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잠비아 노동정치에서 드러난 중국 국가자본의 특수성
2021년 10월 28일
옮긴이주 : 이 글은 2019년 8월 홍콩중문대학 중국문화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지 《21세기》 174호에 실린 글 「中國國家資本有何獨特之處?——评Ching Kwan Lee, The Specter of Global China: Politics, Labor, and Foreign Investment in Africa」을 약간의 축약을 거쳐 번역한 것이다. 필자 중 장위에란(張躍然)은 현재 UC-Berkeley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있고, 여러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필자 팡란(方然)은 지난 8월 중국 난닝에서 국가정권전복 선동죄(煽动颠覆国家政权罪) 혐의로 체포되었다. (관련글 : 26세의 노동연구자이자 활동가가 국가정권 전복 선동 혐의로 체포되다)
리칭콴의 연구서 『The Specter of Global China』은 중국 국가자본이 아프리카 노동정치에서 어떻게 행위하는지를 면밀한 현장연구를 통해 분석한 저작이다. 이 글의 저자들은 이 책의 장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중국의 대외 투자 규모는 빠르게 확대되었다. 중국의 대외 비금융 직접투자의 축적량 중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 나머지 비국유기업 중에서도 국가가 지분에 참여하는 주식회사들은 매우 많다. 이는 중국의 국가자본은 일종의 다른 해외 투자의 초국적 사적 자본과 다른 자본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UCLA 사회학과 교수 리칭콴(李静君; Ching-Kwan LEE)의 저서 《글로벌 중국의 유령: 아프리카에서의 정치, 노동, 외국인투자(The Specter of Global China: Politics, Labor, and Foreign Investment in Africa)》에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보고자 한다. 책의 구조를 살펴보면, 제1장에서 문제를 제출하고 주요 논점을 개괄한 후, 2~4장에서는 ‘축적 논리’, ‘생산 시스템’, ‘자질 관리’ 세 가지 방면에서 분석에 들어간다. 그리고 5장에서는 잠비아의 노동자운동과 자본에 맞선 항쟁, 협력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고 있고, 6장에서는 이 책 전반의 내용에서 정련하고 토론할 것을 더 하고, 아프리카에 투자한 중국 국가 자본과 대다수 초국적 사적 자본의 차이점에 대해 서술한다. 2009년에서 2014년 사이 리칭콴은 여러 차례 잠비아를 왕래하면서 구리광업과 건설업의 여러 기업들에 대해 심화된 민족지적 현장 연구를 진행하고, 동시에 이 기업들의 관리자와 노동자들, 그리고 잠비아 정부 관료들을 인터뷰했다. 이 책은 ‘국가’의 성질과 작용에 대해 낭만화하고 있긴 하지만, 고루하지 않은 이론적 공헌을 하였으며, ‘자본의 다양성’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각기 다른 자본의 행위나 의사결정이 각기 다른 축적 논리와 사회 압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 있어서 관건적인 것은 각기 다른 유형의 자본이 각기 다른 사회적 투쟁의 공간을 가져왔다는 데 있다.
축적 논리 : 다중적 목표, 단기적 이익추구?
왕비쥔(王碧珺)은 1500여 개의 중국 해외투자 프로그램의 최종적 투자업종 정보를 수집하면서, 주로 채광업과 제조업을 주로 발견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중국의 해외공정 수주 규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광공업·제조업·건설업은 중국 자본의 대외 수출, 특히 대(對)개발도상국 수출의 주요 업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리칭콴은 잠비아의 구리광업과 건설업에 종사하는 다국적 사영 자본을 중국 국가자본과 비교하며 후자의 특수성을 밝히려 시도한다.
각기 다른 종류의 자본은 각각 다른 특성을 갖고 있고, 그 가장 주요한 방면은 바로 각기 다른 축적 논리에 있다. 리칭콴은 초국적 민간 자본에 비해 중국 국가자본은 상대적으로 잠비아 당국에 더 많은 타협을 해왔다는 점을 발견했다. 중국 국유기업들은 대외 투자를 할 때, 화폐 이윤을 얻는 것 외에 국가 전략——자연자원의 채취와 아프라카에서 정치 및 외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도 적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략에 대해 담지하는 것은 중국 국가자본이 잠비아 국가와 사회로부터의 압력에 대하여, 협상 참여나 양보를 포함한, ‘즉흥’적인 대응을 더욱 용이하게 내놓을 수 있게 하였다.
