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제로 코로나와 캠퍼스 봉쇄에 맞선 대학생 시위

중국 | 제로 코로나와 캠퍼스 봉쇄에 맞선 대학생 시위

저항으로 모두가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는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을 안고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은 매우 다르다.

2022년 7월 26일

[동아시아]중국대륙중국, 동아시아, 제로코로나, 학생운동, 베이징, 상하이

상하이의 ‘닫힌’ 봄

2022년 봄, 중국 대륙의 대학생들은 억압과 무기력 속에서 동요했다.

3월 이후 상하이시의 대규모 바이러스 감염자는 한 달 만에 1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철저한 제로 코로나 방역으로 서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바이러스 전파가 매우 적었던 중국의 고위 관료들의 우려를 낳았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캠퍼스 폐쇄 조치를 발동했다. 학생들은 몇 제곱미터에 불과한 기숙사 방에 머물러야 했고 캠퍼스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금지됐다.

3월 8일 상하이교통대학 캠퍼스가 폐쇄됐고, 3월 11일엔 화동정법대학이 모든 학생의 캠퍼스 외출을 봉쇄했다. 퉁지대는 3월 9일에 봉쇄했고, 3월 13일 푸단대학과 화동사범대학이 캠퍼스 준 폐쇄 관리 조치에 들어갔다. 상하이 시내 대학들은 ‘전시상태’로 바뀌었다.

강력한 통제 조치에 따라 물자 수송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학생 식당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육류를 사용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퉁지대학(同济大学) 캠퍼스 봉쇄 48일 차인 4월 26일, 돼지고기에서 벌레가 나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생리대 부족을 겪고 며칠씩이나 샤워도 할 수 없는 삶이 일상화됐다.

학생 식당 문제가 불거지자 학교 당국은 온라인으로 방역 상황 설명회를 개최했다. 학교 당국 대변인이 주어진 원고를 읽기만 하고 대화를 거부하며 질문자들을 온라인 회의실에서 쫓아내자 학생들은 분노했다. 한 학생이 회의 도중 학교 당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공유했고, 이후 사태는 연쇄적인 온라인 항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예 못 먹어"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예 못 먹어"

5월 15일 베이징대학 완류캠퍼스

4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상하이 대학생들의 상황이 베이징에서 재연됐다. 밤사이 베이징대학(北京大学) 완류(万柳)캠퍼스에 격리벽이 세워졌고, 베이징 내 여러 대학에서 캠퍼스 폐쇄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여러 차례 벌어졌다.

5월 15일 밤, 베이징대학 학생 300여 명은 봉쇄 조치에 항의하며 시위했다. 시위 영상 속 학교 직원은 학생들에게 왜 캠퍼스 봉쇄 조치를 할 수밖에 없는지 해명했지만, 학생들은 이를 듣지 않고 격리벽을 무너뜨렸다.

이 사건이 외신에 널리 보도되자 학교 당국은 이것이 ‘시위’가 아니라 ‘의견 전달’이라고 설명했다. 이튿날 정부는 이번 시위와 관련된 영상을 삭제하고 검색을 차단했다.

베이징대학은 곧바로 간담회를 열고 다시는 격리벽을 설치하지 않겠다고 학생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16일, 《关于调整疫情防控期间万柳学区运行管理的相关举措》을 발표해 소통 문제, 셔틀버스 문제, 기숙사 문제, 급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5월 19일, 학내에서 또 한 번의 집회가 열렸다. 학교 당국이 다시 격리벽을 쌓자 학생들은 학생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그날 저녁 격리벽이 다시 철거되었고, 다음날에는 학내 순환버스 운행이 재개됐다. 3일 차에 이르러 학교 당국은 귀향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베이징대학 봉쇄가 빠르게 해결되자 베이징 내 대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역시 베이징대학답다”라며, 부러워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들이 할 수 있다면, 우리라고 왜 못하겠냐”라는 반문도 나왔다.

5월 15일 베이징대학 내 시위로 봉쇄 벽이 무너진 모습
5월 15일 베이징대학 내 시위로 봉쇄 벽이 무너진 모습

불공평과 '외부 세력'

사실 5월 초 베이징 전역의 봉쇄 조치가 강해질 때도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은 예외적인 혜택을 받았다. 두 학교는 ‘출입 신고제’를 통해 학생들이 모바일앱에 목적지와 경유지를 기재하면 캠퍼스를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에 반해 다른 학교 학생들은 캠퍼스가 봉쇄된 이유를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다.

이런 공평하지 못한 처우는 명문대-비명문대, 베이징-비베이징을 갈랐다. 방역에서조차 차별적 대우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것이다.

한편 학생들은 ‘외부 세력(境外势力)’과의 연계라는 혐의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항의 행동의 비정치성, 순수한 의도 등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4~5월 상하이와 베이징 대학가를 점령한 일련의 시위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학교 당국은 시위를 발의한 학생들에게 “외부세력”, “정서 선동”, “대립 조성”, “이용당하지 않도록” 등의 말을 언급하며 경고하고 훈계했다.

