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진보정당들의 실패에서 배우자——『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서평

역사 속 진보정당들의 실패에서 배우자——『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서평

전 세계 진보정당 역사의 실패와 과정, 원인에서 교훈을 도출하고, 한국의 진보정치 작동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20년 7월 10일

[읽을거리]비평유럽,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진보정당, 사회주의

이 글은 지난해 말 출간한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장석준, 서해문집)의 서평이다. 지난 5월 플랫폼c에서 진행한 책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고, 모임에 참여한 성원 중 한 명의 서평을 부탁해 실는다. 최근 녹색당과 정의당 등에서 ‘혁신위원회’ 활동이 진행 중인 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

정의당은 올해로 창당 8년차에 접어들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난 21대 총선에서 의석수 확대에 실패하면서 “심상정 중심 정당”이라는 세간의 규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총선 이후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혁신위원회 구성을 결의하고, 새로운 동력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 과연 혁신위원회는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을 새로이 바꿔낼 수 있을까? 정의당 혁신에 있어 고민해야 할 바는 무엇일까? 기성정당과 정의당은 어떤 지점에서 차별화될 수 있을까?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장석준의 책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은 이러한 고민을 확장시킬 좋은 재료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2000년대 초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매월 해외 운동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쓰여지기 시작됐다. 당시 많은 이들이 진보정당을 위한 ‘이론’을 요청했는데, 복잡한 현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이론적 기틀을 세워줄 이론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이에 저자가 ‘역사’를 해설한 것은 오늘날 아무리 금과옥조로 읽히는 이론과 정치적 명제들도 그것이 만들어질 때에는 나름의 역사적 맥락 속 정세적 판단의 결과물임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세기 말의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21세기의 스페인 포데모스까지 이어지는 진보정당운동의 성패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각 정당들의 모든 역사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시기와 주요 인물, 몇몇 장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약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어떤 인물의 활약상이나 감동적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다종다기한 사례에는 진보정당운동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짓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저자가 진보정당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줄 사례를 중심으로 책을 엮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들은 오늘날의 진보정당 운동을 재사유할 때 있어 주목해야 할 지점인 것도 사실이다.

기시감

역사 속 대표적인 진보정당들은 하나같이 지배질서 하 제도권 정치에 원내정당으로서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진보정당들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이분법에서 갇혀 제도권 내 개혁만을 선택했거나, 혹은 의회나 원외 중 단 하나만의 활동 공간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했는지가 그 정당의 성패를 가늠할 유일한 판단 기준도 아니다. 양자는 무 자르듯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설령 한 가지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 조직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통선거권이 없던 시대의 폭력투쟁과 모두가 선거권을 가진 시대의 대중 선거운동은 각각의 대중들에게 그 함의가 다르게 다가올진대, 시대를 뛰어넘는 한 가지 운동 방식에 붙잡혀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다.

진보정당의 성패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지금껏 정치의 주체이지 못했던 대중이 직접 정치의 주체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통치를 이뤄낼 수 있었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저자는 책 속 등장하는 진보정당들의 교훈으로부터 이들이 공통적으로 택한 몇 가지 전략을 도출해낸다. 즉, ① 대중이 활동하고 교류할 기층 공간을 만드는 것, ② 기성 정치 구도에 포섭되지 않는 것, ③ 이미 존재하는 대중운동의 조건을 잘 활용하는 것, ④ 운동의 퇴각 시기를 명민하게 판단하여 대중 속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는 것 등이다.

나아가 이 책이 소개하는 역사 속의 여러 장면들은 이러한 전략이 실행되는 구체적 그림을 제공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고, 오늘날에도 발간되는 독일의 『전진 Vorwärts』과 러시아의 『프라우다(진실; Правда)』, 2년 전 그 역사를 마친 이탈리아의 『루니타(단결; L’unita)』 등 독일 사민당,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이탈리아 공산당 등이 당원과 시민들로하여금 널리 읽힐 수 있는 매체를 발행했다는 장면에서는 당원의 교육과 토론을 이끌 수단으로 ‘신문’이 활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벤 좌파가 만든 풀뿌리 조직들이 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과 브라질 노동자당이 노동조합, 해방신학 등 지역에서 흩어져 있던 여러 세력들을 정당의 지역조직으로 규합해 사회운동의 거점으로 작동하는 장면에서는 정당이 사회운동을 위한 공간을 기획하는 한편, 존재하는 운동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함을 볼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에 따른 기민한 판단의 필요성 또한 엿볼 수 있다. 노동자의 총파업에 어떻게 호응했는지, 어떤 전략적 선택을 취했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원내에 진출한 1905년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그리고 반대로 총파업을 잠재우고 모종의 타협을 시도하다 실기한 오스트리아의 사회민주당은 확연히 대비된다. 그들은 노동자대중의 운동이 앞서나갈 때에는 어줍잖은 타협보다는 공세적인 태도가 더 확장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당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대중들의 지지가 떠나간다고 느낄 때에도 마냥 기존의 성과물만에 매달리는 것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원내에서의 타협이 아닌 대중 속으로 돌아가 다시 대안을 추구한 로자 룩셈부르크나 칠레 인민전선의 사례는 퇴각의 시기에는 미련없이 다시 대중 속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과감하고 민첩한 판단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한편 이 책이 제시한 사례들을 통해, 역사 속 정당들이 공통적으로 빠지는 오류와 실패 원인들에 대한 관찰도 가능하다. 간부가 당원과 괴리된 채 관료화되는 것, 원내 여타 정당과의 일시적 연대가 기성 정당정치로 포섭되는 것, 사회운동 진영 내 단결의 실패로 인해 각자도생의 상황에 빠지는 것 등이 그러하다. 몇몇 장면에서는 굳이 진보정당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사회운동 역사 속 숱한 장면들이 생각나 기시감에 빠진다. 멀게 느껴지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우리 안의 고민을 되새겨 볼 수 있다.

