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가부장제를 흔든 #metoo 물결
2026년 3월 31일
이 글은 2023년 3월 플랫폼c 동아시아 공부모임이 발간한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에 실려있다. 이 책의 개정판은 지난 2026년 2월 21일에 출간됐으며, 신청 링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미투 운동(MeToo movement)은 2017년 미국 영화감독 하비 와인스틴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폭로를 위해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MeToo를 기입하면서 대중화됐다. 이후 세계 58개국으로 확산되어 그해 10월에 170만 건을 돌파했다. 한국에서도 직장과 학교에서 여성들이 겪은 성폭력을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면서 미투운동이 폭발했다.
한국의 미투운동
물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더 많은 행동들이 있었다. 일본 위안부 피해 회복 운동은 그 선구였고, 미국 ‘미투’ 물결이 일기 1년 전인 2016년 10월에도 문단과 영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폭로 운동이 있었다. 박진성·박범신·함영준·배용제·김수·이이체·이준규·백상웅·김도언·황병승 등의 가해가 이 시기에 폭로됐다. 이후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기폭제로 2018년 미투운동이 본격화되어 문화예술계·정치권·체육계·대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 터져 나왔다. 이는 분명 대중적 여성운동의 성과다. 실명을 드러내고 성적 괴롭힘을 고발한 사건 가운데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은 재판부가 피고인의 ‘성인지 감수성’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유죄판결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미투운동은 주로 위계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이 다수를 이룬다. 이는 단순히 남녀 간의 성적 접촉의 문제가 아니라, 일터 및 공적영역에 깊숙이 자리잡은 권력의 문제이자, 저평가된 노동력을 강요하는 성차별 문제임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남성중심 문화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방증했다. 요컨대 미투운동은 갑작스런 돌출로 인한 투쟁이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디지털 포르노그라피 반대 운동, 불법촬영물 근절 및 수사 촉구 운동, 낙태죄 반대시위 등 집단 의지의 고양과 직접 행동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여성혐오’라 불리는 현상이 부상한 이래, 이를 제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국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여성들은 구조적 임금 차별과 고용 차별, 직장내 성차별의 심화 속에 위기를 느꼈고, 스스로 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
미투운동 이후 제왕적 권위를 휘두르던 몇몇 남성 셀럽들이 현장에서 물러나고, 법적 조치를 받은 것은 큰 성취로 기록될만 하다. ‘동의하지 않는 성적 접촉은 성폭력’이라는 인식이 확장된 점도 마찬가지다. 이는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의 증거를 제시하라는 행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성폭력 개념을 재정의해 가자는 움직임이다.
중국 : 검열과 탄압을 넘어
미투운동 전부터 중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차별에 맞서 싸워왔다. 2015년 3월 8일 국제여성의날, 리마이즈, 웨이팅팅, 정추란, 우룽룽, 왕만 등 여성운동가들은 대중교통 성희롱에 항의하는 전단지를 배포하고자 계획했다. 한데 이들은 시위 전날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37일간 구금됐다. ‘페미니스트 파이브’(다음 페이지 상단)로 알려진 이들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 연대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섯명을 석방하라’(#FreetheFive) 청원에만 2백만 명이 서명했다. 37일 만에 석방된 이들은 억압적 현실에 도전하는 중국 여성의 상징이 됐다. 가령 ‘페미니스트 파이 브’ 중 한 명인 리마이즈는, 2012년 밸런타인데이에 가짜 피를 묻힌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랑은 폭력의 핑계가 아니다’ 등 문구를 쓴 피켓을 들어 베이징 한복판에서 가정폭력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대학 입시에서 여성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제도에 반대하고, 여성 공중화장실을 늘릴 것을 요구하는 등 페미니즘 실천을 지속했다.

미투운동의 세계적인 확산 이후 2018년 1월 미국에 체류하던 뤄첸첸(罗茜茜)은 2004년에 본인이 베이징항공항천대학 박사과정으로 있던 당시 지도교수 천샤오우(陈小武)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명성있는 공학자 천샤오우가 성추행 가해자로 고발된 것은 중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뤄첸첸의 고발 이후, 해시태그 #我也是(미투)의 물결이 시작됐다. 이후 천 교수에게 성폭행·성추행 피해를 입은 증언자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미투운동이 본격화됐다. 12개 대학 수천 명의 학생 및 졸업생들이 성추행에 대한 법적 조치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그 정점은 베이징대학 중문과 선양 교수 성폭력 사건이었다. 1998년 선양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자살했던 사건이 친구의 폭로로 드러나고. 진상규명과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선양의 교수직은 단 5일만에 박탈됐다.
