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초토화작전』이 한국전쟁의 상흔을 재현하는 방식
2023년 3월 15일
지난 2월 14일 망원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가 비정기 상영회 '씨네토크 동동'의 첫 행사를 열어 이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토화 작전』을 함께 관람했다. 이 글은 이 상영회 이후 작성됐다. 앞으로도 '씨네토크 동동'을 통해 동아시아의 현대사와 사회 문제를 다룬 여러 영화들을 함께 볼 예정이다.
‘사북 항쟁’과 이미영의 작업
1980년 4월 일어난 ‘사북항쟁’*은 오랜 시간 “술 취한 광부들의 폭동”이나 “유혈 난동”으로 알려졌을 뿐,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제대로 된 기록을 위한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최근들어 연구와 진상규명을 위한 작업, 생존자 지원을 위한 사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2002년 서울인권영화제 등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동체 상영 현장을 통하여 공개된 이미영 감독의 장편 독립 다큐멘터리 <먼지, 사북을 묻다>는 본격적으로 사북 투쟁의 면모를 파헤치는 작품이었다.
- 📑사북항쟁 :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에 걸쳐 국내 최대의 민영탄광인 강원도 정선군 동원탄좌 사북영업소에서 광부와 그 가족 6,000여 명이 어용노조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거하여 일어난 사건.
이미영 감독은 1990년대 학생운동의 변곡점이었던 ‘연세대 사태’를 직접 경험했다. 장기간 이어진 경찰의 포위망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폭력적으로 연행될 때, 그 역시 함께 경찰에 연행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구속은 피했지만 그 경험은 이미영 개인에게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연세대 사태로부터 1년 후인 1997년, 대학 4학년 당시 휴학중이던 이미영 감독은 같은 과 선배가 탄광촌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다큐멘터리를 찍으리라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북 탄광'과의 인연은 1999년 처음 제작한 다큐멘터리 <먼지의 집>, 2002년 작품 <먼지, 사북을 묻다>로 이어졌다.
<먼지, 사북을 묻다>는 5년 넘는 시간동안 사북 탄광에서 벌어진 투쟁을 취재한 감독이 이 사건의 증언자들을 직접 만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다. 탄광 노동자로서 실제 투쟁에 참여했던 한 주민, 투쟁 당시 파업 노동자를 진압하는 입장이었던 탄광촌 운영회사 ‘동원탄좌’ 사장, 경찰국장, 심지어 1980년 신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해당 투쟁을 수사했던 계엄사령관 등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또, 당시 구할 수 있었던 각종 자료사진과 영상 등을 증언들과 연결시킴으로써, 사북 항쟁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말했다.
<먼지, 사북을 묻다>가 제작된 시기는 현대사의 흔적을 응시하는 작품이 다수 등장하던 때였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송환>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과 <먼지, 사북을 묻다>가 차이가 있다면, 촬영 대상자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투쟁을 진압하기 위한 이들은 물론,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쉽게 감정을 여는 대신, '차갑다' 싶을 정도로 각자에게 사북 투쟁은 어떠한 사건이었는지 묻는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바라본 사건에 여러 관계로 얽힌 이들의 이야기는 사진·영상 자료와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며 오랜 시간 가십과 소문으로만 이어지던 사북 탄광 투쟁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또, 투쟁으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02년, 왜 이 투쟁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이후 이미영 감독은 네팔 국경지대의 분쟁 문제를 다룬 <인터뷰>(2009), 평창 동계올림픽에 얽힌 환경 파괴 문제를 조망한 <인터뷰 프로젝트 - 놀림픽>(2015) 등 꾸준하게 단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동시에 영화 공부와 영화 교육기관에서의 강연도 지속해왔다. 이런 그가 장편 작업으로선 오랜 침묵을 끝내고 『초토화 작전』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전쟁의 재현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초토화작전>은 전작인 <먼지, 사북을 묻다>와 비슷한 전개 방식을 보인다. 담담한 어조로 낭독한 감독의 내레이션이 주도해 사건의 전개를 차근히 따라간다. 사건과 연결된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을 고루 청취하며, 당시의 모습을 담아낸 영상과 사진을 통해 사건 흐름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두 작품의 차이도 적지 않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이들의 인터뷰를 담아낸 <먼지, 사북을 묻다>와 달리, <초토화작전>은 감독이 직접 찰영한 인터뷰 영상은 삽 입돼 있지 않다. (‘씨네토크 동동’ 상영회에 참석한 영화 관계자 말로는 촬영 자체는 이뤄졌으나, 편집 및 제작 과정에서 여러 사정으로 인해 직접 촬영한 인터뷰 장면을 넣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신 여러 경로를 통해 확보한 다양한 사진과 영상, 그리고 여러 문서 사료를 바탕으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는 김경만의 <미국의 바람과 불>을 연상시킨다.
