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노동자의 목덜미를 죄어오는 지금, 이제는 반란의 시간

인공지능이 노동자의 목덜미를 죄어오는 지금, 이제는 반란의 시간

19세기 섬유 노동자들은 기계의 시대에 인간으로 남기를 갈망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목덜미를 죄어오는 지금, 이제는 ‘러다이트 르네상스’를 맞이할 시간이다.

2026년 7월 17일

[읽을거리]인공지능데이터센터, 인공지능기술, 기술비평, 노동운동, 미국

‘러다이트’라는 낙인

지난 12월 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규제 없는 AI 개발 및 배치 경쟁에 동력을 제공하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모라토리엄(일시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로써 그는 빅테크 과두 지배층이 인공지능이라는 미개척 영토로 돌진하는 흐름에 진지하게 도전장을 내민 최초의 연방의원이 되었다. "속도를 늦추고", "민주주의가 따라잡을 기회를 주기 위해" 모라토리엄이 필요하다는 그의 합리적 논거는 인공지능을 ‘약속’이라기보다는 ‘위협’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정서와 공명하며, 미국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샌더스는 억만장자 계급의 대변인들로부터 즉각적이고 매우 신랄한 반발에 직면했다.

AI 개발의 핵심 인물들 다수가 이와 유사한 감정을 표현했는데, 그 중 폭스뉴스의 스튜어트 바니는 샌더스가 제기한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묵살하며 샌더스를 "경제적 문해력이 부족한 인물"로 낙인찍었다. 기업 친화적 성향의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샌더스를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반동적 사회주의의 아바타"로 규정했고, "AI 파멸론(doomerism)"과 "님비(NIMBY)식" 논리에 빠져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그의 주장이 "올해 가장 유해하고 어리석은 생각"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이들 억만장자와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인과 선출 정치인들이 테크브로(tech-bro)들이 정의하는 "진보"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 현대 사회의 엘리트층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모욕을 던졌다. 그들은 샌더스를 가리켜 "러다이트(Luddite)"라고 선언했다.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사설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사설

가령 <워싱턴포스트>는 "버니 샌더스의 최악의 생각 Bernie Sanders’s Worst Idea Yet"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신규 AI 데이터센터 금지 조치는 과거이 러다이트들마저 훌륭해 보이게 만들 정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샌더스에게 ‘러다이트’ 딱지가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달 전, 샌더스와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회의 민주당 보좌진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미국 일자리 1억 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을 때,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한 논평가는 이를 "러다이트의 마술(Luddite legerdemain)"의 일례라며 맹렬히 비난을 가했다.

  • 💬 "The Big Tech Oligarchs’ War Against Workers 노동자를 향한 빅테크 과두 지배층의 전쟁" 보고서 : 이 보고서는 소수의 빅테크 억만장자들이 규제 없는 인공지능 개발 경쟁을 통해 인간 노동자를 '인공 노동'으로 대체하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를 '노동자를 향한 전쟁'으로 규정하며 비판한다. 또, 향후 10년 동안 미국 내에서 간호사, 트럭 운전사, 회계사 등을 포함한 약 1억 개의 일자리가 AI 자동화로 인해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경제적 이익이 소수 부유층에게만 독점되는 자본주의적 폐해를 막기 위해, 의회와 민주주의 체제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주 32시간 근무제 도입', '로봇세 도입', '노동자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 보장' 등의 안전장치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일찍이 앤스로픽(Anthropic)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2025년 5월에 AI의 부상이 초급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절반을 없애고 실업률을 최고 20%까지 치솟게 만들 수 있다고 추측하면서, "인공지능은 특정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동 전반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인류가 "대부분의 일에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소셜미디어의 평론가들은 초억만장자 일론 머스크의 X 플랫폼에서 샌더스를 헐뜯으며 "사회주의자들은 새로운 러다이트들"이라고 선언하고, 샌더스가 "러다이트 표심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이토록 많은 비난 속에서, 샌더스가 "나는 러다이트가 아니다"라고 발표한 것은 어쩌면 이해할 만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러다이트가 되는 것, 정확히 말해,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강요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무조건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러다이트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의 AI 반대 시위
미국에서의 AI 반대 시위

러다이트의 진실은 기술 혐오 아닌 ‘노동권 옹호’

엘리트계급을 대변하는 칼럼니스트들은 여전히 러다이트를 태동하는 산업혁명의 기계를 부수려 했던, 별 생각 없는 반동주의자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래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관찰자들 중 다수는, 당시의 공장 소유주인 과두 자본가들이 "진보"라고 부른 ‘일자리 축소’와 ‘임금 삭감’을 막기 위해 싸웠던 19세기 잉글랜드 북부의 직조공들과 기계공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전국 대학가에서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랐으며 자신들에게 닥칠 미래를 정당하게 우려하는 학생들에 의해 '뉴 러다이트(New Luddite)' 및 '네오 러다이트(Neo-Luddite)' 동아리들이 결성되고 있다. 2023년 미국작가조합(WGA)은 대형 미디어 기업들이 자신들의 창의성을 빼앗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한 후 자신들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선견지명 있는 투쟁을 벌였다. 이 싸움은 2024년 <할리우드 리포터>가 "생성형 인공지능이 할리우드의 일자리를 죽이고 있으며, 당분간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내린 냉혹한 선언과, 최근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서 수만 명의 정리해고가 AI 통합 및 비용 절감과 관련되어 있다는 보고들을 예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싸움 이후 배우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알렉스 윈터는 다음과 같이 썼다.

