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LAUSAN에 기재된 JN Chien의 글 Toward a radical Hong Kong imagination : Reflections on nativism in the Tuen Mun Park protests을 번역한 것이다. JN Chien은 홍콩에서 태어나 토론토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냉전시대 아시아·태평양의 역사, 미 국의 핵무기 제국주의, 중국의 제국 굴기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19세기의 사회 혁명은 자신의 시정(詩情)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혁명은 과거로부터의 모든 미신을 떨쳐내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다. 이전의 혁명들은 자기만족적으로 자신을 고루케 하기 위한 세계 역사의 재정립을 필요로 했다. 19세기 혁명은 자신의 내용에 도달하기 위해, 사자들을 매장하는 일은 사자들에게 맡겨두어야만 한다.(<마태복음> 8:18) 이전 혁명에서는 말이 내용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이제는 내용이 말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
시위대가 홍콩 입법회에 진입한 했다가 퇴각하고 며칠이 지난 7월 6일. 홍콩 튄문구에서 선전시(深圳市)와 맞닿아 있는 튄문공원에서는 일명 “춤추는 아줌마들”에 항의하는 시위 행진이 있었다. 이들은 따마(大媽)라는 경멸적 이름으로 불리는 중년 여성들로, ‘셀프 엔터테인먼트 구역(self-entertainment zones)’에서 보통화 가사로 된 음악을 틀고 춤을 춘다. 이웃 주민들은 시끄럽고 귀에 거슬리는 이 소음을 제한해달라는 민원을 자주 제기해왔다. 하지만 이 민원은 튄문 구의회에 의해 오랫동안 무시당했고, 성난 군중들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나섰다.
이날 튄문공원의 시위대는 이 여성들을 몰아내기 위해 이들이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활용했다. 일부는 심지어 한 대륙 출신 여성을 공중화장실에서 가로막고, 여성혐오적 언어 폭력을 행하기도 했다. 그 여성은 경찰이 그를 안 전한 곳으로 옮기기 전까지 이에 시달려야 했다. 시위가 끝나고 몇 시간 뒤, 튄문 구의회는 논란이 된 ‘셀프 엔터테인먼트 구역’을 폐쇄했다. 사실상 군중의 전술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이 시위는 홍콩 항쟁에 있어 많은 이들이 ‘거짓’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혹은, 용인 가능한 것)으로 치부하는 억압적 요소가 드러난 표현이었다. 민주파 세력은 거의 아무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실 홍콩 항쟁의 일부 영향력 있는 목소리들은 이를 송환법 반대 시위의 일부로 포함하는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강력하게 규탄되어야만 한다. 경찰·민족주의·배타적인 논리에 기반한 자치·자결을 위한 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 사회를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게 할 수 없다. 홍콩은 발밑에 놓인 주어진 형식와 내용을 넘어서는 길을 꿈꿔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상은 운동의 목적과 수단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튄문 사건은 그런 종류의 고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경찰’이 되지 말자
홍콩 내에서는 경찰 논리의 흐름이 깊게 파고들고 있다. 치안 유지는 (세계 곳곳에서 그렇듯) 홍 콩에서 항상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의 시위 이전에는 경찰의 잔혹 행위나 과잉 진압에 대해 매우 적은 비판만이 있어 왔다. 한때 “전문적이고 모범적이었던” 경찰 조직에 대한 “신뢰 상실”에 대한 탄식은 올해 많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홍콩 경찰 조직의 오래된 수식어 “아시아 최고”는 수십년 간 동남아시아·남아시아·아프리카·카리브해 출신 소수 인종에 대한 가스라이팅·감시·신분증 검사·불심검문을 감춰왔다. 성노동자·퀴어·트랜스젠더 역시 오랫동안 경찰에 의해 괴롭힘과 학대를 당해왔다. 출입국관리소와 공조한 경찰은 미등록 이민자·망명 신청자·난민들마저 체포해 학대했고, 추방했다.
현재 홍콩 경찰 조직에 대한 대중적 지탄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사실 이는 훨씬 이전부터 이뤄졌어야 했다. 처음으로 청년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이 사용된 2014년 이전의 경찰에 대한 노골적 지지는 홍콩 사회 전반에 경찰 논리가 파다하게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논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경찰 탄압이 소수자·빈민·퀴어·배척당한 자를 향한다면 괜찮아. 우리를 탄압하지 않는 이상.”
