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으로서의 냉전, 학살로서의 반공 | 『자카르타가 온다』 서평

전장으로서의 냉전, 학살로서의 반공 | 『자카르타가 온다』 서평

한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옛 냉전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이들 반공 지배 세력은 단 한 번도 ‘낡은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나 사회문화적 백래시 등 겉으로 드러나는 지배 속성에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국가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새것’이 오는 것을 필사의 힘을 다해 막아왔다.

2026년 4월 30일

[동아시아]인도네시아현대사, 반공주의, 인도네시아, 국가폭력, 미국

인도네시아라는 국명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지리 수업에 집중했던 사람이라면 세계 4위에 해당하는 2억 8천만 명의 인구를 갖춘 세계 최대의 섬나라라는 사실이 기억날 것이다. 발리(Bali)와 같이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SNS 여론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얼마 전 한국 K팝 팬들과 인도네시아 팬들 사이에서 일었던 인종주의 시비의 기억이 여전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 글을 읽는 한국인이라면 인도네시아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인도네시아가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진보적 사회운동 전통을 지닌 나라 중 하나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나아가, 냉전 시기 사회주의권 밖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산주의 운동을 경험했으며, 이 운동이 인도네시아를 넘어 당시 전 세계 ‘글로벌 사우스’ 신생 독립국들의 정치·사회적 움직임에서 핵심 위치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의 현대사는 공산주의 운동으로 대표되는 대안적이고 해방적인 정치·사회적 흐름을 억누르고 제거하려 했던 기득권 세력, 그리고 그 배후에 있던 미국의 조직적 개입과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바로 그 학살과 은폐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인도네시아라는 한 나라만의 역사가 아니다. 이는 냉전 시기 미국의 지원 아래 동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반공 독재 체제들의 역사, 민주화 이후 시간이 지나 해당 국가들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극우 백래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내가 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저자 빈센트 베빈스(Vincent Bevins)는 영미권의 주류 언론에서 해외 특파원으로 활동해 온 저널리스트다. 2010년대 중후반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는 변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현실화하려는 좌파 정치·사회운동과, 이에 맞서는 극우 백래시 세력 사이의 역학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특히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서쪽으로 1만 6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정치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이었다. 브라질에서 중도좌파 노동자당 정권의 탄핵을 “브라질이 또 다른 북한이 되는 것을 막았다”며 자축하는 극우 정치인들과, 노조와 사회참여 지식인들의 활동을 "공산주의"로 몰며 겁박하는 인도네시아 극우 이슬람주의 세력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 공통분모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는 냉전과 반공, 독재와 학살이라는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연결 고리를 추적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진영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노선에 찬성하는 국가들의 수를 늘려나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때로는 해당 국가 주민들의 의사에 반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핵심 변수는 전쟁 이후 새로 독립한 비서구 국가들로 이루어진 ‘제3세계’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이 과거 자신들을 지배했던 식민 모국과 반공주의 동맹을 맺는 모습을 보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과거 제국주의 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뒤섞인 독자 노선을 걸으며 서구의 패권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1951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흥 독립국들을 돌아본 이후 미국이 “서구 식민주의 정책에 맞서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하는 민족주의적 열정”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한 존 F. 케네디(당시 하원의원)의 말은, 냉전 이후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고립되어 간다고 느끼던 미국 엘리트층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이념과 국익 모두에서 공산주의를 최대 위협으로 여기던 미국의 지배계급은, 공산주의에 친화적이라 여겨지는 이들 신흥국을 통제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전후 새롭게 창설된 미국의 정보기관 CIA는 1953년 이란, 1954년 과테말라, 1960년 콩고 등 제3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서방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민족주의 성향 정권들에 대한 쿠데타를 뒤에서 조종했다. 스스로 ‘자유’를 가치로 내걸고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통해 탄생한 신흥국이었던 미국은, 자신들의 역사를 바라보던 기준으로 신흥 독립국들을 대하지 않았다. 베빈스는 이 기준을 “내가 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로 요약한다.

