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 정부의 모호한 입장
2022년 3월 31일
지난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이 군사작전은 돈바스에 그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이프)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까지 이어졌고, 이 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푸틴은 우크 라이나에 대해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미국의 식민지”라고 비난하고, “본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역사, 문화, 정신적 공간을 함께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강도 높은 제재를 단행하며 침공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목적은 나토 중심의 유럽 안보구조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편입 가능성이 제기되자 러시아의 안보 불안감이 자극된 것이다. 이미 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 상당수는 나토에 가입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을 막을 마지막 보루로 인식됐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반면 젤렌스키 당선 이후 최근 몇 년간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서방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한 우크라이나 여론은 시시각각 변해왔다. 최근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관세동맹에 가입하는 것보다는 나토 가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최우방국인 중국의 행보는 초유의 관심사가 됐다. 중국은 미국에 비견될 만큼의 경제대국이고,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원조가 이루어질 경우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의 대(對)러시아 봉쇄나 경제 제재가 무력화 될 수 있다. 실제 2월 4일 이루어진 중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도 아시아 태평양으로부터 시야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는데, 이는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 기조라는 의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접적 배경
지난해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 배치하기 시작할 때부터 중국 정부가 내놓은 입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토가 냉전 이후에도 동유럽 일대로 확장을 지속한 것이 현 사태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2월 4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 나토 확장 반대를 명시했다. 둘째, 모든 국가의 주권, 독립, 영토는 보전되어야 하며 우크라이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옹호한다. 마지막으로 사태 악화의 책임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 위기를 부풀려온 미국에 있다는 것이고, 중국 정부는 어떠한 불법적인 일방적 제제 역시 일관되게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중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당시 중국의 행보를 근거로, 중국의 입장을 예측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의 크림반도 합병 관련한 비판 결의안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 기권표를 던졌다. 또, 크림반도 합병을 공식 승인하지도 않았다. 다만 같은해 5월 러시아와 4천억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해,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제재 효과를 상쇄시킨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직접적으로 러시아의 편을 들지는 않고 있다. 중국과 우크라이나의 이해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EU와 맺은 자유무역협정, 풍부한 자원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2021년 러시아를 제치고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국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중국의 일대일로 주요 거점국가이며, 50여 개의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등 활발한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한편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 티베트, 대만에서의 독립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한다. 따라서 친러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을 승인한 러시아를 지지할 경우, 자국으로 불똥이 튈수도 있다는 점 역시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다.
2월 25일 (전쟁 2일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이틀 만에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전화 회담을 진행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회담을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으나, 전제조건이 없는 대화 의사인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게 언급했다. 중국 외교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러시아군의 작전 상황을 설명하고, 그간 나토가 러시아의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무시해왔고, 약속을 어겼다는 지론을 다시 밝혔다고 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들의 철수나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중국 정부는 자국민 안전 확보를 위해 전세기를 띄우기로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대사관이 위챗(We Chat) 공식 계정을 통해 우크라이나 현지 교민 철수에 관한 긴급 통지를 발표한 것이다.
2월 26일 (전쟁 3일차)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들이 러시아 일부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망(SWIFT)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러시아의 국제 금융거래를 봉쇄시키는것으로, 가장 강도 높은 경제 제재 조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크림반도 합병 때부터 퇴출압박을 받아왔던 러시아가 이에 대한 대응 작업을 해왔으며,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가 금융 제재 타격을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줄곧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는데도 주력해왔다. 따라서 오히려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러시아와 중국의 강화된 경제적 유대관계로 러시아의 위안화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월 28일 (전쟁 5일차)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 행정부가 대만에 전직 고위 국방 당국자를 파견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인 대만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이 방문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대만에 기습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해 감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사전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3월 2일 (전쟁 7일차)
중국의 계속되는 중립노선에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반중 정서가 확산되었다. 중국의 중립노선은 사실상 러시아 편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고있는 중국인들을에게 “가급적이면 중국인이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권고했다.
3월 4일 (전쟁 9일차)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의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회의,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막했다. 올해 양회에서 외교안보 분야 최대 화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전쟁을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의 단합은 공고해지고 있고, 시 주석 3연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대외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것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3월 8일 (전쟁 13일차)
시진핑 국가주석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현지시간 3월 8일 오후에 화상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이 날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러시아의 최대 우군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국의 역할론이 커지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시주석은 유럽 대륙에서 다시 불길이 피어오르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중국이 소통과 교류를 유지하여 당사국의 요구에 근거해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 주석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평화회담을 지지한다며 대화를 계속해 평화에 도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러시아의 침공과 서방제재를 놓고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는데, 이는 당사자끼리의 대화를 강조했던 이전의 태도보다는 적극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3월 13일 (전쟁 18일차)
중국 정부는 현지시간 13일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류펑위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전혀 들어본 적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은 당황스러우며, 우선순위는 우크라이나의 긴박한 상황이 고조되거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밝혔다.
3월 15일 (전쟁 20일차)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스페인 외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대 러시아 제재가 중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또한 중국은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을 일관되게 반대해왔다며,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제재는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각국 민생에 해를 끼친다고 전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러시아 지원을 우려하며 대가를 경고한 데에 대한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전일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는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대해서도 ‘미국은 늘 가짜 소식을 만들어 퍼뜨린다’며 사실을 부인했다.
3월 18일 (전쟁 23일차)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4개월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시진핑 주석은 “국가 간의 충돌 대립은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중국과 미국이 특히 국제적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20일 (전쟁 25일차)
중국 국영언론 인민망(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왕이 외교부장은 20일에 알제리 외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회견에서 왕이 부장은 “분쟁을 해결하는데 전쟁과 제재만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라며,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견지했다. 마찬가지로 친강 주미 중국대사 역시 같은 날 CBS 방송에 출연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러시아와 정상적인 무역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친강 대사는 중국 정부가 러시아에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며, 정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을 의식한 발언으로, 미국은 러시아를 도울 경우에 중국도 제재하겠다고 경고한 상태이다.
3월 23일 (전쟁 28일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 대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민주주의 동맹의 대결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여전히 중국의 수출에서 1/3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정치적 우방인 러시아의 편에 선다는 것이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대외무역의 GDP비중이 35%로 여전히 높은 편이고, 반러시아 연맹의 핵심역할을 하고 있는 G7 국가들이 중국의 수출시장에서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지켜보던 대만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중국과 타이완 양쪽 모두 우크라이나와 타이완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으나, 적지 않은 대만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우크라이나에 투영하고 있다. 3월 16일 대만 정부가 주도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모금액은 약 268억 원을 기록했을 정도다.
3월 31일 기준, 전쟁 발발 35일의 시간이 지났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러시아가 완고한 태도를 굽히지 않으면서 참혹한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이중적인 입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한 중국 통치엘리트들의 곤란을 드러내고 있다.
정리: 권보현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東動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