잠비아 구리광산에 투자한 중색아프라카광업유한공사(NFCA; 中色非洲矿业有限公司)는 스스로를 “중국 해 외 자원 개발의 전선부대”라 칭한다. 구리광산 자원에 대한 중국의 수요량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고, 스스로의 비축량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는 아프라카 국가들이 국제적 의제에서 중국에 더 친근해지도록 하고, 동시에 대만 당국의 영향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는 중국 국가자본의 중요한 의사결정이기도 하다. 국가 정권의 정치전략은 이러한 자본의 정책결정 부서에서 발휘되는 중요한 작용이다. 하지만 중국 국가자본이 이윤 추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것 역시 다른 자본들처럼 이윤 획득을 강구하며, 차이가 있다면 단지 많은 초국적 자본이 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이윤의 최대화를 추구만을 하지 않는 것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시도하는 모든 최대화란 일종의 ‘다원화된 이윤(多维度的利润)’이라할 것이다. 리칭콴이 말하듯, 중국 국가자본이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포괄적 축적(涵盖性积累; encompassing accumulation)의 논리라고 할 수 있는데, 화폐 보상의 차원 이외에도, 정치 영향과 생산품 자원 등의 차원도 포함한다. 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중국 국가자본의 경우 이러한 비화폐 보상의 차원이 보다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점은 구리광업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선, 2008년 경제위기 당시, 구리 가격이 생산원가 이하로 내려가면서, 초국적 자본 KCM(인도 자본)과 MCM(스위스 자본이지만 많은 남아공 및 페루 관리자들이 있음) 등 구리광업 공사들이 잇달아 생산 축소와 대규모 감원을 밝혔다. 하지만 NFCA는 오히려 감원하지도, 생산을 줄이지도, 임금을 깎지도 않겠다고 밝혔는데, 왜냐하면 NFCA는 구리광업 자원의 장기적인 공급 안정과 잠비아 정부와의 양호한 정치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착안하여, 차라리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둘째, 각각의 자본이 잠비아 정부가 추진하는 ‘초과이윤세’에 대한 반응에서도 이와 같은 구별을 드러내었다. 구리 가격이 최고점으로 오를 때, 잠비아 정부는 민간과 반대파의 강력한 압력 하에서 ‘초과이윤세’를 추가 징수하기로 했다. KCM, MCM 등이 이에 대해 강렬하게 반대했지만, CNMC(NFCA의 모기업 중국유색광업집단 中国有色矿业集团)의 고위관리들은 오히려 지지를 표했다. 이어서, 중국 국가자본은 적극적으로 잠비아 광업지구의 다기능 경제특구 건설 사업을 맡았고, 이 경제특구는 구리광산업의 부가가치를 제고시키려는 발전시키는 잠비아 발전전략의 핵심이었다. KCM와 MCM 등 초국적 자본은 결코 이 프로젝트를 지지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얻을만한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CNMC의 고위관리들은 이 역시 받아들였다. 중국 정부는 40퍼센트의 보조금만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들은 부득불 거대한 경제적 압력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잠비아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이 임무를 반드시 완성해야 했다.
세 사례에서 보듯 잠비아 정부는 구리 광산산업과 외국 자본의 게임에서 어느 정도 주동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국가자본은 자연자원 획득과 정치·외교적 영향력 확대라는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자본보다는 잠비아 당국의 요구에 잘 부응하고 있고, 중국 국가자본의 포괄적인 축적 논리가 잠비아 당국에 보다 능동적인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관건은 잠비아가 이에 상응하는 엘리트들의 의지와 국가전략이 있어야, 중국 국가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선결조건을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건설업과 구리광업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구리광업은 잠비아 정부와 사회 각계에서 가장 전략적으로 볼 수 있는 업종인 만큼 정부는 구리광업에서 외국자본과의 경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동력이 있다. 건설업은 현지에서 정치적 민감성이 거의 없고, 정부는 중국 국가자본과 협상할 동력도 없다. 반면 잠비아의 정치 엘리트들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중국에서 건설자금으로 많은 돈을 빌려 빚 부담을 가중시켰다.
