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노동운동과 노동관계, 노동조직에 대해 연구해온 홍콩대학 박사과정 연구생 팡란(方然)이 지난 8월 26일, 광시좡족자치구 난닝에서 국가안전부 요원들로부터 체포됐다. 국가안전부는 공안부와는 다르게 첩보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다.
팡란이 사라졌다는 소식은 지난 9월 1일 팡란의 아버지 팡젠중(方建忠)에 의해 알려졌다. 팡젠중은 자신의 웨 이신(wechat) 계정에 며칠 전 아들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자신의 아들은 “절대로 아무 동기가 없고, 법을 어기고 규율을 어지럽게 하는 활동에 종사할 어떠한 조건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팡젠중에 따르면 팡란은 ‘지정된 장소에서 감시상태로 거주’(指定住所监视居住; under residential surveillance at a designated location) 조치가 되었다. 중국 형사소송법 규정에 의하면, 이 조치는 중대 뇌물수수 혐의자나 피의자가 현지에 일정한 주거 없이 거주할 경우, 두 가지 경우에 주로 적용된다.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가 아닌 곳에 따로 구금되며, 당국은 가족에게 수감 장소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변호인조차 당사자를 만날 수 없다.
올해로 26세인 팡란은 칭화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한 2013년(당시 18세)에 중국공산당 입당했다. 아버지 팡젠중은 “팡란은 당에 위해를 가할 죄를 범할리는 절대 없습니다. 그는 당의 사업에 협조하길 바라는, 용기와 기상이 가득한 청년입니다”라고 말했으나, 입당 후 8년이 지난 지금, 팡란에게 적용 된 혐의는 국가정권전복 선동죄(煽动颠覆国家政权罪)다.
팡란의 체포가 알려진 후 홍콩대학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으며, 적극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필요할 경우 팡란 선생과 그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문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았고, 중국 사회를 연구하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홍콩대학 사회과학부 학장인 윌리엄 헤이워드 교수가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따르면 대학당국 역시 팡란의 실종을 통보받았지만 그가 왜 억류됐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대체 팡란은 왜 체포됐을까? 단순히 대륙의 노동 문제를 연구해서일까? 그가 최근 연구해온 주제는 중국 대륙의 노동자 과세를 비교하는 각기 다른 방식에 대한 분석이다. 이런 연구 주제가 정부의 심기를 특별하게 거스를 이유는 없다.
팡란은 칭화대학 사회학과 석사 졸업 후, 2018년 홍콩대학 박사과정 진입했다. 학부와 석사과정 시기 그는 단순히 연구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학부시절 그는 칭화대학의 좌파 성향 동아리 현대자본주의연구사단(现代资本主义研究社团)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팡란이 활동하던 시기 이 동아리는 본래 경제인류학 문헌을 번역하는 프로젝트팀이었는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세 팀으로 나누어 활동을 이어나갔다. 경제이론, 노동가치론, 자본주의위기론 등이 각 팀의 주제였다고 한다. 책읽기모임뿐 아니라, 참여자들은 과제 조사·연구를 통해 수시로 해당 이슈들에 대해 토론했다.
공누(工弩)와 치우훠(秋火)라는 닉네임의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 동아리는 2017년부터 “반자본주의적 시각에서 국가주의에 맞서는 선봉” 역할을 했다. 팡란과 그의 친구들은 자본주의에 대해 정치·경제·사회구조의 다양한 요인을 조명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펼쳤고, 역사와 현실의 변화와 충돌, 불균형 동학을 이해하고, 혁명의 요인을 파악하면서, 현실정치에 깔린 여러 사상적 경향을 비판했다. 나아가 당대 노동자운동을 중국 사회의 여러 현안들과 비교해가며 평론을 썼는데, 이는 중국 사회 계급투쟁을 재활성화하기 위한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의 이론적·정치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니까 팡란은 학부 시기부터 줄곧 노동연구를 해왔고, 대륙의 노동권익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고 할 수 있다. 팡란의 친구들에 의하면 그는 사회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불공평한 것을 목격하면 항상 소리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팡란은 이런 관심을 이어나가며 대륙 내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로서 활동해왔고, 한 독립미디어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2017~2019년에는 중국 남부 공업지대의 노동자운동을 연구하는 작업에 참여하였고, 2018~2019년에는 후난성 진폐병 노동자 연대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투쟁은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산재 노동자 투쟁 중 가장 의미있는 사건인데, 2019년 2월 체포된 31살의 노동운동가 웨이쯔리가 깊게 연루된 사건이기도 하다. (관련 칼럼 : [주간경향] 광저우에서 올트 트래퍼드까지)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은 기층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인식해왔다. 노동자들이 자주적이고 자치적인 공회를 조직하거나,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노동조직이나 노동운동이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질서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심지어 정권을 위협하는 불안정 요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2010년 이후 중국 각지에서는 적지 않은 노동자-자본 간 분규와 권익사건(维权事件)들이 터졌다. 2018년 자스커지 투쟁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2019년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을 경과하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노동의 문제를 둘러싼 저항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중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다. 2018년 자스커지 투쟁은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상당수 학생운동가들을 탄압했고, 많은 대학 동아리들이 사라졌다. 그 때문에 정부 당국은 기층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온 활동가들을 단속하는데 주력해왔다. 팡란의 구속이 노동자운동에 대한 그의 연대와 관련이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
수년 간 그가 펼쳐온 활동들은 비단 연구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팡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들어가보면, 중국의 인권 문제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그의 관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2월에도 그는 구해근의 저서 《韩国工人(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대해 토론하는 온라인 북클럽을 주최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책은 70년대~90년대 한국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형성되고 투쟁해왔는지 연구하고 있지만, 중국 대륙의 활동가들 내에서는 오늘날 중국의 상황과 유비하는 중요한 교재이기도 하다.
팡란의 체포 소식은 9월 전반기 내내 중국 민간좌파 진영에 속한 이들을 걱정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되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구전을 각오하고 장기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앞서 언급한 두 활동가는 《당국의 무리한 팡란 체포에 굳건히 반대한다 – 노동자운동의 영광을 변호하기 위해, 전투적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坚决反对当局无理抓捕方然 : 为工人运动的荣光辩护,重拾战斗的马克思主义》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아래는 해당 성명의 일부다.
- “우리——노동인민해방사업에 공감하는 모든 뜻있는 청년들— —은 팡란이 이미 갖추었던 전투적 마르크스주의의 지혜와 투쟁이 미칠 영향을 변호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적 비판과 착취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촉진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 그러한 역량을 무장시키려 노력하며, 실제 투쟁의 영향도 쟁취할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논리 싸움과 실제 싸움에서 내딛는 발걸음은 우리가 펼치는 노력의 잣대가 되어야 하고, 그런 투쟁의 영향을 아직 따라잡지 못한 모든 좌익 청년들의 표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와 같은 보폭과 함께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당국이 일시적으로 한쪽을 통제하더라도, 이후에는 더 많은 청년들이 새로운 팡란이 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이론과 투쟁의 실천 속에서 함께 성장함으로써, 자본주의 통치에 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력을 끊임없이 보강할 수 있다.”
이런 입장이 폭넓게 퍼져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