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 박살내는 팔레스타인 현대미술의 오늘

아파르트헤이트 박살내는 팔레스타인 현대미술의 오늘

팔레스타인 예술은 빼앗긴 고향을 기억하던 ‘상징의 시대’를 넘어, 점령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해체하고 그 틈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구축하는 저항으로 진화해 왔다. 이러한 미학적 실천은 물리적 영토가 파편화된 현실 속에서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의 흔적을 데이터와 언어로 복원하며, 결코 지워지지 않을 존엄성을 전 세계에 증언하고 있다.

2026년 4월 21일

[읽을거리]비평팔레스타인, 예술, 프로파간다

이 글은 2025년 9월 8일 플랫폼c 아랍·중동·이슬람·팔레스타인 책읽기모임 주최로 연 <팔레스타인과 예술 작은 리서치 발표회>에서 '아파르트헤이트와 팔레스타인 현대미술' 발표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오는 7월 출간될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연대 운동 관련 소책자에도 실릴 예정이다.

나크바 이후 팔레스타인 현대미술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야파(Jaffa)는 활기 넘치는 항구도시이자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오렌지로도 유명했다. 1948년 4월 25일, 텔아비브의 시온주의 민병대 이르군(Irgun)과 하가나(Haganah) 등이 남쪽으로 인접한 야파를 공격했다. 5월 13일까지 19일 간 지속된 이 학살로 인해 8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던 이 아름다운 해안도시는 이제 4천여 명만 남은 폐허가 됐다(Benny Morris, 「The birth of the Palestinian refugee problem」, 1987). 미술작가 칼릴 바다위야(Khalil Badawiyya)와 파이살 알 타히르(Faysal al-Tahir)는 이때의 시온주의 무장군대의 학살에 의해 죽은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 하나다.

1936년 텔아비브와 야파 지도
1936년 텔아비브와 야파 지도

현대 팔레스타인의 많은 미술작가들은 근대적 미술교육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독학으로, 아무 대가 없이 그림을 그렸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의 풍경을 팔리스타인 사람의 시선으로 화폭에 담았다. 베들레헴의 자브라 이브라힘 자브라(Jabra Ibrahim Jabra), 아카(Acre)의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 등 많은 작가들이 그런 조건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단순한 영토 상실을 넘어 문화적·존재론적 파편화를 기록하고 표현했다.

팔레스타인의 오늘은 강제추방과 학살,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과 함께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현대 팔레스타인 예술의 역사는 곧 저항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나크바(Nakba, 대재앙) 이후 학살과 추방의 대상이 된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예술은 단순히 미적 대상을 만드는 행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존재를 증명하고 기억을 ‘증언’하기 위한 아카이빙 실천이어야만 했다. 예술가들에게 부과된 가장 큰 과제는 흩어진 난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시각적 상징을 발굴하는 것이었고, 난민으로서의 삶, 디아스포라적 존재는 미술의 주제가 됐다.

