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발 하라리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를 비판한다
2025년 4월 30일
지난 2025년 3월 20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팔학)과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시민들이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 유발 하라리 초청 강연을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 지배와 집단학살을 은폐하는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이기 때문이다. 16차 팔레스타인 대화모임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자유주의적 시오니즘에 알아보고 왜 이에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자유주의 시온주의의 이해를 위해 발제문 전문을 싣는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란?
시온주의(Zionism)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일조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오늘날 이는 이스라엘이 유대 민주주의 국가로서 존속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시온주의의 분파 중 하나이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보다 ‘온건’하거나 ‘평화적’인 얼굴을 한 시온주의로, 유대 국가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도 지지한다고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유대 민족 집단이 지배하는 국가 체제(Jewish ethnocracy)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옹호하는 이념이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스스로를 ‘갈등’에 대한 평화적 해결책으로 포장한다. 시온주의가 인권과 양립할 수 있으며,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가치, 평화와 정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좌우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의 대표적 특징들이다.
- 유대인들의 민족자결권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모두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 종종 이스라엘 정부 또는 정착민들을 비판하지만 절대 시온주의 이념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권 보장을 거부하고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 폭력을 경시하면서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주창한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이스라엘의 하스바라(히브리어로 '설명'을 뜻함)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스바라는 정부가 지원하는 선전 캠페인으로,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자국을 현대적 민주국가로 포장한다. 또한 이들은 핑크워싱 전략을 차용하여 이스라엘을 성소수자 친화적 국가로 광고하고, 자원자를 모집하여 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BDS) 운동의 영향력이 성장 중인 웹사이트들에 조직적으로 친이스라엘적 댓글을 남기게 하는 등 다양한 미디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이스라엘 노동당, 메레츠 등의 자유주의 정당 소속 정치인들, 학자들, 히스타드루트(이스라엘 노동조합총연맹), 거쉬 샬롬과 피스 나우같은 평화 단체들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들 자유주의 시온주의자들의 담론은 시온주의적 이념과 제국주의적 사고방식 안에서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으며, 이것을 보다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정착민 식민주의를 가리는 포장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덜 극단적인 시온주의적 접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정착민 식민주의를 가리는 포장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공존을 강조하여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를 민주주의로 위장시키는 이념적 기능을 수행하며,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 이스라엘 정부·국가의 민족적 기반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내 ‘모든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
- 개인의 권리나 일시적 불의에 초점을 맞춰 지배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킨다.
- 작가, 학자, 외교관 등 국제적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도덕적 우위에 머무르면서 권력에 협조할 수 있게 한다.
- 구조적 폭력을 안보 문제나 정책적 오류로 프레이밍 한다.
- 비판의 목소리들을 반유대적이라고 몰아 입막음 한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는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 지식인을 자처하며 이스라엘의 점령을 정상화하는 데에 자신의 플랫폼과 권력을 이용한다. 그는 보편적 인권, 민주주의, 평화적 공존을 지지한다고 말하며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정치를 비판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에 더해 그는 다음과 같은 시각들 또한 보여왔다.
-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을 테러리즘으로 취급
-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일은 방어를 위 한 행동일 뿐, 집단학살의 목적은 없다고 주장
- 국제사회에 이스라엘 민주주의에 대한 보이콧이 아닌 지지를 촉구
하라리는 두 국가 해법 등의 타협안을 통해 평화적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는 온건 시온주의와 네타냐후 정부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부정하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단주의적 시온주의를 구분짓는다. 그러나 하라리의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세계적 지식인이자 학자로서의 하라리의 지위는 그에게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인간성이라는 허울 아래 정상화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와 기술>을 주제로 강연한 자리에서 하라리는 기술 발전에 있어 국제적 협력과 윤리적 고민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공격대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AI의 지시를 받는 것을 문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AI가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차원의 비판에 머물렀으며, 이스라엘인들이 집단학살의 주체라는 것과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라리는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는 시온주의를 유대인의 민족운동으로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대인의 민족 자결권 및 그들이 점령한 땅과의 역사적 연관성을 강조한다. 그는 자국의 정치인들과 장군들이 집단학살적 언어를 사용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그들의 행위를 집단학살로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인종청소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온주의를 아파르트헤이트체제로 규정하는 것이 유대인의 민족적 열망에 대한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시온주의의 일부가 배타적 성향을 띠긴 하지만 시온주의의 핵심 원칙이 근본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의 위험성이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점령자 이스라엘을 합리적이고 평화적이며 이성적인 존재로 내세우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테러리스트, 극단주의자 또는 ‘비극적 희생자’로 묘사한다.

