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자본질서』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2026년 1월 7일
클라라 E. 마테이의 『자본질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는 주로 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시점에서 영국과 이탈리아의 경험을 통해 긴축정책 도입의 배경과 관철 과정을 다루고 있다. 1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가져온 변화와 계급 투쟁의 고조 과정을 다룬다. 2부는 고조된 계급 투쟁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긴축 정책의 성격, 설계 및 관철 과정, 실제 효과, 그리고 현재에까지 미치는 영향 등을 담고 있다.
전쟁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제1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을 넘어 무기 생산력과 산업 수준이 승패를 가르는 산업 전쟁이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과 이탈리아 정부는 기존의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 관행을 포기하고 시장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은 초기에 기업의 자율적 역량에 맡기는 자유가격 메커니즘을 신뢰했으나, 기업들이 전쟁 필수품 대신 수익성 높은 사치품 생산과 수출에만 몰두하며 공급 부족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자 결국 공업과 농업 전반을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러한 국가의 개입은 해운업 국영화, 물자 선적량 할당, 국영 조선소 운영 등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 역시 행정부가 입법부를 무력화할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동원해 공공 지출을 GDP 대비 40%까지 늘리며 국가 주도의 산업 체제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을 깨뜨리며 군수 공장과 광산을 직접 소유하거나 민간 업체의 생산량과 가격을 결정했다. 이러한 전면적 개입은 경제 질서가 결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연 법칙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에 따른 정치적 선택의 산물임을 대중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은 자본과 노동의 권력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대규모 징병으로 유휴 노동력이 고갈되자 노동자의 교섭력이 강화되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대응하여 국가는 노동력을 강제로 확보하기 위해 공장을 병영화하 고 노동을 군사화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예비 공장으로 선정된 사업장이 군사 관할권 아래 놓여 강제 노동 소집과 집단행동 처벌이 가능해졌다. 영국 또한 군수조달법을 통해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통제하며 노동 이동성을 제한했다.

노동자들은 15~16시간의 가혹한 노동과 이동의 자유 제한에 시달렸지만, 동시에 잉여가치 추출이 시장 원리가 아닌 국가의 기획에 의한 정치적 행위임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경제의 힘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며, 힘을 분배하는 체제는 투쟁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체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각성은 종전 후 단순한 임금 인상을 넘어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임금 관계 자체를 타파하려는 경제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토리노의 안토니오 그람시와 신질서(L'Ordine Nuovo) 그룹은 가장 급진적이고 체계적인 도전을 이끌었다. 1919년 창간된 주간지 ‘오르딘 누오보’는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 사회의 근본 동기와 실천적 조직에 대한 토론과 교육의 장을 제공했다. 그람시는 부르주아식 지식 체계를 전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안적 노동자 질서를 제안했다.
- (1) 자본주의에 대한 탈순응화 : 현재의 사유재산제와 임금 제도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역사적 생산관계의 산물이며, 강력한 계급 투쟁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재창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 (2) 노동자의 행위 주체성 :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사회 건설의 주인공이어야 하며, 그 힘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 단결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 (3) 지식과 실천(Praxis)의 결합 : 이론과 실제의 이분법을 깨고, 공부 모임과 집단 토론을 통해 노동자와 지식인이 상호 교육하며 변혁적 역동성을 강화했다.
- (4) 정치와 경제가 통합된 평의회 체제 : 이들은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부자유 상태에서는 진정한 정치적 자유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생산 공정 전체를 노동자가 직접 통제하고 자주권을 행사하는 공장 평의회를 대안적 경제 체제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이러한 사상은 1920년 붉은 2년의 공장 점거 운동으로 정점에 달했다. 50만 명의 노동자가 제철소, 광산, 조선소를 점령하고 직접 생산, 거래, 판매를 통제하며 계급 질서 없는 산업 관계를 실제로 구현해냈다. 노동자들은 공장의 주인이 되었다는 벅찬 마음으로 붉은 깃발 아래 행복해하며 자율적 생산자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자본가 계급의 맹렬한 반동을 불러왔고, 결국 파시즘의 폭력을 통해 자본주의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지배 계급의 반격으로 이어졌다.

긴축의 탄생과 배신
클라라 마테이는 긴축을 단순한 재정 관리 정책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무장해제하고 사유재산과 임금 관계에 대한 저항을 막기 위해 설계된 정치적 방어 기제로 보고 있다. 긴축은 재정, 통화, 산업이라는 세 가지 긴축 정책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삼위일체로 작동하며, 강압과 합의라는 두 가지 전략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적·경제적 행위 주체성을 부정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각각의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다.
- (1) 재정 긴축 :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역진적 과세를 통해 노동자의 소득은 줄이고, 국채 상환 등을 통해 자원을 소수 투자자 계층으로 이전한다. 또한 이것은 대중의 생존권 및 재분배 정책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약화시키며, 노동자들은 공적·집단적 해결책을 급진적으로 요구하기 보다, 개별적인 생존을 위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협조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 (2) 통화 긴축 : 고금리 정책으로 신용을 수축시켜 인위적인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유발한다. 이는 노동자의 교섭력을 하락시키고 임금 삭감에 저항할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 (3) 산업 긴축 : 직접적인 임금 억제와 노동 규율 강화를 통해 자본 축적의 토대를 재건한다. 파업 금지와 같은 법적 조치뿐만 아니라, 실업이라는 위협을 통해 노동자 간 경쟁을 심화시켜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1920년 브뤼셀 회의와 1922년 제노바 국제 재정회의는 현대 긴축의 원칙을 확립한 역사적 기점이었다. 이 회의들의 특징은 정치가보다 경제 전문가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경제를 정치적 논쟁으로부터 분리해 불편부당한 과학의 영역으로 격상시켰으며, 중립성을 표방한 기술관료적 지배를 통해 민중의 민주적 요구를 원천 봉쇄했다. 경제학은 소득 범위 내 지출이라는 도덕적 수사법을 동원했지만, 그 실체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고 저축 능력이 있는 계급으로 자원을 이동시키는 장치였다.
영국 재무부의 기술관료들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를 무절제한 계층으로, 자본가를 도덕적인 저축자로 묘사하며 긴축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이 노골적인 폭력을 동원해 긴축을 집행함으로서 국제 자본의 신뢰를 얻었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자본주의 안정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칭송했다. 영국에서도 긴축은 좀 더 세련된 형태의 폭력으로 관철되었다.

