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는 능동적이고 다양한 집합적 주체성입니다

이 글은 뤼마니테 l’Humanité의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 제롬 스칼스키(Jérôme Skalski)가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와 나눈 인터뷰다. 개념과 역사가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에 대한 사유를 어떻게 추동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올해 2월 뤼마니테에 실린 원문을 VERSO에서 번역 기재한 것을 번역했다. 영문 번역본을 중역(重譯)하되 원문을 참조하여 검토했다. 

 

스칼스키 | 당신의 에크리 첫 두 권(논문모음집으로 구성)은 개념과 역사라는 통상적으로 대치되는 두 관념을 합칩니다. 당신의 사유에서 이러한 이중의 관심을 추동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발리바르 | 저는 생애에 걸쳐 한편으로는 개념의 노동[le travail du concept]에 관한 질문들, 특히 인식론적이고 인간학적인 질문들을 다루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이자 활동가로서 우리가 그 한 부분을 구성하는 역사와 직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혹자는 역사가 모든 것이 변화하는 장이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가장 확고했던 입장들이 한 때 아니면 다른 시점에, 질문에 부쳐지는 것이죠. 그러한 몇 가지 것들을 제 책에서는 ‘흔적[traces]’이라는 명제로 다룹니다. 다른 한 편, 개념의 노동은 시간이 흐르는 것과 정반대로 어떤 영구성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두 가지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인데, 제 책이 보여줄 거라고 희망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반성과 개념에 대한 노동 둘 모두에 반영되어 있는 세 번째 근본적인 항, 즉 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 과거, 현재, 심지어 (추측이라는 의미에서) 미래의 예시를 다루고 반성함으로써, 어떻게 정치와 역사 또는 프락시스와 시간성의 내재적 관계가 확립되는가를 밝히고, 다른 한편으로, 특히 후기 알튀세르와 푸코의 시도를 따라 갈등이, 따라서 곧 정치가, 이론적 사유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우연적 외재성으로서 관계맺거나 심지어 이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갈등을] 이론적 사유의 원천 또는 내재적 힘으로 구성되는 것으로서 사고하고자 했습니다.

 

스칼스키 | 마르크스에게서 이러한 지점을 자꾸 발견하는 것인가요?

발리바르 | 네. 베버(Max Weber)나 슈미트(Carl Schmitt)와 같이 자명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영감의 원천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 중 가장 강한 영감은 항상 마르크스로부터 비롯됩니다. 제 작은 책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이미 강조했지만, 그에게는 존경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게 마르크스는 서로 모순될지라도, 두 가지 근본적 요건을 절대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는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사회가 모순적일뿐만 아니라 참을 수 없으며, 우리가 우리의 미래이자 대안을 낳기 위해 그 기반으로 두고자 하는 지레, 즉 힘들과 경향성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에게는 정치적 투쟁의 편의나 우연성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두 가지 요구 중 어느 것 하나도 내어주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오해를 살 위험을 감수했다는 것이죠. 진리는 오류를 통해서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요, 특히 무엇을 했는지,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최대한의 열정을 갖고, 그리하여 최대한의 개념성을 가져야 하죠.

 

스칼스키 |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 이는 어떤 의미에서 그람시적 공식이 아닙니까?

발리바르 | 네 바로 그람시의 공식입니다! 이 공식은 [앞서 언급한] 이 긴장, 쉽지 않지만 정치적 행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이 긴장에 대한 가장 명확한 표현 중 하나입니다. 다른 표현방식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대립시키는 베버적 대당이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 이 대당을 배제가 아니라 관점의 상호성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베버는 위대한 혁명가로 일컬어지지 않지만 최소한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람시나 마르크스만큼이나 중요한 스승일 것입니다. 또 다른 예시로 마키아벨리의 공식이 있습니다. “그것의 사실상 진리를 추구하라[‘Andar drieto alla verità effetuale della cosa’]”. 이 공식은 마키아벨리가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François Guichardin / Francesco Guicciardini]에 보낸 편지에 등장하는데, 저는 이를 「개념의 정념[Passions du Concept]」의 초반부에서 인용했습니다. 당대 투스칸어[Tuscan]에서 ‘Andar drieto’는 ‘직선으로 나아가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따라가라’, 진실을 ‘따르다’ 또는 ‘좇다’는 의미를 갖죠.

