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추기 위해, 9월 19일 거리에서 만나자
2026년 8월 24일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역대급’이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7월 지구 평균기온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한국에서도 경남 양산의 기온이 42.5도까지 치솟았다. 거제와 통영에서는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 동안 각각 928mm와 752.8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주택을 덮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두 지역에서 평년 여름 석 달 동안 내릴 비가 사실상 사흘 만에 한꺼번에 내린 셈이다. 기상청은 이를 거제에서는 약 200년에 한 번, 통영에서는 약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극한 호우로 분석했다. 비가 그친 뒤에도 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수백 세대의 상수도와 가스 공급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고, 대피한 주민 1,200명 가운데 780명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상점, 전통시장 곳곳도 침수와 토사 피해를 입어 복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거제의 한 아파트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귀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가 우리의 일상을 이토록 빠르게 무너뜨리는 동안, 정부가 내놓은 한국사회의 미래는 또다시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수출하고, 더 빠르게 성장하는’ 길이다. 이재명 정부는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막대한 전력과 물, 토지와 공공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이를 국가적 성장 전략이자 지역발전 전략이라고 말하지만, 이 거대한 산업의 확장이 어떤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누가 물과 땅을 내어주어야 하는지, 그곳에서 누가 어떤 조건으로 일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지난 8월 19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919기후정의행진 선포식에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모였다. 홈리스운동 활동가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싸워온 활동가, 탈핵운동과 여성농민운동,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의 활동가들이마이크를 잡았다. 서로 다른 현장에서 싸워온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메가프로젝트가 약속하는 ‘성장’의 비용 은 누가 치르게 되는가. 그리고 기후위기의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반도체와 AI
정부는 반도체와 AI가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이야기한다. 세계시장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초격차’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규모는 막대하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에 24.7GW, 이미 건설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까지 합하면 약 40GW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현재 국내 전체 사용전력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전기를 어디에서 만들어낼 것인가. 정부와 산업계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석탄과 LNG는 물론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카드까지 다시 꺼내 들고 있다. 그러나 메가프로젝트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량을 먼저 정해놓고,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발전소와 송전망을 끝없이 늘리는 방식이 과연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정책일 수 있을까.
신규핵발전소저지와핵없는사회를위한전국행동의 박수홍 활동가는 핵발전 역시 메가프로젝트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규 핵발전소는 계획에서 실제 발전까지 10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해 당장의 전력수요를 해결할 수도 없다. 핵폐기물과 사고 위험, 송전망 갈등이라는 부담은 다시 발전소 인근 지역과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돌아간다.
핵심은 어떤 방식으로 40GW의 전기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앞서, 왜 특정 산업의 성장을 위해 그만큼의 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제해야 하는가에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 생태적 한계 안에서 어떤 산업과 생산이 필요한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석탄과 화석연료에서 신속히 벗어나면서, 민영화된 재생에너지 시장이 아니라 공공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 출발이어야 한다.

‘초격차’ 경쟁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바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이하 반올림)의 권영은 활동가는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생명과 안전보다 속도를 우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은 신속한 인허가와 생산 확대를 강조하면서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의 예외와 각종 규제완화를 요구하지만,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관한 대책은 찾기 어렵다.
반올림이 지난 19년 동안 만난 반도체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백혈병과 각종 암, 희귀질환을 앓은 사람들, 유산과 불임을 경험한 노동자들, 자녀에게까지 건강 피해가 이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반도체 공정에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되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이 무엇에 노출되고 있는지조차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험은 언제나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에게 먼저 떠넘겨진다. 첨단기술과 자동화의 상징처럼 묘사되는 공장 안에서도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설비를 유지·보수하고, 화학물질을 공급하고, 세정과 청소, 폐기물 처리를 담당한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는 병에 걸리고 다쳐도 산재를 신청하기 어렵고 목소리조차 내기 어렵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 특별법’에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기간 연장,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 제외, 파견 허용 업종 확대 등 노동권을 후퇴시킬 수 있는 내용들도 거론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위해 노동시간과 안전 규제부터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미래라면, 우리는 그 미래를 다시 물어야 한다.
주식시장의 반도체 호황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반올림의 상담 전화에는 아픈 노동자와 유가족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의 질병과 죽음을 더 이상 산업 성장의 비용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무엇에 노출되는지 알 권리,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위험할 때 작업을 멈출 권리, 하청노동자까지 모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받을 권리가 성장보다 앞서야 한다.
폭염에서 살아남기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홈리스행동 안형진 활동가는 우리가 매년 여름 반복해서 마주하는 풍경을 이야기했다. 야외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폭염 사망, 복도에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 하나에 의지해 여름을 견디는 고시원과 쪽방 주민들, 한낮의 더위를 피할 작은 방조차 없어 지원단체에서 받은 생수를 몸에 품고 다니는 거리홈리스들이다.
정부와 언론은 이들을 ‘기후취약계층’이라고 부른다. 폭염 때마다 무더위쉼터를 늘리고 생수를 나눠주고 순찰을 강화한다. 물론 당장 위협받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왜 어떤 사람들은 매년 폭염 앞에서 목숨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취약’해지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폭염 때마다 쪽방촌에 생수를 나눠주고 거리홈리스에게 잠시 더위를 피할 곳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폭염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바꾸고, 누구에게나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해야 한다. 야외 노동자에게 폭염특보를 알리는 것에 그쳐서도 안 된다. 위험한 더위 속에서는 실제로 일을 멈추고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홈리스에게 필요한 것은 한시적인 대피 공간만이 아니라 누구도 쫓겨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공공간과 주거권이다.
