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 다인종·이슬람·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가로지르는 대안 전략

말레이시아 | 다인종·이슬람·신자유주의의 모순을 가로지르는 대안 전략

"지난 500년 자본주의는 형태를 바꾸며 계속 우리를 지배해 왔습니다. 이 구조를 깨려면, 어느 한 나라의 좌파가 혼자 잘 싸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3세계의 좌파·노동·농민 운동들이 서로 배우고, 서로 솔직하게 비판하고, 함께 현실적인 사회주의 이행 전략을 만들어야 합니다."

2025년 11월 16일

[동아시아]말레이시아인종주의, 민족주의, 말레이시아, 불평등, 진보정당, 동아시아, 동아시아와 사람, 인터뷰

플랫폼C는 11월 3일 말레이시아사회당(Parti Sosialis Malaysia, PSM)과 간담회를 열어 말레이시아 정치의 현실, PSM의 활동과 전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정상회의를 규탄하는 국제민중회의 참석 차 방한한 PSM 측에 플랫폼C가 먼저 제안하면서 이번 간담회가 성사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PSM 대표 마이클 제야쿠마르 데바라즈, PSM의 오랜 당원 라니(활동명)를 비롯해 플랫폼C의 여러 활동가와 회원들이 참석했다. PSM은 1998년 창당 이후 최저임금법 실시, 정리해고 시 실업수당 인상, 의료민영화 반대 같은 의제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노동계급과 소외된 공동체를 위한 광범위한 풀뿌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간담회는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으며, 앞의 1시간은 제야쿠마르 데바라즈 대표의 발제, 후반 1시간은 질의응답으로 이뤄졌다. 한-영, 영-한 순차통역은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팀에 함께 하는 보리 활동가가 맡았다. 질문은 생략하고, 제야쿠마르 데바라즈 대표의 일관된 발표로 재구성했다. 간담회 전체 영상은 플랫폼c 유튜브 채널에 발제와 질의응답으로 나눠 업로드되었다.

먼저 감사의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세계 곳곳의 진보·사회운동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주말 내내 집회와 프로그램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그 바쁜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준 것 자체가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네 가지를 순서대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첫째로PSM에 대해 소개하겠고요. 두번째로 말레이시아의 사회 구조와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서 그간 PSM이 해 온 활동들에 대해 소개하려고 하고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장기 전략과 사회주의 이행 구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말레이시아사회당

그럼 먼저 말레이시아사회당이 어떤 조직인가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말레이시아사회당 대표(chairperson)인데요. 우리 당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당원은 약 2,000명 정도이고요. 적극적 지지층까지 모두 합치면 4만 명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국회 의석이 없고, 과거에 한 차례 국회의원 1명, 주의회 의원 1명을 배출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정당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는 꽤 대담합니다. 20~25년 안에, “현실적인 집권 대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진보적 연합을 만들고, 국민에게 “저들보다 우리가 낫다. 우리를 선택하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자는 것입니다. 단순히 항의하는 정당이 아니라, 실제로 나라를 운영할 준비가 된 정치세력이 되자는 거죠.

  • [주] 1980~90년대 말레이시아에서는 '국가안보법'(ISA)을 통한 예방 구금, 사회주의자 단속,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이 지속되고 있었다. 냉전의 여파와 1960~70년대 공산당 무장투쟁의 기억 때문에 좌파적 활동은 거의 불법과 동일시되었고, 진보적 시민사회조차 “사회주의”라는 말을 기피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PSM의 전신을 이룬 활동가들은 당을 만드는 것보다 현장에서 생존권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먼저 택했다. 쿠알라룸푸르·셀랑고르 일대에선 도시 확장과 부동산 개발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거주해 온 빈민들이 강제퇴거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이런 도시 빈민들을 지원하고 함께 싸우면서 점거민 공동체의 자치조직을 만들었고, 이 투쟁은 이후 PSM의 핵심 리더층이 되었다. 그밖에 대농장 노동자 조직화, 제조공장 비정규직 조직화 등을 통해 기반을 넓혔고, 1998년 5월 1일 오랜 현장 조직화에 뿌리를 둔 세력들이 모여
    정식으로 말레이시아사회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8년까지 10년 동안은 정부로부터 정당 등록을 거부당하는 험난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말레이시아 에쓰닉 구조와 불평등