1950~60년대 팔레스타인 미술의 중심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땅과 강한 결속력을 지닌 농민의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테면 술레이만 만수르(Suleiman Mansour) 같은 1세대 작가들은 올리브 나무, 전통 자수 문양(Tatreez), 땀흘려 일하는 농부의 형상을 통해 '땅에 대한 권리'를 표현했고, 나빌 아나니(Nabil Anani)와 같은 작가들은 여성들이 입는 전통자수 문양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술레이만 만수르, <그리고 호송대는 계속 나아간다>
술레이만 만수르, <그리고 호송대는 계속 나아간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이 자신들의 점령과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대해 “사람이 살지 않던 땅”, “땅 없는 사람들”이라는 내러티브를 전파할 때, 팔레스타인 화가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는 농민을 그려냄으로써 이 땅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시각적으로 반박했다.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현대미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다. 수백 수천 년을 사는 식물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주요한 농작물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올리브 나무는 가뭄과 척박한 환경에서도 열매를 맺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도 민족적 생명력을 유지하며 저항을 이어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일상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올리브나무가 뿌리 뽑히거나 불타는 모습은 팔레스타인 작가들에게 있어 그들의 역사와 생존 기반을 말살하려는 ‘제노사이드’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팔레스타인 작가들은 ‘올리브나무’라는 상징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이 올리브나무처럼 오래전부터 뿌리 박고 있었으며, 쉽게 뽑히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만수르의 그림 <짐을 짊어진 낙타(The Camel of Burdens)> 같은 작품에서 노인은 예루살렘 시가지가 담긴 거대한 자루를 등에 지고 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민족적 운명과 고통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노인의 모습은 고향을 잃고 유랑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전형을 보여주고, 동시에 표정은 비굴함 대신 깊은 슬픔과 함께 강인한 인내를 드러낸다. 이 노인은 동시에 그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땅과 정체성'을 가리킨다. 그것은 노인을 짓누르는 고통인 동시에, 그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원이다. 이를 통해 잃어버린 영토를 대신하는 ‘문화적 영토’를 구축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인종 제노사이드’에 맞서 강력한 형태의 ‘수무드(끈질긴 인내와 흔들리지 않는 저항)’를 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노인의 굽은 등은 굴복의 징후가 아니라, 조국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는 선언이다.

저항 문학과 프로파간다

팔레스타인 미술은 당대의 팔레스타인 저항 문학이 구축한 서사적 토대 위에서 성장했다. 이는 나크바 이후 파편화된 공동체에게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공통의 답을 제시하기 위해 협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는 소설가이자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저항 예술의 상징적 기획자였다. 그의 소설 『하이파에 돌아와서』나 『뜨거운 태양 아래서』에서 보여준 ‘난민, 상실, 귀환’의 서사는 시각 예술가들에게 풍부한 모티프를 제공했다. ‘올리브나무’나 ‘농민’ 같은 대상은 이런 서사로부터 구성된 것이다.

바람은 풀처럼 푸르러 못과 나의 쇠사슬을 감싸고
이것은 아랍 소년이 꿈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와 같은 시인들의 시 구절도 캔버스 위에 텍스트로 삽입되거나 이미지의 영감이 됐다. 문학과 시각적 재현이 서로를 증명하고 북돋우며 이뤄진 것이다.

모나 사우디, <마흐무드 다르위시에게 바치는 헌사>, 1979년 작품
모나 사우디, <마흐무드 다르위시에게 바치는 헌사>, 1979년 작품

팔레스타인의 프로파간다 포스터 운동의 폭발적 성장은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1960년대 중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부상과 함께 미술은 보다 적극적인 혁명적 도구로 변모했다. 가닛 안코리(Gannit Ankori)는 이 시기 팔레스타인의 예술이 ‘증언’에서 ‘투쟁’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한다.

PLO는 ‘예술부’나 ‘팔레스타인 영화조합(PFU)’ 등을 설립해 예술을 조직적인 저항의 수단으로 삼으려 시도했고, 이는 매우 정당한 것이었다. 이때의 예술은 개인의 창작을 넘어 해방운동의 ‘문화적 무기’로 여겨졌으며, 그것은 예술에게도, 운동에게도 엄청난 힘이 됐다. 특히 1970년대에 정점을 찍은 팔레스타인 포스터 미술은 혁명적 실천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포스터는 복제가 쉽고 거리 어디에나 붙일 수 있었기에,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 민중들에게 저항의 메시지를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였다. 이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결속뿐만 아니라, 전 세계 좌파 운동권 및 국제 사회에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알리는 강력한 홍보 수단이었다.

