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며
“활동가는 뭐하고 살아요?”, “어떤 고민을 가지고 활동을 하죠?”, “사회운동 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죠?” 등 활동가에게 묻고 싶었지만 묻기 애매했던 질문들을 모아 활동가들을 찾아간다.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넘어, ‘어떻게, 왜’ 활동하고 있는지 묻고, 소위 활동가에도 다양한 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첫번째로 만난 사람은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이다. 지난 7월 30일, 반빈곤운동 단체들이 모여 있는 남영동 아랫마을* 사무실를 찾았다. 두 편으로 나눈 이번 인터뷰는 ‘활동가 김윤영’에 집중하고, 다음 편에서는 반빈곤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윤영은 학생운동을 거쳐, 2013년부터 빈곤사회연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을 비롯한 빈곤정책과 주거권, 강제퇴거 반대를 이슈로 활동하고 있다.
- 아랫마을이란? : 2010년,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의 5개 단체가 모여 합력을 발휘하고자 서대문역 인근에 함께 공간을 구했다. 이후 홈리스행동이 운영하는 홈리스야학도 언제나 사람들이 찾아와 쉬고 식사 등 필요한 물품들을 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러던 2012년,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지금은 용산구 남영동 작은 골목의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간을 고른 기준은 홈리스들이 가장 많은 서울역에서 걸어서 올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동자동과 중림동 등 쪽방 밀집 지역이 배후지로 있는 것도 고려했다. 최근 용산구 재개발 붐이 일어 존속 가능성에 고민이 쌓이고 있다.
"일단 한 번 해보는 거야"
플랫폼c(이하 ‘플씨’) : 어떤 계기로 빈곤사회연대 활동을 시작했나요?
윤영 : 학생운동 마치고 사회운동으로 진출을 앞두고 있을 때 빈곤사회연대가 사람을 구하고 있었어요. 마침 제가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이 있어서 오게 되었죠. 저는 대학생 때 빈활(반빈곤 연대활동)을 매년 참가하기도 했고, 용산 참사와 같은 사건이 활동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구심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거리홈리스 상담 활동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계속 했거든요. 그래서 학생운동을 함께 한 동기들이 제게 추천해준 점도 작용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반빈곤 운동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활동들 가운데서 내가 좋아하는 단체잖아, 그러면 한 번 해볼까, 짧으면 3년 길면 5년, 일단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10년은 해야지, 뼈를 묻겠어”, 이런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얼레벌레 왔어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까 10년이 되었네요.
- ※ 빈곤사회연대 : 정식명칭 ‘빈곤철폐를 위한 사회연대’. 2001년에 최옥란 열사가 ‘민중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명동 성당 앞에서 진행한 농성을 계기로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목표로 결성이 된 단체이다. 노점상ㆍ철거민 등 전통적인 빈민운동을 비롯해서 홈리스ㆍ장애인 등 새로운 빈민 운동과 함께 계속해서 빈곤 문제를 연결시키고 지속적으로 사회운동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연대체이기도 하다. 지금도 40여개의 참여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매달 집행위원회를 열어 주요 사업들에 대해서 결정을 하 고, 참여 단체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들이 주요 사업인 연대체이다. 동시에 생활소득 쟁취, 불안정주거민들의 주거권ㆍ생활권 쟁취, 공공서비스의 시장화 저지를 비롯해서 사회 전체적인 빈곤 문제, 빈곤에 따른 차별의 문제, 빈곤 정책이나 복지 정책의 보수화의 문제에 대해서 대응하고 발언하는 사회단체의 역할도 하고 있다. 매년 1017 빈곤 철폐의 날 행사, 홈리스 추모제, 반빈곤영화제, 반빈곤연대활동 등도 주관하고 있다.
‘나의 첫 활동 순간’
플씨 : 활동하면서 처음 해본 경험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첫 집회, 첫 발언, 첫 성명, 첫 활동비 받았을 때, 이렇게 네 가지 키워드 중에서 하나 골라서 얘기한다면?
