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와 트럼프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북중미 월드컵

FIFA와 트럼프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북중미 월드컵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여전히 평화와 화합의 스포츠 축제이 아니다. 아니, 더 후퇴했다. FIFA는 바가지 상술로 무장한 초국적 자본이며, 월드컵은 지리적 공간의 사유화, 공공 재정의 약탈, 노동자계급이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박탈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메커니즘의 정점에 있다.

2026년 7월 15일

[읽을거리]국제트럼프, 미국, 스포츠, 자본주의, 팔레스타인

월드컵에 대한 정의한 가장 보편적 설명은 “전 세계 200여 개 국가가 참여하고 수십억 명의 인류가 열광하는 지구촌 최대의 단일 종목 스포츠 축제”다. 정말 그런가? 4년 전 발표한 글 ‘이주노동자의 무덤이 된 카타르 월드컵과 시장화 된 축구’에서 우리는 이미 월드컵이라는 메가 이벤트가 착취의 장이며, 심각하게 시장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새삼스럽지만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여전히 평화와 화합의 스포츠 축제가 아니라, "지리적 공간의 사유화, 공공 재정의 약탈, 노동자·민중에 대한 통제"를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메커니즘의 정점에 있다. 아니, 이전보다 더욱 끔찍해졌다. FIFA(국제축구연맹)는 기대되는 역할이나 성격상 엄연히 ‘공공성’을 띄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추악한 국가 권력들과의 결탁을 서슴지 않는 ‘초국적 자본’이다.

물론 축구 경기 관람을 즐기는 것은 모두의 자유이고, 때때로 그것은 지역 공동체와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축구산업 저변에 내재한 심각한 모순을 인식하고 축구 경기를 즐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글은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을 즐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런 모순을 방치하거나 야기하고 심지어 이를 통해 그 잉여를 착취하고 정치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FIFA와 초국적 자본, 트럼프와 같은 제국주의 세력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날로 심화되는 월드컵의 이윤지상주의

이번 월드컵에서 FIFA는 극심한 폭염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전·후반 각각 3분씩 의무적으로 수분 공급을 취하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도입했다.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이 제도의 본질은 에어컨 시설이 완비된 돔 경기장에서까지 적용되면서 드러났다. 폭스(Fox Network) 등 주관 방송사들은 경기 흐름을 끊는 3분의 휴식 시간 동안 중간 광고를 대거 송출했다. 선수의 안전은 핑계였을 뿐, 실제로는 FIFA와 방송 자본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획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상업화는 경기장 밖에서도 일어난다. FIFA는 월드컵 개최 조건으로 경기장 주변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의 주요 거점을 ‘배타적 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구역 내에서는 기존 개최국의 법률보다 FIFA의 상업적 규정이 우선시된다. 공식 스폰서가 아닌 지역 소상공인들의 영업은 철저히 금지되며, 노점상이나 지역 서민들은 공간에서 강제로 배제된다. 즉, 공공의 공간이 한 달 이상의 시기 동안 초국적 자본의 이윤 창출 공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경찰, 군대를 비롯한 경기장 건설과 대규모 보안 인력 동원에 필요한 수조 원에 달하는 비용은 전적으로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반면, 여기서 발생하는 티켓 수입, 중계권료, 마케팅 수익은 FIFA와 다국적 기업들이 고스란히 독점한다. 또, 국가의 공적 치안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기장 내부와 팬존(Fan Zones)의 통제권은 민간 보안 기업들에게 넘어간다. 치안의 사유화이자, 자본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통제하는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길거리 응원 구역인 팬존조차 대중이 맘껏 즐길 수 있는 축제 공간이 아니다. 팬존은 철저하게 펜스로 둘러싸여 통제되고, 오직 FIFA 공식 스폰서의 제품만 소비하도록 강제되는 '야외 소비 수용소'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대중은 축제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를 수행하는 객체로 전락한다. 가령 팬존 내부에서는 '스폰서의 상업적 이익 보호'가 철저히 중시된다. 공식 응원 구역과 팬 빌리지에서는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 물병, 캔, 개인 텀블러 등의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터무니없는 가격의 독점 브랜드 제품을 강제로 구매해야 한다. 미국의 마트나 편의점에서 1달러 내외로 구매할 수 있는 생수 한 병을 팬존에선 무려 8.00~8.75달러(약 11,000~12,000원)를 주고 사야 한다. 맥주나 프레첼, 팝콘, 핫도그 모두 마찬가지다. FIFA와 글로벌 브랜드 자본이 일반 소비자가보다 서너 배에서 예닐곱 배 많은 편익을 취하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의 티켓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고, 이는 서민 팬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거나, 접근 자체를 차단한다. 과도하게 비싼 가격 책정 탓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열리는 일부 개막 경기는 매진되지 않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고, 조별 예선 경기 중 리셀(재판매) 포털에는 오랜 기간 10만 장 이상의 미판매 티켓이 쌓여 있었을 정도로 가격 거품이 심각했다. 미국 숙박업계는 FIFA가 약속했던 ‘엄청난 성업’ 대신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오히려 비용 부담이 덜한 멕시코나 캐나다 개최 도시의 호텔 예약률이 미국을 앞지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승전 장소 뉴욕-뉴저지 구간은 이런 바가지 상술의 최고치를 보여준다. 뉴저지교통공사에 따르면, 월드컵 기간 뉴욕 맨해튼에 있는 펜스테이션과 뉴저지주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을 잇는 15분 거리 왕복 열차삯은 150달러(약 22만원)에 달한다. 이는 평소(13달러)의 약 12배 수준이다.

