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사회적 대화, 그 조건은 정말 달라졌는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 그 조건은 정말 달라졌는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 -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야 작동하는 국가와 자본의 책임 회피 구조를 정당화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2026년 4월 29일

[읽을거리]노동노동운동, 노동조합, 노동조건, 노동절, 노동안전

사회적 대화는 중립적 협상기구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 불균형한 권력 관계 속에서 노동의 양보를 전제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노란봉투법 무력화, 공공부문 교섭 회피, 그리고 화물연대 서광석 열사의 애통한 죽음은 국가가 사용자 책임을 방치하거나 뒷받침해온 현실을 드러낸다. 결국 정부는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야 움직였고, 사회적 대화는 해결이 아니라 이러한 구조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재명 대통령이 다시 ‘사회적 대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 4월 10일 민주노총 지도부와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그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서 아주 탈퇴한 지 오래됐다”며 “그러나 최소한 우리 정부 안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대화 불참 결정을) 이해한다. 갔더니 이용만 당하고, 말도 못 하게 해놓고 마치 대화한 것처럼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고. 그러니까 화나죠”라고 하면서 과거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이 “그야말로 들러리”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는 이제 합리적인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도 돼 있고 충분히 그럴 만한 역량도 있다”고 주장했고, “우리 국민주권 정부는 노동 존중 사회를 위한 나름의 정책적 노력을,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 (참여)에도 여러분들 어렵긴 하겠지만 한번 고민을 좀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긍정적으로 해주길 부탁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과거 사회적 대화의 문제를 일정하게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제시되는 해법은 이전 틀을 유지한 채 참여를 다시 요청하는 데 머물러 있다. 대통령 스스로도 이전의 사회적 대화가 노동을 “들러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설득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 제안되는 사회적 대화는 ‘새로운 조건’이라기보다 기존 틀의 반복에 가깝다.

사회적 대화는 애초에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국가와 자본이 이미 압도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채 들어가는 협상은 형식만 ‘대화’일 뿐 실제로는 정해진 방향을 확인하는 절차가 되기 쉽다. 특히 경제 위기나 불안정성이 강조되는 시기일수록, 사회적 대화는 ‘고통 분담’을 명분으로 노동의 양보를 끌어내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이는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온 사실이고, 지금이라고 해서 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우려는 더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난다. 대통령은 3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이어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쉬운 해고’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사회적 대화 국면이 시작되는 시점에, 노동계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의제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사회안전망, 기업들의 부담,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 문제에 대해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때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 왔는지는 이미 충분히 경험된 바 있다.

지금 한국의 노동 현실을 보면 ‘해고가 어렵다’는 진단 자체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2025년 기준 비정규직 비율은 38%에 이르고, 이들은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놓여 있다. 정규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구조조정은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자신의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까지 일한 노동자는 48만2천명인 반면,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으로 일터를 떠난 노동자는 60만5천명으로 훨씬 더 많다. 평균 퇴직 연령도 49.4살에 머무르고 있어 법정 정년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조건에서 ‘유연성 확대’를 다시 논의하자는 것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문제제기라기보다 사용자에게 유리한 방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의제들이 사회적 대화 국면과 결합될 때 더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노동에 불리한 의제가 먼저 제시되고 그것이 ‘논의 가능한 사안’으로 설정되는 순간, 이미 일정한 후퇴가 전제된다. 사회적 대화는 무엇이 현실적이고 가능한 선택인지의 범위를 규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범위는 대체로 노동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양보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실제 정책 집행 과정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반복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통과됐지만, 이후 시행령과 해석지침은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3월 10일 법 시행 이후 1천 곳이 넘는 하청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상당수 기업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금속노조의 원청교섭 요구 인원은 2만 명을 넘어섰고, 그 가운데 80% 이상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차 그룹 사용자 측은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대응을 회피하고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나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핵심 쟁점도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 있다. ‘노동 존중’을 강조하는 정부의 메시지와 실제 정책 집행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공공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은 공공기관이 “모범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움직임이 확인된다. 일부 기관에서는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내부 지침이 확인되었고,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쟁의를 적극적으로 채증하라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사례도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노조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특정 자회사와 먼저 부분 합의를 추진하라는 컨설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자회사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 관련 지시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사용자 책임을 피하려 했다.