말레이시아는 전형적인 다민족 국가입니다. 대략 말레이계 50~60%, 화인계 23%, 인도계 7%, 사라왁·사바 지역의 토착민 약 10%, 기타 선주민이 약 0.3% 정도입니다.

말레이시아의 민족 구성
말레이시아의 민족 구성

중국계·인도계는 모두 영국 식민지 시기에 강제로 끌려온 인구입니다. 중국계는 상업·광산 노동을 위해, 인도계는 건설·플랜테이션 등 육체노동을 위해 데려온 노동자들이었죠.

1948~57년 독립 당시, 더 발전된 산업 부문에 종사하던 건 중국·인도계였고, 말레이계 농촌은 상대적으로 덜 발전한 상태였습니다. 예를 들어 독립 당시 교사 중 말레이계는 10%에 불과했고, 90%는 비말레이계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차이가 경제적 격차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1970년대 이후 “신경제정책(NEP)”이라는 이름으로 말레이 우대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장학금·공무원 채용·대학 입학 할당제 등 각종 조치가 말레이계에게 유리하게 설계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말레이계는 여전히 뒤쳐져 있습니다. 예를 하나만 들면, 말레이시아에는 “고용연금기금(EPF)”이 있습니다. 노동자는 월급의 11%, 고용주는 13%를 의무적으로 기금에 납부합니다. 2020년 기준 이 EPF에 적립된 개인 저축의 ‘중위값’을 보면, 말레이계가 약 16,938링깃(한화 약 600만원), 화인계 약 45,756링깃(한화 1천600만원), 인도계 약 25,724링깃(한화 900만원) 정도입니다. 정부가 수십 년 동안 말레이 우대정책을 했는데도, 여전히 말레이계 시민들은 가장 적은 저축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더 심각했습니다. 봉쇄로 소득이 끊기자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EPF에서 돈을 미리 찾아 쓰라”고 허용했습니다. 그 결과, 말레이계의 EPF 중위 저축은 1만7천 수준에서 5천 정도로 급락했습니다. 반면 중국계는 다른 저축·자산이 있어 상대적으로 덜 깎였습니다. 이 숫자만 봐도, 말레이계의 취약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말레이 정치의 큰 쟁점 중 하나가 됐습니다. 말레이계는 “우리는 아직도 뒤쳐져 있으니 우대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비말레이계는 “50년 넘게 했으면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이것은 지금도 큰 정치적 갈등의 테마입니다.

말레이시아사회당의 최저임금 인상 및 전국 단일화 요구 시위
말레이시아사회당의 최저임금 인상 및 전국 단일화 요구 시위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의 그늘

말레이시아는 50년 사이 실질 GDP가 24배나 될 정도로 고속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분배는 매우 불평등하게 이뤄지고 있죠. 하위 60%의 시민들은 여전히 하루 10~12시간 노동을 하며 버텨야 합니다. 노령연금은 거의 없으며, 가계 부채는 높고, 5세 미만 아동의 약 20%가 영양부족·발달 지연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총소득(GNI)을 어떻게 나누는지도 볼까요? 노동자 90%가 전체 소득의 28%를 가져가고, 정부가 16%, 상위 10%와 대기업이 나머지 56%를 가져갑니다. 다시 말해, 상위 10%와 기업들이 노동자 전체가 가져가는 것의 두 배를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재정이 없다, 적자다, 빚이 많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이렇게 답합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잘못된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져갈 뿐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보건의료·연금·교육 등에 공공지출을 확대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보수화

