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버티는 삶 너머 서로의 편이 되어 | 2026 반빈곤연대활동 참가기

홀로 버티는 삶 너머 서로의 편이 되어 | 2026 반빈곤연대활동 참가기

빈활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거리로 나섰을 때, 서로의 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편이 되어, 함께 투쟁!

2026년 8월 27일

[읽을거리]사회운동반빈곤운동, 사회운동,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주거권

난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진행된 2026 반빈곤연대활동(이하 빈활)에는 청년, 학생을 비롯한 시민 40여 이 참가했다. '홀로 버티는 삶 너머 서로의 편이 되어'라는 슬로건과 함께 철거민, 노점상, 동자동 주민들과 빈활단이 함께한 활동들과 후기를 전한다.


반빈곤연대활동・・・?

💬 “다음 주에 뭐해?”

🗣️ “나 4일 동안 빈활에 가!”

💬 “빈활이 뭔데・・・?”

🗣️ “아 그니까 빈활은 ~”

이번 여름,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몇 번 나눴다. 빈활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휴대폰을 열어 빈활 신청 구글폼에 들어간 뒤 소개글을 힐끔대며 말했다. 반빈곤연대활동은 홈리스, 철거민, 세입자, 노점상 등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맺고 연대하는 활동이야. 여기에 가끔은 “진짜 재밌어! 같이 갈래?” 같은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빈활을 더 잘 설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에도 갔던 빈활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봤다. 사회운동을 접하기 전, 빈곤이나 가난을 떠올리면 막연히 두려웠다. 돈 안 되는 과목을 전공하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다. 앞으로 점점 더 가난하고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불안했다.

사회운동을 접하며, 빈곤이 개인이 아니라 불평등한 세상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비용과 위험이 전가되고, 부는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미래를 꿈꾸고 싶어졌다. 나 하나 “쓸모없는” 사람이 안 되려고 아등바등 경쟁하는 게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게 됐다. 그래서 빈활이 좋았다. 도시 곳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고, 더 나은 도시를 함께 상상해보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빈활 1일차 | 만남의 날

첫날에는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포괄적인 주제인 “한국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에서 시작해 홈리스, 청년 주거권, 세입자, 노점상까지 많은 내용을 배웠다.

서울역에서 온갖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는 홈리스, 동자동 공공임대주택을 요구하는 쪽방촌 주민, 수십 년 동안 장사해온 거리에서 강제로 내쫓긴 노점상, 월세는 비싼데 좁고 열악한 집에 살게 되는 청년. 각자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을 밀어내는 힘은 비슷했다. “성장을 위한 도시 개발”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폭력적으로 쫓겨나야 하고, 원래 살던 가난한 사람들 중 누구도 개발로 완성된 고층빌딩에 들어갈 수 없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그 개발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상했다.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데,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으며 개발이 진행되는 현실이 기이했다. 막상 개발이익은 부자인 사람들에게 돌아갈 뿐이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래서 반빈곤운동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쫓겨나는 과정에 맞서, 누구나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주거 문제는 몇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게 너무도 명징하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만 살만한 집이 허락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안전과 안정마저 포기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누구도 완전히 안전할 수 없다.” (민달팽이유니온 강연)

이렇게 빈곤과 반빈곤운동에 대해 배우며,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될 다양한 현장 연대활동이 더 기대됐다.

빈활 2일차 | 쫓겨나는 사람들의 날

둘째 날에는 동자동 쪽방촌에 모여 하루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다크투어를 하며 동자동 곳곳을 걸었다.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은 2021년에 발표되었지만 5년이 넘도록 지구 지정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공공임대주택을 기다리던 주민 160여 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가 주거 지원을 약속해 놓고도 시간을 끄는 동안, 주민들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답답했던 건, 정작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치인들은 선거 철이면 동자동을 찾아와 사진을 찍고 도움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공공주택 사업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동자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잠깐의 관심이나 시혜가 아니라, 더 편안하고 안정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였다.

