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1922년 카이루안과 안위안 탄광 노동자 파업

중국 | 1922년 카이루안과 안위안 탄광 노동자 파업

중국의 노동자운동은 탄광 노동자 파업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 12월 22일

[동아시아]중국대륙중국, 중국 역사, 중국공산당, 노동운동, 파업

이 글은 2021년 10월 발송한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동동’ 제9호에 실린 바 있습니다. 뉴스레터 구독을 원하신다면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중국의 노동자운동은 탄광 노동자 파업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이루안 탄광 노동자 파업

1922년 10월 23일 허베이성 탕산(河北省唐山)에 위치한 카이루안(开滦) 탄광 노동자들의 이 파업에는 5만여 명 참가한 거대한 저항이었다. 반제국주의 총동맹 파업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이는 초기 중국공산당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주요한 계기가 됐다.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며 일했고, 아무런 생명 안전 장치도 없었다. 노동시간은 하루 16시간에 달했고, 산재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매년 400여 명이 윈치(갱내 수송차)에 깔려 죽을 정도였고, 갱내 붕괴의 위험도 매우 컸했다.

카이루안 탄광은 청나라 말기에 설립된 중국 최대규모 신식 탄광이었다. 처음에는 청나라 관료 자본이 관리했고, 나중에는 영국 자본이 통제했다. 자본가들은 몇 마리의 노새가 죽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온갖 모욕을 감내하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초기 중국공산당은 덩중샤(邓中夏), 펑례허(彭礼和) 등 인사들을 탕산에 파견하여 선전 및 조직화 사업을 전개한다. 1922년 10월, 노동자들의 대표는 자본가에게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한다. 그러나 자본 측은 이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대표를 난폭하게 다루며 구류해버린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중국노동조합서기부(中国劳动组合书记部)가 파견한 덩중샤와 중국공산당이 보낸 왕진메이(王尽美), 덩페이(邓培)의 지휘 하에 동맹 파업을 시작한다. 이 파업은 25일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 파업으로 당시 위안스카이 당국과 영국 자본가는 깜짝 놀랐고, 반동 군벌 차오쿤(曹锟)을 보내 진압하기에 이른다. 영국 탄광자본이 동원한 군대는 라이플총으로 피비린내 나는 진압을 가한다. 50여 명의 노동자들이 맞아죽거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위안 철도·광산 파업

1920년대 탄광 노동자들의 활발한 투쟁은 카이루안 탄광에 그치지 않는다. 장시성(江西省) 핑샹시(萍乡市)에 있는 안위안 철도·광산(安源路矿)에서도 대규모 파업이 발생했다. 안위안 광산은 한즈핑공사(汉冶萍公司)가 관할하고 있었는데, 이 탄광에서만 1만2천명이 일했고, 함께 운용되던 주핑철도국(株萍铁路局)에서도 1,1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1922년 5월 중국공산당은 이 탄광에 안위안 철도·탄광 노동자 구락부(安源路矿工人俱乐部) 창립하면서, 조직 사업을 준비한다. (여기서 ‘구락부’란 영어 club을 음역한 단어이다.) 이런 과정에 위기감을 느낀 사측은 9월 초, 노상 탄광 당국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는 일이 벌어지고, 동시에 군벌과 결탁하여 노동자구락를 폐쇄해버린다. 그러자 노동자구락부 소속 노동자 1만7천여 명은 9월 14일에 파업을 거행한다.

이날 새벽 구락부 감찰대는 공장 인근과 거리에 안내문을 붙이고 파업을 선언한다. 이에 안위안 노광 사측은 전력을 다해 파업 파괴를 시도한다. 처음에는 노동자들을 매수하려 하지만 이는 실패한다. 또, 밀정을 보내 당시 이 투쟁을 도우러 온 중국공산당 활동가 이립삼을 암살하고, 따양에게 600위안의 현상금을 내건다. 그리곤 군벌과 결탁해 무력진압을 시도하고, 안위안을 특별계엄구역으로 설정해 계엄사령부를 설치한다. 중요지역에 기관총을 설치하는가 하면, 군경 수백 명을 배치해 1인당 하루 2위안의 보너스까지 지급한다.

군대와 경찰은 자본과 국가권력의 폭력을 수행하는 도구이지만, 그곳에 속한 말단 군인과 경찰들은 노동자계급과 동질감을 느껴, 대립 과정에서 갑자기 노동자들의 편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안위안 광산 파업 진압에 나섰던 군경들도 그랬다. 노동자들이 군·경을 향해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펼치자, 동원된 군인과 경찰들 중 상당수가 노동자들의 문제에 동정해 연대 행렬에 나선다.

결국 철도광산 당국은 협상을 수용해 9월 18일 노동자클럽의 합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처우 개선과 임금 인상을 위한 13개 조약을 체결한다. 이렇게 닷새만에 파업이 끝나고, 조약이 체결되자 구락부는 1만여 명의 파업승리 경축대회를 열고 복귀를 선언한다.

오늘날 안위안은 중국의 대표적인 홍색 관광지 중 하나이다. 당시 탄광 현장은 AAAA급 여행경구가 됐다. (중국의 여행경구 중 가장 높은 등급은 AAAAA급이다.) 지역민들은 이곳을 “중국 노동자운동의 기점”이라고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