잠비아의 정치 엘리트들이 중국으로부터의 차관에 열을 올렸던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이 잠비아 정부의 수요를 빠르고도 충분하게 만족시켜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비아 정부의 기초 건설 프로젝트에 대하여 세계은행은 그것의 회복율을 비교적 낮다고 봤고, 정부에게 모종의 개혁(가령 에이즈 방비와 치료에 대한 강화)을 요구하였고, 이는 대출이 제한적이고 진척이 느린 반면, 중국 수출입은행의 대출은 이런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리칭콴은 이와 같은 속도 우세는 위험을 잠정적으로 숨긴다고 여겨왔는데, 왜냐하면 빈번하게 다음의 상황을 낳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 건축상들이 주도하는 잠비아 정부 접촉은 어떤 건설을 진행시킬 것을 요구하고, 동시에 중국 수출입은행과 대출 액수를 합의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잠비아 정부는 오직 단일 입찰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설령 중국 대출이 그 자체로는 ‘특혜 대출’이긴 하지만, 정해진 방향의 입찰 공고로 인하여 건설 가격이 비싸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원가는 실제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제공한 대출보다 높았다. 하지만 잠비아 정치 엘리트들은 개인적인 정치적 성과에 대한 고려 때문에 이러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차관이 안착되도록 적극 추진하였다. 그중 일부는 기술 관료들이 보기에는 실제에 맞지 않는 ‘정치 프로젝트’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가령 총 길이 170킬로미터에 이르는, 중국 기업이 건설을 승인받은 발주한 엠발라나 도로(Mbala-Nakonde Road)가 대표적이다. 리칭콴이 보기에, 잠비아 국가 발전의 이익은 이것에서 손해를 입었는데, 왜냐하면 이와 같은 차관 모델은 잠비아의 국가 채무에 지속적으로 직접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선택적인 대출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막대한 외환보유액의 투자처를 마련하며, 국내에서의 각종 과잉생산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차관 모델은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에서의 중국 건축기업들은 조국에서보다는 더 많은 회수율을 획득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바, 중국 국가자본의 포괄적인 축적 논리는 건설업계에서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잠비아 당국이 장기 발전 전략을 구사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러한 논리가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생산 체계 : 안정적 착취/원활한 배척?
리칭콴은 생산 체계(production regimes)는 각기 다른 자본 특성을 반영하는 두번째 지향점으로서, 각 자본의 생산과정을 비교하고, 그중 노자관계를 비교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잠비아에서 구리 광산업이나 건설업이든, 중국 국가자본이든 초국적 자본이든 임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은 똑같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노동 형식에 있어서는 중국 국가자본과 초국적 자본은 선명한 구별을 드러낸다. 구리 광산업에서 NFCA는 오직 한 도급업체하고만 합작을 하는데 반해, KCM과 MCM은 많은 수의 도급업체들을 사용한다. 이와 같은 차이가 있는 이유는 NFCA가 생산과정에서 생산량의 안정화를 강조하고 있어서, 여러 도급업체를 거치면 관리의 곤란함과 더 많은 불안정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KCM와 MCM이 수많은 도급업체들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단기적인 화폐 이윤을 쫓는데서 기인하는데, KCM 같은 경우 도급업체 간 경쟁을 이용하여 원가 절감을 압박하고, MCM 같은 경우에는 자본금 부족 때문에 도급업체의 자금과 설비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이 두 가지 다른 방식의 노동력 사용 형식은 각기 다른 노자 관계를 불러온다. 중국 국가자본이 고용한 잠비아 노동자들의 임금은 비교적 낮지만 일자리는 안정적인데, 심지어 노동자들에게 ‘영구적인 고용’을 보장한다. 초국적 자본이 고용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비교적 높지만, 도급업체 노동자들은 유연한 노동력 활용으로 인해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이 상이하고, 수시로 실업 상태에 놓인다. 리칭콴이 보기에 이와 같은 두 가지 생산 체제에는 노자 관계의 차이는 노동력에 대한 ‘안정적 착취(stable exploitation)’와 ‘유연한 배척(flexible exclusion)’에 있다.
강조가 필요한 점은 중국 국가자본과 잠비아 노동자 고용 관계의 ‘안정’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인데, ‘종신 고용’ 등의 권리는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란 점이다. 바꿔 말하자면, 중국 국가자본이 다른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대하는 것에 비해 꼭 그렇게 더 우호적인 것은 아니란 점이다. 그러나 생산과정에서 안정을 중시하고 한 곳의 하청업체만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산체제는 노동자의 분화 정도가 비교적 약하고 투쟁 효과가 강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는 조직 여건을 조성하였고, 노동자들은 더 많은 항쟁을 통해 자본과 ‘흥정(讨价还价)’을 할 수 있게 하였다. NFCA의 잠비아 노동자들은 2011년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영구 고용 계약권을 따내기 위해 두 차례 파업을 벌였고, 하청 노동자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파업 참여가 확대되어 관리자들은 결국 타협했다. KCM의 광산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이 먼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권리를 쟁취하였으나, KCM이 많은 하청 기업들을 장악하여 노동자들은 효과적으로 조직하기가 어려웠고, 파업은 결국 대충 마무리되고 말았다.