다크투어를 마친 뒤에는 주민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공공주택이 필요한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깨끗하고 좋은 집을 얻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온 관계와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밥을 함께 먹고, 동네를 청소한다. 투쟁할 일이 생기면 함께 거리로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가 있었다.

오후에는 동대문 전통시장으로 이동해 노점상 연대장사를 했다. 여태껏 노점 하면 떡볶이, 붕어빵, 과일처럼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사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막상 노점에서 장사를 해보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상인분들은 지나가는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안부를 묻고, 주변 상인들과 근황을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해오며 만들어온 관계들이었다. 이곳에서 노점은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면서, 동시에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노점상이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혀 단속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동대문구에서는 노점상 특사경까지 도입해 노점상을 단속하고 있었다. ‘도시 미관’이나 ‘개발’이라는 말이 등장하면 수십 년 동안 장사해온 사람들의 자리와 그곳에서 만들어온 관계는 너무 쉽게 지워진다. 직접 장사를 해보며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삶터가 정말 한순간에 사라져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반빈곤 여성 활동가 토크쇼 <이런 삶도 가능해!>가 열렸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의 진행으로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조항아 사무총장과 동자동사랑방 박승민 전 간사가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운동과 접점 정도만 있던 청년 시절, 투쟁하는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 외로움이나 고민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두 활동가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셨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 투쟁하는 삶이라고 해서 매일 굳세고 단단한 것만은 아니었다. 힘들고 외로운 순간도 있고, 때로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지키게 하는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빈활 3일차 | 머무를 권리의 날

셋째 날 아침에는 홈리스행동과 함께 ‘홈리스의 길 따라 걷기’를 했다. 서울역 주변을 걸으며 홈리스의 삶을 따라가 보는 시간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오가는 서울역이었지만, 이날은 전혀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적대적 건축’이었다. 역사 안 의자에 사람들이 눕지 못하도록 중간중간 철제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기둥에 기대지 못하도록 철제 울타리를 둘러놓은 것들이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에는 홈리스를 특정해 대소변을 보지 말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이런 시설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도시 풍경 속에 섞여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겠지만, 그곳에서 잠을 자거나 쉬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아주 선명하게 전달될 것이다. 나에게는 평범한 의자와 기둥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밀어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서울역은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인데도 홈리스는 계속해서 쫓겨나고 있었다.

서울역이 점점 상업화되는 시기와 홈리스에 대한 퇴거가 심해진 시기가 맞물려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사람보다 공간의 상품성이 중요해질수록 그 공간에서 돈을 쓰기 어려운 사람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홈리스가 된 사람들은 왜 거리에서 살아가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전망이 있었다면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일을 상당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을 잃은 사람에게 국가와 공공은 주거를 보장하기는커녕, 거리에서조차 머물 곳을 없애고 있었다.

오후에는 평택 통복동 철거 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35층 높이의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 중인 이동설 통복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님이 계셨다. 이동설 위원장님은 2023년 강제집행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같은 자리에서 15년 동안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다. 민간개발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대책을 받지 못한 채 정비소와 장비를 잃었고, 그 이후 3년이 넘도록 거리에서 싸워왔다. 시청과 시행사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대화 자리조차 열리지 않았고, 결국 지난 7월 27일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크레인은 너무 높아서 고개를 한참 들어야 꼭대기가 보였다. 32도로 시작해 38도를 웃도는 날씨에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타워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저녁에는 이동설 위원장님과 전화로 연결했다. 아래에서 목소리를 듣고, 우리는 그 위까지 들리도록 함께 구호를 외쳤다. “이동설 힘내라!” “이동설은 정당하다!” 이동설 위원장님이 땅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책임져야 할 누구도 듣지 않아, 결국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이후에는 여러 지역에서 싸우고 계신 철거민 동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각자의 현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 비슷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하며 일해 온 사람들은 개발이 시작되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신이 살아온 공간과 일터를 잃는 사람에게는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빈활 4일차 | 홀로 버티는 삶 너머 서로의 편이 되어

