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 스톤월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 스톤월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자긍심의 달(프라이드 먼스 Pride Month)의 시작점인 스톤월 항쟁은, 숨죽여 살아야 했던 성소수자들이 처음으로 거리에 나와 저항한 사건이었다. 지금의 퀴어문화축제는 그날의 외침에서 비롯된 역사 위에 있다. 저항과 연대의 자긍심의 깃발을 든 채 집단학살에 침묵하거나 동조할 수는 없다. 성소수자 운동이 혐오와 차별을 넘어,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함께 가야 한다는 연대의 목소리를 모은 6월을 되돌아 본다.

2025년 7월 3일

[읽을거리]사회운동퀴어, 퀴어문화축제,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핑크워싱

올해도 어김없이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가 돌아왔다. 전 세계 성소수자들이 자긍심을 드러내고 존재를 기념하는 이 6월의 시작에는, 56년 전 뉴욕의 작은 술집에서 벌어진 저항이 있다.

1969년 6월 28일 새벽, 경찰은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에 위치한 ‘스톤월 인’을 불시 단속했다. 당시 이곳은 트랜스젠더, 드랙퀸, 게이와 레즈비언, 집에서 쫓겨난 퀴어 청소년들이 모이던 공간이었다. 손님 중 한 레즈비언이 강하게 저항했고, 거리의 퀴어들은 분노를 터뜨리며 경찰에 맞섰다. 동전과 술병이 날아들었고,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항쟁은 6일 동안 이어졌다.

당시 미국에서 동성애는 범죄로 취급되었고, 동성애자는 ‘정신질환자’ 혹은 ‘위험 인물’로 낙인찍혔다. 1952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동성애를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분류했고, 1955년까지 8천 명 이상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중 600명 이상은 ‘성도착자’라는 명목이었다. 전기충격, 구토 유도제, 최면, 외과수술까지—동성애를 ‘교정’한다는 이름의 치료는 폭력 그 자체였다. 특히 레즈비언은 호르몬 주입이나 음핵절제술을 강요받기도 했다.

교사와 공무원은 성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 해고되었고, ‘풍기문란’ 혐의로 체포되면 이름이 신문에 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침묵과 은폐 속에서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그런 사회에서 게이바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었다. 퀴어들이 서로를 만나고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대부분의 식당이 동성애자에게 음식을 팔지 않으려 했고, 이 틈을 파고든 마피아들이 게이바를 운영했다. 경찰과 유착한 마피아는 상납으로 단속을 피해갔지만, 경찰의 폭력적인 단속은 끊이지 않았다. ‘스톤월 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톤월 항쟁

미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 스톤월 항쟁에서 처음 벽돌을 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미샤 P. 존슨과 실비아 리베라. 스톤월 항쟁에서 처음 벽돌을 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날 밤은 달랐다. 오랜 침묵을 깨고 퀴어 공동체는 거리로 나왔다. 스톤월 항쟁은 동성애자들이 집단적으로 저항에 나선 첫 사건이었다. 억눌림에 침묵으로 대답하던 시대가 끝났고, 존재를 드러내는 운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년 뒤,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며 열린 첫 퍼레이드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6월마다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스톤월의 저항이 단지 하나의 장소에서 벌어진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공민권 운동, 반전 운동, 여성운동이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억압에 맞선 흑인들의 봉기 속에서, 성소수자들 또한 ‘우리도 싸워야 한다’는 결심을 품게 되었다. 스톤월은 그 흐름 속에서 터져 나온 퀴어 공동체의 응답이었다.

1970년 6월 이를 계승한 최초의 동성애자 행진이 열렸고, 이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1980년대에 비로소 자긍심 행진이라는 용어가 자리잡았다. 편견에 사로잡힌 이들이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단어로 쓰던 형용사 ‘퀴어(queer, 이상한)’는 성소수자들이 전유하면서 자긍심과 성소수자 전반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2000년에 시작된 한국의 퀴어문화축제는 1990년대 한국 동성애자인권운동의 결실이다. 20개의 성소수자 단체가 공동개최했던 당시 축제는 이제 17만명이 넘는 인파가 참여하는 큰 행진이 되었다. 20년이 넘는 투쟁 끝에 퀴어문화축제는 서울, 광주, 대전, 부산, 전주, 제주, 춘천 등 다양한 지역에서 열리게 되었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과 극우세력의 성소수자 혐오 선동에 굴하지 않는, 계엄 직후 누구보다 먼저 거리로 나와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의지를 담은 슬로건이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의 자유발언 주제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것 중 하나도 성소수자 차별과 페미니즘이었고, 사회대전환 천만의 발언대와 시민발언 분석에서 제일 많이 꼽혔던 주제 중 하나도 차별금지, 성평등, 인권, 소수자권리가 존중되는 사회였다.현재 성소수자 운동이 받는 지지와 연대의 범위, 주목도는 이전보다 넓어졌다. 많은 성소수자, 페미니스트, 연대자, 활동가들의 눈물과 노력이 지금을 만들었다.

