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만드는 노동자들이 공장 앞 시위에 나선 까닭은?
2021년 1월 29일
오늘날 동아시아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의 현황을 어렴풋하게나마 알지 못합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당장 동아시아보다는 서구의 운동 조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많은 정보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편향적으로 전달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에 비해, 사회운동의 대응은 미약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박한 시도를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2021년부터 플랫폼c에서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를 통해 동시대 동아시아 사회운동의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초기에는 한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점차 간격을 좁히는 걸 목표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며, 당분간은 웹사이트 게재도 함께 하려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나아가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를 함께 만들고자 하는 분들의 동참을 기다립니다. platformc@protonmail.com
베트남 Vietnam
베트남에 가본 사람이라면 거리의 수많은 오토바이들로 뒤덮인 풍경을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2020년 12월 7일, 그랩바이크 노동자 수 백명은 승객의 탑승 주문을 받을 수 있는 라이더용 어플을 끄고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랩바이크(Grab Bike)는 1인에게만 제공하는 오토바이 승차 제공 서비스로(카카오택시의 오토바이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사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 의미에서 어플을 끄거나 지울 뿐만 아니라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기사들과 승객들에게까지 불편을 야기하도록 허위 예약을 하기도 했다.
파업은 Grab Vietnam 본사가 수수료를 20에서 23.6%로 인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사측은 3.6퍼센트 인상 사유를, 사측이 기사노동자의 소득세를 대신 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2018년 1월부터 소득세 변동사항(연봉 100,000,000VND [약 500만원] 또는 월급 8,300,000 VND[약 40만원] 이상부터 소득세 지불)을 적용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호치민시 세무서 측은 호치민에서 인상된 소득세를 내는 기사는 소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파업에 참여한 한 기사는 그랩의 베트남법인(Grab Vietnam)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몇 주는 수수료 10%만 받아갔지만, 곧 15%로 인상하고 또 20%로 인상한 것을 넘어 최근에 또 오른 것에 불만을 표했다. 실수령액이 떨어짐에 따라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하는 다른 직업을 구해야할까고 전했다.
그랩바이크 기사들은 지난 2017년 8월에 수수료가 15%에서 20%로 인상된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인도네시아 Indonesia
2020년 10월 5일부터 인도네시아의 노동자들이 옴니버스[Omnibus] 법안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은 조코위[Joko ‘Jokowi’ Widodo] 대통령이 발의한 옴니버스 법안에 맞선 투쟁이다.
지난해 11월 5일에 효력이 발생한 이 법안은 70여 개의 법안들을 하나로 합쳐 초국적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법안이다. 정부 측은 노동법을 완화하고 관료적 절차를 생략하고 전체 과정(특히 땅과 관련하여)을 순조롭게 함으로써 투자를 활성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노동·환경 사회운동 조직들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의 네트워크는 법안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시민사회운동 은 이 법안이 인도네시아로 하여금 2030까지 UN의 지속가능한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달성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UN의 SDG에서 중요한 것은 특히 8번 목표다. “질 좋은 직장과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 그리고 “기후정의 및 환경 보호와 관련된 13~15번 목표에 미달할 것”이라는 게 요지다. 2020년 10월 5일 법안 개정 이후, 시민사회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수 천명이 구속됐다.
인도네시아 경제협력부는 인도네시아의 높은 최저임금(최저임금 월급 베트남 150USD, 인도네시아 170USD)과 퇴직금(태국 32주 치, 말레이시아 17주 치, 인도네시아 52주 치)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미 인도네시아 전기 생산의 60퍼센트가 석탄발전에 의존하고 수출까지 하고 있는 실정에 옴니버스 법안으로 환경규제가 완화되면 석탄채굴이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노동규제 차원에서는 옴니버스로 인해 노동자가 더욱 비공식화[informalization]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는 옴니버스의 도안이 중국 발전 모델을 따른 것에서 나온다. 법안이 6개월 만에 발효됐다는 점에서 졸속처리를 지적받고 있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SNS에서는 법안의 오타가 한창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캄보디아 Cambodia
캄보디아 내 10개 공장의 노동자들이 성차별·성폭력에 맞선 행동에 동참했다. 벽돌 가마 공장 10곳에 고용된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맞선 캠페인(VAW; Violence against Women)에 동참했다. 캄보디아 건설노동조합(BWTUC; the Building and Wood Worker Trade Union Federation of Cambodia)이 이끄는 노동자들 은 칸달 지방의 타낭, 쿤 투어, 타 코이, 트봉 피치, 펀 루 앙코르, 뎀 푸어, 김 타이, 나리스, 유김 공장 등 10곳에서 시위와 파업을 펼쳤다.