이 시기의 혁명적 예술 실천은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독특한 미학적 형식을 만들어냈다. ‘농민’이나 ‘여성’의 이미지는 이제 단순히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 아니라, 총을 들거나 승리의 표시를 하는, 혁명의 주체로 묘사되었다. 예술가들은 전시장이라는 안락한 공간을 벗어나 난민 캠프, 거리 벽면, 집회 현장에서 대중을 만났다. 가령 1987년 제1차 인티파다 시기, 슬라이만 만수르, 나빌 안니, 타야시르 바라카트 등이 결성한 '신시각(Al-Ru’a al-Jadida)' 그룹은 점령국인 이스라엘에서 생산된 물감, 캔버스 등 미술 도구의 사용을 거부하는 '시각적 보이콧'을 단행했고, 대신 팔레스타인의 진흙, 천연 염료(헤나, 커피, 사프란), 나무, 가죽 등을 재료로 삼았다. 그리고 진흙으로 빚은 부조상들을 전시장을 벗어나 마을 공동체 공간에서 공개하며 저항의 물질성을 공유하려 했다.

나아가 이들은 갤러리 벽면 대신 난민 캠프의 좁은 골목 벽과 거리의 담벼락을 캔버스로 삼았다. PLO 산하 예술 부서에서 제작된 포스터들은 난민 캠프 곳곳에 부착됐는데, 문맹률이 높았던 민중들에게 저항의 서사를 전달하는 '시각적 교과서' 역할을 했다. 점령군에 의해 팔레스타인 국기 게양이 금지되자, 예술가들은 밤마다 거리 벽면에 네 가지 색(빨강, 검정, 하얀, 초록)을 활용한 수박이나 올리브나무를 그렸다. 감시받는 일상 공간을 해방구로 전환하는 실천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BDS운동의 캐릭터가 된 ‘한달라’ 역시 이 시기 프로파간다 운동의 산물이다. 1969년 나지 알 알리(Naji al-Ali)는 쿠웨이트의 한 신문에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투영한 ‘한달라’를 그렸다. 한달라는 언제나 ‘10살’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알 알리가 나크바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나이다. 알 알리는 “한달라는 고향으로 돌아갈 때라야 비로소 자라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성장이 멈춘 난민의 고통과 귀환의 권리를 이야기했다.

한달라의 인상적 특징은 관람자를 향해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두 손을 뒤로 맞잡고 있다는 점인데,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외면하거나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국제 사회에 대해, ‘당신들이 우리를 제대로 보지 않으니, 나도 당신들을 보지 않겠다’는 모종의 보이콧처럼 읽힌다. 그리고 뒤로 맞잡은 손에서는 굴욕적 평화안에 응하지 않겠다는 강한 자존심과 저항의 의지를 느껴지게 한다.

2008년 11월 점령된 서안지구 헤브론 인근 알-아루브 마을
2008년 11월 점령된 서안지구 헤브론 인근 알-아루브 마을

제1차 인티파다(Intifada)는 팔레스타인 예술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 시기 가장 강력하게 부상한 이미지는 바로 ‘돌 던지는 소년’이었는데, 이때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돌의 아이들(Atfal al-Hijara)’이라 불리며, 팔레스타인 저항의 새로운 주체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이스라엘 탱크나 중무장한 군인에 맞서 맨몸으로 돌을 던지는 한 소년의 모습은 ‘다윗과 골리앗’의 구도를 연상시킨다. 나크바 이후의 보도사진이 ‘고통받는 난민’의 수동적 이미지를 담았다면, 인티파다 시기의 사진은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주체로서의 팔레스타인인을 부각했다.

한편, 2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 점령당국이 세운 분리장벽은 뱅크시와 같은 작가들에게서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되기도 했다. 점령자가 구축한 억압적 공간을 피억압자의 표현 공간으로 탈환하고자 했던 것이다.

모나 하툼: 정치적 장소가 된 몸과 망명의 트라우마

인티파다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의 미술이 잃어버린 고향의 풍경을 화폭에 붙잡아두고 민족적 자존감을 세울 '시각적 영토'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면, 1990년대 이후의 동시대 작가들은 형식적으로 보다 다각화된 저항을 실천했다. 점령이 고착화되고 이스라엘의 감시와 억압 시스템이 첨단화됨에 따라, 예술의 언어 역시 올리브나무와 농민이라는 전통적 도상을 넘어 더욱 보편적이고 개념적인 투쟁의 도구로 진화한 것이다.

