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츠모토 하지메가 『탕핑주의자 선언』을 번역한 이유
2023년 3월 3일
이 인터뷰는 2022년 3월 1일 도쿄 고엔지의 ‘마누케 숙박소’에서 진행되었으며, 『주간금요일』 2022년 4월 8일판에 실렸다.
중국에서 유행한 「탕핑주의자 선언 躺平主义者宣言」을 일본에 알리고자 직접 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 마츠모토 하지메(松本哉),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작가이자, 도쿄 고엔지에 있는 재활용품점 아마추어의 반란(素人の乱) 5호점 주인이다. 또, 날마다 다른 음식을 내는 ‘난토카바(なんとかBAR, 아무튼술집)’ , 게스트하우스 ‘얼간이여관(マヌケ宿泊所)’을 운영한다. 『탕핑주의자 선언』을 읽고 일본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선언 내용이 생각보다 난해한 탓에 번역은 대만 친구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대신 마츠모토 자신은 해설과 서문, 제작을 맡았다. 책은 모두 40페이지로 서문, 탕핑주의 선언 번역문, 중국어 원문, 그리고 탕핑주의자들의 대선배격인 다마렌* 소속 가미나가 고이치(神長恒一) 씨의 기고문과 사진으로 되어있다.
- 📑다메렌(だめ連) : 1992년대에 만들어진 그룹으로, '안 해 연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 부 한 부 정성껏 만든 마츠모토의 『탕핑주의자 선언 일본어 판’(寝そべり主義者宣言・日本語版)』이 1천부에 가까운 판매를 올리는 등 인기를 끌면서, '주간금요일' 편집부 아마미야 카린**이 마츠모토 하지메를 만나 인터뷰했다. ‘탕핑주의’를 “뒹굴뒹굴주의”(寝そべり主義)로 번역한 이 책은, 인터넷으로도 판매된다. 수작업인만큼 소량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종종 절판되고 재인쇄한다. [플랫폼c에서는 '탕핑주의'로 소개해왔지만, 일본의 번역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뒹굴뒹굴주의'로 번역하고자 한다.]
- 📑아미야 카린(雨宮処凛) : 20대 초에는 우익 진영에서 활동하며 청년 여성 우익의 대표주자로 활동하였으나 이후 2001년부터 사상의 전향을 선언, 빈곤이나 프리터 등 다양한 사회 주변부 문제에 집중하는 활동을 현재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에는 <성난 서울>, <살게 해줘!>가 출간되었다.
일본어판 서문에서 마츠모토는 이렇게 해설한다.
“이 [선언]은 중국이라는 특정한 외국에서 벌어 진 현상이 아니라, 인간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공통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열심히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반체제를 주장하며 새로운 권력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다. 어리석고 한심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이 사회가 주입하려는 사상을 거부하고, 그저 내 마음가는 대로 천천히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주장이자 반란이다. 이건 새로운 제3의 길이며 권력자와 지배층은 사실 이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저항하는 자들을 짓밟고 굴복시켜야 맛인데 그걸 느낄 수 없으니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언젠가 이 세상이 뒹굴거리는 자들 천지가 될 지도!” 라는 희망으로 마무리했다.

책자 말미에 특별 기고문을 쓴 다메렌의 가미나가 고이치는 자신이 다메렌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옷을 파는 일을 했었는데, 모두들 옷을 많이 갖고 있었다. 거기에 구매욕을 부채질해서 옷을 판다 한들 환경을 파괴하는 일일 뿐이고 옷을 사는 사람의 마음이 채워질 리 만무하다. 오히려 허무해지기만 할 것이다. 모두들 속고 있는 거야! 자본주의 경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소비할 뿐인 인생, 이건 뭐 SF 소설도 아니고.“
실제 가미나가 고이치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일본의 대형 백화점인 ‘토부백화점’(東武百貨店)에 취직한 바 있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퇴사한 뒤 곧바로 페페 하세가와와 다메렌***을 결성했다. 가게를 그만두고 의미없는 일상에서 벗어난 가미나가는 기고문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중국에도 있다는 것을 반가워하며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단 한번 뿐인 인생, 나쁜 부자들에게 속으며 살다 끝낼 순 없다. 이런 사회에 적응해 봤자 심장이 빼앗긴 채 죽어 있는 거나 다름없는 것. 살아있는 것들은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으니 두근거림을 막지마라. 마음껏, 지금을 살아라!”