세 번째로 말씀드릴 말레이시아의 중요한 현실은 이슬람입니다. 말레이계는 거의 모두 무슬림이고, 종교는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독립 전후 1950~60년대에는 이슬람 운동도 민족해방·반제국주의와 결합된 급진적·민족주의적 흐름이 강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좌파의 영향도 컸고요. 그런데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공산당 학살 이후, 그 영향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공백 속에서 중동에서 미국이 후원한 보수·반동적 이슬람, 이란 혁명 이후의 이슬람 국가 모델 이 영향을 미치면서, 지난 70년 사이 말레이시아 이슬람은 점점 더 보수화되었습니다.

이슬람은 서구·제국주의와 자신을 구분 짓는 정체성의 핵심이라, 좌파가 현실 정치를 하려면 이 문제를 피할 수 없습니다. “무슬림 다수 대중의 감정과 신앙을 존중하면서도, 보수적·억압적인 이용을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가 우리의 난제입니다.


PSM의 조직화 시도

PSM이 고민하며 실천하는 조직화 시도의 첫 번째 축은 “지역 공동체 조직화”입니다. 우리가 조직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은 대략 8개 정도입니다.

  • 도시 빈민과 점거민
  • 플랜테이션 노동자
  • 학교·병원 등 공공부문의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
  • 선주민(원주민) 공동체
  • 소농·소규모 농민
  • 어민
  • 목축 농민(소 사육 농가 등)
  • 플랫폼/긱 노동자

보통 사람들은 생존에 바빠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고 있는 집에서 강제퇴거 위협을 받거나, 직장에서 해고 위기에 놓일 때 비로소 싸울 동기가 생깁니다. 우리는 바로 그 순간에 개입합니다.

예를 들어, 점거민 조직화는 이렇게 이뤄지는데요. 퇴거 위협이 있을 때 찾아가 법적 대응, 항의 행동을 지원하며 신뢰를 쌓고, 그 과정에서 “이 땅에 누가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함께 분석합니다.

정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은 정부 땅인데, 너희는 아무 증서도 없이 불법 점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가 보면, 과거에는 광산이었는데 폐광되어 버려진 땅에 사람들이 들어가 물을 빼내고, 모래를 깔고, 집을 짓고, 주변 도시에서 일하며 도시 경제를 키운 건 주민들입니다.

즉, 그들이 땅의 가치를 실제로 올려온 주체입니다. 그런데 도시가 커지고 땅값이 오르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은 기업들이 개발 명목으로 주민을 쫓아내려 합니다.

우리는 주민들과 함께 이렇게 묻습니다.

“땅의 가치를 올린 건 우리인데, 왜 우리는 쫓겨나고, 기업만 이익을 가져가는가?”

이 분석은 주민들에게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정치적 자각을 줍니다. 그리고 같은 유형의 점거민들을 서로 연결해 네트워크를 만들고, 공통 요구를 모아 전국 캠페인으로 확대합니다. 메이데이 행진 때 ‘점거민 블록’으로 함께 참가하거나, 국회·정부에 정책 요구서를 제출하는 방식입니다.

소농·어민 조직도 비슷합니다. 도시에 토지 수요가 늘면서 정부 땅에서 농사짓던 소농들이 퇴거 위협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의 15개 소농 조직을 묶어, 채소 농민(주로 화인계), 소 사육 인도계 농민, 토지 매립과 해안 개발로 피해를 보는 어민, 식량 안보를 문제제기하는 소비자단체를 모두 연결해 하나의 식량·농업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 네트워크와 함께 대규모 회의를 열고, 농업·어업 파괴에 반대하는 요구를 정리해 농업부 장관·정부에 제출하고, 국회까지 행진해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민족을 가로질러(말레이·중국·인도계 농민이 함께) 싸우는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지난 9월 강제퇴거에 맞서 함께 싸우는 판다마란 주민들과 PSM 활동가들
지난 9월 강제퇴거에 맞서 함께 싸우는 판다마란 주민들과 PSM 활동가들


캠페인과 정치교육

두 번째 활동 축은 전국적인 캠페인입니다. 여기에는 선전물 배포, 온라인·오프라인 서명운동, 기자회견, 토론회, 국회 앞 행동 등이 포함됩니다. 지금까지 PSM이 중심이 되어 벌인 주요 캠페인을 몇 가지 말씀드리죠.