이런 이윤 놀음은 미국의 배타적인 이민 정책과 결합해 가난한 나라의 팬과 선수들을 심각하게 차별한다. 가령 미국 정부는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알제리, 튀니지, 카보베르데 팬들에게는 비자를 발급해 주는 조건으로 매우 비싼 '비자 보증금(Visa Bond)' 예치를 강요했는데, 이는 저소득 국가 팬들의 여행할 권리를 돈으로 제한하는 장벽으로 기능했다. 공히 확인할 수 있듯,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FIFA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파시스트를 위한 질서

심지어 월드컵은 자유와 해방의 언어가 거세된 정치적 거세와 파시즘의 콜로세움으로 전락하고 있다. 팬존의 행동 강령과 반입 금지 규정에는 "정치적, 선동적, 혹은 비공식 상업적 성격의 배너, 깃발, 포스터, 의류"의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선수들에겐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다. 가령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대한 반대나 팔레스타인 연대 메시지, 미국의 이민자 강제추방 정책을 비판하는 슬로건은 '정치적 콘텐츠'로 분류되어 입구에서 압수당하거나 퇴장 조치를 받았다. 때때로 등장한 팔레스타인 깃발은 기적적으로 검열을 피해 반입된 용기있는 행동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대기업 후원사의 로고와 광고는 경기장 안팎 전체를 도배하고 있으며, 오직 자본이 허락한 '안전하고 무해한 소비적 열정'만이 광장을 채우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런 지독한 상업주의가 우리 눈에 자연스럽게 인식되어선 안 된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FIFA는 미국 행정 당국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선수, 심판, 팬들을 위해 목소리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말리아 출신의 젊은 심판 오마르 아르탄과 팔레스타인 축구협회장은 미국 입국을 거부당해 돌아가야 했으며, 한 이라크 선수는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민국 직원들에게 붙잡혀 무려 7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아야 했다. 우즈베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의 선수들 역시 입국 과정에서 고의적인 괴롭힘을 당하거나 비정상적으로 입국 절차가 지연됐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이란 대표팀은 예선 기간 내내 경기가 벌어지는 미국에 베이스캠프를 차리지 못했던 일이다. 이들은 경기 당일에만 미국 입국이 허용됐으며, 경기가 끝나면 즉시 미국을 떠나야 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이란 대표단 중 몇 명은 아예 입국 자체를 거부당했고, 일부 이란 팬들은 구매한 티켓마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모로코 팬들 역시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무더기로 비자가 거부됐다. 월드컵을 원칙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해야 하는 FIFA는 이런 괴롭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란 축구대표팀 주장 메흐디 타레미, "FIFA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란 축구대표팀 주장 메흐디 타레미, "FIFA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제노사이드에 일조하는 FIFA

FIFA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세탁하는 데 일조했다. 가자지구의 '재건'을 명분으로, 트럼프가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일조한 이후 만들고 있는 ‘(가짜)평화위원회’에 7,500만 달러(약 1,000억 원)의 FIFA 기금을 지원하기로 약정했으며, 지난해 FIFA의 잔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 회장은 트럼프에게 터무니없는 'FIFA 평화상'을 바치며 비위를 맞추기도 했다. 이 상은 그해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위로의 성격이었다. 이 일이야말로 FIFA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일로 기록될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트럼프의 ‘평화위원회’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인종청소를 용이하게 만들고,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사실상 사후 승인·정당화하는 기만적인 수단일 뿐이다.

