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이 망할 세상에서 사랑이라니』 대안적 사랑을 상상하다

서평 | 『이 망할 세상에서 사랑이라니』 대안적 사랑을 상상하다

로맨스 신화는 고립과 배타성을 부추긴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자율적인 존재임을 감각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2026년 8월 13일

[활동]페미니즘 공부모임페미니즘, 미국, 활동가, 자본주의, 돌봄, 서평

이 글은 지난 2026년 7월 15일에 열린 플랫폼c 페미니즘 공부모임 참가자의 서평이다. 플랫폼c는 책읽기모임, 페미니즘 공부모임, 동아시아 공부모임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사회운동을 진전시키기 위한 학습과 토론의 자리를 운영하고 있다.

연인들과 전사들에게

『이 망할 세상에서 사랑이라니 Love in a F*cked-Up World』의 저자 딘 스페이드(Dean Spade)는 ‘모두가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난 25년간 트랜스해방운동, 반전운동, 감옥폐지운동에 헌신해 온 사회운동가이다. 저자는 관계 맺기를 탐구해 오면서, 주류 사회의 규범과 구조에 그토록 대담하게 맞서는 활동가들이 정작 연애 관계에서는 상대를 배려하고 너그럽게 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저항운동 활동가들이 서로 우정이나 성적 관계를 맺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활동가들 간의 관계 갈등은 프로젝트를 망치기도 단체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슬로건처럼, 우리의 연애사 또한 단순히 개인적 성공과 실패에 그치지 않는다. 섹스, 사랑, 로맨스에 있어 우리 모두는 ‘로맨스 신화’라는 가장 해로운 문화적 각본의 압박에 시달린다. ‘로맨스 신화’는 낭만적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가 완성되고 사랑받고 안전해진다고 설파한다. 낭만적 사랑이 정서적·성적·동반자적 필요를 한꺼번에 채워줄 만병통치약이라는 환상에 빠지면 우리는 파트너에게 영원하고 배타적인 소유욕을 드러내기 쉽다. 로맨스 신화에 매몰되어, 우리는 연인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에서 만족스럽고 윤리적인 관계, 삶을 풍요롭게 하는 관계를 위해 해야 할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된다.

저자는 질투와 소유욕, 결핍과 경쟁, 처벌 중심의 관계 문화를 비판하며, 경계 설정과 동의, 자기돌봄, 공감과 책임 있는 소통을 통해 통제 없이도 깊이 연결되는 관계를 제안한다. 동시에, 관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갈등을 헤쳐나가기 위한 실질적 로드맵과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구체적 도구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랑이 단지 연인 사이의 감정에 머무는 것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은 친구, 동료, 사회운동 공동체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함께 돌보고 연대하는 것이고,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정치적 실천이자 해방의 가능성이다.

지배 문화의 각본이 관계를 만든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연결되고 관계 맺도록 진화해 왔다. 서로를 돌보고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고자 힘을 합칠 때, 우리 삶은 더 큰 의미와 보람, 창조성, 기쁨, 소속감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체제는 우리에게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개인주의를 부추기며, 타인에 대한 소유욕과 위계질서를 강요한다. 체제는 우리가 서로를 소모품처럼 대하도록, 위계에 따라 스스로를 재단해 무가치한 존재로 느끼도록 길들인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무력감에 갇혀 있는 지금,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지구를 파괴하는 이 지배 체제를 뒤집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리의 행동과 욕망을 이끄는 더 넓은 범위의 사회적 역동을 이해해야 한다.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자본주의, 식민주의라는 문화적 구조는 빛을 분산시키는 프리즘처럼 우리의 인식을 왜곡한다. 그렇게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서도 이 문화적 각본에 따라 행동하는 ‘자동조종 모드’로 살아간다. 자동조종 모드는 갈등 상황에서 우리를 양극화된 사고로 이끈다. “나는 최악이야” 혹은 “나는 최고야”라는 두 가지 양극화된 믿음의 공통적인 문제는 나 자신에 갇혀, 타인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최악이야”라는 믿음은 스스로를 수치심에 매몰되게 만들고, “나는 최고야”라는 믿음은 타인이 잘못했다는 부정확한 추측을 하게 만든다.

