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를 만나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인터뷰는 희망연대노조 박장준 정책국장이다. 박장준 활동가는 학생운동을 거쳐 미디어스와 미디어오늘에서 기자로 일했고, 현재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희망연대노조)에서 5년째 정책국장과 조직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 2009년 설립된 초기업단위 지역일반노동조합. 케이블 설치기사, 콜센터 상담원, 방송스태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파업을 지원하고, 단체협상으로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등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구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씨앤앰(딜라이브), 티브로드,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 투쟁이 대표적이며, 조합원수는 6천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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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활동 순간”
플씨 : “나의 첫 집회사회” “나의 첫 발언” “나의 첫 성명” “나의 첫 활동비”(또는 “나의 첫 휴가”) 처럼 키워드를 뽑거나 새로 추가해서 에피소드 얘기부탁드립니다.
장준 : 저에게 “첫 노조”인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 고려대지부가 떠올라요. 스무살, 대학 새내기 시절인 2003년 4월 실태조사를 하면서 이 동지들을 알게 됐어요. 그해 가을과 겨울에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했는데 관리자들을 피해 새벽 4~5시에 캠퍼스를 돌아다녔어요. 2004년 봄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이 함께 조직화사업을 했고, 본관 점거농성도 했고, 여름에 노동조합을 건설했죠. 동지들과 함께 울고 웃었고, 함께 불타올랐고, 당당하게 투쟁했고, 기어코 승리했습니다. 인생 첫 노조를 떠올릴 때마다 행복해요.
플씨 : 첫 노조 경험이 기자로서 일할 때나 노조 간부로서 일할 때나 영향을 줄 것 같은데, 본인에게 어떤 자산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준 : 당시의 경험은 지금도 저에게 중요한 자산이에요. 그때는 지금하고 다르게 사람을, 노동자들을 만나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기술을 하나도 몰랐잖아요. 그런데 이제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때 했던 게 더 맞는 것 같은 거죠. 지금 비조합원들 만나면 잘 감을 수 있거든요. “노조 가입하면 이렇게 되고요”, “네 이렇게 돼서 우리가 같이 투쟁을 할 거에요” 정해진 레파토리가 있어요.
근데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새벽 3시, 4시, 5시에 가서 노동자 실태 조사를 했단 말이죠. 그래서 한 번 만난 사람 한 번만 만난 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다섯 번씩 만나서 계속 관계도 쌓고 쉼터도 자주 찾아다니고 신뢰를 얻는 그런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런 게 더 관계를 맺는 좋은 방법이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특정 사업장 몇 십 명짜리 노조 사업장을 맡 는 전임 간부가 아니라면 그런 간부가 있을 수가 없어요. 노동조합 재정이 안 되니까요. 복수의 사업장을 다 담당해야 되고 그러면 저 같은 노조 간부가 어떤 조합원을 만난 게 1년에 한두 번밖에 안 될 거에요. 대부분의 노조 간부가 그래요. 정말 완전 밀착하지 않는 이상, 사업장에 같이 있지 않은 이상.
근데 저의 첫 노조 경험은 그러지 않았거든요. 조직의 환경, 활동의 환경들을 그런 쪽으로 더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노조 활동을 하게 되면서 예전에 했던 그런 방향이 더 맞는 거구나”, “조합원들을 더 자주 만나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거구나” 생각하는 거죠.
나중에 조합원들이 퇴직할 때는 항상 저희한테 왔어요. 본인은 이 노조를 한 게 너무 기분 좋았고 엄청 행복했다고 개인적으로 연락 와서 퇴직하면서 자기 이야기하면서 울고 그랬던 조합원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그런 거 없어요. 그러니까 간부가 기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해요. 제 첫 노조를 스무살 때 경험해본 거, 그게 저한테는 나 자신을 잡아주는 경험이에요.
물론 지금 관계가 사무적이라는 건 아니에요. 아무튼 저는 엄청 조합원들을 만나려고 노력은 하거든요. 근데 조직 전체적으로 조직 체계나 조직 문화나 이런 게 첫 노조 같은 방향이 되기가 쉽지 않아요. 늘 많은 걸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계속 곱씹는 거죠. 그 추억이, 그 기억이 아주 무거운 견인추로 남아 있어요.