데이터는 긴축의 승리가 곧 노동계급의 처참한 패배였음을 증명한다. 1920년대 긴축 정책이 본격화된 후, 영국과 이탈리아 모두에서 GDP 대비 임금 비율인 노동 소득 분배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반면 자본의 이윤율은 가파르게 상승하며 자본과 노동의 역학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소비하라는 긴축의 구호가 그대로 대중에게 적용되었다. 빈곤율은 치솟았고 실질 임금은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체되거나 하락했다. 저자는 이러한 파괴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긴축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 제기가 적은 것은 긴축의 추진 동기가 철저히 정치적이었음을 방증한다고 서술한다.
긴축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며 대중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마거릿 대처 정부의 등장은 긴축이 다시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처는 계급 문제 대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며 노조를 파괴하고 공격적인 민영화를 단행했다. 유럽에서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유럽 중앙은행(ECB)의 재정 준칙을 통해 긴축이 법제화되었고, 이는 회원국들의 민주적인 확장 정책 수행을 차단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긴축의 영향은 다음과 같은 양상으로 반복된다.
- (1) 기술관료주의와 반민주주의 :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가상적인 경제 모형을 근거로 대중의 삶을 결정한다. 이는 민중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 (2) 불평등의 고착화 : 현대의 긴축 매파(강경파)들은 긴축이 소득 불평등을 영속적으로 심화시키더라도 기업 이윤 비중을 높여 자본 축적을 돕는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긍정한다.
- (3) 위기의 비용 전가 :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는 금융기관과 대기업 구제에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이후의 재정 적자 회복은 항상 복지 삭감과 노동 유연화라는 긴축 정책으로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
- (4)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착취 : 이탈리아의 일자리법처럼 ‘경제적 이유’로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만드는 법안들은 긴축이 추구하는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이다.
결론적으로 마테이는 긴축이 단순한 경제적 계산 착오가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영악한 반격임을 경고한다. 우리가 경제를 민주적 통제 밖의 중립적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한, 긴축이 설계한 자본의 질서라는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경제는 다시 정치적 투쟁의 영역으로 돌아와야 하며, 노동자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만이 이 굴레를 끊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한다.
마테이의 목소리와 우리의 과제
이 책은 ‘산업 긴축’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긴축을 단순한 ‘예산 삭감’이나 ‘정부 지출 축소’라는 경제 정책의 틀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긴축이 자본주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라는 측면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케인즈주의자들이 긴축을 이론적 실수나 잘못된 경제적 관점에서 비롯된 그릇된 해법으로만 보았던 것과 달리, 저자는 긴축을 자본의 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한 합리적인 계급 전략으로 인식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긴축이 자본에게 돌아가는 몫의 영속적인 상승을 가져올 수 있음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이른바 긴축 매파의 입장을 아주 잘 설명한다.
한편, 긴축이 가져오는 자원의 역진적 재분배 메커니즘에 담긴 정치적인 계기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긴축 자체가 경기 침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주장은 다소 과도해 보이며, 이것은 일정 부분 계급 투쟁이 고조되었던 1920년대 영국과 이탈리아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저자 역시 내수의 지속적 억제는 장기적 자본 축적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긴축이 자본주의식 생산 관계를 존속시키는 효과적 도구임을 강조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또한 산업 긴축을 계층적 생산 관계가 평화롭게 유지되며, 노동 비용을 낮추어 생산비를 낮추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자본이 늘 추구하는 것임에도, 이것을 따로 긴축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의문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 긴축 논의가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산업과의 연관, 그리고 그 이면의 계급 관계를 명료하게 보여주면서, 그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토론 자리에서는 이탈리아에서의 계급 투쟁 경험과 신질서 그룹이 추구했던 평의회 구상이 인상적이었으며 오늘날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 투쟁에 연대하는 모습도 떠올리게 했다는 의견, 정치적인 계기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경제학이라는 존재를 가정한 전문가적 보수주의에 대한 우려, 위기 국면에서 적극적인 확장 재정을 통한 대중의 생존권 보장 및 공적 자금으로 주택을 매입하여 공공임대 주택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대안 개발의 중요성, 이재명 정부의 친기업 지원책 등 과 구분되는 공공적 개입 방안 요구, 균형재정론 자체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파산한 균형 재정 정책의 결과에 대한 실증적 폭로 등 다양한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글 : 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