억압적 현실로 인해 디아스포라가 된 팔레스타인 작가들, 난민 2세대 예술가들에게 저항은 빼앗긴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정치적 장소로 삼는다. 디아스포라의 불안을 증언하고, 보이지 않는 소리와 데이터를 통해 시온주의자들의 폭력과 학살의 증거를 수집한다. 심지어 미래의 시공간을 가로질러 점령의 부조리를 풍자하기도 한다. 감시, 신체 통제, 역사 왜곡 등 점령의 숨겨진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모나 하툼(Mona Hatoum)은 일상적 사물을 위협적인 존재로 탈바꿈시키며 망명의 트라우마를 시각화하는 작업에 주력해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The Negotiating Table」(협상 테이블)은 길게 놓인 회의용 테이블 위에 하툼 본인의 몸이 천으로 덮여 놓여 있다. 그 몸은 붉은빛 천과 붕대로 감싸여 피투성이 시체 같은 형상을 띤다. 하툼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눕는다. 커튼, 마이크, 문서 등 회의장의 형식적 장치들과 시체가 된 몸이 대비되어 있다. 마치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희생자의 시체 위에 앉아 협상하는" 듯한 풍경을 연출이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테이블 주변을 돌며 이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면서 협상이라는 정치적 언어가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협상은 늘 중립적 담론을 강조하지만, 그 바탕에는 이미 죽음과 폭력이 깔려 있다. 협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제 삶과 목소리는 사라지고, 몸 자체만 증거로 남는다. 분리·차별·억압 속에서 피해자는 협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1980년대 초, 레바논 내전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학살(사브라·샤틸라 학살, 1982)이 국제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작품은 1982년 6월 레바논 침공 이후 중동의 정치적 사건들과 그 기간 서구 언론의 보도를 모니터링했던 것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난민의 시체가 외교 협상의 장식처럼 쓰이는 현실을 고발한다. 영상에 담긴 퍼포먼스는 두 요소가 병치되어 있다. 허구처럼 들리는 뉴스 보도 사운드와 레바논 현실을 묘사한 영상. 피비린내 나는 혼돈 속에서,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이를 설명하려는 냉정한 보도는 어리석게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문명화된 회담 장소를 배경으로 수립된 평화 계획에 대한 이야기는 종이 위의 환상일 뿐이며, 현실은 야만과 혼란뿐이다. 📼Mona Hatoum - The Negotiating Table (1983)

「Measures of Distance」의 스틸 이미지
「Measures of Distance」의 스틸 이미지

이후 하툼은 「Measures of Distance」(거리의 측정, 1988) 같은 작품에서 개인적이고 친밀한 경험(어머니의 편지)을 통해 이 정치성을 확장했다. 이 작품은 하툼을 국제 미술계에 알린 중요한 분기점이며,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신체적 충격을 직접 시각화한 점에서, 미니멀리즘과 정치적 아트의 경계를 넘나든 작업으로 평가된다. 오늘날에도 팔레스타인 현실을 다룬 미술의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툼은 베이루트에서 난민 생활을 하던 팔레스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리고 1975년, 레바논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또 다른 난민 생활을 시작했다. 「Measures of Distance」은 이런 하툼의 삶을 드러낸 자전적 작품으로, 전쟁으로 인한 이별의 아픔, 방향 감각 상실, 가족의 단절을 어머니의 편지와 신체 이미지로 표현한다. 영상에서 작가는 어머니의 영상 위에 스크롤되는 아랍어 글자를 겹쳐 놓는다. 아랍어 글자는 하툼의 어머니가 베이루트에서 보낸 편지의 텍스트이며, 작가는 이를 영어로 소리 내어 읽는다. 사운드트랙에는 어머니와 딸의 솔직한 대화가 삽입되어 있다. 하툼의 어머니가 샤워하는 모습의 사진 위에 겹쳐진 아랍어 편지 글씨가 이미지로 나오고, 하툼 본인이 영어로 어머니의 편지를 낭독한 소리가 사운드로 나온다.