캄보디아 건설노조에 따르면 COVID-19 대유행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이들은 가정과 직장에서의 성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노동자들의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건설노조 부위원장 소우(Sou)는 “벽돌 가마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사회보장기금 적용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건설노조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에 맞서 캄보디아 식품서비스노조(CFSWF), 캄보디아노총(CATU), 비공식경제협회(IDA), 노동인권연합센터, 캄보디아농민연합(CCFC), 캄보디아인권센터(CCHR) 등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캠페인을 벌여왔다. 또, 캄보디아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협약(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을 비준해야 하는 이유를 대중적으로 설명해왔다. 이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 1. 모든 실업자에게 월 40달러의 수당을 지급하라.
2. 비공식 경제 노동자 및 소농에게 의료보험 제공. 여기에는 임산부 노동자들이 무료로 의료서비스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3. 직장 내 성희롱 및 성차별을 예방하고 없애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고 ILO 190호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라.
4. 가정 내 폭력을 제거하고, 생존자의 신체적·정신적 복지에 초점을 맞춘 대응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법을 엄격히 시행하라.
5. 농민의 토지권을 보호하고,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토지 분쟁을 해결하고, 농민들에게 토지 권리 시위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법제도를 폐지할 것
6. 농민 단체를 캄보디아의 사회보호법 적용 범위에 포함시킬 것.
7. 노동자에게 월 40달러의 정부 수당 외에도 월 76달러에 달하는 긴급 보조금을 제공하라.
필리핀 the Philippines
12월 10일 인권의날을 맞이하여 필리핀의 노동조합들은 가정과 직장 내 성폭력을 몰아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 두테르테 정부가 만든 테러방지법의 시행으로 억압받고 있는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들도 전개했다.
국제건설노동자연합(BWI)의 부위원장이자 여성위원장 Eva Arcos는 성명을 통해 “사회정의, 성별, 노조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요구와 대응은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명은 또한 “건강과 안전을 위한 적절한 자금 지원, COVID-19를 산업 재해로 분류하고, 노동자를 위한 백신 접근, 괜찮은 일자리와 임금, 결사의 자유, 성폭력에 대한 무관용, ILO 협약 190호 협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최대 노동조합 나카이사 노동자연합은 인권 침해에 맞선 자동차 행렬 시위를 벌이며, 투옥된 야당 지도자 레일라 드 리마 상원의원의 즉각적인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수백 명에 달하는 정치범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면서, “평범한 필리핀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조합원, 활동가, 지역사회 활동가들에 대한 테러, 괴롭힘, 협박의 종식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의날에 전개된 여러 시위에서 6명의 활동가들이 또 다시 부당하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체포됐다. 필리핀 당국의 폭압적 진압에 대해 국제 노동단체들은 “국제인권의날이 무색해졌다”고 비판했다.
대만 臺灣
지난 1월 25일. 대만의 케잌 프랜차이즈 식품기업 메이디식품유한공사(美堤食品有限公司)에서 베트남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파업 집회를 열었다. 4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공장 입구에 모여 월 200시간이 넘는 연장근무에도 불구하고 연장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회사 측에 항의하며 연좌 농성을 전개하자, 이날 하루 동안 공장 가동이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메이디식품 사측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장 바깥으로의 외출을 금지했으며, 열악한 숙식 조건 등 문제가 만연했다. 가령 62명의 노동자가 기숙사 한 곳에 모여 있어야 했고, 샤워실 네 칸에서 씻어야 했다. 이날 농성 현장을 찾은 대만국제노공협회의 연구원 우징루(吴静如)는 “이토록 많은 문제가 쌓여 있는데,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국제노공협회는 이주노동자들과의 연대 활동을 펼쳐왔다.
메이디식품 노동자들의 불만은 이미 오래 누적된 상태였다. 자본과 중개업체를 향한 목소리는 아무 효과가 없었고, 결국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추가근로가 200여 시간에 달했고, 어떤 노동자는 월 240 시간에 이르는 연장근무를 하기도 했다.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월 440시간 가량을 일한 셈이다. 한데 자본 측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로 공장에서 떠나라고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2019년에도 메이디식품유한공사에서는 74명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여 우발적인 비공식 파업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밀린 임금 4천만 위안(대만달러)을 지급하기로 약속하면서 파업이 종결됐다.