- 📑다메렌 : 가미나가 고이치와 페페 하세가와(ぺぺ長谷川)가 주도해 결성한 모임. 남들처럼 일하지 않는(일할 수 없는), 결혼하지 않는(못하는)사람들이 그‘안 된다(못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과 상식을 문제 삼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한다. 또, 노동과 소비를 장려하는 경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가치관에 대해 그보다 더 즐겁고 창조적인 것이 있다고 외친다. 1992년 탄생해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한때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았고, 현재는 데모나 길거리 교류회 등 대안적 이벤트에 참가한다.
아마미야 카린Ⅹ마츠모토 하지메
![마츠모토 하지메와 아마미야 카린 [아마미야 카린 트위터 계정]](https://cdn.sanity.io/images/u0qigokj/production/bf40a051c90cd7affaba1cb8e4942fc89e01413f-700x470.jpg?w=700&q=80)
아마미야 : 2021년 정도부터 중국에서 퍼지기 시작한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의 일본어 버전이 2022년 1월에 나왔지요.? 몇 부 정도 팔렸나요?
마츠모토 : 900부를 넘어 곧 1000부(2022년 3월 25일자로 1200부)요.
아마미야 : 마츠모토씨 혼자 인쇄하는 걸 생각하면 베스트셀러네요. 600엔이죠? 지하 출판이라고 하나요?
마츠모토 : 말하자면 독립출판? 기존 판매망을 통하지 않은 자체 유통이라서요.
아마미야 :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을 대충 소개하면?
마츠모토 : 2021년에 중국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요점은 일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지금까지의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고 느긋하게 나답게 살자는 것이에요.
일하지 않는 청년들이 등장하다
아마미야 : 중국은 경쟁이 치열해서 최근 몇 년 간 일하는 젊은이들이 '996제'*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도 이대로 경제성장 노선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는가 싶더니 결국 '뒹굴뒹굴주의자 선언 '이 나왔네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996제 : 중국의 청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표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를 줄여 부른 말. 매일매일 야근이 반복되며, 휴일도 주 1일 정도에 불과한 현실을 자조하는 유행어.
마츠모토 : 바로 그거에요. 일본에서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 경제가 절정기에서 내려오자 열심히 일하는 건 너무 힘들다고 반항하는 사람들과 서브컬처가 생겨났잖아요. 그런 흐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마미야 : 일본에서는 대표적으로 90년대 후반에 나온 '다메렌'이 있죠. 일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주목받았어요. 당시에는 선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황이 길어지면서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고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어요. 세계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에는 '밤보초네(Bamboccione, 큰 아기)’ 라는 말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도움을 받는 젊은이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2012년에 월 수입이 약 7만 엔(66만 원) 정도라는 ‘700유로 세대’가 있었고, 한국에서는 니트족을 백수라고 하는데 이들이 모인 '백수연대'라는 그룹도 있었죠. 또 고학력이라도 비정규직 일 밖에 없어서 저임금 사람들은 "88만원 세대"라고 불렸습니다. "N포 세대"라는 말도 나왔고요. 취직도 결혼도 출산도 집을 사는 것도 모든 것 을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필리핀에서는 탬바이, 싱가포르는 BBFA**같은 느낌일까요? 거기에 중국에서 뒹굴뒹굴주의를 사상으로까지 높인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이 나왔어요. 이걸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 📑BBFA : ‘Bui Bui Forever Alone’의 줄임말로 ‘뒹굴거리며 영원히 혼자'라는 뜻의 유행어
마츠모토 : 누가 썼는지는 공표되지 않았다고 해요. 게다가 원래 뒹굴뒹굴주의에 정식 창조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인터넷에 실린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을 모두 멋대로 확산해서 여러 가지로 파생해을 뿐이니까요. 뒹굴뒹굴주의자 선언도 처음 이 말을 꺼낸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데 그게 읽힌다는게 또 재미있어요. 중국에서는 팔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종이나 포스터로 확산되어 있는 거죠.