편지에서 어머니는 딸(모나)에게 근황을 전하며, 베이루트의 생활을 묘사한다. 집안 사정, 친척 소식, 딸의 안부 걱정 등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곤 “네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라는 식의 서술을 통해 고향을 떠난 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언어와 공간이 떨어져 있는 현실의 고통을 강조한다. 또, 여성으로서 신체를 둘러싼 사회적 시선,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담겨 있는데, 카메라에 담긴 어머니의 몸은 친밀함과 검열의 대상이기도 하다. 베이루트 내전 상황이나 팔레스타인 난민으로서의 조건과 불안정한 삶에 대한 언급도 담겨 있는데, 이처럼 가족의 분리는 그저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파르트헤이트·난민 현실과 연결된다.

편지는 아랍어 원문이 화면에 겹쳐지고, 영어 음성 낭독은 번역됨으로써 재전유된다. 이때 하툼의 목소리는 딸의 위치에서 어머니의 언어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시각(사진·글씨), 청각(음성), 언어(아랍어·영어)가 겹쳐 이중/삼중적 소외와 친밀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균열된 자아의 가상적 실천

칼리 라바(Khalil Rabah)는 올리브 나무를 심거나 가상의 박물관을 세우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스라엘에 의해 지워진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현존을 예술적 실천으로 복원하려 시도하는 작가다. 그는 프란츠 파농의 맥락을 팔레스타인 현실에 대입하여, 점령하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겪는 이중적인 소외와 정체성의 혼란을 다양한 오브젝트와 공간을 통해 드러낸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점령자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탐구한다.

프란츠 파농이 흑인이 백인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며 겪는 소외를 다루었듯, 라바는 팔레스타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서구적 가치, 이스라엘의 법체계 같은 점령 시스템 안에서 자신들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하얀 가면’을 써야만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팔레스타인 자연사 및 인류 박물관(The Palestinian Museum of Natural History and Humankind)’ 프로젝트는 그의 미학적 실천을 드러내는 대표작이다. 라바는 유목적인 형태로만 존재하는 박물관을 통해, 이스라엘에 의해 지워지고 변형된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현존을 예술적 실천으로 복원하려 시도한다. 사라져가는 식물, 흙, 유물들을 박물관이라는 권위 있는 형식을 빌려 기록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망각으로부터 구출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라바가 올리브 나무를 다루는 방식은 이전의 팔레스타인 미술과 다르다. 앞 세대가 올리브 나무를 향수의 대상으로 그렸다면, 라바는 실제 나무를 심거나 뿌리째 뽑힌 나무를 설치 작품으로 전시한다. 땅과 민족의 유기적인 연결을 물리적으로 증명함과 동시에, 그 연결이 파괴되는 현장을 과학적 데이터로 입증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현장에 남은 파편, 소리, 그림자,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칼릴 라바가 박물관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상에서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현존을 아카이빙하며 존재를 증명했다면,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는 점령의 중력이 닿지 않는 우주로 상상력의 영토를 확장하여 팔레스타인의 서사를 SF적 미래주의로 해방시킨다. 이는 빼앗긴 과거를 복원하는 실천을 넘어, 억압된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미래의 공간을 선취하려는 시도다.

라리사 산수르의 2008년 작업 「A Space Exodus 우주 탈출」 전시는 비디오 클립, 스틸 사진, 팔레스타인 우주비행사복 등으로 구성된 설치미술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영상은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재해석하고 있다. 초현실적 영상에 걸맞는 아라베스크풍의 사운드트랙을 바탕으로, 우주를 향해 환상적인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따라간다. ‘최초의 팔레스타인인 우주 진출’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암스트롱의 달 착륙과 견주고,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으로 해석한다.

