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모토 하지메가 『탕핑주의자 선언』을 번역한 이유
2023년 3월 3일
이 인터뷰는 2022년 3월 1일 도쿄 고엔지의 ‘마누케 숙박소’에서 진행되었으며, 『주간금요일』 2022년 4월 8일판에 실렸다.
중국에서 유행한 「탕핑주의자 선언 躺平主义者宣言」을 일본에 알리고자 직접 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 마츠모토 하지메(松本哉),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작가이자, 도쿄 고엔지에 있는 재활용품점 아마추어의 반란(素人の乱) 5호점 주인이다. 또, 날마다 다른 음식을 내는 ‘난토카바(なんとかBAR, 아무튼술집)’ , 게스트하우스 ‘얼간이여관(マヌケ宿泊所)’을 운영한다. 『탕핑주의자 선언』을 읽고 일본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선언 내용이 생각보다 난해한 탓에 번역은 대만 친구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대신 마츠모토 자신은 해설과 서문, 제작을 맡았다. 책은 모두 40페이지로 서문, 탕핑주의 선언 번역문, 중국어 원문, 그리고 탕핑주의자들의 대선배격인 다마렌* 소속 가미나가 고이치(神長恒一)씨의 기고문과 사진으로 되어있다.
- 📑다메렌(だめ連) : 1992년대에 만들어진 그룹으로, '안 해 연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한 부 한 부 정성껏 만든 마츠모토의 『탕핑주의자 선언 일본어 판’(寝そべり主義者宣言・日本語版)』이 1천부에 가까운 판매를 올리는 등 인기를 끌면서, '주간금요일' 편집부 아마미야 카린**이 마츠모토 하지메를 만나 인터뷰했다. ‘탕핑주의’를 “뒹굴뒹굴주의”(寝そべり主義)로 번역한 이 책은, 인터넷으로도 판매된다. 수작업인만큼 소량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종종 절판되고 재인쇄한다. [플랫폼c 에서는 '탕핑주의'로 소개해왔지만, 일본의 번역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뒹굴뒹굴주의'로 번역하고자 한다.]
- 📑아미야 카린(雨宮処凛) : 20대 초에는 우익 진영에서 활동하며 청년 여성 우익의 대표주자로 활동하였으나 이후 2001년부터 사상의 전향을 선언, 빈곤이나 프리터 등 다양한 사회 주변부 문제에 집중하는 활동을 현재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에는 <성난 서울>, <살게 해줘!>가 출간되었다.
일본어판 서문에서 마츠모토는 이렇게 해설한다.
“이 [선언]은 중국이라는 특정한 외국에서 벌어진 현상이 아니라, 인간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공통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열심히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반체제를 주장하며 새로운 권력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다. 어리석고 한심한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이 사회가 주입하려는 사상을 거부하고, 그저 내 마음가는 대로 천천히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주장이자 반란이다. 이건 새로운 제3의 길이며 권력자와 지배층은 사실 이것을 가장 힘들어한다. 저항하는 자들을 짓밟고 굴복시켜야 맛인데 그걸 느낄 수 없으니 무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언젠가 이 세상이 뒹굴거리는 자들 천지가 될 지도!” 라는 희망으로 마무리했다.
책자 말미에 특별 기고문을 쓴 다메렌의 가미나가 고이치는 자신이 다메렌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옷을 파는 일을 했었는데, 모두들 옷을 많이 갖고 있었다. 거기에 구매욕을 부채질해서 옷을 판다 한들 환경을 파괴하는 일일 뿐이고 옷을 사는 사람의 마음이 채워질 리 만무하다. 오히려 허무해지기만 할 것이다. 모두들 속고 있는 거야! 자본주의 경제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소비할 뿐인 인생, 이건 뭐 SF 소설도 아니고.“
실제 가미나가 고이치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일본의 대형 백화점인 ‘토부백화점’(東武百貨店)에 취직한 바 있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퇴사한 뒤 곧바로 페페 하세가와와 다메렌***을 결성했다. 가게를 그만두고 의미없는 일상에서 벗어난 가미나가는 기고문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중국에도 있다는 것을 반가워하며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단 한번 뿐인 인생, 나쁜 부자들에게 속으며 살다 끝낼 순 없다. 이런 사회에 적응해 봤자 심장이 빼앗긴 채 죽어 있는 거나 다름없는 것. 살아있는 것들은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으니 두근거림을 막지마라. 마음껏, 지금을 살아라!”