그러나 성소수자 혐오 선동에 앞장서는 극우 개신교 세력도 다시 세를 결집하고 있다.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도 극우 개신교의 맞불집회인 ‘거룩한방파제 통합국민대회’가 열렸다. 게다가 2015년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일어났던 인분테러가 또 다시 발생했다. 극우 개신교는 얼마 전 개최된 대전퀴어문화축제 인근에서도 ‘건강한 가족시민대회’를 열었다. 퀴어문화축제 방해 사건의 시발점은 2014년 신촌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였다. 당시 보수 개신교 세력은 세월호 추모를 명분으로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고, 행진을 물리적으로 방해했다. 경찰은 보수 개신교 세력의 집회 방해 행위를 방관했고, 참가자들은 밤 10시가 되어서야 행진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이후 2018년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극우 개신교 혐오세력의 폭력은 훨씬 더 심해졌다. 거리와 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이 혐오세력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들의 방해로 무대와 부스 설치도 불가능했다. 혐오세력은 축제 참가자들을 고립시키고 위협적 언행을 계속했고, 경찰은 오히려 혐오세력의 편을 들며 축제를 취소하려 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주최측이 혐오세력의 폭력행위를 고소했으나, 수사기관은 이들을 불기소 처리했다. 2023년과 24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39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이후,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장소로 서울시청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2023년 당시 장소대관 결정 회의에 참여한 시의원들은 혐오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2023년 홍준표 (전)대구시장은 행정대집행을 감행하면서까지 대구퀴어문화축제를 무산시키려 했다.

올해 6월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도 인분을 뿌리며 방해한 사람이 있었다
올해 6월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도 인분을 뿌리며 방해한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퀴어문화축제만 방해하는 게 아니라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필사적으로 차별을 고수하고, 포괄적 성교육이 아이들을 ‘조기성애화’한다며 왜곡하고, 이슬람 사원 건설 반대와 불교 사찰 훼손 등 타종교에 대해 혐오 선동을 넘어 폭력을 휘두른다. 차별에 열렬히 찬성하는 극우 개신교세력의 이상향은 전통적 남녀역할이 철저한 위계적 가부장제, 반공주의, 맹목적 미국 추종과 혐중, 그리고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통사회다.

차별금지법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공동 집필한 <극우 리포트: 성소수자 혐오에서 내란 옹호까지>에 따르면, 반공주의와 역사수정주의에서 출발한 극우 개신교 세력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자신들을 결집시키고 성장해 극우 정치 주류화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인권이 단순히 특정 소수자 집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극우 세력의 결집을 추동하는 핵심적 동력이라는 뜻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평등을 구현할 의무를 부여하는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 성적 관계를 맺어가는 역량을 키우는 포괄적 성교육, 성평등한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늘리는 성평등 도서 등은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의 투쟁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런 맥락에서 성소수자 권리보장 투쟁과 쟁취는 극우화를 막고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퀴어문화축제의 25년 발자취는 ‘사랑이 이긴다’는 구호로 차별과 혐오를 연대와 희망으로 바꿔온 역사이며, 소수자 차별로 대표되는 사회의 전반적 극우화를 최전선에서 막고 있는 ‘거룩한 방파제’이다.