우선 ‘최저임금 제도 도입 캠페인’을 활발하게 펼쳤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최저임금 없는 나라” 말레이시아에 최저임금을 도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노동조합들과 연대해 싸웠고, 2013년 드디어 최저임금법이 통과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정리해고·실업수당 개선 캠페인’을 전개했는데요. 해고될 경우, 거의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실업·퇴직수당 기준을 강화하라는 캠페인을 했고, 우리가 요구한 만큼 강력하진 않지만,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습니다.

세번째로는 ‘보편 노령연금 캠페인’이 있는데요. 65세 이상 모든 노인이 매달 국가로부터 기본 연금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아직 통과되진 않았지만, 국회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됐고, 정부는 늘 “예산이 없다”고 답하고 있긴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공의료 체계 방어 캠페인’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아직 꽤 괜찮은 공공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민영화·시장화 압박이 강합니다. 우리는 “공공의료 체계를 지키자”는 전국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캠페인은 단지 “서비스 개선”만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정치교육의 장입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우리의 공통 문제는 민족(ethnic)이 아니라 계급이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의료·연금의 부재는 말레이·중국·인도·선주민 모두의 문제다. 서로를 나누려는 정치인들을 믿지 말고, 우리 아래로부터 함께 싸우자.”

정부는 이렇게 답변하더군요. “좋은 아이디어지만, 예산이 없다”, “재정 적자다”, “국가 부채가 많다” 등등.

그러자 우리는 온갖 데이터를 들이밀었습니다. 1980년대 법인세율은 40%였지만, 지금은 24%까지 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이 “투자 유치 경쟁”을 하면서 법인세를 서로 깎아내렸기 때문입니다. 세계은행은 늘 “세금을 낮춰야 외국 자본이 온다”고 말했고, 우리는 경쟁적으로 세금을 깎았습니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법인세는 24%이고, 태국은 20%, 싱가포르는 17%입니다.

우리는 대중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건 “바닥을 향해 경주하는 법인세”(corporate tax race to the bottom)이라고요. 서로 죽이는 경쟁이라고요. 왜 우리 정부는 태국·베트남 정부와 ‘이제 더 이상 법인세를 내리지 말자’고 합의하지 않습니까? 왜 그 대가를 노인들과 노동자들이 연금·복지 삭감으로 떠안아야 합니까?

이런 설명을 노령연금·의료·교육 같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피부에 와 닿는 이슈와 연결하면, 사람들은 구조를 훨씬 잘 이해하고 분노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정치교육입니다.

PSM의 공공의료 확충 캠페인 행사
PSM의 공공의료 확충 캠페인 행사

기후위기에 맞선 정의로운 전환

PSM에는 환경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기구가 있고, 꽤 강력하게 활동합니다. 산림 벌목 반대, 광산 개발, 특히 니켈·실리카 채굴 반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대중교통 강화, 자동차 중심 교통체계 비판 등이 주요 의제입니다.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탄소거래), 탄소포집·저장(CCUS), 개인 전기차 확대 등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죠. 우리 말레이시아사회당은 탄소세는 지지하지만, 탄소거래제는 반대합니다.

