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올림픽을 위한 도시는 없다? 도쿄올림픽 강제퇴거와 저항
2021년 8월 1일
도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지만, 다른 여느 올림픽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관중도 없고 각종 사고도 많은 올림픽이라 이전 올림픽들의 열기를 느끼기 어렵다. 한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싸움이 있다. 바로 올림픽으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의 저항이다. 도쿄올림픽 개막 전부터 지금까지 올림픽 경기가 펼쳐지는 장소 인근에서는 연일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수년에 걸친 싸움의 결과이기도 하다.
올림픽은 도시개발을 촉진한다. 다양한 경기 시설을 새로 지어야 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단이 일시적으로 머무를 거주 공간과 각종 인프라도 필요하다.
도쿄올림픽 개막식 전날 밤, 올림픽 경기장 바깥에서는 지속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올림픽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올림픽이 주거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국가 감시 강화 문제를 거론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의 강제퇴거
2013년 9월 올림픽 개최국으로 선정되면서 일본 정부는 도쿄 신주쿠 일대에 경기장과 박물관을 건설하는 등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본래는 새로 경기장을 건설하려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기존의 국립경기장을 해체하고 약 6만8천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을 새로 짓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올릭픽 개최를 추진하던 2012년부터 일본 정부는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디자인한 올림픽경기장을 짓기 위한 도시개발 계획을 세웠다. 한데 하디드 설계안의 건설비용이 2,651억 엔(2조8천억 원)까지 오르면서, 설계안 자체에 대한 여러 비판이 늘어났다. 결국 일본 정부는 예산 금액과 기한을 초과하는 문제 때문에, 최종적으로 하디드의 디자인을 선택하는 걸 포기했다. 대신 그 해 말,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맞는 설계안을 선정했다.
새로운 계획에는 경기장 부지와 가까운 곳에 있던 ‘카스미가오카 공동주택’을 공원과 광장으로 바꾸겠다는 계획, 인근 메이지공원을 호텔로 바꾸겠다는 계획 등 주변환경 정비안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십년 간 살고 있던 주민들이 강제로 쫓겨나게 됐다는 점이다. 개최 결정 직후인 2013년 10월 도쿄도 정부는 인근 메이지공원 텐트촌에 살던 홈리스들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또, 카스미가오카 아파트에 살던 400여 가구의 주민들에게도 강제이주를 요구했다.
카스미가오카 아파트는 경기장 인근에 있는 도영 주택이다. 도영 주택이란 공공주택 중에서도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을 지칭한다. 이 때문에 주로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시민들을 우선으로 모집된다고 한다.
강제이주 설명회에서 도쿄도 정부는 반대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는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정부의 정책은 이미 결정됐다”, “계획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말로 어물쩡 넘겼다. 조치대학(上智大学)의 이나바 나나코 교수에 따르면, 당국은 주민들의 새로운 정착지를 제대로 예비하지 않았다. 2017년 강제철거가 이뤄질 때 이곳에 남아 있던 주민은 230가구였는데, 주민들은 신주쿠의 다른 공영주택으로 이주하거나, 자녀들의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와 같은 과정은 다큐멘터리 <東京オリンピック2017 都営霞ヶ丘アパー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현재 일본에서 상영 중이다.
또한 이 사안은 ‘동아시아 강제퇴거 법정(東亞迫遷法庭)’이라는 이름의 민간 법정에 올랐는데, 이때 발표된 연설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쫓겨나는 메이지공원 홈리스
일본 전역에 약 5천 명, 도쿄에만 약 3천여 명의 홈리스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공원이나 하천, 도로, 기차역사 등 장소에서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로 한정했을 때의 숫자다.