고립이 심화되고, 우정이 축소되며, 공동체 내부의 지지마저 사라져가는 오늘날, 우리는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을 ‘낭만적 관계’에서 얻도록 내몰린다. ‘로맨스 신화’는 연애 상대가 자신의 모든 정서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가능한 최고의 파트너’를 찾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여기서 ‘최고’는 인종, 경제적 지위, 젠더, 건강, 체형에 대한 규범으로 정의된다. 억압적 규범에 뿌리를 둔 기준에 따라 경쟁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매력적이지 않은 존재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로맨스라는 개념은 문화적으로 특수하고,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도 아니며, 시간에 따라 변화해 왔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공동체적 돌봄을 조직해 일대일 독점 관계의 틀 바깥에서 아픈 사람을 돌보고 아이를 길렀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필요한 모든 종류의 돌봄을 낭만적 관계에서 얻도록 내몰린다. ‘낭만적 사랑’은 우리를 각자의 자리에 묶어두는 사회구조가 되었다. 조세, 재산, 의료, 주거, 이민 제도는 전부 기혼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저자 딘 스페이드(Dean Spade)
저자 딘 스페이드(Dean Spade)

저자는 이러한 로맨스 신화에 맞서 ‘사랑에 대한 진실’을 몇 가지 서술한다.

  • 존재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정상’이라는 건 없다.
  • 주류 문화가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강력한 메시지와 달리, 로맨스나 섹스를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아무리 지속적이고 즐겁고 상호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라도 협상과 재협상이 필요하며 기복이 생긴다.
  • 변화는 불가피하며 배신이 아니다.
  • 로맨스 신화는 관계의 지속을 중시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인 것도, 헤어지는 것이 더 나쁜 일인 것도 아니다. 둘 다 성장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동조종 모드에 갇힌 삶 - 무감각과 찰나의 쾌락 사이를 오가며

지배 문화는 사람들을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사회의 불평등과 권력 구조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체제가 현재의 질서를 공정하고 당연한 것으로 포장하며 각자도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공감 능력을 잃은 채 타인을 경쟁과 착취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겪는 피해를 축소하고, 타인이 상처받았다고 말하면 일단 부인하고 자기방어를 하도록 길들여졌다. 우리의 공감 능력이 제한될수록 체제는 더 잘 작동한다.

동시에 지배 문화는 소비주의와 사회적 규범을 통해 끊임없이 '짜릿한 기분'을 추구하도록 부추긴다. 무감각한 상태에서도 때때로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광고, 데이팅 앱, 물질 소비, 소셜미디어 같은 일시적인 쾌락을 좇는다. 이는 현실의 불만을 잠시 잊게 하지만, 이런 쾌락이 삶을 힘들게 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데도 그저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서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쾌감을 향한 욕구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사랑에 빠지고 정신을 잃다 - 로맨스 사이클

로맨스 신화에 따르면, 우리는 ‘단 하나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한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서로에게만 사랑과 성적 끌림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독점적인 성적 관계, 동거, 평생 서로에게 헌신하겠다는 약속, 아이 갖기와 같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단계를 밟아 나갈 것이다. 한쪽이 이런 것을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은 문제가 있거나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낭만적 관계는 왜 그토록 강렬한 감정과 수많은 갈등을 일으킬까? 낭만적 관계의 흔한 패턴은,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 투사로 가득했다가 점점 실망과 비난, 갈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익힌 사랑의 방식과 유사한 관계에 끌리고, 과거의 관계 때문에 생긴 두려움이나 희망을 새로운 사람에게 투사한다. 동시에, 어린 시절에 양육자에게 관심과 돌봄을 받기 위해 특정한 감각이나 욕망을 포기해 왔던 것을 로맨스 상대가 채워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낭만적 사랑의 첫 단계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이 사람과 함께하면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다는 투사로 인해 더욱 커진다. 하지만 로맨스 초기 단계가 지나면 동일한 특성이 짜증나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 단계에서 실망감과 원망이 밀려온다. 상대가 변했거나 배신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부추겼던 강렬한 감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때 공동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험담, 여론전, 복수심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며, 갈등의 격한 감정에서 벗어나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다음 장에서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몇 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좋고 싫음을 말할 용기

