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불기행에 나서며
지난 5월 17일 오전 7시, 30여 명이 [2026 청년학생 5・18 광주역사기행 | 역사를 잊지 않는 청년들의 들불기행]에 함께하기 위해 모였다. 버스에서는 김밥과 간식, 기행 자료집을 나눴다.
버스에 오른 우리는 지금 왜 “들불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이는 1978년 시작된 “들불야학”에서 따온 것으로, 들불야학 학당에서는 광주민중항쟁 당시 언론 왜곡에 맞서 진실을 알리기 위한 ‘투사회보’가 제작되었고, 들불야학 강학이었던 윤상원 열사는 광주민중항쟁 마지막 날까지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 산화하셨다.
간략히 설명한 뒤에는 모두가 돌아가며 자기소개와 기행에 참여한 이유를 말했다. 대학 신입생, 여러 대학의 학생 활동가들, 영어 선생님, 자영업자, 사회복지사, 사회운동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참여 계기도 가지각색이었다. 옆자리의 친한 친구가 같이 가보자고 해서 왔다는 분부터,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고민이라는 분까지. 서로 1박 2일 동안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나누며 광주에 도착했다.

망월동 묘역에서
광주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 양산을 삼삼오오 나눠 쓴 채, 묘역 일대로 들어갔다. 묘역을 설명해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잘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특히 들어가자마자 양쪽에 보이는 커다란 “무장항쟁군상”과 “대동세상군상”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았다. 이 두 가지 조각상은 평범한 사 람들이 불의에 맞서 투쟁에 나선 동시에, 서로를 지키고 돌봤다는 광주민중항쟁의 주요 의미를 나타낸다.
본격적으로 들어가서는 엄청난 수의 묘지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현재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142기,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에는 778기의 묘지가 있다. 하나의 묘지마다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 그 수많은 삶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 또 들불야학 열사 분들도 뵐 수 있었다. 박기순·윤상원·박관현 열사 묘지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추모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함께 불렀다.
묘역에는 1980년 이후 민주·노동·학생운동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함께 모셔져 있었다. 무엇보다 올해 4월 20일 돌아가신 화물노동자 서광석 열사의 묘 앞에 서서 추모했던 시간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오늘까지도 죽음으로 투쟁하는 사람이 계속 생기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 친화적인 발언을 하면서도, 실제 노동 현장의 문제는 개선하지 않는다. 이러한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묘지 앞에서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묘역 일대를 걸으며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이 떠오르기도 했다. 얼마 전 SNS에서 보았던 비닐봉지에 담긴 시신들과 폭격 이후 잔해만 남은 유해들이 묘역의 풍경 위로 겹쳐졌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장면들이었지만, 죽음이 남기는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단학살로 사망하거나 사라진 팔레스타인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빠짐없이 애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집단학살을 멈추는 일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

제46주년 5·18민중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묘역 참배 이후, 점심을 먹고 전국노동자대회로 이동했다. 본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광주민중항쟁 당시와 마찬가지로 주먹밥을 두 손 가득 들고 나눠주는 분들이 계셨다. 받아든 주먹밥은 정말 맛있었다. 좀 더 걸으며 도착한 본대회장에는 조금 늦은 탓에 아쉽게도 발언을 거의 듣지 못했다. 대신 풍물패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신나는 풍물을 들으며 우리의 투쟁이 분노나 슬픔만이 아니라, 기쁨 속에서도 이어진다는 걸 다시 느꼈다.
본대회의 마지막 순서로, 무수한 깃발과 함께 도심 행진에 나섰다. 노동조합 깃발, 시민사회단체 깃발, 학생 단체 깃발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광주민중항쟁을 계속 잊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힘이 났다. 계속 광주 시내 거리를 행진하며, 1980년 광주 시민들이 골목 사이에 숨기도 저항하기도 했을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대회에서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활동의 일환으로 평화 활동가 해초의 여권효력 복구 연서명도 받았다. 준비한 유인물 200장이 금세 동나고, 많은 분들이 흔쾌히 서명해 주셨다. 심지어 행진 중에 부탁드렸는데도,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서명을 권하는 분들도 있었다.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아가 부당한 세계에 맞서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 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자유 시간과 하루 소감 나누기
전국노동자대회가 끝난 뒤에는 1시간 정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광주민주화운동기념관에 들른 사람도 있었고, 광주 시내를 둘러본 사람도 있었다. 빙수를 먹거나 독립서점에 방문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묘역과 집회 현장을 다니다가 잠시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니 색다르게 즐거웠다. 다시 모여 콩국수와 냉면으로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의 강당에서는 다같이 빙 둘러앉아 자료집을 함께 읽었다.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배경, 전개 과정,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현재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항쟁이 5월 18일 하루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5월 27일까지 길게 이어진 일이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더하여 광주가 단지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이후 수많은 사회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광주민중항쟁은 진압되었지만, 그 기억과 정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져 왔다.
이후에는 조별로 하루를 돌아보고 어땠는지 이야기 나눴다. 우선 20분 동안 손바닥만 한 여덟페이지의 책에 자유롭게 표현했는데, 그림을 그리기도 문장을 적기도 했다. 완성한 뒤에는 서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같은 장소를 다녔지만 무엇이 가장 마음에 남았는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공감되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예상하지 못한 관점에서는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어 뒤풀이까지 진행한 뒤 첫째 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광주·전남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만남
둘째 날에는 광주·전남 지역 노동운동가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첫날이 1980년 광주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면, 둘째 날은 현재의 광주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들불기행 참가자들 중에는 노동자도 있고, 노학연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학생 활동가도 있었다. 그렇기에 노동운동가와 간담회를 통해, 광주민중항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 직접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간담회에 함께한 노동운동가들은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광주민중항쟁을 겪은 분들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깨진 콜라 박스만 기억에 남았지만, 이후 매년 5월 광주에 걸리는 항쟁 사진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가 생생했다. 또한 광주민중항쟁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투쟁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도 기억에 남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억을 안고, 이후의 삶과 운동을 이어간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간담회에서는 전라남도 광양에서 글로벌 기업 포스코에 맞선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었다. 뉴스를 통해 포스코가 7천 명을 직고용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긍정적인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를 알리기 위해 노동조합이 며칠씩 피케팅과 집회를 지속해도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답답하게 다가왔다. 현장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먼저 귀 기울이고 주변에 알리는 일이라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날 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시 한 번 들불야학의 이름을 떠올렸다. 들불은 한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해 주변으로 번져 나간다. 박기순 열사가 이름 붙인 들불야학도, 광주민중항쟁도 그랬다. 광주는 1980년 5월에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렸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그렇게 광주의 불꽃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닿았다.
광주민중항쟁은 과거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였다. 당시 광주 열사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학생이었고, 노동자였고, 이름 없는 시민이었다. 이 항쟁이 남긴 흐름은 오늘날 들불기행을 다녀온 우리에게,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함께 행진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비록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고 서로를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지금 우리 곁에도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며,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에서는 경쟁과 배제 속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고, 노동 현장에서는 안전과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이 이어진다. 농촌과 지역에서는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도 공동체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집단학살과 점령에 맞선 저항이 지속된다.
들불기행은 광주민중항쟁을 기억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광주에서 시작된 불꽃이 앞으로도 오래 멀리 이어지길 바라며, 1박 2일간의 기행을 마쳤다.



글 : 하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