<초토화작전>은 '필름에세이'의 형식을 취한다. 작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한국전쟁 당시 기록된 사진과 영상에 기초한다. 내레이션은 이 자료들을 이어내는 중요한 편집 포인트로 기능한다. 이때 내레이션은 감독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하거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에 피해를 받은 청소년 또는 청년들의 증언을 반영한다.
감독의 내레이션은 처음에는 담담히 사실을 요약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과 적군을 가르는 최소한의 작업도 없이 이뤄진 마을과 군중에 대한 대규모 폭격은 감독의 입으로 증언된다. 한편, 여러 청소년과 청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증언록의 낭독은 급박하게 흘러간 전쟁과 피난의 현장에서 난데없는 대량 폭격으로 소중한 가족과 이웃들이 끔찍한 일을 맞았던 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 조사팀에게 자신들의 피해를 증언한다. 두 내레이션에는 격한 감정이 담겨 있지 않고, 활자화된 증언록을 무덤덤한 톤으로 읽어내듯 연출되어 있다.
한데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내레이션에 어떤 변화가 감지된다. 영화 내내 감독의 내레이션이 지니 는 톤 자체에는 변화가 없지만, 점차 역사적인 비극 이상으로 이 비극을 영화로 옮겨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내레이션으로 드러난다. 내레이션은 한국 전쟁 시기 폭격의 문제를 건조하게 읽는 것을 넘어, 자신과 가까운 피해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다. 감독의 할머니 역시 무차별 폭격으로 소중한 이들을 잃는 끔찍한 일을 당한 당사자였던 것이다.
내레이션이 이런 참사의 감정을 곧바로 격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렇게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인간성이 쉽게 상실되는 전쟁의 참상을 말하기 위해, 이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초토화작전> 이전에도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을 재현한 작품은 여럿있었다. 할리우드 문법에 따라 만들어져 부분적으로나마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룬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 독립영화로 제작되어 노근리 학살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상우의 극영화 <작은 연못>, 민중의소리 기자 출신의 구자환 감독이 한국전쟁 전후 각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실태를 다뤄낸 <레드툼>과 <해원>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 영화들은 저마다 다른 접근법을 통해 오랜 시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학살의 문제를 다루었고, 이를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한데 ‘재현’의 방법론에 있어선 여러 비평들이 있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비극성을 더해 관객들의 분노와 눈물을 자아내기 위해 도구적으로 민간인 학살 장면을 연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작은 연못>은 '문자 그대로' 폭격이 벌어질 때마다 민간인의 신체가 잔인하게 찢어지고 피 와 살이 휘날리는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레드툼>과 <해원>은 다큐멘터리 장르이기에 직접적으로 학살 당시 상황을 재현하지는 않았어도, 어떻게든 학살 당시의 공포와 분노를 최대한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감정적인 고조를 높이는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이윤을 위한 연출은 아니지만, 신체가 폭력적으로 해체되는 장면을 재현하거나 사건 피해자를 울분을 거의 직접적인 수준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며 사건에 대한 관객의 공감과 이해, 감정적인 교감을 이 직접적 재현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진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상업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이 그렇듯, 관객에게 직접적인 자극을 주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성이 극한까지 밀려나가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과연 사건에 대한 접근을 돕는 길이 되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영화가 지니는 수위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이 아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또 다른 '스펙타클'이 되고, 현상이 지니는 맥락과 그것과 얽힌 기억들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일은 영화사에서 수도 없이 반복됐다. 영상마다 정도는 달라도, 고정된 이미지와 달리 ‘움직인다’(moving)는 특성이 자극의 스펙타클로 이어지기 용이하기도 하다. 어떠한 주제나 장르의 영화를 만들더라도 이를 만드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스펙타클의 강도나 표현 방식을 고민할 수 밖에는 없다.