낭만적 관계에서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두려움은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과 ‘삼켜질 것 같은 공포’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안정적 애착을 필요로 하고 우리 모두는 타인의 돌봄 덕분에 살아간다. 애착과 돌봄이 충족되지 못한 경우 타인과의 연결이 불안-회피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 많은 관계에서 한 사람은 더 가까워지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공포는 감정일 뿐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두려움이 작동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 상대를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두려움을 인식하고 서로에게 연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 속에서 고정된 역할이 형성되고 있다면, 일상의 구체적인 활동에서 서로의 역할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데이트 계획 세우기, 운전하기, 요리하기, 청소하기, 중요한 대화나 스킨십 시작하기 등을 늘 어느 한 사람이 먼저 한다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이 일들을 해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살펴보자. 이 연습은 낭만적 관계뿐 아니라 친구 관계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협업 관계에서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어떤 정서적 상태가 우리를 반복되는 역할이나 과업으로 이끄는지 성찰할 수 있다.

문화적 각본으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원치 않는 것을 거절하는 것도 어려워하며, 타인의 거절 역시 존중하지 못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를 세우고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경계를 잘 설정하는 것은 원망을 예방·해소하고 선택과 동의의 감각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타인에게 진실하게 “예”, “아니오”로 응답하려면, 어린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차단한 채 자신의 안녕을 해치고 욕구와 필요를 억누르며 수치심을 느껴온 자신의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 경계를 배우는 일은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했던 돌봄을 스스로에게 제공하는 '재양육'의 과정이다.

저자는 반사적 반응에서 벗어나 동의에 기반한, 균형 잡힌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누구도 타인을 통제하거나 바꿀 수 없고,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 진정한 친밀함은 가까이 다가가거나 거리를 두기 위해 끊임없이 허락을 구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늘 변하기 때문이다.
  • 누구도 나를 완벽하게 사랑하고 만족시켜 줄 수 없다. 나의 행복은 나의 책임이다.
  • 언제나 완벽하게 솔직한 사람은 없다. 배신감 역시 친밀함의 일부다.
  • 타인을 비난하고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는 태도는 치유와 연결을 방해한다.

우리는 왜 싸울까 - 소통과 관계회복

사람들은 설거지, 시간 약속, 돈, 섹스, 집안일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면 아래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사랑받고, 안전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마음껏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서다. 따라서, 싸울 때는 내가 ‘옳다고’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이고, 본인과 타인의 진정한 ‘예’와 ‘아니오’를 찾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민감한 지점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타인이 미리 알아주기를 기대할 수 없고, 상대가 무심코 건드렸다고 해서 비난해서도 안 된다. 대신, 나의 민감한 지점을 타인에게 알려주면 타인에게 나를 이해하고 연민과 배려를 키워나갈 기회를 줄 수 있다. 요점은, 상대가 나를 완전히 지지하거나 나의 상처를 완벽하게 피해가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를 전제로 상대에게 나를 돌보는 법을 알려 주는 동시에, 나 역시 스스로의 반응을 이해하고 내 감정을 책임져야 한다. 자신에 대한 감각을 충분히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더 깊은 내적 연결을 만드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구축이 중요하다.