윤영 : 제가 처음 집회 사회를 맡았을 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1017 빈곤철폐의 날 집회였어요. 너무 긴장해서 민중의례 끝나고 사람들한테 앉으라고 말을 안 해서 다 계속 서서 집회를 했지 뭐에요. 집회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슬금슬금 앉긴 했지만 정말 너무 떨렸어요. 그래서 데뷔부터 너무 큰 집회 사회를 보게 한 것이 우리 언니들의 실책이 아니었는가, 이런 생각을 해요. 다 흑역사가 있는 거죠.
상근활동 시작하고 첫 성명서를 쓸 때에는 같이 활동하던 선배가 성명을 쓰라고 하길래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쓰지’하면서 막 열심히 써서 드렸더니 보시고 다 고쳐서 거의 새로 쓰고 돌려주시더라구요. 그때는 “이렇게 쓸 거면 처음부터 언니가 써줄 것이지”하고 따졌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다 가르쳐주려고 한 건데 내가 그런 마음을 몰랐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첫 활동비는 당시 월 50만 원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80만 원만 받으면 알바 안 하고 활동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던 것 같고요. 실제로 80만 원 딱 받는 순간 알바를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너무 좋았었어요. 그런데 사실 학생운동 할 때는 활동비를 받으면서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활동비를 받았을 때 그 돈이 적다고 생각하기보다 “우와 활동하는데 돈을 주네?” 하는 느낌 들었어요. “활동하는 데 돈도 준다. 대박! 주말에 쉴 수도 있대!” 이런 생각이 더 강했어요.
주 몇 시간 일한다 이런 것도 딱히 없었죠. 그래서 주말에는 알바도 했어요. 처음에는 원래 과외를 했어요. 그러다가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과외를 그만두고 설문조사나 녹취푸는 알바 이런 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완전 짠내나는 이야기네요.
첫 휴가도 기억에 남아요. 첫 번째 여름 휴가를 갈 때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휴가 정해서 쓰라니까, 날짜를 정해서 그냥 갔어요. 그때 제주도에 텐트를 짊어지고 캠핑을 갔는데 너무 더웠어요. 근데 그 더운 여름에 다른 선배들이 서울역에서 농성을 들어가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괴로워 하면서 놀았죠. “서울에 올라가서 죽었다 어떡하지” 이러고서 돌아갔더니 다들 땡볕에 농성을 하고 있더라고요.
언젠가를 대비하는 사람
플씨 : 반빈곤운동 특성상,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말해도 말해도 듣지 않는 정부와 공무원, 폭력적인 경찰들이 떠오르네요. 이러한 순간들에서 오는 좌절이 종종 찾아올 거 같습니다. 이런 좌절의 순간들을 운동의 에너지로 바꾸는 비결이 있을까요?
윤영 : 활동가라는 직업이 항상 주장을 해야 되잖아요. “내 말이 맞을까, 틀렸으면 어떡하지, 혹시 저 말이 맞지 않을까”, 이런 의심을 하면서 동시에 주장을 하는건데 보통 내가 하는 주장들은 이상한 소리 취급을 많이 당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자라고 얘기했을 때도 불과 5년 전에는 “언젠가 되면 좋지만 꿈같은 소리”라는 평가가 보통이었거든요. 특히 이를 담당하고 있는 복지부 정책 담당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고, 대안이 실제로 될 만한 걸 얘기를 해라” 이렇게 많이 얘기를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진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사람들한테 혹시 허황된 사기를 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과, 지금 필요한 걸 생각해 보면 물러설 수가 없는 거죠.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무수한 편견이라든지 기존의 관성이라든지, 특히 권력이 있는 사람들과 계속 싸워야 되는 게 제일 좀 답답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좌절들을 어떻게 운동으로 전환시키냐고 하냐면, 기본적인 연료는 현실에 대한 분노인 거 같아요. 근데 그렇다고 맨날 인상 쓰고 있다고 해서 무언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플씨 : 그렇게 화가 나는 게 동력일 수도 있지만, 운동이 마냥 무겁게 지속될 수 있는 건 아닐 거 같아요. 무거움을 좀 놓을 수 있는 어떤 순간들이 있을까요? 유쾌한 활동가 ‘TOP3’ 안에 드는 거 같아요.