1월 25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농성을 벌인 노동자들은 신베이시 노동국의 주선으로 사측과 조정회의를 가졌다. 약 5시간 동안의 협상을 벌인 끝에 오후 3시 의견접근에 다다랐다. 약 6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이 회의에 참여했다고 한다.
중국 상하이 中国上海
2020년 12월 19일 아침 애플 하청업체인 페가트론 상하이 공장 노동자 500여 명이 공장 5번문 앞에 모여 시위를 펼쳤다. 노동자들은 반복해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라!”, “피와 땀을 착취한 공장은 우리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라!”, “체불 임금을 지불하라!”고 외치고, “겁먹지 말자”고 격려했다.
사실 하루 전인 12월 18일, 페가트론 쿤산 공장 노동자들도 약속된 상여금과 임금을 받지 못해 항의 시위를 펼쳤다. 이 시위가 상하이로도 번진 것이다. 19일 오전10시15분경 페가트론 상하이공장 앞에는 많은 수의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 시위 중이던 노동자들과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경찰이 사람들을 때리고 있다!”고 외쳤다.
현장에 있던 한 목격자는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들 파견 노동자 대부분은 10월경부터 페가트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공장에 들어서자 파견업체들은 55일 근무에 대해 약 1만 위안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55일이 지난 후에도 약속된 보너스는 없었다.
더구나 이 명목상의 ‘보너스’는 퇴직할 경우엔 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남아 계속 일하게 강제하기 위해 약속된 임금을 보류한 것이다. 이는 강제 노동의 한 형태다. 또, 공장 전체 노동자 수의 10퍼센트를 초과하는 자리를 파견직으로 배치하는 관행도 중국 노동법을 위반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청두에서는 또 다른 애플 하청노동자들의 시위가 있었다. 폭스콘 청두공장에서 아이패드와 아이워치를 만드는 하청 노동자들이 주도한 이 대규모 시위는 원청인 애플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폭스콘 공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또 다른 하청사인 페가트론에서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신장위구르 中国新疆
2020년 12월 말, 중국의 플랫폼기업 핀둬둬(拼多多)에서 일하던 스물두 살의 여성 노동자가 새벽 1시 반 지독한 장시간 노동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쓰러져 사망했다. 이 사건은 중국 빅테크들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지칭하는 ‘996룰’, 과로문화와 관련한 사회적 논란을 다시 폭발시켰다. 2019년 봄에도 중국에서는 ‘996룰’과 관련된 IT노동자들의 반발이 크게 일었던 바 있다.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주 사업장에서 일하던 22살의 핀둬둬 여성노동자 장씨는 12월 29일 오전 1시30분경 동료들과 함께 퇴근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동료들은 장씨를 긴급히 인근 병원으로 보냈고, 병원에 간지 6시간만에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장씨의 급사에 대한 소식은 중국의 소셜미디어에 순식간에 퍼졌다. 이 소식을 듣자마다 사람들은 “과로사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SNS 웨이보에서 해시태그 캠페인이 일어났고, 순식간에 1억9천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해시태그 #996(오전9시부터 오후9시까지 주 6일 근무)가 폭발적으로 순위에 올랐으나 순식간에 검열되어 삭제됐다.
과로사 한 노동자 장씨가 일하던 사업장은 핀둬둬의 둬둬마이차이(多多买菜) 사업부로, 우리나라의 ‘마켓컬리’와 유사한 서비스다. 뉴욕 증권 시장에 상장되어 10억 달러 규모의 시가총액을 넘어섰고, 급격한 성장을 배경으로 메이투안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 때문에 회사 내에서는 장시간 근로에 대한 압박이 엄청나다고 한다. 매일 새벽 3~4시에 퇴근하는 일과를 보름 내내 쉬지 않고 지속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1분만 지각해도 3시간어치 임금을 삭감하며, 연장근무를 거부하면 곧바로 성과지표에 대한 질책이 들린다.
중국 노동법에 따르면 직원들은 특별한 이유로 최대 3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지만 한 달 동안 36시간 이상 더 일해서는 안 된다. 이 죽음으로 인해 중국에선 1월 내내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모처럼 형성된 노동 이슈에 대한 분노에 민간 좌파 활동가들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사회화하기 위해 활발하게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