이름이 새겨진 하얀 우주복에 팔레스타인 국기와 전통 타트리즈 처럼 보이는 자수를 두른 그녀는 달에 착륙해 팔레스타인 국기를 꽂는다. 우주인인 그녀가 지구를 향해 손을 흔들면, 카메라는 달 표면에서 튕겨 나가는 그녀의 부츠를 비추고, 마침내 그녀가 뛰어올라 공중에 떠서 우주 공간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담는다. 이를 통해 시오니스트 서사의 예속과 침묵을 부정하고, 팔레스타인의 고통, 트라우마, 투쟁, 생존, 그리고 희망의 연속성을 묘사한다. 이는 많은 팔레스타인 영화들이 갖는 애국주의와 관습적 서사-이미지에서 해방시키려는 시도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영토

바젤 아바스(Basel Abbas)와 루안 아부-라메(Ruanne Abou-Rahme)의 ‘May amnesia never kiss us on the mouth’(기억상실이 우리에게 입을 맞추지 않기를)는 2020년부터 진행 중인 연작 프로젝트다. 공동체가 폭력·상실·이주·강제이주 경험을 어떻게 증언하는지 탐구한다. 2010년대 초부터 두 작가는 이라크·팔레스타인·시리아·예멘 등에서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담은 온라인 영상을 수집해 왔다. 이 작품은 이러한 공연하는 신체의 디지털 흔적과 무용수 리마 바란시,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활동하는 일렉트로닉 뮤지션 하이칼·줄무드·마키마쿠크와 함께 작업한 예술가들이 만든 새로운 퍼포먼스를 결합한다. 작가들에 따르면, 노래와 춤을 통해 "이 분열된 공동체들은 스스로의 소멸에 저항하고 다시 한번 공간, 자아, 그리고 집단성을 요구"하고 있다. 치밀한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수행성, 정치적 상상, 몸, 가상성의 교차점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끊임없는 위기와 끝없는 현재로 특징지어지는 풍경을 탐구하며, 기존의 다양한 자료를 샘플링해 새로운 스크립트로 재구성한다.

뉴욕현대미술관, 2022. (사진 조나단 무지카르)
뉴욕현대미술관, 2022. (사진 조나단 무지카르)

첫 번째 작품인 "Postscript: after everything is extracted"는 2020년 12월에 공개됐고, 2022년 3월 Dia Art Foundation의 온라인 플랫폼에 방대한 녹음 자료와 오리지널 퍼포먼스가 업데이트됐다. 2022년 MOMA(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선 몰입형 다채널 사운드 및 영상 설치 작품 "Only sounds that tremble through us"를 통해 이 영상들을 선보였다. 이 작업은 노래·말·춤·제스처 등 모든 공연을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전체 공동체에 가해지는 시기에 행해지는 정치 행위로 간주한다.

두 작가는 "누가 신경 쓰는가,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당대 사람들의 활동과 상상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데 집중한다. 식민화가 신체뿐 아니라 상상력까지 침범했기에, 이를 깨고 상상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아카이빙은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생각하는 방식과 관련이 깊다. 아카이빙을 단순히 과거를 읽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든 다시 활성화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살아있는 직물로 여기는 것이다. 이는 저항의 한 형태로 새로운 글을 쓰고 읽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설치미술가 샤디 하비브 알라(Shadi Habib Allah)의 작품 「30kg Shine(빛)」도 소개하고 싶다. 이때 ‘30kg’이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경·검문소를 넘을 때 허용되는 수하물 최대 무게에서 따온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의 사격 연습장이나 군사 제한 구역이 밀집한 네게브(Negev) 사막 인근에는 정식 마을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베두인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버려진 탄피와 총알 파편, 불발탄 같은 고철을 수집해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 작품은 폭력의 도구 탄환이 억압받는 이들의 생존도구로 변하는 현실을 포착한다. 작가는 베두인인들이 수집한 약 30kg의 구리 파편을 구입해 이 파편들을 녹이고 정제하여 재가공함으로써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는 1936년경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유령이 나타나 밤에 어두운 골목길을 돌아다니자, 주민들이 집 안에만 갇혀 살았고, ‘무덤 도굴꾼’들이 조용히 활동했다는 설화를 재구성하고 있다. 물론 이 설화는 늦은밤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통제하던 시온주의 무장군의 활동이 유령으로 오인된 것이다. 80년 후 이 설화가 남은 마을에서 한 여성 노인은 가족의 유품을 되찾으려 애쓴다. 이스라엘군의 감시와 방해를 피하기 위해 낮에 잠을 자고 밤에만 활동하며, 벽에 구멍을 뚫어 가족의 물건들이 있는 방에 접근하려 시도한다.

