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군비 증강과 전쟁위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2022년 9월 30일
지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군비 증강에 적극적이었다. 2017년 40조3천억원이었던 군비는 매년 꾸준하게 늘어 2022년 54조6천억원에 달했다. 5년 사이 35.5퍼센트가 상승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군사력 순위는 세계 10~12위에서 6위로 급상승했다. 올해 국방부는 무기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경항공모함, 초소형 위성체계, 장사정포 요격체계, 소형무장헬기, F-35A의 양산 및 성능 개량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에 더해 올해 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폴란드에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70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을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금액 규모로만 최소 10조원이고, 향후 중장비 군수지원 물량까지 포함하면 최대 30~4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산 무기 수출계약으로는 역사상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K-2 흑표 전차는 이미 튀르키예에 250대 규모로 수출 및 기술이전을 한 바 있고, 오만과 노르웨이를 대상으로도 수출 계약을 앞두고 있다.
군비 증강과 무기 수출의 결과, 글로벌 파이어파워(Global Firepower)의 군사력 지수(GFP index)에 따르면 2022년 현재 한국의 군사력은 전 세계 197개국 중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 10위에서 네 계단 상승한 것이다.
한데 한국의 이와 같은 군비 증강과 무기 수출에 대해 보수 양당에 편 논자들은 환호일색이다. ‘국가주의’의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할 때, 자국의 강력한 국방력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군비 증강은 전 세계적인 전쟁위기와 맞닿아 있다. 이에 더해, 경기 침체로 인해 심화될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위기를 상기한다면 군비 증강이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다.
억제 전략
한국의 군비 증강은 주변국 군사력 확장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 국가는 ‘억제(deterrence) 전략’을 군사 정책의 기조로 삼는데, 이와 같은 억제 전략은 대개 끝없는 치킨 게임(chicken game)으로 양자를 몰아넣는다. 전쟁은 결코 합리적인 개인에 의한 논리적 결정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전쟁은 위정자들의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에 의해 발생하며, 이들은 자주 상황 판단의 오류를 범하곤 한다.
억제 전략이 끊임없이 거듭되다보면 “예방 전쟁론(preventive attack)’이 제기된다. 가령 지난 대선 시기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핵을 탑재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가정하며 “(북한으로부터) 마하5 이상의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핵을 탑재했다고 하면, 수도권에 도달해 대량살상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이내라서 요격이 사실상 불가하다”면서, “조짐이 보일 때 3축 체제의 가장 앞에 있는 킬체인(Kill-Chain)이라는 선제타격외엔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고, 미사일 공격을 하면 방법이 없으니 먼저 침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예방적 전쟁’을 금지한 유엔 헌장과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7천만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주장에 한국 사회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 그에 반해 반대편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세력도, 지난 정부의 군비 증강에 대해선 찬양일색이다.
물론 북한은 군비 지출 비중이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다. 2015년 이후 북한은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을 통해 개발을 가속화했으며, 2017년부터는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도 성공했다. 올해 3월에는 화성-17호 시험발사에 성공했는데, 사거리 최소 13,000km로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포함한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한을 선제 공격해 ‘점령’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북한의 군사력은 세계 28위이며, 전력난과 만성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남한 군사력과 상대가 불가능하다. 핵무기나 미사일 등 전력을 포괄적으로 평가할 땐 더 적은 차이를 보이지만, 대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재래식 전력에서 남한이 북한에 비해 큰 우위를 보인다고 평가한다. 실제 한국군의 군비 증강은 꼭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북핵’ 자체가 문제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전면화하는 대신 “선제 공격”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군비 증강
한반도 전쟁 위기는 북한보다는 주변국 정세로부터 촉발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매년 빠르게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올해 일본의 방위비 예산은 2022년 5조4005억엔(54조원)이었으나, 군사전문가 한다 시게루(半田滋)의 예측에 따르면 올해 12월 확정될 2023년도 군비 수준은 5조5947억엔+기타 항목(1조엔 전후 예상)로 늘어날 예정이다. 한다 시게루는 “방위성 취재 30년 동안 이렇게 ‘기타 항목’이 많았던 건 처음”이라고 고백했는데, 그의 예측이 맞다면 20퍼센트를 전후로 한 상승폭이다. 이 항목에는 F-15전투기, F-35전투기, 무인공격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기시다 총리는 미일 회담에서 바이든에게 ‘군비 증가’를 미리 언급하고 평화헌법 개헌을 준비하는 등 군비확장의 스텝을 밟고 있다. 일본 인터넷언론 ‘데모크라시타임즈’의 군사전문평론가 한다 시게루는 방위성이 내년 군비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이전과 달리 세부항목을 대부분 표시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시게 루는 이것이 금액변동(군비증가)의 이유를 야당에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에게 내역을 설명할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에 야당이 국회에서 제대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위비 대폭 인상 분위기는 기시다 총리 내각이 보이던 재정안정성 기조와는 동떨어져 있다. 적어도 군비 문제에서 기시다 총리는 간판까지 내걸며 주창하던 “새로운 자본주의”를 언급하지 않은 채 증액만 이야기하고 있다. 자민당 내부적으로 아베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7월 8일 아베 암살 이후 일본 사회에서 통일교와 자민당의 밀접한 관계가 드러나 논란이 일자, 기시다 총리는 통일교와 연을 끊고 새로운 내각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새 내각에서도 아베파는 약 3분의1에 달한다. 죽은 아베가 산 기시다를 끌고 가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 대만의 군비 증강
중국 정부 역시 올해 3월 초 국방 예산을 2021년 대비 7.1% 증가한 1조4504억 위안(280조원)으로 증액했다. 이는 한국 국방비 54조6천억 원의 5배, 일본의 4배다. 이 차이는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중국은 1.7%로, 러시아(4.3%)나 미국(3.7%), 인도(2.9%), 한국(2.8%)보다 낮다. 일본(1.24%)은 그보다 낮지만, 평화헌법 개정을 계기로 비약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은 이와 같은 국방예산 증가율 증가세의 배경이 ‘대만’에 있다고 분석했으나, 그보다는 ‘미국’에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