구리 광산 노동자들이 중국 국가자본에 대한 권리를 따내는 과정에서 현지 정부가 때때로 상호지원을 한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2011년 반대당 ‘애국전선’(Patriotic Front)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고, 새 정부도 이에 열렬히 화답했다. 하지만 리칭콴은 건설업에서는 정치 관심도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 엘리트들의 지지가 건설업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심지어 정부가 자본 측이 노동자들을 감시통제하는 것을 돕는 쪽에 더 치우쳐져 있다는 점, 노동자들의 집체적 역량이 상당히 약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구리광업과 비교하여 잠비아의 건설업은 임금이 낮고 매우 영세하다. 중국 자본이든 외국 자본이든 현지 자본이든 하나같이 법에 의거한 노동 대우나 노동자 보호를 하지 않고, 임금 체불과 난폭한 관리의 문제가 있다. 게다가 모두들 많은 수의 임시직을 사용해서, 이는 노동자들을 더더욱 조직하기 어렵게 한다. 중국 국가 자본이 지원하고 도급 계약을 맺는 사업에서 현지 정부는 기율의 유지와 효율의 제고, 나아가 노동자들이 강도 높고 대우가 낮은 노동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더구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을 금지하는데에서 나아가 노동자들의 항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탄압한다. 애국전선의 집권 이후 건설 노동자들의 파업 항의 역시 정부로부터 충분한 관심을 이끌지 못하였고, 보편적으로 건설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부가 관리감독에 힘을 쓰지 않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관리 기질 : 집단금욕주의/개인직업주의?
각기 다른 자본의 특성을 반영한 세 번째 지향점은 바로 자본측 주잠비아 관리자들이 보여준 관리의 기질이다. 내부 관리자의 정신적인 특질을 보면, 중국 국가자본의 ‘집단금욕주의’와 다국적 민간자본의 ‘개인직업주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중국 국가자본측 주잠비아 관리자들은 ‘츠쿠(吃苦; 괴로움을 견디다)’의 문화를 매우 강조한다. 많은 중국 관리자들은 빈곤층 출신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절약 습관은 현재까지도 줄곧 지켜지고 있다. 그들은 흔히 현지에서 집단 생활을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 소비를 억제한다. NFCA가 배치한 중국 직원들은 집단적으로 출근하고, 밥을 먹고, 휴식하고, 물건을 구매한다. 만약 잠시 외출할 경우 보고가 필요하고, 일요일에 숙소에서 몰래 밥을 해 먹으며 고민을 달래기도 한다. 그들은 가정과 떨어져있는데, 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이 배우자와 잠비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이와 다르게 KCM 등 초국적 민간자본의 관리자들은 고도의 개인주의와 직업주의를 갖고 있으며, 공사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잠비아에 와서 자녀들은 현지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들은 개인생활의 질량을 더 중시하며, 개인별 주택과 자가용을 갖고 있고, 아내나 고용한 가정부가 만든 요리를 먹는다. 이들은 현지 가사노동자와 가정교사를 고용하고 종교·자선·봉사활동에도 참여한다. 중국인 관리자들은 지역사회와 단절돼 있고, 멀리 떨어진 건설현장의 중국인 인력은 외출을 자제한다. 초국적 자본의 관리자로서는, 현지 생활이 그들의 필요(예컨대 자녀교육)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교육 자원이 더 나은 나라에서 일할 기회를 찾는다. 이는 중국인 관리자들 중에서는 몹시 드문 일이다. 중국인 직원들은 왜 ‘집체금욕주의’를 받아들일까? 리칭콴은 객관적인 측면에서 보다 통제 가능한 관리자가 필요한 국가자본의 집중적인 관리조직 체계가 주효한 것이라고 본다. 주관적으로 볼 때에는 우선 이와 같은 중국인 관리자들은 중산층 생활의 거대한 경제적 압력을 마주하고 있어서 가족을 떠나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선택을 하는 것이기에, 집체 생활에서 절약하며 지내는 것이다. 두번째로, 그들은 현지 사회의 안전 정도와 우호 정도에 대해 회의가 있어, 이는 그들이 차라리 문을 닫고 생활구역에 집중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인 관리자들은 모두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국가발전’이라는 언어를 받아들이고 있어, 이런 집체적인 ‘츠쿠’문화를 강화하고 합리화한다.