기자에서 노조 활동가로
플씨 : 기자 생활을 오래 하시다가 일터를 노조로 옮기셨죠. 처음에 학교 졸업하시고 기자를 하게 된 이유는 뭔지, 노조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뭔지, 또 기자와 노조활동가 간의 차이는 어떤 게 있는지 궁금했어요. 전직 케이스니까요.
장준 : 언론사로 취직을 하게 된 이유는 약간 비겁한 건데, 조금은 양심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이라고 봤으니까요. 언론사에 다니는 많은 운동권들이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내가 세상에 개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정당화하면서. 처음에는 미디어오늘에 취직했다가 미디어스로 옮겼어요. 미디어스가 규모나 영향력 측면에서 더 작은 언론이지만 미디어스 멤버들과 같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월급이야 더 적게 받겠지만 이분들이랑 하면 내가 좀 더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플씨 : 한 인터뷰에서 “(희망연대노조) 취재원에게 조직화되었다” 이렇게 말하셨던데요.
장준 : “운동에 엄청 개입하고 현장에 엄청 개입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실제 세상을 바꾸는 이런 운동이 가능하구나”라는 충격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해고됐는데 왜 원청 정규직들이 올라가서 점거를 하고 왜 한 달 동안 파업을 하지?” 이게 엄청 신기했어요. 어떻게 그런 운동들을 조직해내는지 궁금했고 신기했고 존경하게 됐죠. 그 어려운 사업들을 해나가는 걸 보고 감화가 됐던거죠. 그래서 채용할 때 간부로 지원을 했어요.
플씨 : 언론사와 노조 두 곳에서 일해본 입장에서 어떤 차이가 두드러지던가요?
장준 : 월급이 줄었어요. 그게 가장 큰 차이에요. 미디어오늘 월급이 가장 많았고 미디어스, 노조로 오면서 월급이 계속 줄었어요. 노조에서 5년 일하면서 근속으로 월급이 오르면서 어느 정도 복구는 된 거 같아요. 생활패턴도 많이 바뀌었죠. 생활패턴이 많이 불규칙해져서 스트레스가 크구요. 어떤 날은 3시에 조기 퇴근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밤새고 농성장을 지켜야 되고 조합원들이랑 뒷풀이를 하는거죠. 아무리 기자가 불규칙하다지만 레거시 미디어의 기자라고 하면 어쨌든 뉴스 시간은 정해져 있잖아요. 만약 9시에 뉴스를 한다 그러면 6시까지 다 마감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미디어스가 밤 8시 9시까지 일을 시키는 그런 조직도 아니었고요.
근데 노동조합은 그게 아니에요. 조합원들이 퇴근하고 나서 만나야 되잖아요. 아니면 출근하기 전에 만나거나. 조합원들이 저 같은 노조 간부한테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은 출근 전 아침이나 점심시간이나, 퇴근하고 나서잖아요. 그러니까 점심시간에도 전화를 받는 일이 많죠. 그리고 저녁 11시 12시에 전화해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도 계셔요. 그게 좀 힘들고 스트레스를 주죠.
노조에서 일하면 투쟁도 해야 되지만 관계를 조정해야 되거나 불만을 받아내야 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임금인상을 이뤄도 인상폭에 대한 불만을 가진 조합원들이 있죠. 단협을 해도 보통 요구안 5개 중에 많으면 세 개 따고 적으면 한 개 두 개 따기도 해요. 다른 요구들이 절실했던 조합원들이 갖는 불만을 받아낼 수밖에 없죠. 욕도 많이 먹게 되니까 그것도 짜증 나죠.
그렇게 그런 감정 노동만 해도 힘든데 정책 업무라든지, 교육선전이라든지, 선동해야 된다든지, 문서 생산해야 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다 해야 되기 때문에 평소에 일하는 시간도 길고 힘들죠. 사람들을 설득해야 되고, 거리에 세워야 되고, 그리고 실제 조직 투쟁을 책임감 있게 진행을 해야 되고, 그리고 지지 않아야 되고. 그게 너무 부담이 되지요.
