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기의 신화에 도전하라’… 일본 국기손괴처벌법이 던지는 교훈
2026년 7월 30일
7월 17일, 일본 의회가 ‘국기 손괴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안(国旗の損壊等の処罰に関する法律案, 이하 국기손괴처벌법)’을 통과시켰다. ‘국기를 훼손하면 최대 2년의 징역 또는 최대 20만 엔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한 이 법안의 시행을 앞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자국 국기 훼손을 법적으로 처벌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의원이던 2012년 국기손괴처벌법을 공동 발의했고, 2021년에는 자민당이 국기손괴처벌법 제정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당시 정무조사회장을 면담하기도 했다. 자민당 총재이던 지난해 10월에는 일본유신회와 연립정부를 꾸리면서 국기손괴처벌법 제정을 약속했고, 국민민주당·참정당과 조율을 거쳐 올해 6월 마침내 법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다.

법안 통과까지 진통도 컸다. 특히 중의원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초 협력했던 국민민주당과 참정당이 표결에 불참했고, 외무상을 지낸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의원이 표결 직전 회의장을 떠나 기권하는 등 자민당 내에서도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오는 8월 13일부터 국기손괴처벌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 등 법안 추진 세력은 "외국 국기 훼손을 처벌하는 법은 있으면서 일본 국기 훼손을 처벌하는 법이 없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외국 국기 훼손 처벌법(형법 제92조 외국국장손괴죄)은 외국 국기 자체의 보호가 아니라 '외교관계 보호'가 입법 취지라는 점에서, ‘국기를 소중히 생각하는 국민감정’을 보호하려는 국기손괴처벌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기손괴처벌법은 “공개된 장소에서 국기를 손상, 제거 또는 오염시켜 타인에게 중대한 불편이나 혐오를 초래한 자”(제2조)를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은 처벌 기준의 모호성이다. 법안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에 대한 판단이 “행위의 외관, 주변 상황 및 기타 객관적 상황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제2조 제2항)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특정 행위가 ‘중대한 불편이나 혐오를 초래’했는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참의원 내각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주오 대학교(中央大学)의 하시모토 모토히로(橋本基弘) 헌법학 교수는 “무엇이 범죄인지 미리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으면 형벌은 결국 ‘나중에 가위바위보를 내는 것(後出しジャンケン)’이 된다”라며, “이 정도로 예측 가능성도 객관성도 없는 형벌 규정은 아마 일본 법제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향후 법이 시행되고 판례가 쌓이는 과정에서 모호성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는 있겠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국기손괴처벌법은 “일본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및 기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제3조)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국기 훼손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국기를 훼손할 자유’, 즉 국기 훼손이라는 방식으로 국가를 비판할 자 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기손괴처벌법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기손괴처벌법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여기서 미국의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기 훼손을 별도의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국가(캐나다, 영국, 호주,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등)는 많지만, 처벌 법률 자체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국가라는 점에서 미국은 매우 독특하다. 국기 훼손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가장 폭넓게 보장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이와 관련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판례가 1989년의 <텍사스 대 존슨(Texas v. Johnson)> 사건(이하 존슨 판결)이다. 댈러스시에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던 1984년 8월, 공화당 규탄 시위에 참여한 그레고리 존슨(Gregory Johnson)은 댈러스 시청 앞에서 미국 성조기를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텍사스주 형사법원은 당시 텍사스주 형법 제42.09조를 위반하여 성조기를 고의로 훼손했다는 이유로 존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텍사스주 형사 항소법원은 해당 형법 조항이 수정헌법 제1조 위반이라며 무죄 를 선고했다. 존슨의 국기 소각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표현 행위이므로, 수정헌법 제1조가 명시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논리였다.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고, 연방대법원은 텍사스주 형사 항소법원의 판결을 인용해 “존슨은 이 나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으며, 이러한 표현은 수정헌법 제1조의 핵심 가치에 해당한다”라며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존슨 판결은 흔히 미국 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지표로 평가받지만, 판결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과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

첫째, 존슨 판결 전후의 상황과 이후 전개를 보면 미국에서 ‘국기를 훼손할 자유’는 꽤나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왔다.
미국 국기는 판결 1년 전인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뜨거운 쟁점이었다. 민주당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Michael Dukakis)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1977년 주 의회가 통과시킨 '공립학교 교사가 매일 학생들을 이끌고 국기에 대한 충성 맹세(Pledge of Allegiance)를 암송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듀카키스는 국기 경례 강제 가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반된다는 1943년 연방대법원 판결(<웨스트 버지니아주 교육위원회 대 바네트> 사건)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자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후보는 이 문제를 고리로 듀카키스를 집중 공격했다.