민감한 지점이 자극받을 때, 우리는 격한 감정에 휩쓸려 행동하기 전에 감정 자체를 알아차리려 노력해야 한다. 강한 감정들은 타인의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자극된 과거의 상처들에서 나온다. 저자는 격한 감정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정 단어(외롭다, 무력하다, 불편하다 등)를 사용하여 설명해 볼 것을 권한다. 상대방 역시 섣부른 조언이나 방어적인 반응 대신, 집중하며 경청하고 있음을 말이나 몸짓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진심으로 경청하고 배려하려는 마음과 선의, 자신의 감정 반응에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신념이야말로 모든 갈등 해결과 관계 회복의 기본 전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종주의, 자본주의, 식민주의 사회는 ‘좋은 사람 vs 나쁜 사람’이라는 가장 단순한 이분법에 의존하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고 추방하는 감옥 같은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하기 급급하다.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거나 피해를 축소하곤 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데 참고할 만한 틀이 거의 없다.

우리는 실수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반응하는 법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진정한 사과는 어렵지만 깊은 치유의 힘을 가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수 있다면, 중요한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더 큰 상처들을 다루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혁명적으로 난잡해지기 - 함께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연대의 실천을 통해 더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출처:서울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연대의 실천을 통해 더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출처:서울퀴어문화축제)

생태 위기, 전쟁, 가파르게 심화되는 불평등, 이윤을 추구하느라 생명을 경시하는 의료 및 주거 체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탄탄한 관계망이 필요하다. 저자는 연인 외에도 서로를 지지해 줄 사람이 가능한 한 많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맨스 신화는 고립과 배타성을 부추긴다. 이는 관계를 질식시키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탄탄한 지지 체계를 빼앗는다. 우리에게는 한두 가지 관계에서 핵심적인 욕구를 전부 충족하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 관계가 변하더라도 필요한 연결을 이어갈 수 있는 다자적 지지 체계가 필요하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자율적인 존재임을 감각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질투심을 느낄 때는 너그럽고 개방적인 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 질투는 타인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는 처벌, 전쟁, 사유재산, 개인주의, 감시의 문화와 맞닿아 있다. 로맨스 신화는 변화를 배신으로 규정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도록 상대를 처벌한다. 질투라는 느낌 자체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자신의 원칙을 해치는 일도 아니지만, 질투가 외부로 표출되어 상대를 탓하거나 통제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순간 상대방과의 관계를 해친다. 타인을 통제하는 것은 정당한 정서적 욕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과 안정은 처벌이 아닌 연대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 상호성·공동체성·돌봄·너그러움에 바탕을 둔 다자적 지지 체계는 우리를 더 안전하게 지켜준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돌보는 법, 내가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법, 내가 지지받고 있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 나가야 한다. 관계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은 현실적인 기대와 다정함을 품고 서로를 끌어안는 것이다. 함께 살아남고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감정이나 관계에 있어 더 급진적으로 난잡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일을 함께 한다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 공부모임에서는 각자의 연애와 인간관계를 되짚어보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참가자들은 “나는 최고야”와 “나는 최악이야” 사이를 오가던 자신의 사고 패턴, 불안형 애착으로 인해 겪었던 관계의 어려움,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느꼈던 배타적이지 않은 애정의 경험 등을 나누며 책의 내용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았다. 서로에게 해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던 사례들을 공유하고, 지배 문화의 각본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머리로는 지배 문화의 각본임을 이해하고 있지만, 몸에 밴 습관처럼 쉽게 반복되는 질투와 소유욕, 상대를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기도 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스스로의 감정과 욕망을 꾸준히 직면하는 자기돌봄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각본과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 보았다.

자본주의는 완전한 건강, 부, 더없는 행복의 약속을 판다. 그러나 현실은 아름다움, 고통, 고뇌, 만족, 불만이 뒤섞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다. 모든 것이 끝을 맞이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저자는 체제가 심어놓은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떨쳐내자고 제안한다. ‘로맨스 신화’는 거짓이며, 영원히 행복한 결말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은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타인을 돌보고, 심각한 위기와 파괴를 멈추려는 집단적 저항에 함께하며, 친밀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 아름답고도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함께 있는 것이다.

글 : 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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