학내 집회 포스터가 캠퍼스 안팎에 공유되거나 부착됐을 때, 학교 당국은 학생들을 압박하며 즉각적인 포스터 철거를 요구했다. 그 이유를 묻는 학생들에게 학교 당국은 “외부 세력과의 연관성”을 언급했다.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지만, 이런 언급은 주체적으로 나선 학생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5월 23일 정법대학 학생들의 시위 동참을 호소하는 웹자보
5월 23일 정법대학 학생들의 시위 동참을 호소하는 웹자보

5월 23일 중국정법대학

시위는 다른 학교로도 번졌다. 중국정법대학에서도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학교 당국은 가족과 사구(社区)의 동의를 받는 조건으로 캠퍼스 출입을 허용할 것이라 통보했다.

5월 23일 정법대학에서 열린 학생 시위 현장
5월 23일 정법대학에서 열린 학생 시위 현장

5월 24일 베이징사범대학

베이징사범대학 저녁 집회 장소와 요구안을 설명하는 웹자보
베이징사범대학 저녁 집회 장소와 요구안을 설명하는 웹자보

정법대학에서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 저녁 8시, 베이징사범대학에서도 시위 계획이 나왔다. 시위를 제안한 학생들은 캠퍼스 서쪽에 있는 ‘치우지돤 운동장(邱季端体育场)’에서 모이자고 제안했다.

저녁 8시 20분경 현장에 모인 학생들은 운동장 북쪽에서 캠퍼스 본관을 향해 행진했다. 학생들이 본관 앞에 다다르자 몇 명의 교수들과 방역 요원들이 가로막았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당국을 향해 질문과 불만을 제기하며, 학교의 캠퍼스 봉쇄 조치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피력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 A씨는 언론에 “시위 현장에 교수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학생 B씨는 “처음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8시 50분경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학교 당국이 단속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생 C씨는 10제곱미터의 좁은 기숙사 방에 6명이 살다 보니, 캠퍼스 봉쇄 이후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다고 증언했다.

학생들은 학교 당국의 통보가 여러 차례 뒤바뀌었던 것, 폐쇄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험 기간 이후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는 문제 등에 불만을 품었고, 물류 차단으로 생활의 불편이 지속되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시위 다음 날,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귀향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시 당위원회의 리이(李奕) 부서기는 기말고사 일정 배치 후, 각 대학의 귀향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베이징사범대학과 정법대학 학생들이 이룬 승리 소식에 학생들은 환호했다.

5월 24일 저녁, 베이징사범대학 학생들이 외출 허가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5월 24일 저녁, 베이징사범대학 학생들이 외출 허가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한계와 가능성

일련의 대학생 시위를 ‘학생운동의 발흥’으로 해석하긴 어렵다. 캠퍼스 봉쇄 조치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과 저항은 정당하지만, 이것이 관료주의적 조치에 대한 불만을 초월하거나, 정치적인 요구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베이징과 홍콩에서 학생 시위 경험이 있는 D씨는 이를 ‘소아(小我)’와 ‘대아(大我)’로 구분한다. 이런 구분법에서 가령 1989년 6월 톈안먼 항쟁이나 2019년 홍콩 항쟁은 자신이 속한 사회 전체의 미래와 민주주의에 대한 구상, 이를 향한 구체적이고 집단적인 요구와 연결되어 있다. 항쟁마다 스펙트럼의 폭은 넓지만, 일정한 이념성을 갖추고 있어 사회 방향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반면 지난봄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일어난 일련의 학생 시위는 현재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항의 시위에 그쳤을 뿐, 이를 넘어선 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물론 당국의 탄압과 ‘외부 세력’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운동이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까운 예로, 2018년 자스커지 사건을 경과해 발생한 학생 운동가들의 투쟁은 국가권력의 강력한 탄압으로 짓밟혔고, 수많은 학생운동가들은 공적 공간에서 쫓겨났다.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경험을 겪은 지금의 대학생들이 당장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단결을 이루긴 어렵다.

그럼에도 저항으로 모두가 원하는 것을 쟁취했다는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기억을 안고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은 매우 다르다. 더구나 중국 대륙에는 급진적인 대중운동을 전개한 역사와 시대를 지나며 성장한 다양한 활동가들이 있다. 당장은 탄압을 피해 지내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대중 저항이 봉쇄되어 있다고 해도, 국가권력의 금지를 넘어선 급진적인 사유와 실천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5월 24일 베이징사범대학 학생 시위 모습
5월 24일 베이징사범대학 학생 시위 모습



🐬참고 자료

  • 史靼旺,当警车驶入校园、“境外势力”无孔不入,大陆高校学子如何抗议封校?,端传媒

  • 北京大学万柳公寓5月15日发生学生群聚抗议 学生喊出 去你马的强制硬隔离,大快人心,900新闻 https://www.youtube.com/watch?v=4uB2hT7iLEg

  • 传中国政法大学学生抗议博得离校权 北师大游行,阿波罗新闻

  • Paul Mozur, Joy Dong and Isabelle Qian, Students Protest Covid Lockdowns at Elite Beijing University, The New York Times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