 

스칼스키 | 당신은 이른바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통해 스피노자를 따라서 비판적 반성,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관념을 복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발리바르 |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에 몇 가지 결정적인 전환점들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스탈린은 피할 수 없는 참조점이죠. 떠오르는 질문은 레닌 사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스탈린, 그리고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이 소련에서 권력을 획득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입니다. 10월 혁명의 흔적에 대한 제 글에서는 이를 공산주의 혁명의 역사에서 국가주권의 복귀로 설명했습니다. 그렇지만 살면서 생각을 뒤집었는데, 이보다 더 이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1918년, 내전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레닌이 제헌의회 선거가 무효이고 공허하며, 의회민주주의더러 혁명적 변화에 방해물 또는 반혁명 저항의 온상이라고 선언했던 순간 말입니다. 그의 생각은 소비에트나 평의회 민주주의 형태의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위해서 이러한 종류의 대표제 기관들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대에 아무리 필요한 조치였다고 믿어졌더라도 결국 전능한 단일 정당을 의미했죠. 결국 체포당하고 살해당하여 출간하지 못했지만 당대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는 [그러한 결말을] 예고하는 텍스트에 유명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자유는 항상 다르게 생각할 자유이다. (Freedom is always and exclusively freedom for the one who thinks differently.)” 이는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의 철폐가 혁명적 시도의 사형선고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속했던 공산주의 전통에서는 이 문제를 해소된 것, 즉 레닌이 옳았다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즉각적 효과성의 이름으로 마키아벨리를 최악의 방식으로 사용했던 주장이었죠. “사실상의 진리”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룩셈부르크가 차후 소련식 사회주의에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온 결정적인 지점을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의회민주주의를 민주주의 관념에 대한 최고점[nec plus ultra] 또는 알파이자 오메가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급진민주주의라는 관념에 내용을 제공하고자 시도했던 것들(예를 들어 『평등자유 명제[Égaliberté]』의 글들)은, 저로 하여금 대표제나 의회주의보다 더 발전된 민주주의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한 형태를 위해 다른 형태를 단순하고 단호하게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상보적 관계를 동적으로, 따라서 필연적으로 갈등적인 방식, 즉 상호보완적 또는 교대하는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오늘날 세계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등장하고 있는 여러 봉기적 운동들이 의미하는 바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이 운동들은 해방의 이념들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이 이념들의 생동성을 번역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칼스키 | 뤼시앵 셰브[Lucien Sève] 같은 몇몇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는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교착상태를 넘어서기 위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발리바르 | 저는 그 어느 때보다 공산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기차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 저도 참여하고자 노력하죠. 제 기본적인 입장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많은 요소를 공유하고 있는 위대한 전통의 대표 셰브를 포함한 몇몇 동시대인들은 역사로부터 끌어내는 교훈이 사회주의라는 범주를 지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관념의 일종의 기원적 순수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제안하고, 동시에 이러한 형태의 공산주의에 대한 관념(부끄러운 역사를 연상시키지 않기 위해 ‘공유[common]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절대자본주의[absolute capitalism]의 모순이 요청하는 사유 재산과 국가에 대한 급진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이고자 합니다. 놀랍게도, 최소한 축어적인 측면에서는 네그리[Toni Negri]가 말하는 바와 알튀세르 생전 몇 개의 최후의 텍스트에서 설명했던 것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급진적 대안을 사고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저는 여전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두 범주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둘에 기입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진화론(먼저 정치적 권력을 쟁취하고 그 다음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행을 이뤄야 한다는 식의…)과 완전히 단절한다는 전제 내에서 말입니다. 역사는 이러한 단계주의적인, 그리고 동시에 국가주의적인 도식을 완전히 반박했습니다. 반박되지 않은 것은 급진적으로 대비되는 세계관을 체화하고 있는 사회, 정치, 그리고 문화적 세력[힘force] 간의 장기적인 이행 또는 대결을 사고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 환경 재앙의 현실은 적대 세력 간의 갈등, 타협의 시기, 다소 공고한 동맹, 그리고 더더욱 지대한 개혁 조치들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다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사회적 이행을 위한 통치 및 정책 체계들을 구축하고 관철하며 발명해야 할 필요성과 긴급성을 부각합니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위하여: 규제, 반란, 유토피아’라는 가설적 제목을 붙인 제 책의 마지막 부분은 역사의 교훈과 [현재 우리가 직면한] 즉각적 비상사태[환경재앙]을 기초로 하여 완전히 재사고된 내용의 사회주의적 변혁에 대한 관념을 명료화하고자 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네그리가 사회주의에 고별을 고하듯이 제가 하는 것이 공산주의에 고별을 고하는 것이라고 파악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현실은 완전히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사회주의 이행 또는 강령도 다양한 이름 아래의 공산주의들이 이러한 이행 그리고 투쟁에 에너지, 발명의 역량, 상상력과 유토피아, 그리고 요구되는 혁명적 급진성을 공급해주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는 소유의 형태 또는 생산양식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다양한 집합적 주체성입니다.

오래된 관습에 대한 대안은 “사회주의를 잊고 오늘날 공산주의를 즉각 성취하자.”라고 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또 “공산주의를 저 먼, 심지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 두자.”라고 말하는 것 역시 (대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일 겁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속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원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공산주의자들, 지식인, 기타 등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는 우리 전통의 또 다른 이반자[déviationniste]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의 공식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는 실제로 마르크스에게서 오는 공식이기도 하죠.) “최종 목적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운동이 전부다.” 

 

번역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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