또한 탄소포집·저장 기술은 사실상 시간벌기용 “허구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기차 역시, 개인 승용 전기차 중심 방식은 막대한 희토류·광물 채굴을 필요로 하고, 또 다른 형태의 환경파괴를 낳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주민들과 함께 하는 PSM의 기후정의운동 캠페인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주민들과 함께 하는 PSM의 기후정의운동 캠페인

젠더·성소수자 이슈와 이슬람 보수주의

젠더·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PSM은 비교적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LGBTQ+는 억압받는 소수자이며, 어떤 소수자에 대한 탄압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도 인간이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입장 때문에 지난 5~6년 사이 젊은 LGBTQ+ 활동가들이 당 안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사회 전체, 특히 이슬람 다수 대중의 정서는 여전히 매우 보수적입니다. 최근 우리 당 LGBT 모임이 온라인에서 프라이드 관련 이미지를 올렸다가 보수 이슬람 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경찰 수사까지 들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일부 LGBT 단체들은 “PSM과 거리를 두겠다. 우리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두렵다” 라며 연락을 끊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우리는 당 내부에서 꽤 진지한 토론을 했습니다. 당의 공식 입장인 “성소수자 억압에 반대한다”는 원칙은 양보할 수 없다고 결정했고요. 그러나 동시에, 이 이슈가 전면에 등장했을 때 이슬람 노동자·청년 일부가 “PSM에 들어가면 내 종교 정체성이 공격받는다”라고 느끼며 멀어지는 현실이 있음을 인식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 내 LGBT 동지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이 당신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만큼, 여러분도 ‘이슬람 다수 노동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설득할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겠느냐?”

원칙을 지키되, 속도와 방식은 운동 내부에서도 토론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지금 말레이시아에서는, 너무 빠르게 전면적 충돌을 일으키면 되레 운동 전체가 위축될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말레이시아 경찰은 PSM 청년부가 기획한 퀴어운동 프로그램과 관련해 당원 2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지난 6월 말레이시아 경찰은 PSM 청년부가 기획한 퀴어운동 프로그램과 관련해 당원 2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혁명 다음 날”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이제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전형적인 개방형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수출이 GDP의 약 70%를 차지하고, 전자부품, 팜오일 등이 핵심 수출품이며,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의 분업 체계 속에 깊이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당내 토론에서 이런 질문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가 집권하면, 다음 날 당장 ‘자본주의 폐지, 전면 국유화’를 선언할 수 있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생산이 멈추고, 수입 식량·의약품을 조달할 외화가 끊기고, 노동자들의 생존도 위협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정으로서의 이행”을 고민합니다. 당장 완전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현 체제보다 ‘왼쪽에 있으면서도, 대중이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과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 재분배로 사회보장망을 강화하고, 노조 조직률을 의무적으로 끌어올리고(예: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은 필수적으로 노조 인정), 지역 공동체위원회에 일정 비율 예산을 넘겨 주민 참여 예산제를 도입하고, 에너지·산업 전환에서 자본이 아닌 협동조합·지역 공동체·노동자가 운영 주체가 되게 하는 등 “민중이 통치 역량을 키우는” 단계들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선거의 시간표입니다. 좌파가 집권해 놓고 사람들의 삶을 더 나쁘게 만들면, 다음 선거에서 바로 쫓겨납니다. 그리스 시리자를 보십시오. 2015년에 집권했지만, 유로존·독일·EU를 상대로 공약했던 반긴축을 관철하지 못했고, 식량·의약품 수입, 무역적자, 금융 압박 속에서 결국 긴축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반대로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리고, 일정한 형태의 연금제도를 도입하고, 리튬을 국유화하는 등 완전한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진전을 만들어냈고, 임기 말에도 60~70%의 지지를 유지했습니다.

네팔의 사례는 더 아픈 교훈입니다. 2018년, 세 개 공산당이 합쳐 국회의 2/3를 장악했지만 지도부 부패를 통제하지 못했고, 지도자 자녀들이 호화롭게 사는 사이, 청년들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계속되면서 대중의 환멸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Z세대 시위” 속에서 권력을 잃었습니다.