안형진 활동가는 은행이나 카페처럼 돈을 지불해야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은 기후위기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후재난이 심해질수록 돈이 없어도 머무를 수 있고, 누구도 소비를 강요받지 않는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공공성을 확대하는 일과 떨어질 수 없다. 공공주거와 공공의료, 공공돌봄, 공공교통을 확대하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공간을 만드는 일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기후정책이다. 재벌의 AI와 반도체 산업을 위해 전력과 물, 토지와 재정을 ‘총력지원’하는 대신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탱하는 사회적 기반에 자원을 써야 하는 이유다.
농민의 물
메가프로젝트가 빨아들이는 것은 전기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영이 회장은 올해도 폭염과 폭우, 가뭄 속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고 오지 않아도 걱정이다. 폭염에는 작물이 타들어가고 집중호우에 한 해 농사가 하루 만에 물에 잠겨 수확이 불가능해질 위험에 처한다. 기후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몸으로 겪는 사람들이 농민들이다.
그런데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산업단지는 바로 그 농민들의 물과 땅을 요구한다. 농업용수는 산업용수로 전환되고, 발전소와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로가 농촌을 통과한다. 농민에게 농지는 투자용 부동산이 아니라 살아가는 터전이고, 농업용수는 생산시설에 공급되는 ‘자원’ 이전에 농민의 생존과 시민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물이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농지와 물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진다. 가뭄이 반복될수록 농업용수가 필요하고, 이상기후로 세계의 식량 생산이 불안정해질수록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지키는 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무엇을 위한 개발이며 누구를 위한 지역발전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농민의 삶을 무너뜨리고 농촌의 물과 땅을 거대한 산업단지에 넘기는 것을 ‘균형발전’이라 부를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농민들에게 기후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생태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국가가 충분한 예산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농민이 계속 농사지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농민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우리의 먹거리 기본권과 식량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전쟁산업
이번 919기후정의행진이 메가프로젝트를 비판하며 특별히 강조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전쟁이다.
정부는 반도체와 AI 산업 육성을 전쟁(방위)산업의 성장과도 연결하고 있다. ‘국방 반도체’를 육성하고 민간기업의 AI 기술을 군사기술과 결합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세계 곳곳의 전쟁에서 AI를 이용한 무인무기와 표적 식별 기술이 실제 살상에 사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에 활동하는 플랫폼C 김지혜 활동가는 팔레스타인의 파괴가 곧 지구의 파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건물과 토양, 물과 공기가 함께 파괴되고 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막대한 화석연료가 쓰이고, 폭격으로 도시가 무너진 뒤 이를 다시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한쪽에서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시민들에게 전기를 아끼고 탄소를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천문학적인 자원을 무기와 군사기술에 쏟아붓는 세계는 명백한 모순이다. AI와 반도체 기술에 공공재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뒤 그것을 다시 사람을 감시하고 죽이는 기술에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첨단산업의 미래’일 수도 없다.
군사비를 늘리고 무기 수출을 새 로운 성장산업으로 키우는 대신, 그 돈과 기술과 자원을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데 사용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을 멈추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싸움과 기후정의를 위한 싸움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이유다.

9월 19일, 다시 광장으로
이처럼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반도체 산업을 더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는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그 과정의 위험은 어느 지역이 떠안는가. 산업에 필요한 물을 위해 누구의 물을 가져갈 것인가. 더 빠른 생산을 위해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안전을 양보해도 되는가. 기후재난이 닥쳤을 때 집과 돈이 없는 사람도 안전할 수 있는가. 농민이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가. 우리가 만든 기술은 사람의 삶을 돌보는 데 쓰일 것인가, 전쟁과 학살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쓰일 것인가.
결국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가 가진 한정된 돈과 에너지, 물과 땅, 노동과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정부와 재벌은 그 자원을 다시 AI와 반도체, 전쟁산업의 성장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 공공주거와 공공의료, 공공돌봄과 공공교통을 확대할 수 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농민의 땅과 물을 지킬 수 있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탈핵·탈화석연료와 공공재생에너지로 전 환할 수 있다. 장애인과 이주민, 여성과 청소년, 빈민 등 기후재난 앞에서 더욱 큰 위험에 놓이는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다. 무기와 전쟁에 투입되는 자원을 사람과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올해 919기후정의행진의 요구가 온실가스 감축에만 머물지 않고 노동권·주거권·건강권·성·재생산권에서 공공교통과 돌봄, 생태농업, 탈핵과 공공재생에너지, AI에 대한 민주적 통제, 전쟁과 집단학살의 종식까지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9월의 기후정의행진은 중요하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문제를 붙잡고 싸우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거리에서 만나 “당신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고 확인하는 광장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의 아픈 노동자와 폭염을 견디는 쪽방 주민, 송전탑과 산업단지에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농민,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 지역의 주민과 노동자, 기후재난으로 삶을 위협받는 사람들, 그리고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서 전쟁과 학살을 견디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의 기후정의행진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힘도 여기에 있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자기 삶과 일터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는 광장이 되어왔다는 것. 그래서 기후정의행진은 한 번의 거대한 집회인 동시에 서로 다른 사회운동들이 만나 더 큰 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정부와 재벌이 말하는 미래만이 유일한 미래는 아니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기 위해 지구와 사람을 끝없이 소모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태적 한계 안에서 누구나 존엄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할 수 있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가장 적게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큰 희생을 감당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우리의 돈과 자원과 기술을 사람들의 필요와 삶을 위해 사용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 목소리가 커져야 정부의 ‘폭주’를 멈춰 세울 힘도 생긴다.
9월 19일, 거리에서 만나자.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추고, 우리가 원하는 다른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자.
글 : 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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