튄문 시위대는 이런 ‘경찰 논리’를 사용해 임의로 “용인 불가능한” 활동에 기대 이 여성들을 괴롭혔고, 수긍을 강제하기 위해 물리적 징벌을 사용했다. 이들은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협박·여성혐오·폭력을 사용해 이 여성들을 ‘그들의’ 이웃으로부터 배제했다.
시위대의 목소리가 구의회 의원들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이는 그저 “도덕? X이나 까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어!” 같은 자경주의(군중들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키고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적 외침일 뿐이다. 시위대는 지역 주민들보다는 권력을 쥔 자들, 이를테면 구의회 의원들을 타깃으로 삼았어야 했다. 본토주의자(nativist)*들이 주장하듯, 인민은 법치주의 하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는 범죄자가 얼마나 무례하거나 화가 나게 하는 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 본토(本土) : 한국에서 오인하듯 ‘대륙’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말 그대로 ‘로컬’, ‘홍콩’을 뜻한다. 본토주의자들은 일종의 홍콩 지역민족주의를 표방한다. 홍콩의 좌파들은 이들 본토주의자들이 우익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이 사건에서의 주된 쟁점이 소음 민원이었다는 것도 논박할 가치가 없다. 시위 메시지는 아주머니들의 대륙 문화 정체성과 입증되지 않은 매춘업과의 관계 의혹을 중심으로 삼았다. 시위 피켓에는 “튄문을 되찾자”라는 구호가 써져 있었다. 이는 홍콩 본토주의자 리더 에드워드 렁(Edward Leung)의 반본토인 장황설의 반향을 드러낸다.
다른 시위 피켓들 역시 아주머니들의 “성인” 콘텐츠 의혹에 집중하며, 광동어로 여성-성노동자를 가리키는 속어인 ‘닭’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이 튄문공원 시위에서 나타난 본토주의 정치와 보수적 도덕주의의 끔찍한 만남은 역설적으로 성노동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위한 강력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게 현실화 된다면, 추측성의, 은밀한 “공원에서의 매춘”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매춘은 안전하고, 비난받지 않는, 규제된 산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본토주의는 ‘국가주의적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바람과 얽혀있다
자유주의의 전통에선 시민으로 구성된 국가의 정치적 형성은 필수적으로 배제에 기반한다. 자유민주주의 정치 이론은 ‘사유 재산을 소유하는 개인의 권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 형상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회의 권리·보호·민주적 참여에서 배제된다.
이는 영국령 홍콩 식민 정부가 어째서 1980~90년대에 베트남 난민들이 홍콩 땅을 밟는 걸 막기 위해 특히 많은 노력을 들였고, 난민들을 기한 없이 가둬뒀었는지 설명해준다. 난민의 물리적 존재에 대한 염려는 자유주의적 개인상과 그에 수반하는 권리에 대한 난민들의 주장에 대한 공포와 연관돼있다. 난민들의 권리를 배제함으로서, 식민 정부는 손쉽게 이들을 징벌이나 죽음을 맞을 게 빤한 베트남으로 추방할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오늘날 많은 시위자들이 열망하는 통치 형태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적 전통의 ‘시민주의적’ 지배의 논리는 “홍콩을 재건하자”라는 요청에서 종종 중심적 역할을 맡는다. “자유 와 민주주의”의 모호한 아이디어를 향한 호소에서도 드러나기도 한다.
홍콩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홍콩 특별행정부는 식민 정부로서나 특별자치행정구로서나, 법적으로(de jure) 홍콩 경제를 떠받치는 약 40만의 이주 가사노동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의 정주할 권리를 배제했고, 실질적으로 한족 민족우월주의의 지역적 변용을 통해 다른 이들이 사회적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게 했다.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자유주의의 원동력이 되는 배제의 논리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즉,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근본적이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홍콩에 존재하는 지역민족주의의 독특한 형태는 이것이 자유주의적 요소와 혁명적 요소가 섞인 혼합체라는 것이다. 즉, 기본법과 법치주의 등 홍콩에 존재하는 민주적인 요소에 대한 수호와 더불어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대로 나타나는 식민주의적 지배에 대한 혁명적 반대가 섞여 있다.
슬프게도 홍콩 시위대 일부, 특히 청년신정(青年新政; Youngspriration)이나 본토민주전선(本土民主前線; Hong Kong Indigenous) 등 우익 본토주의 정당들은 중국 대륙의 권위주의적 지배에 대한 반대를 홍콩 사회의 가치와 문화정체성의 세련됨·시민성·국제성와 상반된 후진적이고 상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민족우월주의적 반대로 변질시켰다. ‘춤추는 아줌마들’과 같은 ‘불순한’ 요소를 쳐내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혁명적 민족주의의 기능이다.