아마미야 :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나요?
마츠모토 : 지금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걸요? 공공연하게 발표하기는 좀 힘든가봐요. 선언 원문은 큰 포스터에 빽빽이 한자가 쓰여 있어요. 그걸 그대로 전파하니까 효율적이에요. 우연히 저는 중국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듣고 포스터를 전해받았어요. 많이 인쇄해서 도쿄 고엔지(교열자 주 : 高円寺, 마츠모토가 점주로 있는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이 있는 지역이다.) 곳곳에 붙였더니 중국인 유학생들이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아마미야 : 언제 일이에요?
마츠모토 :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요. 제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니까 중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중국어를 조금 알아요. 근데 역시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한테 배운 중국어로는 감당이 안 돼서. (웃음)
아마미야 : 실제 읽었을 때 상당히 강경파적인 사상서인 것 같아서 놀랐어요.
마츠모토 : 가벼운 얘기라면 제 자신의 문체로 번역할 생각도 했습니다만, 결국 대만에 살고 있는 일본 분에게 부탁했어요. 선언서만으로는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다메렌'의 가미나가 고이치 씨와 제가 해설을 썼습니다.
아마미야 : 뒹굴거린다는 말과 책 내용의 차이가 크네요.
마츠모토 : 선언에서 동지라 이름붙이는 대상이 여성과 성소수자로부터 시작해서 노동자, 농민과 유목민, 학생과 지식인, 젊은이와 시민, 부랑자, 실업자, 노인등인데.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밀려나는 사람은 모두 자기 편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부권제도 존속을 위한 출산을 거절한다고 외치죠.
아마미야 : 프레카리아트나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 1대 99의 싸움도 마찬가지죠.
마츠모토 : 선언 중에서는 우리는 재산을 가지고 불로소득으로 뒹굴거리는게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해요. 부유층도 똑같이 뒹굴거리는 경우에 대한 견제일 겁니다.
아마미야 : 함께 취급하면 설 자리가 없으니까요.
마츠모토 : 최근의 사회운동은 국가간의 다툼이 축이 되고 있잖아요.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도 그렇습니다.그러나 어느 나라나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만 우대받고 그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 건 똑같아요.
아마미야 : 학대받는 사람들,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국경이 없죠. 게다가 리더가 없는 운동이라는 것도 최근 10년 간 운동의 특징입니다.
마츠모토 : 리더가 있으면 중국에서는 붙잡혀버리기 때문에, (리더가) 없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리더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운동이 퍼지기 쉬운 것일지도 모르지요.
홍콩, 토야코, 서울, 타이페이
아마미야 : 중국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보고 알 수 있어요. 인터넷도 차단하잖아요.
마츠모토 : 무엇보다 정보가 들어오지 않아요. 애초에 중국 사람들이 무엇에 시달리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죠. 그런데 뒹굴뒹굴주의자가 하는 주장은 자본주의에 수탈당하지 말고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자는 게 기본이고, 그건 원래 중국공산당이 혁명 때 했던 말이기도 해서 탄압하기 어려운 거죠.
아마미야 : 아, 그렇구나…
마츠모토 : 마지막 마무리도 '전 세계의 뒹굴뒹굴주의자여 단결하라!' 이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랑 같잖아요.
아마미야 : 어, 같은 말입니까?
마츠모토 : 거의 그렇지요. 어디까지 의도적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작년에 중국에서 선언이 나오고 일본에 전해지고 나서야 일본어판을 냈잖아요. 이번에는 그걸 본 미국인이 '뭐지, 이건?'이라면서 읽고 싶어한 거죠. 그래서 며칠 전쯤에야 영문판이 완성됐습니다.
아마미야 : 지금쯤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마츠모토 : 그렇죠. 지금까지는 구미의 사상을 아시아가 계속 번역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와서 그것이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요.
아마미야 : 원래 마츠모토 씨는 아시아 연대를 지난 10년 정도 모색해 왔죠?
마츠모토 : 2011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원전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해외에서 운동하는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시위하는 방법부터 다르고 주장도 다르고 협상하는 방법도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