윤영 : 저는 활동을 계속해야겠다라고 결심했었던 순간이 뭐였냐면, 운동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였어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이렇게도 갈 수 있고 저렇게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는 게 어려워져요. 슈퍼맨도 아닌데 세상사가 다 내 책임처럼 느껴지잖아요. 그건 사실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계속 생각하면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해 나갈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는 ‘변화의 언젠가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새로운 것을 계속 창조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기획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어떤 순간들이 겹치면서 역사적인 반역의 순간이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 한명이 일을 잘한다고 해서 그 순간이 오거나 못한다고 해서 안 오는 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죠. 저는 지금도 ‘할 수 있는만큼 하자’는 게 항상 목표고, 안 되면 ‘죽어도 될 때까지 하자’ 같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아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바로 내가 고립되어 있다고 느껴질 때죠. 활동을 혼자 할 때는 아무리 평가를 해도 바로잡을 수 있거나 개입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에 대한 평가가 진짜 가혹해지기도 하고, 이런저런 실패에 대해서 나 자신을 가지고 들볶게 되는 것 같거든요. 저도 그런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빈곤사회연대 상근 활동을 시작하고 2년이 지났을 때 1년 정도 혼자 활동하던 기간이 있었어요. 맨날 “언제 문 닫지, 언제 문을 닫아야지 욕을 덜 먹을까” 생각만 하면서 버텼는데, 그때는 진짜 스스로 마음 조절이 잘 안 되긴 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했으면 잘했을 것 같은데 내가 해가지고 이렇게 되지 않았나’ 같은 자책을 끊어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하는 사람들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빈곤사회연대에서도 다른 상근 활동가들이 생기고나서부터는 자책을 안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점만으로도 저에게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때 너무 힘들었지만 이런저런 훈련이 빨리 된 것 같아요. 토론회를 해도 기획부터 보도자료 쓰고 토론문을 쓰는 것까지 내가 혼자 해야 되니까, 집회를 해도 선전물에, 취재 요청서, 보도자료 사회까지 내가 다 봐야 되잖아요.
플씨 : 그러니까 이게 적당히 하자가 전제가 되는 밑바탕이 있다는 거네요. 윤영은 절대 그냥 대충 하는 분이 아니니까요.
윤영 : 잘 해야죠. (웃음) 그런데 잘하고 싶다고 해서 늘 잘 되는건 건 아니잖아요. 그냥 그런 거죠.
스스로와 주변을 조직하는 활동가
플씨 :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러 스타일이 있을 것 같아요. 활동가는 무엇을 할 줄 알아야 된다, 이런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윤영 : 다른 단체 사람들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들은 왜 이렇게 다 할 줄 아냐고 되게 좀 놀라는데, 다들 실무를 진짜 잘하는 것은 맞아요. 저는 그렇게 잘 하는 편이 아니고 다른 동지들이 실무 더 잘해요. 그래도 저희도 같이 활동하면서 보면 서로 잘하는 것도 다르고 성격도 진짜 달라요. 맨날 우리가 학교같은 곳에서 만났으면 정말 서로 안 친해졌을 거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뭔가를 도모하려고 하니까 신기하게 같이 합이 맞게 된거 같다고 하죠. 어쨌든 저는 다 사람들이 쓰임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어야겠죠.