사람들을 조직을 못하면 일단 진 거잖아요. 이 투쟁을 해야 되는데 우리 조합원 100명 중에 50~60명밖에 안 나온다고 하면 이미 진 거예요. 싸움은 투쟁을 조직할 때부터 조합원들을 설득해야 되고 100명의 조합원이 있으면 80~90명이 나올 수 있게 해야 되고 그래야 나온 사람들이 실망을 안 할 거 아니에요. 그 과정이 일단 너무 힘들어요. 왜냐하면 우리 조합원들 평균 임금이 300만 원도 안 돼요. 세후로 따지면 100만 원대도 있어요. 근데 조합원들은 투쟁을 하면 임금이 까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하루에 10만 원을 포기하면서 나올 수 있냐고 하면 솔직히 쉽지가 않거든요.
투쟁 정당성과 명분을 조합원들이 알아야지 계속 나올 거 아니에요. 그리고 경제적인 희생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해요. 임금 깎일 것을 노조에서 못 주거든요. 돈이 없으니까 그런 걸 설득하고 하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다 욕 먹고 다 책임져야 돼요.
물론 그 과정에서도 보람은 있죠.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메시지를 받으면, “다시 한 번 생각을 고치게 됐다”, “동료들을 조직해오겠다” 이런 반응이 나오면 뿌듯하죠. 그런 점 때문에 계속 활동을 지속하는 거 같아요.
갬동……
플씨 : 마침 얘기해주셔서 생각난 질문인데요. 어렵고 힘들지만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는 뭔가요?
장준 : 일단 생각보다 괜찮은 임금과 지속적인 임금 인상. 이거 하나 깔아두고요. 계속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조합원 한 명 한 명 설득하는 과정의 보람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조직담당자이고 노조가입 상담부터 흔들리는 조직을 케어해서 안정화시키는 등 조직강화 활동을 하거든요. 근데 활동가라는 게 물론 그 책임감이 엄청나지만 조합원들이 저 같은 노조 활동가들 노조 간부를 바라보는 건 거의 신뢰도 100%에요. 조합원이 “박장준 국장이 하는 얘기는 다 대부분 맞을 거야. 이렇게 가는 게 맞아. 지금은 투쟁해야 될 때야.” 이렇게 믿어주는거죠.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직업이 어딨겠어요. 학교에서 교사보다 훨씬 많은 신뢰를 받는 직업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신뢰를 받는 게 좋죠. 신뢰를 받는만큼 설득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선동이 되는 거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조합원들이 나를 믿어준다는 걸 아니까 지르기도 하고, “들어가자”라고 하면 조합원들이 들어가잖아요. 결국 투쟁을 이기면 신뢰가 다시 쌓이는 거고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죠. 투쟁 이기면 진짜 기분 째지죠. 올해 투쟁도 이기면 마시려고 더덕주를 사무실에 보관해두고 있어요.
신문읽기 습관
플씨 : 플랫폼c 텔레그램방에 거의 매일 기사 스크랩 공유해 주시는데 매번 신문을 다 읽어보시고 거기서 선정을 하시는 거예요?
장준 :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신문을 읽어요. 예를 들어 회의 들어가기 전 30분이나 회의 중간 쉬는 시간에 잠깐 또 보고. 제목이나 부제나 중간에 있는 발문들, 그리고 첫 번째 두 번째 첫 번째 문단을 보고 이 걸 계속 읽을지 말지 정합니다. 사회면에서는 일단 노동이 있으면 좀 읽어보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우리 미디어 신문에는 노동 기사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리고 최근에 우리 조합원들과 공유를 해야 되는 이슈들이 있잖아요. 노동은 당연한 거고 예를 들면 차별금지법이나 미얀마나 지금 아프가니스탄 상황이나 공공 의료 이런 주제들을 봅니다.
만약 한 시간으로 친다면 1시간에 한 40분 사실 50분 정도는 칼럼 읽는 거예요. 신문은 보통 훑어보고 칼럼이나 기자가 아닌 사람들이 쓴 글이 있으면 제대로 읽어요. 아침에 지하철에서 잠깐 봐요. 저도 조합원들한테 제목과 부제만 우선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된다고요.
철학을 읽는 이유
플씨 : 이메일이 트랜스인디비주얼[transindividual]이더라고요.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 철학자를 애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철학을 읽는 것이 활동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장준 : 연구자 백승욱은 “활동가는 정세 분석의 단위”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 우리 운동에 영향을 주는 객관적 조건을 분석할 수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겠죠. 그 정세를 분석하려면 관점이 있어야 되는데, 관점은 정치 철학에서 나온다고 봐요.