1965년 10월 1일 밤 학살에 대해 논의 중인 두 장군
1965년 10월 1일 밤 학살에 대해 논의 중인 두 장군

반둥 회의에서 ‘자카르타 해법’까지

인도네시아는 전후 민족해방 세력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였다. 이는 과거 반제국주의 독립운동의 유산을 계승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한 네덜란드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내 민족의식의 성장을 강하게 억압했다. 네덜란드인이 세운 학교들은 네덜란드의 언어와 역사만을 가르쳤다. 식민 관료들을 위한 인도네시아어 교재에는 “정원사, 마당을 쓸어라!” 따위의 문장이 핵심 어구로 소개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원주민’이 되어 네덜란드인과 구분되는 열등한 위치에 만성적으로 놓인 채 살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민중은 해방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고, 결국 4년에 걸친 전쟁 끝에 1949년 독립을 쟁취한다.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수카르노는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이슬람주의자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형성하며 ‘인도네시아인’이라는 새로운 민족 정체성 형성에 앞장섰다. 이들은 스스로를 인도네시아라는 단일국가 내 정치 세력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전 세계 반식민주의 운동의 일부로 이해했다. 1955년 유엔 가입국의 절반, 전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제3세계 국가들이 모인 첫 번째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의 개최지가 인도네시아 반둥이었다는 사실은, 인도네시아가 반둥 회의를 참관했던 미국 흑인 언론인 리처드 라이트의 말대로 “경멸당하고, 모욕받고, 상처 입고, 빼앗긴 자들, 짧게 말해 인류라는 종의 약자들”을 대변하는 거대한 범세계적 반식민 반제국주의 운동의 중심으로 널리 인정받았음을 보여준다.

반둥 회의에 참가한 피델 카스트로와 말콤X
반둥 회의에 참가한 피델 카스트로와 말콤X
미 제국주의 규탄을 외치는 인도네시아 공산당 지지자들
미 제국주의 규탄을 외치는 인도네시아 공산당 지지자들

위와 같은 변화는 미국 지배계급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공산당의 세력이 강해지자 이들은 더욱 초조해졌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이 소련이 주도하는 공식 공산주의 노선과 구분되는, 자국의 사회적 현실과 문화적 전통에 기반한 독자적인 정치문화를 탄생시켰다는 사실, 여성운동을 포함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해방운동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발전 중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내에서 반공주의 성향이 가장 강했던 군부와 관계를 유지하고 몇몇 핵심 인사들을 지원하며 인도네시아의 정세를 뒤집을 기회를 노렸다.

미국은 CIA를 앞세워 인도네시아 정국에 보다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1958년 미국이 배후 조종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수카르노는 서방과 사회주의 진영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과거 노선에서 벗어나 중국, 쿠바, 북베트남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반서방 노선을 분명히 했다. 수카르노의 중재하에 유지되던 공산당과 군부, 이슬람주의 세력 간 균형이 깨지며 사회 혼란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CIA는 각종 흑색선전을 통해 이를 부추겼다. 과거와 같은 해방적인 에너지가 사라진 인도네시아는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과 같은 긴장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1965년 9월, 해당 폭발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공산당이 배후에 있다고 지목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까지 해당 쿠데타의 진정한 배후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당 쿠데타를 하루 만에 진압한 군부(와 이들의 뒤에 있던 미국)가 정세의 주도권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CIA의 지원을 등에 업은 수하르토 장군의 지휘 아래 놓인 군부는, 혼란에 빠진 인도네시아 사회를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공산주의자’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다. 공산당원이 아니더라도 교사나 지식인, 노동조합원 등 공산주의에 호의적으로 여겨지는 이들 모두 군경과 극우 민병대의 타깃이 되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고 고문받고 살해되었다. 길거리부터 바닷가까지, 인도네시아 전역이 하나의 거대한 처형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일 년 사이 최소 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살해되었고, 또 다른 백만 명이 투옥되었다.

군부의 뒤에 있던 미국은 이러한 ‘변화’에 내심 기분 좋아했다. 국가안보위원회 자문 맥조지 번디는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최근 몇 년간 미국의 대인도네시아 정책의 놀라운 귀결”에 대해 보고했고,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의 로버트 마르텐스는 “내 손에 많은 피를 묻혔지만,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며 으스댔다. 그렇게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공산주의 운동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 이후 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수하르토 군부정권은 미국의 대외정책 논조에 적극 협조했다. 이제 인도네시아는 진보적 민족해방운동이 아니라 친서방 극우 반공 독재의 동의어가 되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던 제3세계 개입 정책에 ‘자카르타 해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자카르타에서 브라질리아까지, 제3세계 해방과 폭력의 이중주

역사서로서 『자카르타가 온다』의 가장 큰 장점은 역사에 대한 특유의 입체적인 접근법이다. 베빈스는 인도네시아 학살의 문제를 단순한 통계의 문제로 다루지도, 이에 연루된 당사자들의 사연을 무력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박제시키지도 않는다. 그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프란체스카부터 십 대 하노코까지, 당대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당사자들에게 직접 마이크를 건네며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호명한다.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그 운동에 매료시켰던 이유인 진보와 해방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서사는 새로운 생동감을 얻는다.