- 📑다메렌 : 가미나가 고이치와 페페 하세가와(ぺぺ長谷川)가 주도해 결성한 모임. 남들처럼 일하지 않는(일할 수 없는), 결혼하지 않는(못하는)사람들이 그‘안 된다(못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과 상식을 문제 삼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한다. 또, 노동과 소비를 장려하는 경제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가치관에 대해 그보다 더 즐겁고 창조적인 것이 있다고 외친다. 1992년 탄생해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한때 대중매체의 각광을 받았고, 현재는 데모나 길거리 교류회 등 대안적 이벤트에 참가한다.
아마미야 카린Ⅹ마츠모토 하지메
아마미야 : 2021년 정도부터 중국에서 퍼지기 시작한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의 일본어 버전이 2022년 1월에 나왔지요.? 몇 부 정도 팔렸나요?
마츠모토 : 900부를 넘어 곧 1000부(2022년 3월 25일자로 1200부)요.
아마미야 : 마츠모토씨 혼자 인쇄하는 걸 생각하면 베스트셀러네요. 600엔이죠? 지하 출판이라고 하나요?
마츠모토 : 말하자면 독립출판? 기존 판매망을 통하지 않은 자체 유통이라서요.
아마미야 :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을 대충 소개하면?
마츠모토 : 2021년에 중국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만, 요점은 일이라든가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지금까지의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고 느긋하게 나답게 살자는 것이에요.
일하지 않는 청년들이 등장하다
아마미야 : 중국은 경쟁이 치열해서 최근 몇 년 간 일하는 젊은이들이 '996제'*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도 이대로 경제성장 노선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는가 싶더니 결국 '뒹굴뒹굴주의자 선언 '이 나왔네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996제 : 중국의 청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표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를 줄여 부른 말. 매일매일 야근이 반복되며, 휴일도 주 1일 정도에 불과한 현실을 자조하는 유행어.
마츠모토 : 바로 그거에요. 일본에서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 경제가 절정기에서 내려오자 열심히 일하는 건 너무 힘들다고 반항하는 사람들과 서브컬처가 생겨났잖아요. 그런 흐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마미야 : 일본에서는 대표적으로 90년대 후반에 나온 '다메 렌'이 있죠. 일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주목받았어요. 당시에는 선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황이 길어지면서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고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어요. 세계적으로 보면 이탈리아에는 '밤보초네(Bamboccione, 큰 아기)’ 라는 말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도움을 받는 젊은이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2012년에 월 수입이 약 7만 엔(66만 원) 정도라는 ‘700유로 세대’가 있었고, 한국에서는 니트족을 백수라고 하는데 이들이 모인 '백수연대'라는 그룹도 있었죠. 또 고학력이라도 비정규직 일 밖에 없어서 저임금 사람들은 "88만원 세대"라고 불렸습니다. "N포 세대"라는 말도 나왔고요. 취직도 결혼도 출산도 집을 사는 것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필리핀에서는 탬바이, 싱가포르는 BBFA**같은 느낌일까요? 거기에 중국에서 뒹굴뒹굴주의를 사상으로까지 높인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이 나왔어요. 이걸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 📑BBFA : ‘Bui Bui Forever Alone’의 줄임말로 ‘뒹굴거리며 영원히 혼자'라는 뜻의 유행어
마츠모토 : 누가 썼는지는 공표되지 않았다고 해요. 게다가 원래 뒹굴뒹굴주의에 정식 창조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 인터넷에 실린 '뒹굴뒹굴주의자 선언'을 모두 멋대로 확산해서 여러 가지로 파생해을 뿐이니까요. 뒹굴뒹굴주의자 선언도 처음 이 말을 꺼낸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데 그게 읽힌다는게 또 재미있어요. 중국에서는 팔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종이나 포스터로 확산되어 있는 거죠.