미투운동 에 대한 반응이 거세지자 중국 정부는 검열을 강화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관련 해시태그를 사용하던 여성들은 인터넷 발화에서 중국어로 ‘미투’로 발음되는 ‘米兔’(쌀토끼)나 쌀과 토끼 이모티콘 조합을 추가했다. 이렇게 해서 ‘쌀토끼’가 미투운동의 상징이 되자, 이 역시 검열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검열 속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저항은 계속됐다. 2021년에는 한국 SM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아이돌그룹 ‘엑소’의 전 멤버 우이판(吴亦凡)의 미성년자 강간 혐의와 여러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폭로됐다. 수많은 여성들의 항의 행동으로 우이판은 모든 명예를 잃고 구속됐다. 당시 미투운동 지지에 참여한 여성들은 피해 당사자 한 사람을 위해서뿐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에서 많은 감정적·지적 노동으로 기여했다. 분노하거나 좌절하기도 했지만, 항의를 멈추지 않았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주류 사회와의 화합을 내던지고, 행렬에 동참했다.
국가와 언론의 외면과 외부 검열 속에서도 이름 없는 여성들의 노력이 수년 내내 확대됐다는 점은 중국 미투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언론들은 좀처럼 보도하지 않고, 제도적으로도 여러 장벽이 있지만 이 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지속적인 탄압으로 공공성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조건에서 여성주의 운동은 공론장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느껴진다. 2019년경 중국에서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 대륙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으로서 매년 300억원의 수입을 올리던 우이판이 결국 구속될 수 있었던 것도 끈질긴 대중 행동에 기인한다. 2022년 11월 백지시위를 이끈 이들로 젊은 여성들이 주목되고 있다는 점, 여전히 석방되지 못한 이들이 모두 청년 여성들이라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시진핑 집권기 시민사회 영역이 크게 위축되고, 통제가 강화되는 압박 속에서 페미니즘 실천은 자신의 역할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부당한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주류 사회가 페미니즘의 존재를 재인식하게 했다.
일본 : 이토 시오리와 ‘플라워 시위’
이토 시오리(伊藤詩織)는 2015년 전 TBS 기자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도쿄방송 워싱턴지국 프로듀서 자리를 알아봐주겠다는 야마구치의 제안에 그가 정한 식당을 찾아갔다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 이후 정신을 차리고 나니, 호텔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CCTV 기록과 택시 기사·호텔청소부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일본 검찰은 가해자를 ‘혐의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2017년, 이에 이토 시오리는 월간지 『문예춘추』를 통해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고, 언론 인터뷰와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사건이었고, 일본 미투운동의 출발점이 됐다.
2017년까지 일본에선 성폭행죄가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범죄로 성립되는 친고죄였다. 메이지시대에 강간죄 관련 법이 제정된 후 110년 동안이나 큰 틀의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형법 개정으로 친고죄 조항은 폐지됐지만, 성폭행 피해를 신고한 여성들은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사건으로 수사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토 시오리는 미투 폭로 이후 협박과 비난에 시달렸고, 재판에서 지면 일본에서 살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는 결국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담은 『블랙박스』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가해자 야마구치는 당시 총리 아베 신조와 친분이 두터웠고, 아베 총리를 주인공으로 추켜세우는 『총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토 시오리는 자신의 책에서, 아베가 자신을 홍보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해 경찰 체포를 중지시키고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데 관여했을 것이라며, “정치권 개입”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이 확산되는 것에 용기를 얻었고, 미투운동을 거울삼아 자신이 저널리스트인 점을 적극 활용해 사건 발생 초기의 형사 소송부터 민사소송과 일본 언론 인터뷰를 활용한 여론전을 펴기로 결심한다. 일본 법원은 이토 시오리가 피해 직후 친구·의사·경찰에게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 등 사실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진술을 하고 있으며, 허위 진술을 할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 판결에서 피고 야마구치는 원고 이토 시오리에게 위자료 등 330만엔(약 3400만원)을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끈질긴 미투운동의 승리였다.