냉전 사학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에 따르면, 19세기 이후 비서구 세계에서의 반식민주의 운동의 핵심은 “다른 지역의 사람이 주인 노릇을 하는 제국들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근대성을 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제국주의라는 이름의 가짜 계몽과 해방에 맞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진짜 계몽과 해방을 쟁취하고자 한 것이다. 말하자면 “네가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네가 하는 대로 하겠다”고 외친 것이다. 이는 『자카르타가 온다』 속 인도네시아 활동가들의 사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은 탈식민 민족해방 운동이라는 거대한 동시대적 조류의 일원으로서, 반공 권위주의와 신제국주의라는 시대의 반동적 파도에 당당히 맞서 싸우다 패배한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베빈스의 이러한 시각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냉전 반공주의하에 놓여 있던 다른 지역, 특히 브라질에 관한 묘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먼로 독트린 시절부터 라틴아메리카를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여기던 미국은, 1959년 쿠바 혁명의 성공 이후 대륙 전체로 뻗어나가던 반미 민족해방운동의 에너지를 억누르기 위해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 실시했던 것과 비교해도 대단히 억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다. 브라질의 경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국가라는 점, 인도네시아 때와 마찬가지로 군부가 미국에 대단히 친화적이라는 점, 그리고 1961년에 취임한 주앙 굴라르 대통령이 임금 인상과 노조 관계 개선, 투표권 확대와 같은 ‘공산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며 비동맹 외교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요 타깃이 되었다. 이후 1964년에 일어난 군부 쿠데타로 브라질에는 21년간 군사 정권이 들어선다. 이는 인도네시아 쿠데타 1년 전에 발생했지만, 원인과 전개 모두에서 대단히 유사한 면모를 지닌다.

이후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군사정권은 미국의 냉전기 제3세계 정책의 대표 성공 사례로 여겨지며, 칠레와 같은 이후의 비슷한 공작에서 중요한 참고 사례로 작용하게 된다. 1974년 아옌데 정권을 전복한 피노체트의 쿠데타 시기에는 해당 쿠데타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산티아고의 부유층 거주지에 “자카르타가 온다”는 내용의 문구가 내걸리기도 했다. 위와 같이 국가와 시대를 아울러 학살의 연원을 추적하는 베빈스의 접근법은 인도네시아 학살을 단순히 인도네시아라는 한 국가의 문제를 넘어, 냉전 시대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국제 반공주의 프로젝트라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베빈스는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너무 진심으로 믿은 이들, 민주주의를 너무 많이 믿은 이들, 미국이 실제로 지지한 것이 아니라 지지한다고 말한 것, 곧 부자 나라들의 행동보다 말을 믿은 이들”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큰 패자였다고 평가한다. 『자카르타가 온다』는 바로 그 패자들에게 바치는 추도사이자, 그들을 패배시킨 정치 세력의 부활과 전면화의 가능성에 대한 서늘한 경고장이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와 베네수엘라·이란 연쇄 침공을 거치며 미국 주도 자유주의 질서가 그동안 쓰고 있던 위선의 탈마저 벗어던지며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위와 같은 책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과거 사건에 대한 해석을 넘어 현시대 우리의 모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준거점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반공주의 프로파간다
미국의 반공주의 프로파간다