대학생 러다이트 클럽의 독립잡지들
대학생 러다이트 클럽의 독립잡지들
"러다이트라는 용어는 종종 기술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지치고 원망에 찬 대중을 묘사하는 데 잘못 사용된다. 하지만 실제 러다이트들은 섬유 산업에서 기술과 고도로 접촉하고 이를 자신들의 업무에 숙련되게 사용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반(反)기술 운동이 아니라 친(親)노동 운동을 했으며, 탐욕스러운 기업 지배자들에 의한 노동의 착취와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싸웠다. 만약 우리가 인공지능과 그밖의 기술들로부터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진정으로 그리고 깊이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러다이트가 되어야 한다."

2023년 출판사들을 향해 AI가 생성한 삽화의 사용을 제한할 것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조직하는 데 동참했던 예술가이자 활동가 몰리 크랩애플(Molly Crabapple) 역시 비슷한 견해를 취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계를 부수는 멍청한 노동자로 묘사되는 러다이트의 고정관념 섞인 정의는 사장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보다 한 해 전, SF작가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ow)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러다이트들은 모든 공상과학 작가들이 하는 일을 했다. 그들은 기술을 가져와 그것이 사용될 수 있는 온갖 방식—그 기술이 누구를 위해 사용될 수 있고, 누구를 향해 대적하여 사용될 수 있는지를 상상했다. 그들은 오른쪽 갈림길이 아니라 왼쪽 갈림길을 택하는 평행 우주의 창조를 요구했다. 그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기술 혐오는 아니다. '러다이트'를 기술 혐오(technophobe)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명예훼손이다."
AI 도입에 반대해 일시적 승리를 거둔 헐리우드 작가조합과 미국배우조합
AI 도입에 반대해 일시적 승리를 거둔 헐리우드 작가조합과 미국배우조합

자본에 의한 기술 강요의 역사

오늘날의 러다이트 르네상스는 AI에 대한 불안감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과거 다른 시대의 동력 직기에 저항했던 '가죽 앞치마를 두른 깎기공들(croppers)'의 본보기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활동가들은 핵무기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 때마다 러다이트의 전례를 주목해 왔다.

자본가들은 ‘러다이트’를 죽어가는 과거에 집착하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노동자로 묘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고, 여전히 많은 미디어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왜곡된 규정은 영국 노동계급의 위대한 역사학자 E.P. 톰슨과 도로시 톰슨 부부(둘은 학문적 동반자이자 삶의 동반자였다)가 오래전에 뒤집어 놓은 "후세의 엄청난 오만함"의 한 전형일 뿐이다.

지난 세기 중반, 톰슨 부부는 1811년부터 1816년까지 노팅엄셔, 랭커셔, 요크셔의 웨스트 라이딩을 휩쓸었던 러다이트 봉기를 새롭게 조명했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자신들의 기계를 사용하여 가정과 영세 작업장에서 옷을 만들어 영국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입혔던 섬유·봉제 노동자들은 갑작스럽게 새로운 종류의 일터, 즉 '공장'으로 밀려 들어가는 미래에 직면하게 되었다. 새로운 방직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과 그 자녀들은 자기 시대의 기술적 경이로움이었던 전단기계(shearing machines)와 자동 동력 직기 위에서 삭감된 임금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동력 직조기를 부순 러다이트 봉기 노동자들
동력 직조기를 부순 러다이트 봉기 노동자들

러다이트 봉기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1829년 그들은 윌리엄 킹이 자신의 신문 <협동조합원(The Co-operator)>에 기고한 미래를 정확히 예견했다.