올림픽 관련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NGO ‘안티오륜 모임’의 회원이자 홈리스이기도 한 오가와 데쓰오 씨는 역사상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공원은 왕왕 집을 잃은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곤 했다고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한동안 정부와 지역 주민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 공원 공간에 텐트를 치고 머무는 것에 대해 대체로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일본이 올림픽 대회 주최국이 되면서 이런 상황은 모두 변해버렸다. 당국은 공원 쪽으로 더 많은 보안요원들을 보냈고, 심지어 야간에도 공원을 폐쇄해버렸다. 2013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도쿄 평가가 있기 전날 밤, 도쿄정부는 2주 간에 걸친 ‘도시 청소’ 작업을 전개했다. 여기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인사들의 방문 경로에 설치되어 있는 홈리스들의 천막도 포함됐다.
이와 같은 행정대집행에 맞서 메이지공원의 홈리스들은 “짐을 돌려달라!”, “생활을 돌려달라!”고 외치면서 싸웠다. 결국 정부 당국과 일곱 차례에 걸친 단체 교섭을 가지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 강제 퇴거 금지, 거주 기간동안 공사 미진행 등을 합의했다.
2016년 4월, 결국 행정대집행은 이루어졌다. 올림픽경기장과 인접한 메이지공원에서 홈리스들이 쫓겨나자, 당국은 거대한 흰색 천을 설치하여 이들의 모습을 IOC의 시야에서 가려버렸다. 이 사건 이후 공원에 머무르던 사람들은 강제로 축출 당해야 했다.
시부야역과 가까운 미야시타 공원에도 당국은 18층 높이의 호텔을 지으려고 했다. 2017년 이곳의 개발 사업자 미쓰이부동산은 사전 통보 없이 공원을 폐쇄하고 빗속에서 공원 주민 10여 명을 추방하기도 했다.
다시 시작된 강제퇴거
올림픽 개막 전야, 그들은 당국으로부터 강제축출의 대상이 됐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이미지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신주쿠역 보안원들은 순찰을 강화하였고, 역 지하에 묵고 있는 홈리스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경고했다.
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는 지금, 일본 정부는 올림픽 선수단과 외신에 청결한 도쿄 도심 환경을 보여주기 위해 홈리스들을 거리에서 내몰고 있다. 홈리스들이 주로 지내는 공원들은 굳게 걸어잠궜고, 야간에 이곳에서 잠을 못 자도록 환하게 조명을 켜고 있다. 지하철역 근방의 텐트들은 죄다 철거되었고, 경기장 주변에 철조망을 둘러 홈리스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쫓겨난 홈리스들은 거리 곳곳을 헤매고 있다.
올림픽이 일방향적인 도시개발로 주거권을 박탈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야기하는 등의 문제는 비단 도쿄올림픽만의 문제는 아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무 수한 강제퇴거가 이뤄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2012년 런던올림픽 준비 과정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은 많은 논쟁을 야기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무려 7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할 곳을 잃었다.
올림픽 정치를 연구해온 쥴스 보이코프(Jules Boykoff)는 올림픽을 일종의 “자본주의 세레모니(celebration capitalism)”라고 말한 바 있다. 올림픽이라는 모종의 예외 상태를 만들어, 국가 권력 확대와 사기업 자본의 이윤 증식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우리나라의 평창올림픽 반대연대는 <올림픽을 위한 도시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도쿄올림픽 반대운동에 대한 연대 성명을 발표했다.
참고 자료
- 김은혜, 2020년 도쿄 올림픽과 도시재생의 역설: 신국립경기장 건설과 퇴거, 일본비평 제23호,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 이에스더, “올림픽 기간에 숨어달라” 거리에서도 쫓겨난 도쿄 노숙자들, 한국일보
- 東奧的代價:驅趕遊民迫遷社區與國家監控爭議, 苦勞網
- 奧運2020‧霞之丘公共住宅迫遷 案, 東亞迫遷法庭
- 衰!兩次東京奧運他的家都被拆, 自由時報
- Olympics: The hidden sight of Tokyo’s homeless, BBC News
- Downtown Tokyo’s homeless fear removal ahead of Olympics, AP
- Meagan Day, The Olympics Is a Racket : AN INTERVIEW WITH JULES BOYKOFF, Jacobin Magazine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