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햇살 아래 무지개를 밀어 올리다 | 제5회 춘천퀴어문화축제 리포트

춘천의 햇살 아래 무지개를 밀어 올리다 | 제5회 춘천퀴어문화축제 리포트

그 누구의 존엄도 훼손당하지 않는 ‘생명천하지대본’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자!

2025년 9월 15일

[읽을거리]지역지역운동, 강원도, 춘천, 퀴어문화축제, 성소수자, 퀴어

이 글은 지난 2025년 8월 30일에 열린 춘천퀴어문화축제를 기획하고 조직한 활동가의 소회를 담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 필자는 제2회 춘천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도 소개한 바 있다. 우리는 소양강퀴어! 춘천퀴어문화축제 리포트

지난 8월 30일 토요일, 춘천 공지천변에서 “뿌리고, 퀴우고, 나누자”라는 슬로건으로 제5회 춘천퀴어문화축제를 열었다.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려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행사 당일에는 빗줄기가 약해져 무리 없이 준비 할 수 있었다. 부스를 열고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마지막 순서로 자긍심 행진을 펼칠 때는 비가 완전히 그치고 뜨거운 햇살만이 다시 남았다.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백여 명의 참여자는 땀방울을 함께 흘리며 뜨거운 연대의 행진을 마무리했다.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021년 2월 2일, 춘천의 한 작은 카페에서 첫 모임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안전하고 차별 없는 춘천공동체를 만든다”는 미션을 만들었다. 우리는 성소수자의 축제이지만, 성소수자만을 위한 축제는 아니며, 인권을 실현하는 사회운동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문화축제임를 표방했다. 더불어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춘천이라는 지역사회가 차별 없고 안전하게 바뀌고, 동시에 우리 스스로 대안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었다.

출발부터 지금까지 4년

2021년 11월, 조직위는 소양강처녀상 앞에서 우리를 ‘소양강퀴어’로 명명하며 춘천에도 퀴어가 존재함을 알렸다.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또 역동적이다. 그 모습을 쉼 없이 굽이쳐 뻗어나가는 소양강물에 빗대어, 2022년 9월 ‘퀴어가 넘쳐흐르네’라는 이름으로 제2회 축제를 열었다. 2023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서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퀴어가 힘이 넘치네’를 슬로건으로 퀴어 가족의 운동회, ‘소양강퀴어 운동회’를 열었다.

제1회 춘천퀴어문화축제 포스터
제1회 춘천퀴어문화축제 포스터

제3회까지의 축제가 우리를 알리고, 서로를 살리고, 함께 어울리는 장이었다면, 제4회부터는 ‘연대’라는 가치에 보다 힘을 실었다. 축제를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대의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조직위는 ‘퀴어가 뿌리내렸네’로 제4회 축제를 열어 춘천퀴어문화축제가 지역사회에 완전히 뿌리내렸음을 선언함과 동시에 우리가 굳건하도록 함께한 춘천의 시민사회단체들에 연대의 마음을 표했다. 춘천 시민사회단체 이름을 부스 배치 순서대로 마블판에 적어 참여자들에게 나눠 주고, 참여자들이 춘천 시민사회단체들의 부스를 돌아보며 이들에게 주목하도록 ‘퀴어마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연대는 안으로 파고듦과 동시에 밖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긴급행동을 초청하여 팔레스타인 전쟁참상을 알리고 소양강부터 요르단강까지 춘천의 퀴어가 팔레스타인 민중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임을 선언했다.

제4회 축제를 마무리한 지 한 달 반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지만, 차별당하는 우리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조차 붕괴시키며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차별과 혐오를 방관해왔던 보수 정치세력 더불어민주당이, 차별과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극우 정치세력 국민의힘 대부분과 맞서게 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투쟁이 결과적으로 우리를 방관해 왔던 이들에게 정치적 트로피를 안겨줄 것이라는 절망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온 우리는 늘 그랬듯 이번에도 우리의 세계를 극우의 탄압과 보수의 벽을 뚫고 직접 개척해야 했다. 농민들은 아스팔트에 민주주의의 씨를 뿌리러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나 경찰은 남태령 고개에서 농민들을 막아섰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억압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투쟁은 곧 퀴어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퀴어는 남태령에 달려가 농민을 만났고, 소수자도 이 땅의 주인일 수 있음을 외치는 새로운 민주주의 광장을 열어냈다.

2025년 춘천퀴어문화축제 포스터
2025년 춘천퀴어문화축제 포스터

‘뿌리고, 퀴우고, 나누자’

윤석열이 탄핵당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차별금지법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권리는 새 정부에 의해 또다시 거부되었다. 지역사회에는 수많은 윤석열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여전히 존재했다. 조직위는 제5회 축제를 춘천판 남태령 광장으로 열기로 했다.

농민과 퀴어가 다시금 연대하여 여전히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지역사회의 수많은 윤석열들과 맞서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차별과 혐오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장을 열기로 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춘천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강원도연합’,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생태의 가치로 도시농업을 하는 ‘살피텃밭’을 초청했다. 민주주의 오픈마이크 순서를 편성해 남태령 광장 무대를 재현했고, 행진 선두에 풍물패 ‘바람소리로 담근 술’을 섭외하여 농민과 퀴어의 자긍심을 드러냈다. 대한성공회 춘천나눔의집 신부님의 축복식,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와 소양강퀴어연대회의(춘천퀴어문화축제를 함께 준비하는 춘천시민사회 연대체)의 연대 발언, ‘한국농인LGBT+’의 혐오 표현 없는 통역, 매년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의 무대, 그 외 많은 이들의 부스 운영 및 축제 참여는 우리의 축제가 명실상부한 퀴어문화축제임을 보여주었다.

퀴어농악대 '바람 소리로 담근 술'
퀴어농악대 '바람 소리로 담근 술'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한 가지 표현이 있다. 바로 ‘밀어 올린다’라는 문장이다. 매년 축제장소를 불허한 육동한 춘천시장은 이번에는 축제장에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축제장 입구를 잠가 버렸다. 경찰은 전반적으로 협조적이긴 했으나 모 계장은 ‘일반 시민’ 피해 운운하며 다 쳐 놓은 부스 천막을 옮기라고 따져 물었다. 혐오세력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축제 반대 집회와 현수막 도배로 우리를 위협했다. 그러나 우리는 올해도 축제를 밀어 올렸다. 인구 30만 명 이하의 작은 도시에서 1 년에 한 번 목소리를 내는 그것조차 용인되지 않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무대 위로 우리의 존재를, 우리의 자긍심을 또 한 번 밀어 올렸다.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앞으로도 우리가 여기에 있음을 세상 위로 밀어 올려 알리고자 한다. ‘뿌리고, 퀴우고, 나누자’라는 제5회 슬로건처럼, 인권과 민주주의를 뿌리고, 생명을 키우고, 연대로 우리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 ‘자본천하지대본’으로 바뀌어 버린 세상을 이곳 춘천에서부터 뒤엎고자 한다. 그 누구의 존엄도 훼손당하지 않는 ‘생명천하지대본’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자!

필자이자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 효성
필자이자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 효성

글 : 효성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