아마미야 :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나요?
마츠모토 : 지금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걸요? 공공연하게 발표하기는 좀 힘든가봐요. 선언 원문은 큰 포스터에 빽빽이 한자가 쓰여 있어요. 그걸 그대로 전파하니까 효율적이에요. 우연히 저는 중국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듣고 포스터를 전해받았어요. 많이 인쇄해서 도쿄 고엔지(교열자 주 : 高円寺, 마츠모토가 점주로 있는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이 있는 지역이다.) 곳곳에 붙였더니 중국인 유학생들이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아마미야 : 언제 일이에요?
마츠모토 :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요. 제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니까 중국인 친구들도 많아서 중국어를 조금 알아요. 근데 역시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한테 배운 중국어로는 감당이 안 돼서. (웃음)
아마미야 : 실제 읽었을 때 상당히 강경파적인 사상서인 것 같아서 놀랐어요.
마츠모토 : 가벼운 얘기라면 제 자신의 문체로 번역할 생각도 했습니다만, 결국 대만에 살고 있는 일본 분에게 부탁했어요. 선언서만으로는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다메렌'의 가미나가 고이치 씨와 제가 해설을 썼습니다.
아마미야 : 뒹굴거린다는 말과 책 내용의 차이가 크네요.
마츠모토 : 선언에서 동지라 이름붙이는 대상이 여성과 성소수자로부터 시작해서 노동자, 농민과 유목민, 학생과 지식인, 젊은이와 시민, 부랑자, 실업자, 노인등인데.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밀려나는 사람은 모두 자기 편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부권제도 존속을 위한 출산을 거절한다고 외치죠.
아마미야 : 프레카리아트나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 1대 99의 싸움도 마찬가지죠.
마츠모토 : 선언 중에서는 우리는 재산을 가지고 불로소득으로 뒹굴거리는게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해요. 부유층도 똑같이 뒹굴거리는 경우에 대한 견제일 겁니다.
아마미야 : 함께 취급하면 설 자리가 없으니까요.
마츠모토 : 최근의 사회운동은 국가간의 다툼이 축이 되고 있잖아요.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도 그렇습니다.그러나 어느 나라나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만 우대받고 그에 대한 반발이 있다는 건 똑같아요.
아마미야 : 학대받는 사람들,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국경이 없죠. 게다가 리더가 없는 운동이라는 것도 최근 10년 간 운동의 특징입니다.
마츠모토 : 리더가 있으면 중국에서는 붙잡혀버 리기 때문에, (리더가) 없는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리더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운동이 퍼지기 쉬운 것일지도 모르지요.
홍콩, 토야코, 서울, 타이페이
아마미야 : 중국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보고 알 수 있어요. 인터넷도 차단하잖아요.
마츠모토 : 무엇보다 정보가 들어오지 않아요. 애초에 중국 사람들이 무엇에 시달리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죠. 그런데 뒹굴뒹굴주의자가 하는 주장은 자본주의에 수탈당하지 말고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자는 게 기본이고, 그건 원래 중국공산당이 혁명 때 했던 말이기도 해서 탄압하기 어려운 거죠.
아마미야 : 아, 그렇구나…
마츠모토 : 마지막 마무리도 '전 세계의 뒹굴뒹굴주의자여 단결하라!' 이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랑 같잖아요.
아마미야 : 어, 같은 말입니까?