저는 “조직화”가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에요. 대개 다른 사람을 내 입장으로 설득하는 것을 조직화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나를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지금 해야 되는 고민들을 앞에 놓고, 계속 넓혀내고, 깊게 만들 고, 판단을 잘하기 위해서 스스로 계속 훈련을 하고, 이런 게 필요해요. 또 내가 활동을 할 수 있는 상태로 나를 잘 조직하는 것도 포함돼요. 너무 나를 막 몰아붙이거나, 활동 외에 다른 것들을 관리 못해서 무너지거나, 이렇게 되지 않게 활동을 잘 할 수 있는 상태로 스스로를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죠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데 그런 건 아니에요. 더불어 자기가 활동하고 있는 공간을 조직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면 우리는 같이 뭔가를 해 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있을 때, 아니면 이런저런 의구심이나 새로운 주장 같은 게 있을 때, 같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하고 계속 조율하고 맞춰나가고 이러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활동가의 실제 일상은 강철의 활동가 같은 이미지와 거리가 있는 거 같아요. 어떤 활동이 너무 재미있다고 미쳐서 폭주하는 사람 있으면, “너 안 된다, 쉬어야 된다, 건강 챙겨라” 이런 얘기를 서로 해줄 때가 더 많죠. 그런 측면에서는 활동가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특정한 자질이라기보다는 자세가 맞겠네요. 다른 사람한테든, 현실에든, 자기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든 계속 개입하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활동은 되게 창조적인 작업이거든요”
플씨 : 처음에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되느냐라고 질문을 드렸는데, 개개인의 자질보다는 서로를 어떻게, 그리고 스스로 어떻게 챙길 것인지 이야기가 이어졌네요. 활동가에게도 자기 삶이 있잖아요. 소위 평범한 직장에서 기대되는 적당한 주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다양한 삶의 기준들을 활동가로서는 지키지 못할 거라는 통념이 있고, 그런 이미지 때문에 활동가는 영웅적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하는 거라는 통념도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 활동가로서 삶이 평범한 직장에서 제공해 주지 못하는 어떤 효능감이 있을 것 같은데 두 가지를 한번 구체적으로 비교해 줄 수 있을까요?
윤영 : 활동가들이 좀 돈이 없죠. 그건 사실이긴 한데, 가난을 느끼는 게 소득수준으로 결정되는 것 같진 않아요. 활동가들은 일상과 일 모두 시간에 대한 통제력도 강하고, 자기 시간을 설정하고 운영할 수 있는 통제력도 강해요. 그래서 딱 소득수준으로 생활이 빈곤한가 여부를 말할 수 있는건 아닌것 같아요. 물론 우리가 회피하기 어려운 몇 가지 순간들이 있죠. 소득의 상실이라든지, 질병이라든지, 장애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는 순간에는 기존에 자산이 없는 상황이 훨씬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건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차피 대처 못하는 상황이죠.
제가 활동 처음에 시작할 때 친구들도 직장에 많이 들 어갔어요. 근데 몇 년 동안 그 친구들이 “지금 내가 뭔가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긴 한데,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저는 반면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래도 정확하게 알고 왜 이걸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대부분 이해하며 해왔다고 생각해요. 자아실현, 효능감 이런 거창한 단어라기보다는, 내가 지금 막 땅에 발이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 헷갈리는 상황을 겪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기는 해요. 예를 들어 빈곤사회연대가 활동하는 것 중에서 30% 정도가 정해진 일이면 70%는 안 정해진 일이거든요.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정책이 발표되면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대응활동을 해야 되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에서 내가 별로 소외를 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좀 활동가가 느낄 수 있는 의외의 안정감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한테 항상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게 노는 기술이에요. 규칙적으로 노는 시간을 만들면 일도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일에 계속 떠밀리거든요. 나의 개인적인 시간, 노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죠. 물론 그건 동료를 생각하면서 같이 호흡을 맞추는 것이구요. 예를 들어서 2016년에 촛불 집회가 있었죠. 그래서 20주가 넘게 촛불 집회를 하는데 저 혼자 휴가 갈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는 좀 몇 주 몇 달 동안 계속 주말마다 집회 나가고 그렇게 되는 거죠.