“부시는 듀카키스의 이러한 헌법 해석을 왜곡해 그가 성조기에 대한 존경심, 나아가 미국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암시하는 정치광고를 대대적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했다. 부시의 선거유세장에는 빠짐없이 대형 성조기가 걸리고 유세에 앞서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암송되었다. 결국 부시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부시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성조기였다.” (장호순,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191쪽)
연방대법원의 판결 역시 5:4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존슨의 편을 들어주었는데, 이 결과부터가 뜻밖이었다. 당초 존슨의 무죄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 진보 성향 대법관은 3명에 불과했으며,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앤터닌 스캘리아(Antonin Scalia)와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 대법관까지 존슨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판결 이후의 반발도 거셌다.
“존슨 사건의 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날 연방상원은 연방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97: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비록 그 결의안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었지만, 입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예외적인 일이었다.” (같은 책, 202쪽)
이후 연방의회는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연방 차원의 새로운 국기보호법을 제정했으나, 1990년 연방대법원은 이 법 역시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이때의 표결 역시 5:4였다.
국기 훼손 처벌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두 차례나 나왔음에도 연방의회는 국기 훼손 금지를 헌법에 명문화하려는 개헌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특히 2006년에는 하원을 통과한 헌법수정안이 상원에서 단 한 표 차로 부결되면서 개헌안 발의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헌법을 우회하여 국기 소각을 처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2025년 성조기 소각 행위자에 대해 재물 손괴, 공공질서 문란, 방조·교사 등 적용 가능한 모든 혐의를 동원해 기소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 미국의 사례는 수정헌법 제1조가 명시한 표현의 자유가 '국기'라는 정치적 상징 앞에서 의외로 취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존슨 판결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모두 '국기의 특별한 지위' 자체는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였으며 여기에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수의견을 작성한 윌리엄 렌퀴스트(William Rehnquist) 대법원장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사회적‧정치적‧철학적 신념과 관계 없이 거의 신비로운 경외심으로 국기를 바라본다”라며 “정부가 이러한 감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200년의 역사가 이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처럼 ‘특별한’ 국기를 훼손하는 행위는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다수의견 역시 국기의 특별함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수의견을 작성한 윌리엄 브레넌 주니어(William Brennan Jr.) 대법관은 “이 나라에서 국기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가 ‘국기를 우리나라의 순수한 상징으로 보존하기’ 위해 노력할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결국 양측 모두 ‘국기가 어떻게, 왜 특별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묻지 않았다.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미국을 하나의 국가공동체로 묶어두기 위해 정부가 국기를 의도적으로 특별한 상징물로 구축해 온 역사는 언급되지 않았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미국에서는 존슨 판결의 대상이 된 텍사스주를 비롯한 다수의 주가 수십 년 동안 국기 훼손을 처벌함으로써 국기를 향한 특정한 신화와 감정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해 왔다. 미국에서 국기 훼손 처벌법이 처음 제정되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독일계 미국인들이 적국에 충성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각 주 정부는 주민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는 법률들을 채택했고, 국기 훼손 처벌법도 그중 하나였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시절부터 1989년 존슨 판결에 이르기까지, 대략 70여 년 동안 국기 훼손을 법적으로 처벌해 온 셈이다.
“나는 미국 국기와 그 국기가 대표하는 공화국, 신 아래 하나로 나눌 수 없는,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가 있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한다”라는 국기에 대한 충성 맹세 역시 국기를 특별한 상징물로 고착화하는 데 기여했다. 47개 주가 공립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충성 맹세를 실시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연방정부 및 각 주의 공식 의례에서도 널리 쓰인다. 1943년 연방대법원이 충성 맹세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이는 맹세 강제를 금지한 것일 뿐 충성 맹세 의례 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국기의 특별함'을 전제로 한 존슨 판결의 한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수의견은 국기의 특별함을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상충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깃발을 모독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깃발을 신성하게 만들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소중한 상징이 나타내는 자유를 희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적 현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과연 ‘국기의 특별한 지위’와 ‘국기를 훼손할 자유’가 평온하게 공존할 수 있는가? 국기의 위상이 정점에 있을수록 ‘특별한’ 국기를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닌가? 존슨 판결이 5:4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갈렸다는 사실, 판결 이후에도 연방의회가 계속해서 국기보호법 제정과 개헌을 시도했다는 사실, 나아가 행정명령을 통해 헌법을 우회 처벌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올리버 웬델 홈스 주니어 대법관)를 보장한다고 한들, 단순히 법적 처벌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진정한 표현의 자유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을까? 각종 의례와 교육을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둔 채, 국기 훼손이나 충성 맹세 거부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은 기존 질서 내에서 허용되는 반대의 경계를 설정하는 일, 곧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정치적 알리바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처벌이냐 아니냐를 넘어서