마츠모토 : 거의 그렇지요. 어디까지 의도적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작년에 중국에서 선언이 나오고 일본에 전해지고 나서야 일본어판을 냈잖아요. 이번에는 그걸 본 미국인이 '뭐지, 이건?'이라면서 읽고 싶어한 거죠. 그래서 며칠 전쯤에야 영문판이 완성됐습니다.
아마 미야 : 지금쯤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마츠모토 : 그렇죠. 지금까지는 구미의 사상을 아시아가 계속 번역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와서 그것이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요.
아마미야 : 원래 마츠모토 씨는 아시아 연대를 지난 10년 정도 모색해 왔죠?
마츠모토 : 2011년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원전 반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해외에서 운동하는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시위하는 방법부터 다르고 주장도 다르고 협상하는 방법도 달라요.
아마미야 : 제가 만난 미국인들이 원전 반대시위에 대해 가장 놀란 것이 코스프레 문화였어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직후였는데 데모 참가자가 원자력 발전소 건물의 코스프레를 한 거예요. 심지어 완성도도 높았다니까요.
마츠모토 : 그때 데모에서 코스프레를 한 건 예술가들이었어요. 근데 외국 사람들은 '우아, 코스프레다! 대박!'이라고. (웃음)
아마미야 : 아시아 연대라고 해도 중국은 어렵지 않았나요? 한국에서는 마츠모토 씨 책 번역본이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만에도 아는 사람이 많죠.
마츠모토 : 원전 반대 데모로 아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어요.
아마미야 : 한국이나 대만, 홍콩 사람들과의 연대만으로도 중국에선 포위망에 들어가니까요.
마츠모토 : 2008년의 토야코 서밋(洞爺湖サミット; 2008년 7월 홋카이도 아부타군 토야코초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에 대항하는 집회에서 드문드문 아는 사람은 생겼습니다. ‘아마추어의 반란’(자신의 재활용품 가게)을 알고 놀러 와 준 사람이라든가 그러한 작은 연결을 소중히 여겨 여러 곳을 알려줬더니 어느새 퍼져 나갔습니다. 2013, 2014년에 일단 중국에서 열었어요.
아마미야 : 장소는?
마츠모토 : 베이징이나 상하이, 우한, 그리고 한두 명 간신히 아는 사람이 있을 만한 오지에도 가서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어요.
아마미야 : (집회에 부를 만한) 특이한 사람이 없는지 말이죠? (웃음)
마츠모토 : 그렇죠. (웃음) 동시에 저도 고엔지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기 때문에 그 영업도 겸해서 매월 한 번 정도 나갔어요. 일주일 동안 한 도시의 한두 곳 정도를 갔죠. 계속 여러 곳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를 사귀다가 두 번, 세 번 방문하게 되면 아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그런데 국가 간의 다툼이 표면화되기 시작했어요. 한일 관계도 그렇고, 중국이 크게 경제적으로 발전해서 미국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있어요. 이곳은 밑에서부터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마미야 : 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면서 국내에서는 반중, 반한의 움직임이 강해졌지요. 해외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은 없었나요?
마츠모토 : 없네요. 제 말이 조금 모순될 지 모르지만 가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중국은 답답하고 격렬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꽤 자유롭습니다.
아마미야 : 길거리 축제 같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나요?
마츠모토 : 음… 정치적으로 활동하려면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생활에 관해서는 일본보다 훨씬 자유롭습니다. 시시콜콜한 규칙도 적고 일본처럼 곧바로 경찰을 부르지도 않구요.
아마미야 : 반대로 말하면 경찰은 최후의 수단이니까...
마츠모토 : 경찰이 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뒹굴주의자 선언’은 저항운동
아마미야 : 그렇게 아시아에서 친구를 만들어 온 마츠모토씨가 친구들 모두에게 모이자고 연락해서 2016년, ‘NO LIMIT 도쿄 자치구’(NO LIMIT 東京自治区)*를 개최했어요. 200명 정도의 아시아인이 고엔지에 모여 매일 길거리에서 큰 축제를 열었습니다.