"내가 다루는 기계가 1천 명의 인간만큼 생산한다면, 나는 1천 명의 몫을 누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나를 굶겨 죽일 것임을 뻔히 아는 기계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성의 박탈에 대항한 투쟁

볼턴(Bolton) 인근의 웨스트 페닌 무어스(West Pennine Moors; 맨체스터 인근의 거대한 들판. 여의도 면적의 80배에 달한다.) 정상의 달빛 아래서, 그리고 요크셔 웨스트 라이딩의 리버세지에 있는 시어스 인(Shears Inn)의 2층 방에서 모였던 직조공들과 기계공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태동하는 산업혁명의 과두 자본가들에게 양도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임금은 이미 깎여나갔고, 가족들은 빈곤에 빠지고 있었다. 이런 경제 불황 속에서 그들은 사회의 해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자본가들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와 인간성의 박탈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봉기는 영국의 유명 화가이자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어둡고 사탄적인 방앗간(dark Satanic Mills)”이라고 묘사했던 곳에서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와 고용주가 생활임금과 보호 대책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대중 시위와 청원 운동 끝에 일어났다. 청원이 기각되자, 러다이트들은 수천 명씩 모여 공장으로 행진해 새로운 기계들을 부수었으며, 산업가들과 국회의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격렬한 소요 중 기계들을 박살 냈다.

산업혁명을 향해 휘둘렀던 대형 해머의 타격은 러다이트들에게 역사적 자리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투쟁은 언제나 단순히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섰다. 오히려 그것은 당대의 가장 부유한 인간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드는 동시에 수작업 직조공 계급 전체와 그 가족들의 권리를 박탈하려 했던 경제적, 사회적 변혁에 반대했던, 깨어있고 정보가 풍부했던 숙련 노동자들의 운동이었다. 그들은 시위를 조직하고 정부 관료들에게 임금 인상, 아동 노동 착취 근절, 노동자 '결사(노동조합)'를 결성할 권리를 청원했다.

19세기 초 러다이트 봉기에 나선 노동자들
19세기 초 러다이트 봉기에 나선 노동자들

러다이트 봉기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반-과두제적(anti-oligarchical) 에너지와 직접 행동 선호에 대해 젊은 바이런 경(Lord Byron)은 그 노동자들을 영국의 식민주의를 전복시켰던 혁명적 미국인들인 "바다 건너 자유의 청년들(Liberty lads o'er the sea)"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싸우다 죽거나, 자유롭게 살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다이트 노동자들이 내건 기치는 "러드 왕(King Ludd) 외의 모든 왕을 타도하자!"였다.

덧붙이자면, 그러한 인물(러드 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최초의 러다이트들은 사장으로부터 업무 속도를 높이고 품질을 희생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자신이 배정받은 기계식 편직기를 박살 낸 네드 러드(Ned Ludd)라는 가상의 젊은 섬유 제조업자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런 투쟁 전술이 러다이트의 산업 소요가 이뤄진 5년 동안 확산되자, 그들은 정교한 변장과 은밀한 야간 습격 전술들과 함께 이 이름 ‘러다이트’를 채택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자신들의 활동을 사형이나 호주 교도소 식민지로의 강제 유배로 처벌하는 법률, 밀고자들에게 포상금을 제공하는 정교한 스파이 네트워크, 그리고 잉글랜드 북부 봉제공장 밀집 도시에 12,000명의 정규군을 주둔시키기에 이른 군사력 증강 등 잔혹한 탄압에 직면했던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조합원들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훗날 미국이 될 북아메리카의 초창기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처럼, 러다이트들은 비밀리에 조직을 꾸려 지배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겨냥했다. 미국인들이 보스턴 항구에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를 내던진 것(미국 독립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처럼, 러다이트들은 마스덴(Marsden)에서 랭커셔(Lancashire)에 이르는 공장에서 기계들을 파괴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폭동에 의한 집단 교섭"이라 불렀던 것은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라 비참한 압박에 그저 맹목적이고 더듬거리며 반응한" 일례가 아니었다. 반대로 홉스봄은 그것이 “노동자들의 삶을 희생시켜 특정 '이윤의 임계값'을 넘어서게 하려는 새로운 기술 강요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었다”고 설명했다.

러다이트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한 1819년 찰스 윌리암스의 삽화
러다이트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한 1819년 찰스 윌리암스의 삽화

오늘날 우리의 저항은 어떠한 형태인가

기계를 파괴하겠다는 러다이트들의 결정은 그들 시대에 많은 논쟁과 비난을 불러일으켰지만,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거의 없다. 리처드 코니프(Richard Conniff)가 자신의 에세이 "러다이트들이 진짜로 맞서 싸운 것 What the Luddites Really Fought Against"에서 지적했듯, 다음과 같은 모순이 존재한다.

"기술에 대한 우리의 불안한 항의는 거의 필연적으로 기술적 형태를 취한다. 우리는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지 걱정하면서 트윗, 문자 메시지, 페이스북 게시물로 이를 비판한다. 우리는 지역의 농산물 시장에서 장을 보며 삶을 단순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유기농 루콜라를 토요타 프리우스 차에 싣고 집으로 실어 나른다. 대학생들은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기술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지 토론한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로욜라에 위치한 시카고대학교의 스티븐 E. 존스 교수가 언급했듯, 그들의 스마트폰이 일제히 밝혀지고 얼굴 앞의 화면이 빛나기 시작하며, '잔디밭을 가로질러 마치 거대한 사이보그 해파리 떼처럼 이동한다.'"