이토 시오리를 지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2만5천 명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이토 시오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개인과 단체들이 모여 ‘#WeTooJapan’ 프로젝트를 만들기도 했다. 성폭력과 성희롱, 권력형 괴롭힘 등 모든 폭력을 용납하지 않고 근절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2019년 이토 시오리에게 연대하는 ‘플라워 시위’도 미투운동의 연장선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 플라워 시위는 매달 열렸고, 여성들은 지하철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등 행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미투운동의 확산이 유의미하게 지속되지는 못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쇼지 가오리는 일본에서 미투운동이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일본 사회는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이고, 여성들은 차별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여성이 오랫동안 성범죄에 대한 잘못의 책임을 져 온 가부장적 사회에서 피해 여성은 지지와 정의를 찾기보다는 범죄와 희롱을 잊어버리려 노력한다”고 분석했다. 이토 시오리가 받은 협박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정형화, 가해성 글들은 일본 사회의 여성 차별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토의 미투 이후에도 다른 미투 폭로들이 있었다. 하지만 폭로 여성의 트위터에 많은 네티즌들이 몰려와 “거짓말”, “여성의 잘못” 등 댓글을 다는 백래시(backlash, 반격)가 빈발했다. 너무 빠르고 강하게 역풍이 불어, 침묵으로 돌아서는 피해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여기엔 여성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이 보수적이라는 점도 원인이겠지만, 일본 사회운동의 약화와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풍토에서 여성들이 차별에 맞선 투쟁에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960년대 불붙은 학생운동의 퇴조, 1990년대 경기 침체 후 우경화를 겪은 일본에서는 90년대부터 이미 역사수정주의와 헌법개헌 등 정치적 백래시와 함께 젠더 백래시가 진행됐다. 거대해진 보수연합의 물결은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우익세력이 주축이었다. 위축된 페미니스트들은 전문성을 이유로 분리되어 위안부 문제와 격리된 채 우익에 대한 공동의 대항담론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일본의 미투운동은 우익 애국주의와 대중의 ‘페미니즘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해 가시화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유의미한 성과들도 있었다. 이토 시오리의 성폭행 피해 투쟁과 폭로는 지식사회의 관심을 촉발했고, 시민단체들과 활동가이 목소리를 꿈틀대기 시작했다. 성폭력과 관련해 절판됐던 책들이 재출간하거나, 성폭력 피해의 법적 지원이나 의료 지원 등을 다룬 책의 출간도 늘었다. 젠더연구자나 여성운동가들이 자신의 페미니즘 지식과 연결하며 젠더담론과 여성운동을 가시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접국 한국의 영향도 확인된다. 일본 미투운동을 이끌어온 기타 하라 미노리는 “일본 여성들이 한국의 페미니즘 서적, 영화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플라워 시위는 “한국의 위안부 운동과 촛불시위의 영향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당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전엔 움직일 수 없다는 자기규제가 있”는데, “한국 여성들이 미투운동에서 보여준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영감을 줬다”고 한다.
여성 억압이 극심한데도 젠더 이슈를 다루지 않으려는 주류 언론과 사회적 풍토 속에서 여성들은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2년 들어 영화배우이자 감독 사사키 히데오와 영화감독 소노 시온, 배우 기노시타 호카 등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는 등 미투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언론들은 여전히 성문제를 다루기 꺼려하는 경향이 강하고, 제도 개혁도 충분하지 않아, 향후 여성운동의 과제들로 남아있다.

대중운동과 국제연대
부당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한 국가를 넘어서 국제적이고 연쇄적인 ‘미투’ 물결을 불러왔다. 각국 여성들은 국가와 인종, 정체성을 막론하고 당사자의 용기에 고무되었고 과감하게 광범위한 운동의 일부가 됐다. 미투운동의 분명한 성과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기존 여성운동을 넘어, 대중운동이자 문화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피해 여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투쟁을 시작했고, 사회 곳곳에서 부당한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 무엇보다 미투운동은 국제적인 상호참조 속에서 성장해왔고, 동아시아에서 그러한 상호참조의 궤적은 대중운동의 새로운 물결이 어떻게 질적 전환을 이루는지 보여준다. 중국 미투운동은 한국 미투운동 흐름을 긴요하게 참조하며 성장했고, 이러한 보이지 않는 연대와 교통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만연한 가정 폭력과 성매매는 드러나지 않은 미투운동의 영역이다. 여성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영역이지만, 가정과 성매매는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을 은폐하고 흡수하는, 보이지 않는 스펀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미투운동에도 한계는 있다. 우리는 아직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개인에 기반한 삶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많은 여성들이 위력에 기반한 성폭력을 겪고 있는데, 이는 개념없는 소수 남성의 일탈적인 폭력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 낮은 사회적 지위와 차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재생산 문제 등에 기반해 이뤄진 사회적·제도적 폭력이다. 사회와 제도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성폭력의 근본적 해결은 난망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투 이후 여성들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있어 공동체의 지지는 매우 중요하다. 미투 당사자와 연대하는 ‘위드유’는 당사자들을 보다 주체적이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미투운동을 발전적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조장하고 악용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차별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끼리만 할 수는 없다. 남녀 모두가 성평등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페미니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 「미투운동 중간결산 : 지금여기에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말했듯,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고, (결별해야만 하는 낡은) 과거와 미래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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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플랫폼c 동아시아 공부모임,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