한편,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성소수자의 이름으로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모순을 본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패권을 위한 중동 침략의 원인 중 하나로 ‘여성과 퀴어의 인권’을 언급하며 정당화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집단학살과 강제추방, 식민지배 위에 건국된 나라라는 걸 숨기기 위해 ‘브랜드 이스라엘’ 프로젝트로 국가 이미지 쇄신과 정상국가 만들기를 시도해왔다.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과 같은 이슬람 국가들은 퀴어를 억압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퀴어로 존재할 자유가 있다며 선동한다. 그러나 현실은 과반이 넘는 이스라엘인들이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 이스라엘 문화부 혹은 시오니즘 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는 ‘이스라엘과 서구 세계가 억압받는 중동의 퀴어를 해방시켜 준다’는 시혜적, 식민적 시선의 전형적 핑크워싱이다. ‘사랑의 이름으로’가 적힌 무지개 깃발을 든 채 폭격된 가자 지구 위에서 웃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의 사진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과연 서구 자유주의자들과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은 우리 ‘퀴어’를 해방시켜주는가? 오히려 퀴어를 ‘정상 시민에 편입된 특정 퀴어, 선진국 중산층 주류 인종 퀴어’로만 한정시키고 그밖의 이들은 외면하지 않는가? 그들의 개인주의적 정체성 개념은 정체성이 단일한 범주라고 착각하게 만들며, 억압을 사인간의 1:1 구도로 협소하게 보고, 집단적 투쟁에 대한 상상력을 막는다.

이스라엘이 폭격한 가자 지구 폐허 위에 성소수자의 상징 무지개 깃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이스라엘 군인
이스라엘이 폭격한 가자 지구 폐허 위에 성소수자의 상징 무지개 깃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이스라엘 군인

부당한 반무슬림 정책 감시 및 반대 활동 단체 “무슬림을 위한 정의 콜렉티브(Justice for Muslims Collective)”는 서구 국가들이 ‘소수자 인권’을 자신들의 침략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을 ‘젠더화된 이슬람혐오’라고 명명하며, 이는 국가가 젠더화된 폭력의 양식을 활용해 무슬림 신체를 억압, 감시, 통제, 처벌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미국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시오니즘에 저항하는 많은 중동의 정치세력이 이슬람교를 정치 이데올로기의 구성요소로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과 서구 우방국들은 반이슬람교 성격의 문화 정치 선전을 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퀴어들은 그들이 받는 억압의 근본이 서구 제국주의와 시오니즘에 있다고 본다. 자국의 성소수자 인권은 지지한다고 표명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고 그들의 삶을 식민지배와 군사점령으로 짓밟는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서구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퀴어가 받는 이중 억압을 훨씬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말대로 “이스라엘이 피난민을 만들지, 그들이 난민을 위한 피난처인 게 아니다.” 우리는 많은 무슬림 퀴어들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성소수자로서의 억압은 서구 식민주의와 절대 뗄 수 없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021년 5월 17일, 팔레스타인 퀴어 단체 아스와트(Aswat)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핑크워싱하지 말라”며 전 세계 퀴어들에게 연대를 촉구했다. ‘성적‧젠더적 자유를 위한 팔레스타인 페미니스트 퀴어 운동’을 이어온 아스와트는, 점령과 학살에 무지개를 덧씌우는 위선에 맞서 싸워왔다. 이스라엘의 범죄를 퀴어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덮지 말라 (Don’t Pinkwash Israel’s Crimes!)는 외침은, 프라이드가 자긍심을 넘어 저항과 연대를 향할 때 비로소 진정해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외침| “이스라엘의 범죄를 핑크워싱하지 마세요!” 성소수자 인권을 내세운 점령과 학살에 맞서, 전 세계 퀴어에게 연대를 요청하는 아스와트의 메시지.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외침| “이스라엘의 범죄를 핑크워싱하지 마세요!” 성소수자 인권을 내세운 점령과 학살에 맞서, 전 세계 퀴어에게 연대를 요청하는 아스와트의 메시지.

1948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부당한 점령속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집단학살이 2023년 10월 이후 1년 8개월이 넘도록 계속되고, 이란에도 전쟁의 위험이 뻗쳤다. 바이든과 미국 민주당 정권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군사원조를 늘리며 동조해왔다면, 트럼프와 미국 극우세력은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추방’하겠다며 적극적으로 식민화 정책을 추진한다. 미국 거대 보수 양당의 시오니즘 공모 양상은 한국의 거대 보수 양당의 정책과도 닮아있다. 윤석열 정권은 서구 국가들조차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조의 유감을 표시하던 때 이스라엘과의 방위 산업 협력과 무기 거래를 늘렸다. 파면 이후 새로 부임한 이재명 정권은 ‘이스라엘이 다시 평화 체제로 돌입한 것을 환영’한다며 식민주의자 이스라엘을 정상 국가로 인정한다.