리칭콴은 중국인 관리자들이 ‘츠쿠’의 정신을 일종의 도덕과 민족 차이를 구분하는 경계로 여긴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자주 중국인과 잠비아인을 비교하고, 잠비아인의 ‘게으름’, ‘츠쿠 불능’, ‘요구하기만 한다는 점’ 등을 잠비아의 문화와 도덕의 결함으로 여기며, 그것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여긴다. 반면 중국인의 ‘근면한 노동’, ‘즐기는 걸 미루기’ 등은 오히려 경제발전과 생활수준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여긴다. 인도 등 국가들의 관리자들 역시 자주 자기 나라를 표준으로 삼아 잠비아 노동자들의 ‘게으름’을 질책하지만, 자신들의 ‘근면(勤奋)’을 민족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치열한 경쟁과 가난한 사회 환경의 산물로 여긴다. 리칭콴 또한 이러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츠쿠’가 도덕성과 민족성이 내포된 언어를 부여했음을 지적하면서, 중국인 관리자들이 자신들 역시 자본으로부터 착취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중국 자본과 잠비아 노동자 사이의 계급 착취관계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집체금욕주의’가 중국 자본에 가져온 부정적인 영향 중 하나는 현지에서 중국 죄수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는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에서도 전하는 사실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 관리자들 역시도 매일 기숙사에서 일터로 출근하는 것을 “작은 감옥에서 큰 감옥으로 간다”고 표현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문화적인 반발과 적응이 존재하는데, 중국인 관리자들은 한편으로는 외부세계의 공격을 서구 언론의 중국에 대한 적대시 로 이해하고, ‘츠쿠’정신으로 중국 자본의 업무환경을 합리화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타 국가에서 온 관리자들과의 차별을 감지하며 임금과 복지 대우를 높이는 것을 꾀한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중국 자본의 관리 기질 역시 잠비아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문제 : 자본 다양성과 글로벌 중국
학술 공동체에 대한 연구의 의의로서, 우선 어떤 답을 제공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제출했느냐에 있다. 리칭콴이 책에서 제시한 핵심 문제는 ‘중국 국가자본은 초국적 민간자본과 다른 자본인가?’에 있는데, 그럼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방식 글로벌 자본주의를 이해하도록 깨우치게 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자본의 논리는 갈수록 빠르게 비슷해지고 있고, 글로벌 경제는 갈수록 단일한 자본 논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 문제는 오늘날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이 반드시 동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비록 근본적으로 말했을 때 모든 자본은 축적과 가치의 자가증식을 위한 것이지만,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와 확장에 있어서 각기 다른 자본이 맡은 역할은 같지 않으며, 다른 축적논리와 행위방식, 노자관계를 체현한다. 바꿔 말하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발전은 반드시 자본이 점차 동질화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더 마땅하게 간주되는 것은 행위방식이 다른 자본 간 끊임없이 상호 조우와 충돌의 과정이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자본의 동질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있지만, 경쟁의 가속화 또는 진일보한 분층(층이 나누어지는 것)과 분리, 그렇지 않으면 축적논리가 새로운 변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항상 불균질하며, 혼합적이다.
리칭콴이 책에서 제출한 ‘자본 다양성’ 개념 역시 최근 매우 유행인 ‘자본주의 다양성’ 학파에 대한 반응이다. 후자의 분석은 흔히 민족국가를 단위로 한 국가 내의 자본주의 제도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여러 나라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본주의 제도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자본주의는 통합과 노자간 협조를 더욱 중시하는데 반해 영·미의 자본주의는 오히려 자유로운 경쟁을 방임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처럼 각 국가의 자본주의를 하나의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간주해 분석하는 방식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고도로 발전한 오늘날 현실에서는 호응되기 어렵다. 어떤 한 나라의 자본주의도 일찍이 각자 독립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ㅡ흔히 세계 기타 지역의 자본 역량으로부터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잠비아 자본주의 제도가 어떠한 특징을 갖추고 있느냐’를 토론하는 것은 의의가 크지 않은 문제이고, 잠비아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마주하고 있는 관건적 혁실은 마침 각종 다른 논리와 특징을 가진 외국 자본이 ‘잠비아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성립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다 의미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유형이 아니라, 각기 다른 자본의 유형이다. 여기서 ‘의의’가 가리키는 것은 학술연구의 의의만이 아니라, 실천적 의의이기도 하다. 자분의 유형을 구분함으로써, 서로 다른 자본이 가진 특성이 자본 억제에 어떤 공간을 제공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노동자들의 상응하는 전략을 촉진하고, 권익 쟁취 투쟁을 개시할 수 있다.
‘자본다양성’이론의 기초에서는 더 나아가 이런 문제들을 제시한다. 우리는 어떤 자본의 축적논리가 어떤 정도까지 발전할 때 그것을 구분해내야 하나? 또, 이와 유사한 자본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예를 들어 같은 구리광업이라도 현재 잠비아에 투자하는 중국의 국가자본과 식민지 시절 잠비아에 인프라를 건설한 영미자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혼합소유제 개혁을 추진하는 오늘날에도 국가 자본과 사적 자본 사이의 경계는 더욱 모호하게 변화한다. 자본의 다양성을 탐구할 때, 분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이 가능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해야 한다.