솔직히 자본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해야 정세 분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난민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비정규직이 노동시장 2중 3중 4중 구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은 정치 철학이 있어야만 제기할 수 있거든요. “능력주의를 어떻게 볼 거냐”도 정치철학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반드시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축해야 되고 계속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발리바르는 고민거리를 계속 던져주어서 좋아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예를 들어 지젝하고 완전 결이 다른 사람이거든요. 지젝은 “이제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봐야 돼”라고 자신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사람이라면, 발리바르는 문제를 설정해 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운동은 이런거야”라고 하는 게 아니고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철학과 여러 관점에서 아포리아를 제시해주는 사람이라서 좋아합니다.
주경야독
플씨 : 바쁜 일정 속에서 책은 어떻게 읽나요?
장준 : 집에 가서 자기 전에 읽거나 아니면 열차 왔다 갔다 하면서 읽어요. 보통 세 시간 열차를 탄다 그러면 한 삼십 분, 한 시간 읽다가 자요. 아니면 책 보다 지루해서 그냥 빨리 덮어버리거나 유튜브 보다가 또 자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보려고 노력을 하는거죠.
플씨 : 따로 조합원들과 같이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하나요?
장준 : 조합원들한테 소개해 줄 만한 책을 따로 읽기도 해요. 그래도 책보다는 오히려 영화가 대중적인 매체니까 영화 보면서 같이 감정 나누고 하는 게 훨씬 낫죠. 발리바르 책 읽고 리뷰 쓰는 것보다 같이 2시간 동안 영화 보고 그냥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이 운동에는 도움이 되죠.
박콩이씨와 박샤몽씨의 집사
플씨 :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개 좀 해주세요.
장준 : 저희는 동생들이라고 하는데. 저희 첫째 동생은 박콩이 씨예요. 그리고 둘째 동생은 박샤몽 씨에요.
저희 부부가 둘 다 박씨라서 성만 붙이고 이름은 구조될 때 구조자가 붙여준 이름이에요. 둘 모두 길 출신인데 박콩이 씨는 5년 전에 노량진 동작구 재개발 지역에서 잼통에 머리가 낀 채 발견됐어요. 배고팠는지 호기심이 있어서인지 머리를 집어넣은 거예요. 구조될 때 거리를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병이랑 같이. 입양 공고를 보고 두 번의 면접을 보고 입양을 하게 됐죠
박샤몽씨는 4년 전에 서대문구 고양이 쉼터에서 입양 공고가 올라온 거를 보고 갔죠. 거기에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어요. 박샤몽 씨는 사고인지 학대인지는 모르겠는데 팔이 하나가 없고 꼬리가 너덜너덜해진 채로 발견이 됐어요. 그래서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쉼터에 옮겨졌었어요. 이제 내년 내후년이면 고양이 나이로 저하고 비슷해져요. 지금까지 동생이었는데 그때되면 친구 먹어야죠.
정말 정말 많은 기쁨과 미소를 선사합니다. 근데 가면 갈수록 느끼는 거지만 반려동물은 아무나 키우면 안 돼요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강아지도 기르고 싶었는데 강아지를 기르면 안되요. 저희는 둘 다 맞벌이기 때문에 챙겨줄 수가 없어요. 산책이나 이런 거를요. 집도 작고 그래서 강아지한테 좋은 환경이 아니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새로운 권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미 혁명”
플씨 : 본인에게 ‘운동’이 무엇인지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장준 : 매일매일 혁명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를 포함해서 우리 제가 만나는 모든 조합원들이 굉장히 평범한 사 람들이고 평범하게 또 쫄보고. 임금손해가 나면 너무너무 불안한 사람들이고 사측이 괴롭히면 두려운 사람들이고 그렇거든요. 근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쫄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하고 조직 투쟁을 하고 결국 새로운 권리들을 만들어내고 정규직화도 쟁취하고 하는 게 이미 혁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매일매일 혁명을 경험하고 있고, 그 길도 갈수록 더 넓어지고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매일 연속되는 혁명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운동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인터뷰어 : 보리, 현창 (플랫폼C 활동가)
만난 사람 : 박장준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