국기 훼손 처벌 여부만 놓고 보면 일본과 미국의 사례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기의 특별함'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명확한 공통점이 드러난다. 첫째, 두 나라 모두 전제하고 있는 국기의 특별함은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정부가 게양 및 충성 맹세 등의 의례를 통해 의도적으로 구축해 온 결과물이다. 둘째, 국기의 특별함을 법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그 상징성을 강제하고 보호하려는 요구는 끊임없이 분출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일본 의회가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国旗及び国歌に関する法律, 이하 국기국가법)’을 제정해 일장기(日の丸)와 기미가요(君が代)에 공식 법적 지위를 부여한 사건이, 국기의 특별한 지위를 강화하는 흐름을 타고 2026년 현재의 국기손괴처벌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일본 군국주의와의 연관성 때문에 일장기와 기미가요는 교육 현장의 오랜 갈등 요소였다. 문부성은 1958년부터 공립학교 입학식·졸업식 등에서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권고했고, 1990년에는 강도를 높여 지도를 강화했다. 이에 대해 일본교직원노동조합 등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1999년 히로시마 세라고교(世羅高校) 교장이 문부성의 지침과 교사들의 반발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의회는 국기국가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법 제정 이후 반발이 거세였던 지역에서도 일장기 게양률과 기미가요 제창률이 급상승하여 2001년 무렵에는 전국 공립 초·중·고 졸업식에서 100%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논쟁의 중심도 ‘국기·국가를 학교에서 사용할 것인가’에서 ‘이를 거부하는 교사를 어디까지 징계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공립학교 교장이 교사에게 기립 및 기미가요 제창을 명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으며, 이를 위반한 교사에 대한 징계 역시 정당하다고 일관되게 판단했다.
국기국가법 제정 당시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는 “법제화에 수반하여 국기에 대한 존중 규정이나 모욕죄를 신설할 생각은 없다”라고 밝혔으나, 실제 역사적 경과는 국기에 대한 존중을 강제하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그 수순의 끝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번 국기손괴처벌법이다.
따라서 일본의 국기손괴처벌법 사태를 바라보며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처벌 유무'에 대한 찬반을 넘어, ‘국기의 신화’ 그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기의 특별함을 전제로 인정하는 순간 논의는 '처벌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협소한 틀에 갇히게 되며, 결국 처벌을 막아내는 데 급급한 방어적 태도에 머물기 쉽다. 설령 방어에 성공한다 해도 국기라는 상징물을 통해 국가를 향한 순응을 요구하는 ‘충성의 질서’는 온전히 유지된다. 미국조차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충성의 질서가 공고한 사회에서는 '국기의 특별함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냈는가', '국가를 상징하는 기호가 왜 절대화되어야 하는가', '국기가 대리하는 국가가 과연 충성의 대상으로서 타당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설 자리를 잃는다.
이 과제는 한국 사회에도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국기를 손상·제거할 때 처벌하는 법률(형법 제105조)과 외국 국기·국장을 손상·제거할 때 처벌하는 법률(형법 제109조)은 물론, 언어적·예술적 표현으로 국기를 ‘비방’하기만 해도 처벌하는 법률(형법 제106조)까지 이미 구비해 두고 있다.
나아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 의례 역시 강고하게 작동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충성 맹세를 거부하거나 관련 신념을 밝혔다 하여 2003년 한 중학생이 고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2006년 이용석 교사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며, 2009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원이 해고당하는 등 학교와 공공기관은 인사권과 징계권을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 요해 왔다. 2024년에도 구치소장이 '국기에 대한 경례' 및 현충탑 헌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법무부가 징계를 검토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처럼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국기의 신화에 균열을 내지 않는다면, 국가가 조성한 ‘충성의 질서’는 언제든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칼날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일본의 국기손괴처벌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 결코 남의 나라 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참고 자료
- 장호순,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 개마고원, 2016.
- 류호, 〈일장기 훼손 영상, ‘생중계’는 처벌인데 ‘녹화본 게시’는 무죄인 이유〉, 한국일보, 2026.07.05.
- 田中裕之, 〈国旗損壊罪は「後出しジャンケン」 違憲指摘も…学者4人の警鐘〉, 毎日新聞, 2026.07.16.
- 〈国旗損壊罪に反対する刑事法学者の声明-「国旗損壊罪」は制定してはならない〉, 2026.07.07.
- 衆議院, 〈国旗の損壊等の処罰に関する法律案〉.
- 〈Schools comply with Hinomaru directive〉, The Japan Times, 2001.05.26.
-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Flag Protection: A Brief History and Summary of Recent Supreme Court Decisions and Proposed Constitutional Amendment (CRS Report 95-709A)〉
글 : 김경훈 (플랫폼c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