매체와 학계는 중국 국가자본의 해외투자에 대해 고도의 관심과 많은 토론을 가졌으나, 종종 표면에만 머물러왔다. 리칭콴의 시스템 관찰과 세밀하고 정치한 분석은 중국 국가자본이 해외에서 운용하는 논리를 진정으로 드러냈다. 그녀는 중국 국가자본이 많은 해외 미디어들이 모두 말하는 것처럼 그것의 서방 동업자들보다 더 많은 ‘식민주의’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후안강(胡鞍钢)과 루디(卢荻) 등 학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본래 모종의 ‘진보성’을 갖고 있지도 않다는 점, 더 나아가 체계화된 자본주의 생산 방식에 대항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본과 자본 사이에 다소 다른 점이 있지만, 다른 자본에 비해 더 우월한 어떤 자본은 없다. 중국 국가자본은 확실히 더 생산과정의 안정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이는 그것이 구리광산 자원에 대한 중국의 대량 수요를 만족시켜야만 하기 때문이지, 생태환경과 노동자 권익에 마음을 두기 때문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중국 국가자본이 갖추고 있는 특수한 축적논리에 있으며, 이는 그것이 정부 및 노동자가 상호작용할 때 다른 공간을 제공한다. 현지 정부와 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공간을 이용해 게임을 진행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중국 국가자본의 해외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자본 자체가 아니라 현지 정부와 노동자들이 특수 축적논리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리칭콴이 이 책에서 사용한 또 다른 중요 개념은 ‘사건이 많은 글로벌 중국’(eventful global China)인데, 이 개념은 우리가 ‘중국은 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사고하기 위해 계몽을 제공한다. 중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중국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전 세계에서 중국의 종적을 잡아야 한다. 동시에 중국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 점점 더 깊이 편입됨에 따라,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려면, 예를 들면, 중국의 최근 토지 개혁과 전 세계 식량 시장의 새로운 자본 투기의 연관성을 파악해야 한다. 요컨대, 중국은 전 세계적인 분석 대상이며, 중국에 대한 분석은 중국 경계 안에 국한시킬 수 없다. 글로벌 중국이라는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각 국가, 각 사회를 서로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연구 대상으로 보는 방법론적 민족주의(methodological nationalism)에 힘있게 도전하고 있다.
한편, 리칭콴은 ‘변화’에 대해 강조하며 ‘구조결정론’(structural determinism)의 관점에 도전하였다. 글로벌 자본주의 동태에 대한 연구에서 일부 학자들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라는 구조에서 중국의 국가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고 유동하는지 결정짓는다고 강조한다. 구조의 힘도 중요하지만 자본의 구체적인 행동방식은 구조와 경제상황 변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우발적인 정치게임의 역동적 과정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리칭콴의 지적이다. 우발적 정치게임은 나아가 자본이 처한 구조적 위치도 바꿀 수 있다. 중국의 굴기와 자본수출은 구조적 제약을 받으면서도 나아가 정치적 대결로 가득 차 있고,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구조적 위치를 바꾸는 거대한 잠재력의 ‘변화’이다.
정치 합력 : 잠비아 정부에 대한 낭만적 편견
리칭콴은 중국 국가자본이 그 세 개 방향(축적논리, 생산체제, 관리기질)에서 모두 잠비아 현지의 도전을 맞닥뜨렸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상층의 정치엘리트의 의지와 국가 도전에서 온 것이기도 하고, 하층민의 파업과 소요, 부정적 여론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리칭콴이 보기에 이는 구리광산업에서 정권 의지와 사회 항쟁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중국 자본의 양보를 더 잘 강제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잠비아 인민이 만약 외국 자본과 타협을 하고 싶다면 아래로부터의 항쟁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위로부터의 국가 역량과 아래로부터의 항쟁 운동 간에 정치적인 시너지(political synergy)를 만들어야 한다.
리칭콴은 ‘정치 합력’에 대해 강조하면서, 현지 노동자 투쟁의 현주소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는 전 챕터에 걸쳐 잠비아 노동자운동의 취약성과 분열에 대해 탐구하고, 파업과 시위 등 직접행동이 직접적으로 큰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현지와 긴밀한 연계가 없는 글로벌 기업 감찰과 같은 활동보다는 훨씬 효과적이다. 리정쥔은 노동자 내부의 결속과 불신에 방점을 찍는다. 1990년대 초의 개혁은 제도상으로부터 무너뜨렸고(아이러니하게도 그 개혁은 노조 전임자가 추진한 것임), 생산과정 자체의 영세화로 노조의 근간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은 노조의 힘을 믿지 않았고, 노조 간부들이 사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와 동시에, 기성세대 노동자와 신세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균열도 존재한다. 노조의 위상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의 분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공기업 해체와 업종별 노조의 붕괴로 인하여 구리광산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기업 내부의 경제적 요구에 그치고, 더 이상 산업적·전국적·정치적 파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다른 측면에서, 소액대출의 남발과 자영업 창업에 대한 환상은 노동자들의 계급적인 단결 의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취약해지고 분열되는 잠비아 노동자 운동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사고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리칭콴의 답은 아래로부터의 역량이 취약해졌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하고, 위로 부터의 국가적 개입을 보완함으로써 정치적인 합력을 모으자는 것이다. 이는 국가 권력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낭만적 추정을 반영한 것이다. 밑바닥 싸움이 무기력할 때 위로부터의 정치 엘리트의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어째서 ‘밑바닥 민중 항쟁의 무기력’은 결코 바꿀 수 없는 조건으로 여기고,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가? 왜 보다 나은 조직화 전략을 사고하려 하지 않는 걸까? 리칭콴이 스스로 제시하고 있듯이 물론 민중의 저항은 취약하지만, 정부의 ‘선의’ 역시도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미셸 사타(Michael Sata)가 이끄는 ‘애국전선(Patriotic Front)’은 집정 후 외국자본 제재 조치를 확실히 추진했지만, 이 노선은 제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2014년 사타의 사망과 ‘애국전선’의 내분으로 지속될 수 없었다.