- 📑NO LIMIT 도쿄 자치구 : 전시나 상영, 라이브 공연, 토크 이벤트, 플리마켓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손수 준비하는 감각의 아시아를 잇는 축제
마츠모토 : 이건 획기적인 일이었어요. 여러 나라 사람들의 교류가 많았거든요. 최초로 도쿄도 쿠니타치시(国立市)에서 아시아 영구 평화 시위를 하고 2017년엔 한국에서 'NO LIMIT 서울자치구'를 열었어요.
아마미야 : 물론 저도 갔죠. 도쿄에서도 서울에서도 아시아권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매일 같이 행사와 시위를 했죠.
마츠모토 : 그 후에는 자카르타…
아마미야 : 도쿄와 서울의 'NO LIMIT'에서 마츠모토씨가 불러서 왔다는 중국 분과 술을 마셨는데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일이 없고 장시간 노동으로 급료가 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가운데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하고 있고, "중국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이 연대를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서 기뻤어요. 그래서 중국에서 뒹굴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들었을 때는 "드디어!"라고 생각했어요. 뒹굴거린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저항한다는 것은 ‘나답게’의 운동이지요.
마츠모토 :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중국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답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죽어라고 정말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돈이 들어온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요. 일본이나 대만,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납니다.
아마미야 : 그러니까요, 죽을만큼 일해서 이것뿐이냐고.
마츠모토 : 한 달에 겨우 1만 엔(95000원) 더 벌려고 일한거냐고.
아마미야 : 마음이 여유로워야 운동의 동력이 생기니까 (중국 운동을) 기대할 수 있어요.
마츠모토 : 그 대신 일본처럼 누구나 시위에 나가서 이러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자신들의 주장을 그때 그때 호소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이) 부럽다고 합니다.
아마미야 : 지금까지 뒹굴대자는 운동은 있었습니까?
마츠모토 : 약하게나마 있었어요. 지금까지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가난은 싫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늘었어요. 고도 성장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마미야 : 중국 이외의 아시아인들에게 이 선언이 전해지나요?
마츠모토 : 대만에서는 일본어판 번역도 붙여 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에도 번역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일단 원문의 데이터는 보냈습니다. 어쨌든 미국에 상륙했으니까 영어판이 생기면 이걸로 세계로 확산되는 거겠지요.
‘탕핑주의자 선언’의 정신을 공유하고 싶다
아마미야 : 일본어판 마지막 페이지에는 '다메렌'의 가미나가 코이치 씨가 이불속에 들어가는 사진과 함께 '인생의 승리자'라는 말이 있어 진짜 좋아요.
마츠모토 : 90년대부터 누워계시죠. 처음에는 100부, 200부 정도나 팔릴까라고 생각했어요. 표지도 실크 스크린으로 한 수작업입니다. 1000부 찍었더니 허리가 너무 아팠어요. 중국은 아마 지하에서 유통되고 있겠지요? 그 정신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에 그냥 인쇄소에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직접 프린트해서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일본의 출판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중국처럼 되었을 때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해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미야 : 인터넷 전성시대에 손으로 인쇄한 책을 내려는 것은 역시 의도가 있나요?
마츠모토 : 유행 에 민감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독립잡지'가 유행하고 있어요.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것이나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은 검열을 거쳐서 재미없다고 해요. 진짜 위험한 것, 재밌는 것이 없어서 그렇죠. 여러 군데의 독립서점에 가면 독립잡지나 직접 만든 소설이 있죠.
아마미야 : 그렇게 되면 독립서점이 미움받지 않나요?
마츠모토 : 그렇죠, 표적이 돼죠. 그러니까 옷가게라든지 헌옷가게라든지 레코드가게라든지 이런 데랑…
아마미야 : 헷갈리게 하겠다는 건가요? 음식점이라면 빵에 끼워 팔 수도 있겠네요.