러시아·소련의 역사도 봐야 합니다. 후진국에서 산업화·전력·철도·항만을 건설하려면, 잉여를 어딘가에서 짜내야 합니다. 소련은 20~30년에 걸쳐 농민들을 집단농장으로 몰아넣고, 그 잉여를 산업화에 쏟아부었습니다. 이는 농민에게는 끔찍한 고통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도덕적·도식적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후진적 조건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때 어떤 구조적 난제가 생기는가”를 냉정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봅니다.

ASEAN·법인세·최저임금 공동 전략

우리는 동남아 좌파들 사이에 “이행 프로그램”에 대한 공통 전략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ASEAN FTA는 역내 교역 품목의 99%에 관세 0%를 적용합니다. 그렇다면, 이 협정에 “10년 안에 모든 나라의 법인세율을 30%까지 올린다”는 조항을 넣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입니다.

말레이시아(24%)는 매년 0.6%씩, 태국(20%)은 매년 1%씩 올리는 식으로, 각 나라의 출발점은 다르지만 도착점(30%)은 같게 하자는 구상입니다. 그리고 합의된 비율만큼 법인세를 올리지 않는 나라가 있으면, 다른 나라들이 그 나라 상품에 관세 3~4%를 부과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최저임금·법인세를 올리면서 내수시장을 키우고 있는데, 당신들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그 시장에 수출하려 하는가?” 이런 식으로, “함께 위로 올리는 경쟁”을 설계해보자는 제안입니다. 아직 동의가 모아진 건 아니지만, 이런 토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내 외투자본과 대외 관계

[외투자본] 동남아 곳곳에 중국 자본 투자가 들어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말루쿠의 니켈 광산, 말레이시아의 실리카 채굴 등에서 중국 회사들이 운영을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노동권·환경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도, 중국 회사의 실리카 채굴을 위해 소농들이 퇴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입니다. 중국 플랫폼이 말레이시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면서,
동네에서 장사하던 소상인(대부분 화인들입니다)이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일본·대만 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다국적 제조업 공장들은 대부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혹독하게 착취합니다. 지금 당장 특정 한국 기업 이름이 떠오르진 않지만, 한국 자본이 똑같이 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금속노조가 말레이시아 자본이 소유한 수입차 딜러(벤츠 등)에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요. 앞으로는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PSM이 연대 성명을 내거나, 상호 지원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모델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당 안에서는 중국에 대해서도 많은 토론이 있습니다. 초기 20~30년은 소련 모델을 따라 농민에게서 잉여를 짜내고, 자력으로 생산기반을 키우려 했습니다. 덩샤오핑 이후에는 외국 자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들여오고 거대한 생산력을 구축했습니다. 지금 중국은 명목 GDP 기준으로는 미국 다음이지만, 실제 생산역량으로는 미국을 넘어선 최대 생산국에 가깝습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강력한 자본가 계급, 물질주의 문화, 부패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그래서 당 내에서도 갈립니다. 어떤 동지들은 “제3세계 사회주의 실험 중 유일하게 생산력 문제를 풀어낸 나라”라며 높이 평가하고, 특히 말레이계 동지들 가운데 “중국은 미국보다 사회복지가 훨씬 좋다”고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1인당 GDP는 미국의 1/4 수준이지만, 공공서비스·인프라·환경에 투자되는 공적 자원의 비율은 훨씬 큽니다.