FIFA와 시오니즘의 결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는 시온주의 정착촌을 연고로 하는 최소 6개 이스라엘 축구단이 이스라엘 프로축구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불법 정착촌을 연고로 한 축구단의 공식 리그 참가를 허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 상태를 사실상 용인하고 정착촌을 정상화하는데 일조할 뿐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24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과 정착촌이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바 있으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팔레스타인 침략은 그 자체로 식민주의다. FIFA의 정관 제64조 제2항은 회원협회와 소속 클럽이 다른 회원협회의 승인 없이 해당 협회 영토에서 경기를 치를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축구협회가 이를 근거로 FIFA에 공식 문제를 제기했지만, FIFA는 최근 불법 정착촌 축구단의 리그 참가 문제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가자지구 야무르크 스타디움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이 자행한 폭력
가자지구 야무르크 스타디움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이 자행한 폭력

2023년 12월, 이스라엘 점령군(IDF)은 가자의 유서 깊은 야르무크 경기장을 민간인 억류 수용소로 변질시켜 남녀노소를 속옷 차림으로 꿇려 앉히고 탱크로 잔디를 짓밟았었다. 이제 야르무크 경기장는 거대한 거대한 난민촌이 됐다. 그러나 FIFA는 이 파괴에 대해 어떠한 목소리도 낸 적이 없다. 지난 3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스포츠시설 대부분을 파괴했고, 팔레스타인 축구협회 회원 중 최소 565명을 살해했다. 이 중에는 20세 이하 대표팀 선수였던 이마드 아부 티마와 그의 가족 9명도 포함되어 있다.

FIFA와 트럼프는 월드컵의 공정성과 축구의 룰마저 파괴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은 미국과 보스니아의 예선 경기 직후 일어났다. 보스니아전에서 미국 대표팀 스트라이커 폴라린 발로건(Folarin Balogun)이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는 거친 파울로 레드카드를 받았는데, 이로 인해 발로건은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트럼프는 인판티노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징계 재검토를 요구하는 초법적인 압박을 가했다. 월드컵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FIFA는 발로건의 출장 정지 징계 집행을 '유예'하는 전대미문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대해 인판티노는 “사법기구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며 발을 뺐지만, 이는 FIFA가 트럼프의 압력에 굴복해 공정성을 팔아넘긴 결탁으로 기록됐다. 다행히도 얼마 후 열린 경기에서 미국은 벨기에에 1-4로 대패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심각한 오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학살자 트럼프와 아첨꾼 인판티노
학살자 트럼프와 아첨꾼 인판티노

부패 집단

FIFA가 지금처럼 부패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4년 주앙 아발란제(João Havelange) 회장이 당선된 이후다. 아발란제는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고,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 전 세계 기업 스폰서 및 TV 중계권 자본을 축구에 본격적으로 결합시켰다.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 아발란제는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연안 등 축구 변방국들에 유입된 자본을 배분하며 거대한 표밭을 다졌는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축구 발전 기금으로 쓰여야 할 공금이 현지 축구협회 고위 간부들의 뇌물과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적 부패'가 고착화됐다.

이후 아발란제의 오른팔이었던 제프 블라터는 1998년 회장직을 이어받으며 부패 시스템을 한 단계 더 정교화했다. FIFA의 마케팅을 독점하던 ISL(International Sport and Leisure)사의 파산으로 수천만 달러의 뇌물 장부가 드러났음에도, 블라터는 사법 메커니즘을 교묘히 피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본력은 풍부하지만 인권 침해나 독재 정권으로 비판받는 국가들이 월드컵을 유치해 이미지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FIFA 집행위원들은 철저하게 개인적 자본 이득에 따라 움직였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도 일부 집행위원들이 표를 대가로 막대한 현금과 특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스위스 내부에서 난공불락이었던 FIFA 카르텔은 결국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이용해 돈세탁을 한 혐의로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바 있다. 당시 블라터 회장을 비롯해 제프리 웹, 잭 워너 등 핵심 인사들이 부패로 인해 줄줄이 몰락했다. 블라터 퇴진 이후 지금의 잔니 인판티노가 개혁을 외치며 등장했지만, FIFA 시스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없었다. 새로운 형태의 관료주의와 더욱 거대한 규모의 상업주의(48개국 확대, 클럽 월드컵 확장 등)로 변질되었을 뿐이다.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1998~2015년)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1998~2015년)

이런 FIFA를 완전히 개혁하고 축구를 다시 대중과 서민의 공공재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부분적인 인적 쇄신을 넘어, 구조적·제도적 차원의 해체와 재건이 필요하다.