유리한 국가가 관여하는 것은 결코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국가는 더더욱 주도적으로 저층 민중과의 ‘합력’을 형성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잠비아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문제는 어떻게 국가를 향해 압력을 가하고, 어떻게 노동자의 이익을 방어하는 정당이 집권한 후에 변질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인냐에 있다. 오랫동안 국가 정책에 영향을 가하고 정치적 합력의 출현을 추진하려면, 근본적인 동력은 노동자 자신의 조직과 행동력이어야 한다. 노동자와 저층 민중이 유일하게 부단하게 자신의 계급적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각종 행동을 통해 자기 계급의 이익을 방어해야 한다. 하지만 리칭콴은 노동자 자신의 조직과 행동을 어떻게 증강시킬 것인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리칭콴은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잠비아 이익’ 또는 ‘국가 발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에도 이와 같은 개념 자체가 사용되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반성은 아예 없다. 그녀는 비록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이익과 정부 당국이 선전하는 ‘이익’간의 갈등에 대해 드러내지만, 잠비아 정부가 국익을 어느 정도 지켰다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국가에 대한 리칭콴의 낭만적 추정과 비판성의 결여를 드러낸다. 그녀는 ‘잠비아 정부는 어떻게 외국자본이 잠비아 이익에 복무하도록 더 잘 제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시할 때, 무의식적으로 일종의 서사——‘국가발전’은 한 후발민족국가의 가장 근본적 이익이라는——에 진입하는데, 이는 사회 각개 계층이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이라서, 정부는 이 근본 이익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의 역사를 개괄하면, ‘국가이익’의 반식민주의 서사를 강조하는 것은 실제로 종종 국가 정치엘리트와 민족자산계급에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구실을 제공할 뿐, 저층 민중에게 진정한 혜택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 이익, 국가 발전과 같은 개념을 보았을 때 반드시 그것이 결국 누구의 이익, 누구의 발전을 가리키는지 따져봐야 한다. 잠비아 정부가 외국 구리광산 기업을 향해 ‘초과이윤세’를 징수하는 것이 ‘잠비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형용될 때 우리는 마땅히 이 정책이 잠비아 정치엘리트와 민족자산계급에 복무하는 것인지 아닌지 따져물어야 한다. ‘잠비아의 이익’이라는 개념의 합리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저자가 잠비아의 정치엘리트들과 비판적인 거리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리칭콴이 잠비아 정부를 ‘게이트키퍼(gate-keeper)’라면서, 노동자계급과 정치적 합력이 발생해 외국자본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때 그녀는 사실 자본주의 사회 내 국가논리와 자본논리가 근본적으로 중첩되고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 이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 사회학 전통이 특히나 강조하는 관점이다. ‘자본의 운동에는 한도가 없다’는 논리는 끊임없는 가치 증식을 추구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흔한 수단이자 표현에 불과하며, 이윤의 일부를 희생시켜 시장 자원과 정치적 영향을 맞바꾸는 것 역시 자본의 장기적 축적을 위한 중요 수단이다. 자본이 추진하는 「경제성장」을 집권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의 장기 지속가능한 가치 증식을 추진하는 것이 바로 그 중 하나다. 그 때문에 국가권력은 일련의 사회적 압력을 가하고 자본을 향해 영향을 가하며, 자본으로 하여금 일정 정도상 타협하게 했을 때, 그것은 아마도 ‘특정한 자본’에 저항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자본에 저항하는’ 속성을 갖춘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국가권력은 여전히 다른 차원의 자본 유지, 내지는 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것을 시도할 때, 최우선의 동기는 바로 자본의 장기축적을 보장하는 것에 있으며, 자본이 국가의 힘 앞에서 치르는 어떠한 변화나 타협도 이러한 근본적 목표에 봉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과 국가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일치하며, 노동자계급과 밑바닥 민중의 장기적 이익과는 대립한다. 그 때문에 잠비아 정부가 얼마나 노동자 민중과 정치적 힘을 합쳐 자본에 대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족지 연구에 대한 성찰 : 현장연구의 도전과 장력