마지막 날 아침에는 조원들과 함께 ‘반빈곤 지도’를 만들었다. 지난 며칠 동안 우리가 다녀온 장소들을 지도 위에 하나씩 그렸다. 동자동 쪽방촌ㅑ, 동대문 전통시장, 서울역, 평택 통복동 철거 현장까지 그리고 보니 우리가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각각 다른 현장이라고 생각했던 곳들이 지도 위에서는 하나로 이어졌다. 도시에서 이윤 때문에 밀려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며칠 동안 여러 현장을 돌아다닌 것이다.

오후에는 평택시청 앞에서 강제철거를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빈활단이 조별로 서로 다른 노래와 몸짓, 연극, 발언을 준비했다. 전국철거민연합, 동자동사랑방, 홈리스행동, 민주노련 동지들이 문화제에 함께했다. 며칠 동안 같이 지낸 사람들이 각자 준비한 공연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재밌었다. 무엇보다 정말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다들 힘차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좋았다.

문화제가 끝난 뒤에는 평택시청으로 들어가 철거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민원투쟁을 진행했다. 이동설 위원장님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평택시가 책임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작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요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는 다 같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뒤풀이를 했다. 떡볶이, 묵밥, 부추전, 제육볶음까지 야외에서 계속해서 식사를 준비하며 고생해주신 분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4일 동안 함께 밥을 먹고, 늦은 밤까지 활동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침부터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저녁이었다.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기도 했다.

돌아보며

빈활에서 함께하는 시간 내내 정말 기뻤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스스로가 조금 낯설었다. 빼앗기고 내쫓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프고 화가 나는데, 한편으로는 함께하는 이 시간이 좋아서 자꾸 웃었다. 땡볕 아래에서 활동하느라 온몸이 땀에 젖어도 즐거웠다. 아스팔트 위에 천막을 치고 기울어진 바닥에서 자도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왜 이렇게 좋았을까. 4일을 다 보내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동안 가난과 불평등으로 누군가가 목숨을, 삶터를 잃었다는 걸 알게 될 때마다 슬프고 무력했다. 2022년 여름 반지하 참사 소식을 뉴스로 보며 그랬고, 지난 겨울 동짓날 홈리스 추모제에서 길을 걸을 때도 그랬다. 올해 1월 말 동자동 쪽방촌 주민 160여 분의 영정을 들고 행진할 때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 빈활에서는 그 무력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슬픔과 분노를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사람들과 나누고, 발로 현장을 찾아가고, 목소리를 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동자동에서는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동대문에서는 노점상 동지들과 장사를 했다. 서울역에서는 홈리스가 머물 자리를 밀어내는 도시의 모습을 보았고, 평택에서는 타워크레인에 오른 철거민을 만났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서, 현장마다 비슷한 질문이 마음에 남았다. 왜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계속 밀려나야 할까. 우리는 이 도시 어디에서 머물며 살아갈 수 있나.

‘홀로 버티는 삶 너머 서로의 편이 되어.’ 이번 빈활의 슬로건을 생각한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일들이 있다. 그럴 때 곁에 서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순간 목소리를 보태준다면 버틸 수 있는 힘이 달라진다. 또 그렇게 힘을 모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빈활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거리로 나섰을 때, 서로의 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편이 되어, 함께 투쟁! 마지막으로 함께 빈활에 참여한 플랫폼C 동료들 중 몇몇의 짧은 후기도 함께 싣는다.