FIFA의 부패는 프로 축구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와 궤를 같이하는데, 축구가 자본가들의 장난감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소유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를테면 FIFA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정부는 FIFA에 엄청난 세금 감면과 규제-프리를 제공학고 있는데, FIFA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의사결정 권한을 각국 축구협회장(정몽규 같은 자본가나 고위관료)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과 심판들의 협회, 대중적인 팬 연합체 등에 공식 투표권과 이사회 의석을 배분해야 한다. 각국의 축구발전기금 규모와 투표권 할당을 연계하는 방식을 폐지하고, 건강한 형태의 국제기구들처럼 기금 집행과 모니터링을 관료가 아닌 독립된 주체에 위탁해 돈으로 표를 매수하는 구조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나아가, 월드컵 개최를 희망하는 국가들이 연대해 "FIFA의 치외법권적 경제구역 요구를 불수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팬존이나 경기장 주변을 공식 스폰서만의 영역으로 영토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지역 소상공인과 노동자 계급의 대안적 상업 활동을 법적으로 보호하도록 개최지 계약 조건을 재설계해야 한다.

희망의 단초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몇몇 선수나 감독, 관중이 트럼프의 권위주의와 인판티노의 아첨, 시온주의 점령당국의 학살로 이뤄진 공모에 맞서, 팔레스타인 연대나 이주민 권리 등에 대해 정치적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을 목격했다.

가령 노르웨이축구협회는 엘링 할란드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대0’이라는 압도적 승리로 끝난 이스라엘과의 FIFA 월드컵 예선전 티켓 판매 수익금 450만 크로네 전액(6억9천만 원)을 가자지구 응급 의료 지원 활동에 기부하겠다고 결정하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고통 앞에서 침묵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경기 당시 골키퍼 외리안 뉠란(Ørjan Nyland)은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을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함께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별 예선 D조 터키와 미국의 최종전(터키 3-2 승리) 당시, 관중석에 있던 터키 팬들은 중계 카메라가 가장 잘 잡히는 골대 뒤편 명당에서 대형 팔레스타인 국기를 경기 내내 흔들었다. 이 모습은 전 세계 라이브 중계 화면에 여러 차례 송출되며 FIFA의 방송 검열을 무력화했다.

독일과 파라과이의 32강전에서는 한 팔레스타인 가족이 관중석에서 경기 내내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우리는 팔레스타인인이다. 월드컵 무대에서 우리의 고향을 알리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이라고 외쳐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전역의 경기장 안팎과 팬존 주변에서 팬들은 이스라엘의 FIFA 자격 정지를 요구하는 '레드카드'를 들어 올리는 게릴라 퍼포먼스를 펼쳤다. 특히 토론토 등에서는 활동가들이 "이스라엘을 FIFA에서 퇴출하라(Kick Israel out of FIFA)"는 대형 배너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7월 3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열린 월드컵 32강전에서 호주를 극적으로 꺾고 승리한 직후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 호삼 하산(Hossam Hassan) 감독은 이집트 국기가 아닌 팔레스타인 국기를 손에 들고 관중들을 향해 흔들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선량하고 고귀한 이집트 국민,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국민에게 이 승리를 바친다”고 말했다.

경기 후 팔레스타인 깃발을 든 호삼 하산 감독
경기 후 팔레스타인 깃발을 든 호삼 하산 감독

하산 감독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월 7일,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하산 감독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침묵하는 국제사회와 축구계를 강력 비판했다. 그는 “누구든 지금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더는 인간이 아니다”라며, 가자지구의 비극을 방관하는 것은 "전 세계 모두의 수치"라고 말했다.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안타깝게 패배한 이후 인터뷰에서, “정치적 발언으로 인해 심판의 편파 판정을 받은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 그저 인도적 상황을 말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시력을 잃는 상황 말이죠. 가자지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은 당신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도 우리처럼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 당신들은 침묵만 지키고 있죠.”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가자지구의 건물 벽면에는 라민 야말(Lamine Yamal)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상징적 연대가 현지 민중들에게 명백히 인지되고 있고, 어떤 종류의 희망을 전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런 연대의 제스처는 더더욱 많이 드러나야 한다. 제국주의 기관 FIFA가 만드는 월드컵을 비판하고, FIFA가 쳐놓은 상업주의의 그물망 바깥에서 억압받는 민중과의 연대를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축구를 사랑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출처 | 인스타그램 @rizek_eldremle
출처 | 인스타그램 @rizek_eldremle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