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긴이 주] 이 글은 학회 아시안노동리뷰(Asian Labour Review) 인터넷판에 게시된 글(In Post-Coup Myanmar, Workers Assert Workplace Democracy amid Suspension of Electoral Rule)을 해당 ALR 편집위원회와 필자 스티븐 캠벨(Stephen Campbell)의 동의를 구해 번역한 것이다. 스티븐 캠벨은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 사회과학부 조교수이자 베르겐대학(University of Bergen) 사회인류학부 연구원이다. 저서로 <Border Capitalism, Disrupted: Precarity and Struggle in a Southeast Asian Industrial Zone>(2018)가 있으며, 미얀마와 태국의 노동 문제에 대한 많은 글을 쓰고 있다.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노동현장에서의 투쟁과 노동조합이 빠르게 확산된 10년 간의 반(半)문민 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따라서, 이번 쿠데타는 미얀마의 노동조건과 노동자 조직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미얀마의 현 상황은 2011년에 시작된 미얀마의 소위 ‘민주적 전환’ 이전의 상황을 쉽게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의 현재와 2011년 ‘민주적 전환’ 이전 시기의 정세를 비교함으로써2021년 쿠데타 이후 ‘노동자 조직화’라는 과제와 기회요인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우선 쿠데타 이전 10년(2011~2021년) 동안 노동자 투쟁의 역사, 쿠데타에 맞선 노동자들의 역할, 그에 따른 정치화된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을 소묘할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알면 오늘날 미얀마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에 대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미얀마 노동자 투쟁의 간략한 역사
2011년 준민간통치로 전환하기 전까지 거의 50년 동안 미얀마에서 노동조합은 사실상 불법이었다. 1988년 민중 봉기(8888항쟁) 이후, 다시 등장한 군사 정권은 과거 노동자들이 직장 내 고충에 대한 집단적인 보상을 추구하기 위한 대체적인 경로 역할을 했던 사회주의 시기의 노동자평의회를 폐지했다. Campbell, S. (2019) “Labour Formalisation as Selective Hegemony in Reform-era Myanmar,” The Asia Pacific Journal of Anthropology 20(1) p.64.
이후 20년 동안 군부는 노동자들의 조직화 및 단체협상 노력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였고, 이따금 폭력을 동원했다. Kyaw Soe Lwin (2014) “Legal Perspectives on Industrial Disputes in Myanmar,” in Law, Society and Transition in Myanmar, edited by Melissa Crouch and Tim Lindsey (Oxford: Hart Publishing), p.296.
그럼에도 불구하 고,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소규모 비공식 파업과 직장 협상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야웅치우 노동자협회(Yaung Chi Oo Workers Association)나 버마노총(FTUB)과 같은 옛 노동단체들도 이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미얀마 내에서의 투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대외 활동에 주력했다. 이들은 대부분 태국에 근거지를 두고 태국에서 일하는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거나 국제적으로 옹호 활동(버마노총의 경우처럼)을 벌였다.
2011년 미얀마가 선거 통치로 전환하기 전의 상황이 이러했다. 이러한 노동권 보장의 정치적·법적 틀은 2008년 군부가 초안을 마련한 헌법에 명시돼 있다. 이와 같은 태세 전환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국제노동기구(ILO)의 도움으로 초안이 마련된 후 수 년에 걸쳐 통과되고 공포된 몇 가지 중요한 노동법이 생겨났다.
2011년 노동단체법(노조 설립 합법화), 2012년 노동쟁의합의에 관한 법률(단체협상 공식화), 2013년 최저임금법이 바로 이것이다. 이 법들은 노동권과 자본주의 발전을 상호보완하자는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하여 자유민주적인 노동 체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핵심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법들을 둘러싸고 곧 발발한 갈등들은 새로운 합의가 매우 모순적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예컨대 양곤을 기반으로 한 ILO 어드바이저는 2015년 미얀마의 새로운 노사관계 체계가 노동자들의 집단 행동을 비파업적인 분쟁 해결 메커니즘으로 전환하자, “파업이 일어나지 못하도록(ward off strikes)” 설계됐다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미얀마의 노동운동가 예 인트 칸트 마웅(Ye Yint Khant Maung)은 “기존 노동조합법은 표면적으로는 노동자의 조직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법률은 외국인 직접투자와 안정적인 자본축적을 촉진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잠잠하게 하여 산업적 평온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2019)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미얀마 노동자들은 새 법률에서 얻어낸 기회를 활용해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또 파업을 증가시켰다. 미얀마 일반노조연맹(Federation of General Workers of Myanmar; FGWM)의 모에 산다르 민트(Moe Sandar Myint)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의 이점을 보고 있었어요. 파업은 그들에게 권리를 주었죠. 한 번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다른 노동자들은 파업이 일으키는 효과를 봅니다. 그들은 파업의 맛을 알게 되고, 그게 좋다는 걸 알게 되죠.” cf. Myanmar’s Labor Movement Is Central to the Fight Against Authoritarianism
새로운 노사관계 메커니즘이 노동자들의 파업을 완전히 억제하는 데 실패하자, 고용주들과 경찰, 정부 관료들은 파급력 있는 노동현장 쟁의를 진압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개입했다.
가령 2015년 양곤 슈웨피타르 타운십(Shwepyithar Township) 내 봉제공장 다섯 곳에 고용된 약 5,000명의 노동자들은 5주에 걸쳐 공동 파업을 벌였다. Arnold, D. and S. Campbell (2017) “Labour Regime Transformation in Myanmar: Constitutive Processes of Contestation”, Development and Change 48(4) pp. 816 – 820

초기 노동·고용·사회복지부(the Ministry of Labour, Employment and Social Welfare)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협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기존 임금을 수용하고 파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타운십 당국은 민간 자경단과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들을 급파해 노동자 파업 캠프를 폭력적으로 해산시켰다. 진압 과정에서 대부분 여성이었던 수십 여 명의 시위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었고, 경찰은 2명의 기자와 14명의 파업 노동자를 체포했다.
미얀마 국민민주동맹(NLD) 정부는 2016년 2월부터, 5년이 흐른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로 인해 추출될 때까지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물리적 탄압을 지속했다. NLD 정부가 외국인 직접투자를 환대하는 환경을 조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쿠데타 당시 3천 개에 가까운 기업단위 노동조합—공식적으로는 ‘기초노동조직’이라고 불린다—이 등록되어 있었다. 이들 노동조합 대부분은 양곤 인근의 공업단지에 자리잡고 있다.
미얀마노동조합연맹(CTUM, 구 FTUB)은 미얀마 유일의 노총이다. CTUM은 정치적 협상, 사용자협회와의 싸움에 중점을 두었으며, 정부 관료들과 대체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