이어

어렸을 때 모태신앙이라 학창 시절부터 스무 살 초반까지 교회에서 여름·겨울마다 하는 수련회에 억지로 수없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대학 MT 등 수많은 단체 생활에 참여했었지만,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저에게 빈활은 마음 놓고 즐기며 연대할 수 있는 캠프가 되어주었습니다. 무기력한 상황은 곁에서 그저 함께하는 존재들, 그 자체의 희망으로 채워졌습니다. 요즈음 소진된 마음에서 계속 연대활동을 이어 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거리에서 함께한 이들을 보기 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점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 마음과 기억이 소진될 때 어떻게 제스처를 취할지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저도 이후에는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결론은 생활 속 불편함이 많고 화가 많은(?) HSP형 인간인 저에게 활동의 불씨이자 다음에 또 가고 싶은 캠프가 드디어 생겨버린 것입니다 🥲️️️️️️

제이

연대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연대한다고 말은 하고 다녔지만, 한 덩어리라고 칭할 만큼 내가 잘 알고 있나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잘 모르겠다' 라고 답변할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는 더 나은 대답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빈활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 민주노련과 함께한 노점 연대장사, 홈리스행동에서 만난 홈리스 당사자분들, 평택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동설 동지와 철거민연합까지.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을 같이 견디면서 국가가 외면한 머무를 권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지켜지지 못해 계속 내몰리고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글로 읽고 집회를 다니며 얻는 것들도 분명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자리하면서 직접 대화를 나누며 얻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찬양팀에서 멋들어지게 노래하시는 창현님, 늙은 아저씨의 블루스라는 자작시를 읊어주신 갑일님, 멸치를 많이 먹어서 칼슘을 챙기라고 해주신 꽃순님. 연대하러 찾아갔는데 되려 제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몸은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제게 남은 기억을 가지고 함께 투쟁으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민

두 번째 빈활이다. 마지막 날 밤에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이번 일정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다, 팀원들과 동자동과 서울역 다크투어에서 느낀 마음에 대해 조금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홈리스들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 우리가 봉사나 도움의 관점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고 싶었다는 말과 그런데도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하려니 작아지는 마음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대화를 작년에도 나눈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감각이 빈활에서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감각. 그래서 우리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일. 수상하게 비슷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서울역을 서성이고, 지하철에 올라타고, 가판대에 앉아있고, 길거리를 걸어가며 우리는 우리로서 드러난다. 개인으로 거리를 지나가고 타인을 안전하게 관찰하는 일이 훨씬 익숙하던 우리 자신들은 별안간 빈활의 시간 속에서 목격되는 집단이 돼버린다.

빈활 기간 내내 위치가 변하는 감각과 마주했다. 설명할 수 있는(또는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나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해받는 우리로 존재하게 되는 일. 자본의 폭력의 장소로 서울역을 다르게 읽어보자며 나간 우리들만이 장소와 사람들을 읽지 않는 것이 아니며, 바로 그 순간 우리 역시도 목격되고 읽혀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자신들조차 새롭게 드러난 우리를 기존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계속해서 다시 읽어 볼 것을 요구받는다.

이 요구를 사회 곳곳으로 더 넓히고 싶다고 생각한다. 빈활 기간 동안 우리는 사회가 으레 설명해 온 방식으로 도시를, 거리를, 노점상과 시장을 읽는 일에 이의를 제기했다. 삶과 주거에 대해 자본이 정의해 둔 방식으로 이해하는 일에 맞섰다. 홈리스, 동자동 주민들, 철거민들과 밥을 나눠 먹고 은박지 위에서 함께 모기에 물리면서, 그간 어떤 궤적들을 그리며 살았는지 듣고 물으며, 옆에 있는 이들을 다시 만나고 만나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에야 우리의 집과 도시가, 우리와 서로의 모습과 관계가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을 빈활에서 배웠다.

게으름, 동정, 시혜와 같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도식이 작동되지 않는 우리로서 우리를 드러내고, 이 우리를 읽으라고 요구하며, 우리에 대해 계속 말하는 일을 이어 가 싶다.

글 : 하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