우경화에 맞선 저항

우리는 광장의 힘으로 내란 수괴 윤석열을 파면시켰지만, 거대 보수 양당이 만든 토양은 극우세력을 오히려 증가시켰고 20년 전부터 주장해왔던 진보적 의제에 대한 정치적 지형도 더 미온적 혹은 적대적으로 변했다. 진보적 의제에 대한 목소리가 더 낮춰질 수록 사회는 우경화한다. 지금 모두가 어느 때보다 변화를 갈망하는 시기에, 사회운동 세력이 진보적 의제를 더 많이 말할수록, 연대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우리 퀴어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퀴어가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반식민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어쩌면 극우 세력이 강화한 성소수자 차별, 딱딱하고 경직된 거대 보수 양당의 정치, 자유 대 파시즘의 차악 대 최악 구도에 금을 내는 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극우 개신교 세력이 열렬히 미국과 이스라엘을 ‘자유 우방’으로 떠받드는 점 역시 그에 맞서 우리가 연대해야 할 대상이 누군가를 알려준다.

극우 집회에 등장한 이스라엘 국기 (출처 : 뉴스앤조이)
극우 집회에 등장한 이스라엘 국기 (출처 : 뉴스앤조이)

“팔레스타인은 장소 상실의 전형이자 전 세계 투쟁의 심장이다. 팔레스타인은 가장 퀴어한 곳이다.”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트랜스 활동가 야잔 자자의 말이다. 사회의 ‘보편’과 규범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끊임없이 추적하고 배제되는 존재를 발굴하는 ‘퀴어’라는 단어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전 세계에 난민이 되어 떠돌고 주류 언론들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보다 퀴어한 존재다. 식민지배와 분단의 역사를 체화한 한국 퀴어로서 팔레스타인 퀴어와 연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단학살에 침묵, 공모하는 프라이드는 없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원조와 언론 은폐로 학살에 동조하는 미국, 영국, 독일에게 ‘내 이름으로 하지 말라’고 말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긍심은 더 넓어질 수 있다.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에 속한 성소수자 단체들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팔레스타인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극우화를 막는 ‘거룩한방파제’ 퀴어문화축제가 힘을 받고, 동시에 팔레스타인 퀴어와도 함께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목소리 높이는 것이 중요한 6월이었다. 지난 6월 20일에는 이러한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울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은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무지개행동이 공동 주최했으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퀴어와의 연대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주최 측은 지난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부터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까지를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정하고, 전국적으로 선언문 연서명 운동과 다양한 행동을 펼쳐왔다. 이날까지 3,168명이 연명한 선언문은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을 비롯해 주한영국대사관, 주한독일대사관에도 전달됐다.

기자회견에서는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직접 발언에 나섰다. 플랫폼C 활동가 세윤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은 자유주의 우방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국제적 폭력이며, 한국 역시 그 공범”이라며 “성소수자 자긍심이 학살을 가리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은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사람들”이라며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는 우리 운동의 일관성과 책임을 시험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지개행동 활동가 순부는 “이스라엘은 퀴어 정체성을 홍보에 이용하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퀴어를 체포·고문하고,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활동가 나영은 “국가가 보장하지 않는 안전 속에서 연대는 우리 서로를 살아가게 만드는 안전망”이라고 강조하며, 연대를 지속적으로 확장할 것을 호소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의 아일린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없이는 퀴어 해방도 없다”며 “이 폭력에 침묵하는 프라이드는 진정한 자긍심이 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참가자들은 “퀴어 해방은 팔레스타인 해방과 분리될 수 없다”며, 핑크워싱(pinkwashing)을 통한 제국주의적 프라이드 왜곡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에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 연대행동은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알리고 퀴어 운동이 제국주의적 폭력과 단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한국 사회 안에서 확장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6월은 끝났지만, 연대는 계속된다. 스톤월에서 시작된 저항의 계보 위에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새긴 우리는, 다시 길 위에서 자긍심을 외친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곧 저항이고, 연대를 말하는 것이 곧 실천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글 : 김현빈, 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