신화 해체
이미영 감독은 <초토화작전>을 통해 자신만의 해답을 제시한다. 영화 장면 상당수를 이루는, 당시 한반도 전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한 전투기에 설치된 카메라로 기록된 기총 사격이나 폭격 순간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보여주는 것이다. 증언 낭독의 형태로 제시되는 사건 순간 역시 감정의 고조를 의도적으로 급격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영화가 폭격의 소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반문하며, 현장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건에 대한 접근을 돕는 것인지 묻는다.
사람이 폭격으로 인해서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여줘도, 재연하는 사람들이나 실제 경험한 사람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줘도, 그것이 한국전쟁 문제의 본질을 전달하는 것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이러한 ’재현의 역설‘은 영화이론에서든 다른 어떠한 잣대에서든 그리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직접적인 재현이 문제 해결과 전파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당사자나 제3자에게 다른 트라우마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초토화작전>은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 문제에 있어 명징한 방향성을 놓치지 않는다. 전쟁에서 무차별적 폭격이 어떻게 발생하게 됐는지 거시적 분석을 보여주고, 또 실제 땅 위에서 무차별 폭격을 경험한 이들의 미시적 기억을 합치하는 '투 트랙'의 방식으로 사건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한국전쟁에 대한 보편화된 기억법을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통상 한국전쟁은 1950년 개전해 1953년 휴전했으나, "사상 최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수식되고, 인천상륙작전이나 1.4 후퇴, 흥남 철수와 같은 순간들을 중심으 로 기억되곤 한다. 또는 이승만이나 맥아더 같은 '핵심인물'의 이야기로 축소되기도 한다. 이처럼 <초토화작전>은 ’영웅적‘ 혹은 ’신화적‘ 기록으로 남은 전쟁의 순간들을 철저히 해체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재현을 통해 실체를 파악하려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한국전쟁 시기 미군 범죄를 직접적인 이미지로 강력하게 비판하길 바라는 사람에겐 성이 차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씨네토크동동‘ 상영회에서도 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관객들이 있었다. 그러나 앞서 재현의 딜레마를 언급했듯, 작중에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작품의 목소리가 반드시 작품 밖 멀리 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영 감독이 <먼지, 사북을 묻다>에서도 고민한 지점이기도 하다. 왜 감독은 사북 항쟁을 말하기 위해 당시 투쟁에 앞장서거나 참여한 노동자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 심지어 탄압에 연루된 이들의 목소리까지 담으려 했나. 이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어떠한 사건을 단순히 특정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구성하는 대신 최대한 관계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와 산재된 기록들을 조합해 이 사건에 얽힌 복잡다단한 맥락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접근을 통해 공식 역사에서 지워질 뻔한 ’사북 항쟁‘은 새롭게 기록될 수 있었다.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배경부터 처음으로 불이 붙어 확산되고, 결국 안타깝게 폭력적인 탄압으로 마무리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최대한 철저하게 접근해 작품 내에서 ’사북 항쟁‘의 굴곡과 복잡한 결들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래 영상기술은 VR(가상현실)과 AR(증강 현실) 등을 종합한 ’메타버스‘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 세계마저 그럴싸하게 기록한다. 반면 <먼지, 사북을 묻다>는 그러한 첨단 시각기술 없이도 사건의 면면을 재현할 수 있음을 일찌감치 증명한 바 있다.
<초토화전투>에서 이미영 감독은 공식화된 기록과 그렇지 않은 기록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의 공백에 다가선다. 자신의 방식을 통해 한국전쟁의 참혹성을, 2023년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는 '전쟁의 문제'를 말한다.
우리는 미국의 대안적인 역사 다큐멘터리를 상징하는 존 지안비토와 켄 번스의 작업들이나, <붕괴>나 <옵티그래프> 등 사적 경험의 순간이 거대한 역사와 교차 순간을 전달해온 이원우의 작업들, <아메리칸 앨리>와 <거미의 땅>,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로 이어지는 김동령과 박경태의 기지촌과 위안부 여성 문제 다큐멘터리들을 떠올릴 수 있다. <초토화작전> 역시 일련의 시도들처럼 역사의 상흔을 재현하는 문제를 섬세하게 고민하고 있다. 🎥
글 : 성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