저는 노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항상 쉬는 시간을 잘 정해놓고, 일은 쉬는 시간 중간에 하는 느낌이죠. 열심히 활동한다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이때 놀아야 되니까 이때까지 이거 마치자”라는 느낌으로 일을 합니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면 조금 이상해보일 수 있긴한데, 저는 너무 바쁘고 머리가 복잡하면 남이 개최한 집회를 가요. 원래 집회를 개최하는 입장인 경우가 많으니까 집회때도 늘 바쁘잖아요. 다른 단체에서 개최한 집회에 가면 발언도 더 잘 들리고, 앉아서 구호도 외치고, 땀 흘리면서 행진 오래 하고 이렇게 상념을 털어내면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그래요.
다른 분들이 보면 그것도 제 일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게는 그게 새로운 경험이에요. 활동가는 사실 되게 창조적인 작업이거든요. 구호도 계속 만들어야 되고, 피켓도 만들어야 되고, 웹자보도 만들어야 되고, 종합 예술인처럼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되는데 자리에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으면 진짜 소진이 돼요.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 집회도 가보고, 진짜 엄청 멍 때리면서 쉬기도 쉬고, 그런 시간들이 많이 있어야 창의적인 작업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창조에는 노는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될 수 있겠네요.
활동과 일상의 균형
플씨 : 활동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어떤 루틴이 있나요? “쉬는 시간을 잘 확보한다”라는 대답을 주셨는데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이 있다면 듣고 싶어요. 사실 인터뷰 전 사전조사를 하면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한때 클럽에 츄리닝만 입고 밤새 춤만 추러 가신 적 있다고 하시던데, 여전히 그렇게 춤에 대한 열정이 높으신가요?
윤영 : 지금은 코로나로 갈 수 없는데다가, 그리고 입구에서 막히죠. 진짜 노는 거 좋아해요. 처음 빈곤사회연대 왔을 때는 오히려 학생운동 할 때보다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그래서 원한풀듯이 한 3년 동안은 맨날 도장찍고 다녔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딱히 어디 가거나 그럴 일이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쉴 순 없지만 그래도 뭐 틈나면 쉬어요. 이번주 일요일에도 저 웨이크보드 타러 가기로 했어요!
원래 필라테스를 계속 했는데, 작년 같은 경우는 저에게 나름 이런저런 의미가 있는 중요한 해여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진짜 일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설령 운동을 가도 마음에 계속 부담이 돼서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올해에는 반상근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쉬기도 쉬고 그렇게 잘 놀고 있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녀요. 안식년에 남미도 갔었고. 제가 같이 사는 사람이 저렴한 비행기 티켓 구입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검색 박사에요. 그래서 싼 비행기 티켓이 항상 우리 손에는 들려 있었어요. 언젠가 갈 티켓들이 항상. “9개월 뒤에는 어디야.” 이렇게 일찍 끊어야지 싼 표들이 있으니깐. 재미있게 많이 다녔어요.
사실 안식년이 퇴직금 대신이에요. 활동 1년마다 1개월이 발생하고 3년 이상 활동했을 때 3년에 한 번 주기로 사용할 것인지를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저희가 퇴직 금까지 적립할 재정적인 여력이 되지 않아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안식년도 그 전에는 없었는데 제가 도입했어요.
“맨날 진심을 다하려고 하면 너무 녹초가 되니까”
플씨 : 본인에게 ‘운동’이 무엇인지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윤영 : 그것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내 생각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요. 일단 “내가 지금 생각하는 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하며 살아요.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그냥 지금 알고 있는 것과 지금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는 가장 수고롭고 정성스러운 것들을 하려고 노력해요. 맨날 진심을 다하려고 하면 우리는 너무 녹초가 되니까 최소한 정성을 다 해 나가면서 언젠가 그게 진심에 닿길 바라는 거죠.
인터뷰어 : 보리, 현창 (플랫폼C 활동가)
만난 사람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