공공연대노조가 중앙행정기관·지자체·공공기관 등 51곳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실제 교섭이 예정된 곳은 8곳뿐이며 중앙정부 부처는 단 한 곳도 응하지 않았다. 공공부문 원청들은 고용노동부 해석지침을 근거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해당내용은 고용노동부가 2026년 2월 발표한 해석지침 21쪽 "정부가 법률이나 국회에서 심의·의결한 예산에서 정해진 근로조건 관련 사항을 집행하는 경우, 이는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른 공공정책의 결과로써 본질적으로 개별 노사 간 교섭의 직접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부분으로, 공공부문 사용자 책임을 사실상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지난 4월 17일에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원청교섭 실태를 통해 본 노동부 행정 해석 지침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박치현 변호사(박치현 법률사무소)는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법률과 예산의 범위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이들의 본질적 속성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라며 "이런 보편적 사항을 사용자성 부인의 근거로 삼는 것은 공공부문 전체에 개정 이전 기준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부적절한 행정지침으로 인해, 개정된 법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으로 작동하고 있다. 원청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려는 법의 취지와 달리, 해석지침은 그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바뀐 법을 제대로 집행해야 할 소임이 있는 고용노동부가, 그 해석과 집행을 통해 법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의 대응은 지침을 핑계로하는 소극성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회피 전략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일부 기관에서는 “사용자로 인정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내부 문서가 확인되었고,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쟁의를 적극적으로 채증하라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노조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특정 자회사와 먼저 부분 합의를 도출하라는 컨설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자회사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 관련 지시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노동 존중’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의 메시지가 실제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은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최근 이어지고 있는 투쟁들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4월 20일, CU 진주물류센터에서는 파업 투쟁 중이던 화물연대본부 서광석 열사가 쓰러진 상태에서 사측이 투입한 대체 차량에 깔려 숨졌다. 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짓밟는 과정에서 벌어진 구조적 참사다.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운임, 비용 전가에 내몰려 온 화물 노동자들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원청인 CU BGF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물량 축소와 계약 해지 협박, 손해배상 압박이었다. 교섭에는 끝내 응하지 않던 사측은 파업 2주 만에 대체 수송을 강행했고, 그 결과가 오늘의 죽음이다.

현장에 있던 경찰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업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자본의 대체 수송을 사실상 방조하며 위험한 상황 속에서 화물차 통행을 허용했다. 그 결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죽음으로 내모는 데 일조했다.

이러한 대응은 사건 이후 정부의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건 이후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화물연대 조합원을 “소상공인, 개인사업자 등”으로 지칭하며, 노동자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축소하고 사용자 책임을 흐렸다. 노동자에게서 ‘노동자’라는 이름을 지우는 방식은 그동안 자본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해온 논리를 국가가 그대로 수용하고 재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현장에서의 대응과도 맞닿아 있다. 비지에프로지스는 화물연대와의 교섭을 ‘단순 협의’라고 규정하며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정하는 한편, 뒤에서는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기업의 선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를 제어하거나 시정하기는커녕, 법적·행정적 환경을 통해 사실상 이를 뒷받침한 것이다.