또 다른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 유발 아브라함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 어더 랜드(No Other Land)』가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두 명의 팔레스타인인 바젤 아드라, 함단 발랄과 두 명의 이스라엘인 유발 아브라함, 레이첼 쇼가 공동 감독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바젤 아드라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유발 아브라함의 우정을 주제로 다룬다. 아드라는 마사페르 야타에서 일어나는 강제 이주에 저항하는 젊은 팔레스타인 활동가이며, 아브라함은 이들의 투쟁을 도우러 온 이스라엘 언론인이다. 아브라함은 수상 소감을 말하며 상호 고통을 역설했다. 그는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인질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유가 이스라엘인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어더 랜드』가 받는 평가는 이들의 역학 관계에서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수상 소감 발표 자리를 본인의 자유주의적 견해를 드러내고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도 ‘집단학살’이나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이 장면은 전 세계가 귀를 기울이며 아브라함에게 무대를 내어주었던 순간, 특히나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인의 발화가 더 크게 주목받는 현실 속에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 기회를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이념을 키우는 데에 이용했는지 보여준다. 그의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프레임은 청자로 하여금 갈등의 근본 원인이 아닌 이스라엘의 트라우마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온건한 대안이 아닌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이념적 은폐이다. 억압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겉으로는 우려를 표명한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는,
- 근본적 원인―시온주의적 정착민 식민주의―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킨다.
- 탈식민주의와 정의에 대한 요구를 약화시킨다.
-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저항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프레이밍 한다.
유발 하라리 같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위험한 존재이다. 2025년 3월 24일, 『노 어더 랜드』의 감독 중 한 명인 함단 발랄이 피점령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인 정착민들로부터 공격 당해 큰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대중의 압박을 받은 이후에야 이 사건에 대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이념은 국제 언론의 무관심에 기여한다. 지금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이스라엘이 벌이는 인종 청소의 현실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그의 팔레스타인인 동료들과 가자지구, 서안지구에 사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타냐후나 이스라엘 극우세력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체제 그 자체에 맞서야 하며, 평화와 이성의 얼굴을 빌려 이를 인간적인 것으로 위장시키려는 자들에게도 맞서야 한다.

토론 내용
이스라엘 좌파를 ‘자유주의 시오니스트’라고 분류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대부분 자유주의적 실용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좌파를 맑스주의적 의미에서 국제주의,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의 옹호라는 가치로 판단했을 때, 그들이 정말 좌파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독일 ’좌파’들도 맑스의 말을 쉽게 인용하고 피억압자의 권리를 옹호한다고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상반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시오니즘도 여러 스펙트럼으로 불리다보니 그럼 더 왼쪽의 시오니즘도 있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좌파적'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극단적이지 않고 온건하고 합리적인 외피를 쓴 시오니즘이 더 상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사람들하고 팔레스타인 얘기할 때 그래도 폭력은 안 되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하마스나 중동 얘기를 할 때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어떻게 설명하고 토론할지 더 공부하고 얘기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발 하라리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자인 이유 세 가지 중 민중저항을 테러리즘 취급한다는 부분이 있었다. 하라리는 하마스를 비난한 것이고, 하마스의 테러와 민중저항을 모두 같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하마스의 저항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다양한 저항의 종류 중에 하나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문제는 하마스가 왜 무장저항이라는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가이다. 하지만 하라리는 77년 전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점령한 이스라엘의 역사도, 집단학살과 봉쇄, 식민지배라는 끔찍한 환경에 맞서 무장저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그는 무장저항 외 다른 형태의 저항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시작을 이스라엘 건국과 식민지배, 집단학살이 아닌 하마스의 10월 7일 공격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강경파 네타냐후 정부를 비판하지만, 하마스에 대한 무장해제, 제재, 승리를 우선순위로 두어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왜곡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국에 있는 팔레스타인인 살레 라티시가 시온주의자 중에서 종교적 시온주의자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자와 무지 때문에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사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 중 무지 때문에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토론하고,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20년을 넘어가니까 지식인들이 이제 일본에게 타협하면서 자율권을 얻는 방식으로 가자는 주장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해방은 불가능하니 현실적으로 타협하자는 주장이 자유주의 시오니스트들과 비슷한 것 같다. 문제는 착취, 수탈, 학살을 당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이것이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 이성적, 타협적 태도로 시오니즘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특징인 것 같다. 탈식민주의나 제국주의를 일관되게 반대하려면 자유주의적 태도를 거부할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구조의 이야기를 삭제하고 하마스의 무장저항도 종교적, 개인적 일탈의 문제인 것처럼 핵심을 가리는 것 같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기존의 불평등한 체제 모순은 그대로 둔 채, 개인적 방식의 신분상승을 대안으로 두는 것이나 시장자유주의자들이 민주와 공정을 내세우고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면서 뒤로는 부자감세, 친기업 정책을 피는 것도 체제의 근본적 문제를 가리는 자유주의적 태도이고 이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이스 라엘이라는 국가가 팔레스타인을 내쫓고 건설되었고, 귀환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두 국가 해법, 두 나라의 공존은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체제 자체에 맞서야 한다.
발제 : 아일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통번역 : 조앤 (팔레스타인 대화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