‘과두제의 철칙’

저자는 책 말미에 진보정당에 대한 자기 나름의 방향 설정을 제시한다. 그는 진보정당이 “이념, 조직, 정치행위, 정치가’의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조직”이라고 규정한다. 나 역시 지향할 이념이 존재하고, 이념을 실행할 사람들이 조직으로 모여, 이를 구체적인 정치행위로 표현하는데, 이 과정을 이끌 리더십이자 얼굴로서 정치가가 한 곳에 모일 조직은 진보정당이라는 그의 주장에 이견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네 요소가 서로 조화 속에 공존하면서 ‘지속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진보정당 운동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진보정당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론적 쇄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옛 이념에만 기대어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내지 못해 주류 담론에 포섭되기 일쑤다. 사람들을 모아낼 조직이 없다면 원내 스타 중심의 간부정당으로 전락할 것이고, 사람들이 있어도 ‘정치 행위’가 없다면 구심력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보통선거권을 가지고 국회에 들어갈 의원을 뽑는 현 시스템에서는 얼굴을 담당할 정치가가 없으면 운동 조직일 수는 있어도 의회에서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정당일 수는 없다. 이 모두가 책 속에 등장하는 정당들이 한 번씩은 겪게 되는 문제들이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미헬스가 『정당사회학』에서 주장한 ‘과두제의 철칙’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과두제의 철칙’이란, 대중정당으로 출발한 진보정당이 원내 활동의 효율성을 중시하게 되고, 간부와 일반당원의 괴리를 거치면서 결국 관료화되어 간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역설이 굳이 진보정당만의 문제겠냐만은, 소수 엘리트가 전체 조직의 주인이 되는 과두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다. 앞에서 한번 언급한 바와 같이 대중이 스스로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서, 정치조직으로서 진보정당의 주인으로 자임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따져보며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오늘날 진보정당들이 가장 경계하고, 나아가 녹색당이나 정의당의 혁신위원회가 넘어서야 할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진보정당이라면?

한국의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노동당 분당과 통합진보당 사태 등 질곡의 세월을 거쳐 현재에는 여러 갈래로 쪼개졌다. 이 중 유일하게 원내에 진출해 있고, 일정 규모의 이상의 당원을 형성한 당은 정의당 뿐이다. 한데 이런 정의당조차 앞서 설명한 네 가지 요소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견과 정책은 합의된 이념에 기반하지 못하기 일쑤고, 소수의 리더 몇 명의 생각에 의지해 만들어지며, 당원들이 지역과 부문의 정치행위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보다는 소수의 헌신적 간부들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총선 때마다 당의 새로운 얼굴을 목표로 한 정치가가 등장하지만, 여러 모순으로 인해 아직까지 ‘심상정’을 넘어설 이는 등장할 수 없었다.

당이 내세울 슬로건과 정책 이전에, 당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당원을 서비스 제공자, 혹은 대변자로만 보는 조합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당원은 당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스스로 갖추고 당내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운동’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당원 교육을 통해 사회운동의 이념과 의의에 대한 합의가 확산될 수 있어야 하고, 각 지역과 의제별로 다뤄지는 현안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생산하는 것 또한 당원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다뤄진 지속적인 매체의 발간, 지역운동의 거점화 역시 토론과 학습을 촉진하기 위한 전통적인 수단들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과 의제별로 당원들이 모인다면 이들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의 결과는 내부 민주주의 구조를 통해 중앙으로 제안하고, 다시 아래로 보고되는 내용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당원들의 사업은 다시 당 밖으로, 사회 속으로 나가 사람들을 모아내어 의견을 조직하는 활동들이어야 한다.

매 순간의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분석 위에서 내리는 선택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치이며, ‘이론’은 결국 그러한 역사적 경험의 반추 위에서 끊임없이 쇄신될 뿐이다. 흔히 진보정당이 이념적 슬로건으로 내세우곤 하는 사회주의나 민주주의의 ‘진정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 또한, 결국 구체적 정책의 실행과 개개별 운동의 진행과정 속에서 담보될 수 있을 뿐이다.

이 서평을 쓰는 2020년 6월 현재 정의당 혁신위원회가 설립되어 활동 중이다.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슬로건과 정체성 뿐만이 아닌 정치활동의 과정과 내용에 있어서도 정의당을 진보정당운동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지와 슬로건이 바뀔 뿐 체질 자체를 혁신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정의당이 빠져있는 매너리즘과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선 진보정당의 경험들을 다시 돌아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과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각 운동의 결과보다는 그 성공과 실패의 과정과 원인들에 주목하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를 읽는다면 진보정치의 작동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력을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임현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