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성차별의 사례들은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저항

구조적 성차별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지난해부터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900여개의 단체들이 모여 ‘여가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 의 이름으로 서명운동과 집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지난 2월 27일 ‘여가부 폐지안’이 제외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여가부 폐지를 일시적으로나마 저지하게 된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국행동은 이날 논평에서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고 “여가부 폐지안은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기에 아직 우리의 싸움은 남아있다. ‘3+3 정책 협의체’(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대통령-공공기관장 임기 일치 법안 처리를 위한 정책 협의체로, 국민의힘과 더불어 민주당 양당의 정책위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 3사람씩 참여하고 있어 3+3협의체로 불린다.) 는 ‘여야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여가부 폐지는 추후 별도 논의를 통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발표했다”며 “우리는 여기서 안도하지 않고 여가부 폐지안이 완전히 폐기될 때 까지 끝까지 주시하며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제38회 한국여성대회

3월 4일, 서울시청에서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를 슬로건으로 열린 38회 한국여성대회는 주최측 추산 연인원 1만 5천 여명이 참여했다. 작년에 비해 무려 50배가 넘는 대열로 한국여성대회 개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다.

작년에 열린 37회 한국여성대회는 코로나 방역지침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올해 대열이 대규모로 늘어난 것은 단지 방역완화 때문은 아니다. 윤석렬 정부에 맞서 싸우겠다는 여성들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여가부가 매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기념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협의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2개 단체에 연간 1천 500만원에서 4천만 사이의 규모로 지급하던 국가보조금을 올해는 지급하지 않았지만, 여성의날 행사는 차질은커녕 더욱 성대하게 열렸다. 60여 개의 다양한 부스로 가득 찬 서울시청에서 축제처럼 진행된 여성대회에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염원을 보여주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작업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여성대회의에 앞서 열린 '여성노동자 대회'에서는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당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청소, 골프장, 대학 비정규직, 제빵 등의 여성노동자들은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는 앞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다졌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고 있나요. 물가는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오르지 않는다고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이야기하곤 합니다. 2023년 최저시급이 460원 올랐습니다. 많은 20대 여성들에게 최저시급은 곧 최고시급인 현실에서, 전기요금은 29% 가스비는 36% 난방비는 34% 올랐다고 하는데, 내 월급은 올해에 5만원 올랐습니다. 이번 겨울이 너무 추웠지만 실내온도를 19도로 맞추고 지내야 했습니다. 수면잠옷을 껴입고 이불을 두 개 덮으면서, 고양이들이 기침을 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으로 두 달을 났습니다. (중략) 일터에 많은 걸 바라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환경,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동료관계가 이렇게 어려운 조건인줄은 몰랐습니다. 사회는 나에게 ‘여성’일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너무 여성’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젊은 여성으로서 친절하고 상냥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너무 여성’ 같은 말투와 웃음은 개그 프로그램의 조롱 대상이 되곤 합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저 모두에게 친절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내 태도가 성애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야 했습니다. 일하는 곳의 남성 상사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지, 나는 왜 그저 평등한 동료로서, 혹은 후배로서 그들과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지, 그런 고민 없이 일하는 남성 동료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이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오며 생각하고 배웠던 것과 괴리되어 있다 느껴져 자주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제 일을 사랑하고, 제 삶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나의 일상을 더 아름답게 채우기 위해, 저는 이제 걱정이 아닌 고민을 하고 싶습니다. 가스비와 난방비를 걱정하기보다 오늘 저녁엔 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고, 직장에서의 남자 동료들과의 관계를 걱정할 시간에 내가 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고,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3월의 첫 주 토요일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모인 것은, 걱정하는 마음들이 한 데 모여 하나의 고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은 새로운 단어들을 떠오르게 할 겁니다. 저는 이게 세상이 후퇴해도 우리가 앞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어려움을 나만의 것으로 두지 않을 때, 국가 책임과 공공성을 말하고 페미니즘의 부재를 지적할 때, 우리는 더 나은 고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생각하면서, 지금이 아닌 다른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늘 여기에서 같이 구호 외치고 행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이 자리가 힘이 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시간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2023년을 같이 잘 살아내면 좋겠습니다. 1년동안 열심히 소진하고 2024년 3월 8일에 다시 두 배의 힘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페미위키 청년노동자 혜리 발언

3월 8일 여성의날 당일 열린 민주노총 주관 전국노동자대회에도 3천여 명이 보신각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혜화역까지 행진하며 “윤석열 정부의 성평등 후퇴 정책과 노동개악은 투쟁하는 여성들이 균열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앞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대회’도 열렸다. 이 대회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최저임금 30% 인상을 요구하며 생존권 투쟁을 선포했고, 저임금에 묶인 현실뿐 아니라 현장에서 겪는 성폭력과 비정규직 차별을 비판하며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를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여성의날 기념 전국노동자대회 참여규모도 수백 명이었던 예년에 비해 훨씬 커, 여성노동자들의 분노를 잘 보여주었다.

임신중지권에 대한 여성의 권한을 복원하고자 하는 연대 활동도 지속되고 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유산유도제 도입이 무산된 것에 항의하고, 임신중지를 위한 제반 의료 서비스의 건강보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오는 4월 9일 오후 2시 용산역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낙태죄’폐지 2주년 공동행동이 열릴 예정이다.

젠더 차별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운동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완화시킬 수 있는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며, 실제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21일, 동성부부의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한 첫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성소수자 운동에 자신감을 주었다. 작년 11월에는 대법원이 미성년 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며,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라 진정한 성을 법적으로 인정받고 확인받을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에는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는 의미 있는 판결도 있었다.

공익인권재단 공감은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3민사부(재판장 우인성)가 지난달 15일 트랜스젠더 A씨에 대한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전환수술 강제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므로, 수술이 아닌 다른 요건에 의하여 그 사람의 성 정체성 판단이 가능하다면 그에 의하여 성 정체성을 판단하면 된다"면서 "정신적 요소가 정체성 판단의 근본적 기준이며, 생물학적, 사회적 요소보다 우위에 두어 판단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수자에 대한 잇다른 진일보한 판결들은 지난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법 제정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사법부의 판결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법원의 판결들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부당한 젠더차별에 맞선 지속적인 사회운동이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2023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발표된 여성 선언의 마지막 단락은 이 글의 완벽한 마무리다.

“퇴행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퇴행이 성평등 실현을 향한 우리의 열망과 전진을 막아낸 적은 결코 없습니다. 3.8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3월 8일, 러트거스 광장에서 생존권과 참정권을 외쳤던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호주제 폐지’,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가 있기까지 매 순간 싸워온 수많은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성차별·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세상을 바꿔왔습니다. 다시 한 번, 이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 사회를 향해 힘차게 전진합시다!”

참고 자료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성과 재생산 권리와 가족 구성의 권리, 차별 없는 사회 보장을 상식으로 이어가자」, 2023. 2. 22.
  •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여성가족부 폐지안’ 빠진 정부조직법 개정안 의결은 당연한 결과다. 국회는 더 이상 여가부 폐지안 논의 말고 즉각 폐기하라!」, 2023. 2. 27.
  • 2.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8회 한국여성대회 참가자 일동, 「퇴행의 시대를 넘는 거센 연대의 파도가 되어 성평등을 향해 전진합시다!」, 2023. 3. 4.

글 :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