기계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 우리의 미래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러다이트들에게서 오늘날에 부합하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우선 ‘진보 그 자체만을 위한 진보’에 맞선 러다이트들의 저항이 '기계의 시대에서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정의되었다는 관점에서 출발해 보자. 그러한 전제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미래에 자신들의 자리가 있을지 걱정하는 21세기의 은행원과 배달 기사, 배우와 건축가, 자동차공장 노동자와 간호사 모두에게 러다이트를 하나의 시금석으로 만들어 준다.

기술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 비평가이며 《기계 속의 피: 빅테크에 맞선 반란의 기원(Blood in the Machine: The Origins of the Rebellion Against Big Tech)》의 저자인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는 <타임>지 기고문에서 "우리는 러다이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다이트들은 강력한 항변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를 되찾는다면, 우리는 그들 이야기의 교훈을 오늘날에 적용해 수많은 비참함을 예방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인공지능 담론에 기여하는 러다이트들의 지대한 가치는 그들이 생계뿐만 아니라 인간성마저 위협하는 왜곡된 진보의 정의에 맞서 정보에 기반한 정당한 저항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AI에 안전 장벽을 설치하려는 기술적으로 해박한 옹호자들을 움직이는 것과 동일한 원동력이다. 디지털 미디어 및 문화를 연구하며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러다이트에 대해 폭넓게 저술해 온 학자 개빈 뮬러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상기시킨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AI 회의론의 배후에는 더 거대한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미래를 원하는가?"

우리는 모두 ‘인공지능 기술발전이 만들어낼 미래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 올해의 슈퍼볼 광고는 인공지능에 대한 찬사 일색의 퍼레이드였다.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밝히는 대형 광고판들은 이 새로운 기술을 연중무휴로 홍보하고 있다. "AI 동반자가 귀하의 말을 경청하고, 응답하며, 지원해 줄 것입니다." 글로벌 기업의 자본가들과 CEO들은 AI를 통해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고용주들은 곧 "인간 채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AI 직원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란다.

불가피성이라는 신화에 맞서기 위하여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 장밋빛 프로파간다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2025년 12월 유고브(YouGov)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7%가 AI를 인류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고브/이코노미스트의 2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가 AI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63%는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답했다. 벤틀리-갤럽 설문조사에서는 대다수의 미국인(79%)이 사기업들이 AI를 책임감 있게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워싱턴포스트> 사설 지면이 "러다이트"라고 폄하해 마지않았던 수많은 대중이다. 혹은 우리가 그 언론의 시각을 제쳐두고 산업혁명의 실제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본다면, 우리의 회의론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이 기술 혁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대중운동을 구축할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의 근거일지도 모른다.

러다이트의 이야기는 디지털 및 소셜미디어 혁명이 '모든 신기술은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약속에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불안감에 대한 지적 해독제를 제공한다. 우리의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가짜뉴스가 정치를 거칠게 만들고, 인종주의와 제노포비아를 '주류화'한다는 점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중독이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학교들이 아이들의 주의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절박한 시도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함에 따라,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쓰라린 경험을 통해 신기술을 회의론과 규제로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곧 수 조 달러를 거머쥘 자본가들의 지시에 무기력하게 복종하는 대신,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감시가 강화되며, 군사-산업 복합체가 자율 살상 무기를 찍어내는, AI 지배 하의 미래를 향한 저돌적으로 질주하는 것을 늦추어야 한다는 새로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본사 앞 AI 반대 시위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본사 앞 AI 반대 시위

그러나 러다이트들의 이야기가 진정으로 유용해지려면, 데이터센터 건설의 지극히 합리적인 감속을 옹호한 샌더스 의원의 주장에 쏟아진 반발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 낡은 고정관념을 던져버려야 한다. 비록 역사가 그들에게 특별히 친절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현대적인 러다이트가 되는 것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는 것이라는 강력한 논거가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우리에게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상기시켜준 바 있다. 당대 영국 당국으로부터 "폭동적인 방식으로 회합한 사악한 자들"이자 "무질서의 영혼"을 창조한 자들이라고 비난받았던 러다이트들만큼 성공적으로 폄하된 운동은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러다이트들이 그 어둡고 사탄적인 공장들을 심야에 습격하여 무질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젊은 바이런 경이 다음과 같이 선언했을 때 요약했던 바로 그 무질서—자본의 맹목적인 기술 도입이 초래할 사회적 무질서—에 맞서 러다이트들이 온몸으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기계 메커니즘의 개선에 인류가 희생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원문 : "러다이트 르네상스(The Luddite Renaissance)"

글 : 존 니콜스(John Nicho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