마츠모토 : 이렇게 들으면 전쟁 직전의 일본 사회인 것 같지만, 뒹굴뒹굴 주의자들은 ‘상관없어’라고 하는 거에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러시아라든지 중동이라든지 치안이 엄격한 곳에서도 모두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아마미야 : 그러고 보니 마츠모토씨의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이 중국에서 출판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 : 원제는 ‘世界マヌケ反乱の手引書: ふざけた場所の作り方’로, ‘세계 얼간이 반란의 지침서 : 시시덕거리는 장소를 만드는 법’이라는 뜻이다. 자립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과정이나 요령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마츠모토 : 아, 출판사에서 허가가 나왔기 때문에 출판될 예정이긴한데 작년 1년 동안 검열에서 지적 받은 부분을 산더미처럼 수정했어요. (원기사 주 : 여기서 말하는 ‘검열’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출판사 측에서 수정을 요청한 것을 의미한다. 저자와 출판사가 합의하여 원고 내용이 확정될 떄 출판사가 정부에 (출판 허가를 위한 검열을) 신청. 정부의 정식 검열을 통과하면 간신히 출판이 확정된다.) 예를 들어 대만이라고 쓴 곳은 중국·대만이라고 써야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2개월 정도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결국 대만이 나오는 부분은 비슷한 내용의 다른 에피소드로 다 고쳐 썼습니다. 싫더라구요. 전 대만 친구들도 많은데…
아마미야 : 무전취식을 하는 이야기는 괜찮았나요?
마츠모토 : 그건 괜찮대요.
아마미야 : 무전취식은 되고 대만은 안 된다니. 그건 그렇고 '반란'이라는 말이 붙은 일본 책이 자주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네요.
마츠모토 : 아슬아슬하게 출판하는거죠.
아마미야 : 그래요? 지금 중국과 왕래가 안 되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꼭 뒹굴뒹굴주의자 분들을 부르고 싶고 저희도 중국에 가서 같이 뒹굴거리며 마시고 싶네요.
마츠모토 : 뒹굴뒹굴주의도 여러가지 파가 있기 때문에 각자의 곳에 가고 싶어요.
아마미야 : 좋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자신의 새로운 경제 정책을)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말하지만, 세계 1%의 부유층 사람들이 전체 개인 자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와 있어요. 코로나19로 부자는 더 벌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연대는 필요해요. 앞으로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 연대에 대한 전망이 있나요?
마츠모토 : 공백이 1~2년이면 몰라도 3~4년**이 될 것 같아서 뒹굴뒹굴주의의 배신하는 사람이 나온다거나 (웃음), 새로운 사람이 나오거나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먼저 정보를 교환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 📑3~4년 : 인터뷰가 진행된 2022년 초에는 일본이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외국인의 입국을 철저히 통제했던 상황에서, 왕래의 공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0월부터 일본은 이전처럼 다시 해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아마미야 : 빨리 아시아 사람들을 만나서 어설픈 영어로 아침까지 이 야기하고 싶어요.
인터뷰어 : 아마미야 카린. 작가. 저서로 <축제의 어둠에서 : 2020-2021 코로나 재난과 올림픽의 열도를 걷다>(祝祭の陰で 2020―2021 コロナ禍と五輪の列島を歩く, 한국 미출간), <계속 살아가기 위한 ‘실패’ 입문>(生きのびるための「失敗」入門, 한국 미출간), <코로나 재난, 빈곤의 기록 : 2020년, 이 나라의 밑바닥이 빠지다>(コロナ禍、貧困の記録 2020年、この国の底が抜けた, 한국 미출간) 등이 있다.
인터뷰이 : 마츠모토 하지메. 재활용품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 점주. ‘난토카 바’, ‘마누케 숙박소’ 경영. 저서로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 <가난뱅이 난장쇼>, <가난뱅이의 역습> 등이 있다.
사진 : 이노우에 오사무(井上治)
인터뷰 정리 : 고바야시 카즈코(小林和子)
번역 : 박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