‘자카르타 해법’과 ‘계엄령’, 그 서늘한 데자뷔

『자카르타가 온다』를 읽는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책의 묘사를 결코 남의 이야기인 양 중립적으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을 아우르는 냉전기 반공 군사독재 정권의 국가 폭력에 대한 묘사가, 같은 시대 한국이 경험했던 억압과 학살의 역사와 상당 부분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순항쟁과 4·3항쟁과 같이 냉전 극초반이자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1945년 광복부터 1950년 한국전쟁 이전까지 발생한 국가 폭력 사례들이 강하게 연상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학살과 마찬가지로, 당시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일어난 반공 학살은 한국전쟁과 함께 반공 대한민국의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김득중에 따르면, 여순항쟁 전후 이승만 정권이 전면화한 반공의식은 “폭력과 법제·사회적인 통제를 통해 국민/비국민이 끊임없이 분리되고, 결국 ‘빨갱이’는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주체로서 국민 범주에서 배제”하는 체제의 기틀이 되었다. 이는 책 속에서 묘사되는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의 사례와 놀랄 만큼 유사하다. “한국은 끔찍한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갔다”는 한국판 서문에서 베빈스의 말이 단순한 수사적 표현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자카르타 해법’ 이전에 ‘여순 해법’, ‘제주 해법’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기억은 베빈스가 “가장 최근에 있었던 권위주의로의 회귀 시도”라고 정의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해당 사건을 “동시대 세계 체제하에서 가장 이례적인 사례”로 묘사한 베빈스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이는 무맥락적으로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는 1987년 제도적 민주화 달성 이후 점진적으로 극복 중이었다고 평가되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지난 반공 권위주의 정치의 전면적인 귀환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졌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사령부의 논의 문건에 참고 사례로서 여순항쟁과 4·3항쟁이 명시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위와 같은 12·3 내란 전후 윤석열과 그 지지자들이 보여준 정치적 정동은 인도네시아와 브라질같이 냉전 시대에 반공 권위주의 체제를 경험했던 다른 국가들의 극우화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극우 정치는 단순한 현실 정치적 수사나 학술적 논의를 위한 담론적 가설, 혹은 몇몇 개별적 혐오 발화와 범죄의 묶음 따위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들의 극우화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스 정도를 제외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랫동안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경험하며 살아온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그것과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극우는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를 넘어 민주공화국 전체에 실질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선대 반공 권위주의 통치자들로부터 정치 언어와 조직을 계승해 이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체적인 위협이다.

극우 윤어게인 집회
극우 윤어게인 집회

‘반극우 반둥 회의’를 위한 국제연대의 가능성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오지 않았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져 식상할 정도가 된 안토니오 그람시의 격언이다. 그러나 한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옛 냉전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이들 반공 지배 세력은 단 한 번도 ‘낡은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나 사회문화적 백래시 등 겉으로 드러나는 지배 속성에 변화가 있었을지언정,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국가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새것’이 오는 것을 필사의 힘을 다해 막아왔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한국의 윤석열,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에서 보듯 이들은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 잡은 이후에도 스스로의 위치를 재정립해 집권해 왔으며, 2022~23년 브라질 쿠데타 모의와 2024년 한국의 12·3 내란에서 보듯, 자신들의 입지가 위협받는다고 느껴질 시에는 과거 자신들의 권력을 지탱했던 폭력적인 수단들을 다시 동원해 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시도할 준비 역시 되어 있다.

내란 이후 한국에서 윤석열 등 극우 세력의 준동에서 보듯, 이들을 한 번의 정권교체나 몇 번의 사법적 처벌만으로 한 번에 청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해당 세력에게 새롭게 힘을 불어넣어 준 경제사회적 불평등이나 국수주의 및 군사주의의 강화와 같은 사회적 모순의 파장이 여전함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행인 것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옛 냉전 권위주의 국가들에 강력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냉전 시대에는 자국의 반공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이어 왔고, 탈냉전 시대에는 신자유주의 국제화의 파도에 맞서 공공성과 노동권, 사회정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진행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제도적 진보 정치의 영향력이 약했던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인도네시아 사회운동은 여성운동, 빈민운동, 환경운동, 성소수자운동 등 인도네시아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투쟁을 이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그동안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단일 국가 내 사회운동의 힘만으로는 현재 닥쳐오는 극우화의 파도를 막기 힘들다. 과거 냉전 시대의 반공 권위주의 체제가 단순히 특정 국가 지배 세력의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당대의 범세계적 냉전 체제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듯, 현재 극우 정치의 발흥 역시 단일 국가의 정세로 환원되지 않는 국제적 변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 제3세계 반식민 민족해방운동이 그러했듯 공동의 목표 의식에 기반한 범지구적인 국제연대, 말하자면 일종의 ‘반극우 반둥 회의’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냉전 시대에는 반공주의와 개발독재, 민주화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공통 경험이 존재하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사회운동과의 국제연대 심화가 필수적이다.

베빈스는 『자카르타가 온다』 이후 출간된, 기자 시절 본인의 경력을 살려 브라질, 이집트, 칠레, 우크라이나 등 2010~20년대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을 인터뷰한 책인 『광장의 역설』에서 진정한 변화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면,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민주적이고 책임감 있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시간의 시험을 견딜 수 있는 운동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우리가 앞서 검토한 ‘반극우 국제연대’의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의 연대가 단순한 언어적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실체를 갖추어 이루어질 때, 우리는 “20세기의 가장 큰 패자”였던 이들이 21세기에는 과연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다.

글 : 김원 |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