예루살렘 교외에는 2만2천구 규모의 거대한 지하묘지가 있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무허가로 고용되어 수 주 동안 지하에 갇힌 채 노동하며,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만 그 공간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이는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역사적 존재 때문이다. 이 무허가 터널들은 고인의 유해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유해의 존재는 도시 아래 숨겨진 이동 통로를 보존한다.

「30kg Shine」의 전시 공간에는 실물 크기에 가까운 가구들과 희미하게 빛나는 샹들리에가 덧없이 사라지거나 정지해 있는 사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삶을 규제하는 아파르트헤이트적 질서를 상징하면서도, 기억과 존엄의 지속성을 말하는 듯하다. 검문소·장벽·지하묘지 등 억압된 공간에서도 팔레스타인인의 존재와 역사적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빛날 수 있다.

한 대담에서 작가는 ‘탈선적 권리’를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공식 시스템에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을 점유하거나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대안적 권리를 가리킨다. 영상 속 인물들은 점령과 통제라는 주류 시스템의 틈새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공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맺으며

팔레스타인 예술은 빼앗긴 고향을 기억하던 ‘상징의 시대’를 넘어, 점령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해체하고 그 틈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구축하는 저항으로 진화해 왔다. 이러한 미학적 실천은 물리적 영토가 파편화된 현실 속에서도,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의 흔적을 데이터와 언어로 복원하며, 결코 지워지지 않을 존엄성을 전 세계에 증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혹은 그것에 맞선 저항을 다루는 팔레스타인 현대미술은 오늘날 정치적 무기력·파편화·시장화에 의해 잠식된 미술에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함께 하는 한 미술은 여전히 저항과 변혁의 매개가 되고 있고, 그 자체로 동시대 예술의 위치를 묻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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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nnit Ankori, 『Palestinian Art』, Reaktion Books, 2006
  • Benny Morris, The birth of the Palestinian refugee proble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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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an Fisher, 「Palestinian art: From 1850 to the present」, Third Text, vol.24, Issue 4, July 2010.
  • 「Sliman Mansour」, Global Fascisms Exhibition: 13 September–7 December 2025 | https://www.hkw.de/en/programme/global-fascisms
  • Mona Hatoum - The Negotiating Table (1983) | https://vimeo.com/396694127
  • Rubber Coated Steel (2016) by Lawrence Abu Hamdan | https://youtu.be/lFIvUV5vmMU
  • Killing in Umm al-Hiran | https://www.ica.art/recent-investigations/killing-in-umm-al-hiran
  • Vera Sajrawi, 「Your grandparents couldn’t return to Al-Sajara. But I know they died hoping」, +972 Magazine, September 22, 2023
  • 남윤지, 「[글로벌사우스] 소리는 어떻게 증거가 되는가: 로렌스 아부 함단의 사운드」, 미술전시 아이테르, 2026-03-12
  • 「30KG Shine」, Sharjah Art Foundation
  • 「Shadi Habib Allah」, https://www.gagallery.com/artists/shadi-habib-allah
  • 「Shadi Habib Allah in conversation with Sara Eliassen | Did you see me with your own eyes?」, Kunstnernes Hus, 2022. 10. 5. | youtube.com/watch?v=UNHdIiQ2NfI
  • greenartgallerydubai 인스타그램 계정, 2024년 1월 18일 | https://www.instagram.com/p/C2PPh7Crcpo/?img_index=4

글 :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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