필자는 본토주의가 부분적으로는―실재하는 식민 전략 중 하나인―문화적 식민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공포에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여긴다. 그 공포란 구체적으로 “홍콩 문화”를 희석하고 결과적으로는 절멸시키기 위해 (혹은 한 트위터 유저가 분노에 차 필자에게 말했듯 홍콩 사람들이 “본토화된 저열성”을 감내하도록) 중국 대륙인들이 홍콩으로 몰려들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종민족주의의 홍콩 고유 버전은 통치 논리 전체가 ‘당-국가-인민’ 아이디어의 이식에 기반한 중국공산당의 규약과 상통한다. 우린 중국이 일당독재 국가가 될 의무가 없고, 당·국가·인민이라는 세 요소가 각각 대응하지 않듯이, 같은 성격의 “중국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종족민족주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사유를 중국공산당의 틀 안에 갇히도록 할 뿐이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서 중국 내의 수많은 항쟁의 목소리들을 경시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한의 악화되는 환경에 항의하는 시위, 자쓰커지 노동자들의 투쟁, 중공업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해방 투쟁, 다시 일어나는 마르크스주의자 학생들의 봉기 등을 말이다.
중국의 당-국가-인민 동일시와 이런 시각을 시위 메시지나 전술에 투영하는 홍콩 본토주의 논리는 공산당이 부여한 절대적 위상을 뒷받침하고,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초국경 연대를 거부하게 할 뿐이다. 대륙 출신 ‘춤추는 아주머니들’에 대한 괴롭힘이 지역에서의 사소한 목적을 성취시켰을지 모르겠지만, 거시적 영향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이러한 사례는 보다 광범위한 자치·자결 운동에 차질을 주는 본토주의적 충동을 키워내기 때문이다.
검토되지 않은 채 향후에도 이와 같은 행동을 하도록 허용된다면, 이런 배제적 논리는 홍콩의 인종적·민족적·정치적 자본가 엘리트들만이 득을 보게 할 것이다.
자치·자결의 재검토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말하자면, 민주파에 대한 비판이 민주주의나 자치·자결을 지지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비판은 민주화, 자치-자결 운동이 자신들의 목적을 좀 더 사려 깊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성취해야한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자기 비판은 ‘명분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운동의 명분은 자신의 철칙을 지속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을 때만 유효하다. 특히 튄문공원 사건 같은 일 이후에 말이다.
나는 홍콩의 진실되고 정의로운 자치-자결에 대해 조심스럽고도 큰 희망을 갖고 있다. 이 운동의 많은 부분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나는 거리에서 파시스트적이고 폭력적인 경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용기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이 운동의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나의 비판은 운동의 구성원들이 좀 더 사려깊고 편견을 떨쳐내며,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논리로 인해 오염된 결과를 거부하기를 주문하는 것뿐이다.
모든 정답을 갖고 있는 척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사실은 명백하다. 기존의 존재하는 정치적 형태로의 흡수를 모색하는 대신, 홍콩 스스로의 목소리를 자신이 이끌내 정의해야 한다. 보편적인 주거권과 의료권의 보장, 모든 경찰 폭력의 중단, 모두에게 열린 거주권 등에 대한 창의적 헌신은 홍콩을 세계의 진정한 롤모델로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이 제노포비아**와 본토주의보다는 홍콩의 건강한 자치-자결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기나긴 시간 동안 찾아다닌, 그러나 언제나 모호했던 “홍콩 문화”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제노포비아 : Xenophobia. 이주민에 대한 혐오 정서와 그것을 드러내는 현상. 사회운동이 위기에 처한 시대에는 하층계급의 정치·경제적 박탈감이 계급적대보다는 제노포비아로 이어지기 쉽다.
완전한 탈식민화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프란츠 파농이나 첸꽝씽 같은 이들이 말했듯- 탈식민화에 필요한 대부분의 변화는 심리적인 것이다. 그리고 탈식민화를 위해선 지금과 같은 위기의 순간을 기존의 틀을 부수고 나올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기 시대의 프롤레타리아 사회 혁명은 과거의 모든 미신을 떨쳐내기 전까지는 시작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홍콩의 자치-자결을 위한 최선의 주장은 전통에 고집스럽게 파묻히는 데에서 찾아낼 수는 없다. 그 대신 혁명적 행동을 위한 새로운 틀과 내용을 급진적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7월 9일 작성.
글 : JN Chien
번역 : 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