결국 이번 참사는 단순한 현장 사고가 아니다. 노동자의 교섭 요구를 제도적으로 부정하고, 투쟁을 억압하며, 사용자 책임을 흐리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결과다. 그리고 그 구조의 한 축에는 분명히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갈등을 조정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자본의 논리를 승인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4월 28일, 서광석 열사가 사망한 지 8일이 지나서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재’에 나섰고, 그제서야 합의가 추진되기 시작했다. 29일, 화물연대와 비지에프로지스는 운송료 인상, 유급휴무 확대, 손해배상 청구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취소, 정당한 노조 활동 보장, 조합원 불이익 금지 등에 합의했다. 이 내용은 화물 노동자들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최소한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을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조치는 노동자의 죽음 이전에도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왜 이 합의가 한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야 가능했느냐는 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참사 이후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원청의 교섭 회피와 대체 수송 강행, 그리고 위험한 현장 대응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태를 방치했고, 결국 한 노동자의 죽음 이후에야 개입에 나섰다. 정부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끝에 부당한 죽음에 이른 이후에도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러다 대대적인 연대 투쟁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뒤늦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이번 합의는 정부가 나서 갈등 해결을 마무리 한 성과라기보다, 노동자들의 투쟁 없이 이재명 정부가 제때 역할을 할 의사도, 능력도 없음을 보여준 사례에 가깝다.

화물연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부가 노동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년 6월 2일 태안화력에서 사망한 고 김충현 노동자 이후 구성된 김충현 협의체는 발전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위해 3월 31일까지 노동자, 회사, 전문가들이 함께 노사전위원회를 구성하고, 5월 31일까지 정규직화를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4월 말인 지금까지도 노사전위원회는 구성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공공기관 사용자로서 책임 있게 교섭에 나서기보다, 절차를 지연시키며 갈등을 방치하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비정규직 상담 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고용 전환을 위한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 6년간 투쟁해온 이들은, 지난 2월 김금영 지부장의 17일간 단식 이후 3월 13일 노사 의견 일치 성명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후에도 정부와 공단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에서조차 ‘책임 있는 사용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의 투쟁은 이 정부의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국회에서는 택시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택시발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올해 8월 주 40시간 최저임금 적용 전면 확대를 앞두고, 이미 최저임금이 적용되던 서울에서조차 노동자의 최대 40%를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고, 전국 확대 역시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다.

이 법은 원래 소정근로시간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잠탈해온 불법 관행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십여 명의 택시노동자들이 목숨을 던졌고, 510일에 이르는 고공농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투쟁의 결과를 바로잡기는커녕, 그나마 마련된 제도적 안전장치를 다시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택시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주 6일 하루 11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에도 월 수입은 300만 원대에 머무르고, 평균 연령은 60대를 넘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납금제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택시 사업주들의 요구에 가까운 방향으로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택시노동자 고영기 동지는 결국 고공농성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을 요구하는 노동자가 다시 목숨을 건 투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정부가 노동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과 고용 형태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은 공통된 현실을 가리킨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움을 조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는 중재자가 아니라 사실상 방관자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가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회적 대화는 단순히 의견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일정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에 불리한 의제가 이미 제시되고, 정책 집행에서도 후퇴가 확인되는 상황에서는 참여 자체가 그 방향을 보완하는 역할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3월 노사정위원회를 규탄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2015년 3월 노사정위원회를 규탄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또한 대화 기조가 강조될수록 투쟁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파업이나 집회는 ‘대화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로 규정되기 쉽고, 이는 노동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정부가 민주노총 지도부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투쟁의 속도를 늦추고,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긴장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의 정세를 고려하면 이러한 선택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과 국가 간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본은 비용 절감과 유연성 확대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국면에서 노동이 일정한 성과라도 확보하려면, 오히려 더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힘의 균형을 바꾸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대화는 기존 질서를 재확인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핵심은 ‘대화에 참여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참여할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지금 제안되는 사회적 대화는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노동에 불리한 의제가 이미 설정되어 있고, 정책 집행에서도 후퇴가 확인되는 상황에서 참여는 전략이라기보다 위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둘러 대화 테이블에 앉는 것이 아니다.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정책 흐름을 분명히 비판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그 이후, 힘의 균형이 일정하게 확보된 조건에서 다시 검토해도 늦지 않다. 지금 이 조건에서의 사회적 대화는 해법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힘을 약화시키는 만드는 하나의 장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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