반면, 화인계 말레이 동지들은 훨씬 비판적입니다. 홍콩 친구들이 감옥에 가 있는 것을 직접 보고, 중국 내 독립적 노동·환경운동이 탄압받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을 “완벽한 모델”도, “완전히 기각해야 할 자본주의로터”도 아닌, 모순을 안고 있는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내 한국 기업 분포도 [출처: 주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
말레이시아 내 한국 기업 분포도 [출처: 주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

그밖에: 바자우, 긱워커, 다크인도네시아 운동

[바자우족 강제퇴거에 맞선 운동의 현황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바자우(Bajau)와 보르네오 운동(Borneo Komrad)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요. 동남아의 국경은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영국·스페인·네덜란드 같은 식민 열강이 마음대로 그은 선입니다. 언급하신 바자우족은 원래 필리핀 민다나오, 술루, 말레이시아 사바 일대에서 그 사이 바다를 오가며 살아온 바다 사람들입니다.

민다나오에서 내전·분리주의·빈곤 때문에 사촌·삼촌이 있는 사바로 건너와 살면, 이 사람들에게 국경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공동체의 역사적 관계는 국가 탄생 이전부터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국가는 이들을 “불법체류자·무국적자”로 취급합니다.

또 하나의 층위는 종교·인구 구성 문제입니다. 사바의 동쪽에는 기독교 카다잔족이 살고 있는데, 원래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던 이들이 지금은 20~25%로 줄었습니다.연방정부가 무슬림 인구를 늘려 그 지역의 종교·민족 구성을 재편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보르네오 콤라드’ 같은 단체는 이런 무국적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자치학교를 만들고, 퇴거 반대 운동을 벌이는 매우 헌신적인 그룹입니다. 퇴거 속도를 늦추는 데는 일정 성과가 있었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긱노동자 파업 관련] 말레이시아에서 긱 노동자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EPF에 가입된 정규·비정규 노동자 850만 명과 비교하면, 엄청 큰 규모입니다. 최근 정부가 긱노동자를 위한 산재·사회보험 제도를 도입해 노동자와 플랫폼이 각각 일정 비율을 부담하게 만들었습니다. 긱노동자들은 더 높은 수수료·임금, 더 나은 보호를 요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업·과잉노동력이 큰 문제입니다.

만약 긱노동자의 수입이 공장 노동자·소상인보다 훨씬 높아지면, 사람들이 그 일을 그만두고 긱노동으로 몰려들 것이고, 다시 경쟁이 치열해져 평균 소득은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긱노동 수입이 “최저임금 + 약 20% 정도” 선에서 균형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깨려면, 전체 고용·최저임금 구조를 함께 바꾸는 광역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크 인도네시아 운동] 인도네시아 청년 시위와 관련해서는, 말레이어·인도네시아어가 거의 같은 언어이기 때문에 구호, 노래, 발언 내용을 서로 쉽게 공유합니다. 실제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시위는 말레이시아의 청년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고, 우리는 인도네시아 좌파·노동운동의 조직 방식, 투쟁 전술, 슬로건을 계속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도 엄청난 실업·저임금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카르타 공장 노동자의 임금은 말레이시아 최저임금의 약 70%이고, 다른 지역은 50% 수준에 불과합니다. 공장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있지만, 서비스 비정규직이나 비공식 노동자, 영세 농민 보다 훨씬 나은 조건입니다. 그래서 ASEAN 차원에서 각 나라 최저임금을 동시에 일정 비율로 올리고, 내수 시장을 키워 중소상인의 기반을 넓히며, 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맺음말

오늘 이 자리는 [오늘날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지난 500년 동안 형태를 바꾸며 계속 우리를 지배해 왔습니다. 상업 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금융·신자유주의, 어떤 이름을 붙여도, 제3세계의 잉여가 서구로 흘러가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구조를 깨려면, 어느 한 나라의 좌파가 혼자 잘 싸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제3세계의 좌파·노동·농민 운동들이 서로 배우고, 서로 솔직하게 비판하고, 함께 현실적인 사회주의 이행 전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 방문, 그리고 여러분과의 만남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느낀 투쟁의 에너지, “우리가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은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도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분노만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좌파가 되기 위해
계속 함께 고민하고 연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 마이클 제야쿠마르 데바라즈

통역 : 보리

정리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