이 책은 민족지 연구방법을 활용하여 거시 정치경제 문제를 연구한 모범적 저작이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무역과 투자, 인구 등 총체적 데이터를 이용해 세계 거시 정치경제 문제를 탐구할 때, 리칭콴은 현장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을 택하였고, 구체적인 행위자들의 상호작용과 힘겨루기에서 자본의 논리를 해독하였다. 오직 자본과 노동, 국가를 일련의 동태과정과 권력관계로 바라봄으로써, 보다 깊이 있게 그 속에서의 역할과 이익 동기, 행위 논리, 그리고 상호작용을 발굴할 수 있었고, 이와 같은 심층 기제는 표면상의 양적 데이터에서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심층 기제를 발굴하려면, 연구자들은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야 하고, 행위자들과 심층적인 연결을 만들어, 장기적이고 정치한 관찰을 진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아이디어를 내고 출판하기에 이르기까지 도합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히 ‘10년 마일검(十年磨一剑; 십년 동안 검 하나를 갈았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즉,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만 깊이 파고들었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시의 미시적 상호작용에 대한 관찰 분석은 어떻게 전체적인 거시적 법칙을 제시할 수 있는가? 리칭콴은 현장연구에서 자신의 멘토 마이클 부라우이(Michael Burawoy)가 제안한 ‘사례확장방법(extended case method)’을 계승한다. 그 핵심 아이디어는 어떠한 미시적인 상호작용도 거시적인 힘에 의해 어느 정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미시적인 상호작용을 고찰할 때에는 반드시 보다 큰 역사적 상황 속에 두어야 하며, 미시적인 상호작용을 만드는 거시적 역량을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방법에서 연구자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다양한 각도, 다층적인 현장연구를 전개하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론은 ‘사례확장방법’을 기반삼아, 연구자는 이론을 현장으로 진입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론을 통해 현장 관찰의 거시작 의의를 해석하고, 점차적으로 이론의 한계를 발현하고, 현장관찰을 이용해 거시 이론을 재건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의 주류 민족지연구는 실증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이 때문에 ‘이론선행’에 대해 받아들이는 정도가 높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 출간한 뛰어난 저작 《Dealing in Desire: Asian Ascendency, Western Decline, and the Hidden Currencies of Global Sex Work(욕망 속의 게임: 아시아 우월감, 서방 쇠락, 그리고 글로벌 성노동의 숨겨진 통화)》을 보면, ‘사례확장방법’을 운용해 글로벌 거시정치경제의 변천을 드러내는데, 어떤 연구자들은 이를 ‘과도한 이론화’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리칭콴의 새 책은 견실한 현장 재료와 이론으로, 사례확장방법이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연결시켜 다른 연구방법들이 제시할 수 없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현장에서 리칭콴은 ‘study down’가 필요하기도 하고, ‘study up’가 필요하기도 하다. ‘study up’는 정치권력, 경제적 자원, 사회적 지위가 연구자 위에 있는 행위자를 연구한다. ‘study up’의 어려움 점은 연구자가 자신에 비해 먼 연구대상과 접촉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종종 연구자와 개별엘리트 간의 사적인 관계를 통해 해결하는 것에 기댈 수 있을 뿐이다. 리칭콴이 운이 좋았던 부분은 그녀가 2010년에 ‘애국전선’의 한 정치엘리트와 관계를 형성하고, 이 정치엘리트가 이후에 부통령이 됐다는 점에 있다. 리칭콴은 부통령의 추천으로 정부 고위층과 접촉하고 대기업 내부 실사연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study up’의 역설은 연구자가 반드시 엘리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연구자는 은연 중에 감화되어 권력에 대한 비판성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현장연구에서 리칭콴은 내내 잠비아 부통령의 고문으로 각료회의 참석은 물론 중국 방문까지 수행했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입장과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잠비아 정부에 대한 낭만적인 추정의 근원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study up’에서 어떻게 권력 엘리트와 접촉하더라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해 연구자들은 부단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국 노동정치를 20년 간 연구해온 학자로서, 완전히 낯선 연구 환경에 뛰어들어 뿌리내린 그의 용기는 매우 존경스럽다. 지식을 추구하는 리칭콴의 끈질김과 글로벌 자본주의 발전동태에서의 진정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우리가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학술연구든 노동자 역량 향상을 위한 실천이든 ‘삶 속의 다른 사물처럼, 보증은 없으나,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
글 : 팡란(方然), 장위에란(張躍然)
번역: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