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 군부 권력에 맞선 다크 인도네시아 운동의 도전
2025년 2월 28일
프라보워의 무상급식 프로그램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프라보워 정권을 규탄하며 거리로 나섰다. 군부(Tentara Nasional Indonesia; 텐타라 나쇼날 인도네시아) 출신 대통령의 임기가 고작 5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정치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경찰 개혁, LPG 가격 논란, 자원 채굴 허가를 둘러싼 논란, 서파푸아 토지 개간 문제, 프라보워 대통령의 ‘방만한’ 내각에 대한' 평가 등 여러 문제들이 시민의 불만을 사고 있지만, 분노의 핵심은 프라보워가 내세우는 ‘예산 효율화 정책’에 있다.
프라보워의 ‘예산 효율화 정책’은 주로 교육, 건강 및 자연 재해 완화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및 지역 정부 기관 예산 306조 7천억 루피아(한화 28조원)의 삭감을 수반한다. 인도네시아 재무부 수아하시 나자라(Suahasil Nazara) 차관은 정부가 ‘삭감’ 예산이 “보다 생산적이고 지역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활동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이 자금은 프라보워의 여러 야심찬 선거 공약 중 하나였던 ‘무상급식 프로그램’(MBG)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비판자들은 프라보워의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낭비적이기만 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예산 약 7천억 원 정도가 삭감됐다. 서파푸아에서 고등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에 반대하며 무상 교육의 우선적인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이 급식 배식 과정에 군인을 투입할 것이라는 계획을 비판했다. 인권운동단체들은 이러한 조치가 학교를 병영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무상급식 프로그램이 군부 영향력 확대의 ‘트로이목마’ 구실을 할 거라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무상급식 프로그램과 무상 건강검진 이니셔티브의 총액을 계산할 때 최소 120억 달러의 예산 절감이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또,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공공부문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직면해 있고, 가까운 미래에는 대량 해고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대학 예산 역시 줄어들어 학생들이 장학금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시민운동단체 KontraS의 나딘 쉬라니(Nadine Sherani)는 “이번 정책은 시민사회의 생태계와 젠더 폭력에 대한 국가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증인보호기관 등 인권 및 법률 집행 기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흥미로운 점은 프라보워 대통령이 이 프로그램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인도네시아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고 ‘발육 부진’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전국 각지의 학생 시위
대규모 시위가 발발하기 전부터 온라인 상에서는 해시태그 #IndonesiaGelap 또는 ‘다크 인도네시아(dark Indonesia)’ 등 슬로건들이 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대두됐다. 이 해시태그는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과 프라보워 현 대통령이 각자의 대선 운동 과정에서 내건 ‘Indonesia Emas’ 또는 ‘Golden Indonesia’라는 슬로건을 패러디한 것이다. 검은색 배경에 인도네시아의 국장인 가루다(Garuda)의 이미지, 2024년 8월 선거법 시위에서 내건 “긴급 경보”(#Peringatan Darurat) 포스터도 함께 게재됐다.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각 대학 학생회들이 주도한 여러 집회들이 수도 자카르타, 반둥, 람풍, 수라바야, 말랑, 사마린다, 반자르마신, 아체, 발리 등 전국 각지에서 열렸고, 학생들은 각 도시의 정부청사 앞에 모였다. 학생회 대표들은 확성기를 통해, 또는 대형트럭 위에 올라 연설하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수라바야에서 정부당국은 학생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강하게 충돌했다. 청년들은 동자바 지역의회 정치인들을 향해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 요청은 무시됐다. 그러자 학생들은 경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뚫고 청사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대학생 5명이 체포됐다. 마카사르에서는 이슬람 학생회가 술라웨시 횡단 고속도로를 봉쇄한 채 시위하면서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

관광지인 발리섬의 수도 덴파사르에서는 학생들이 “교육이 무너지면 희망도 사라진다”, “절약은 부의 뿌리이지만, 효율은 어리석음의 뿌리다”, “다크 인도네시아 교육 비상사태”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예산 삭감 정책의 철회, 교육 노동자들에 대한 적시적이고 공정한 보상, 무상급식 프로그램 시행의 재검토, 수도 이전 사업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고, 이를 위해 정부가 시민들의 비판과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고 제기하고 있다. 이것이 즉 ‘친민중 정책’의 시행을 요구하는 13가지 요구 사항으로 발표다.
시위가 크게 확대되자 인도네시아 국무장관 프라세티오 하디(Prasetyo Hadi)는 예산 삭감이 교육 부문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비판을 부인하고 나섰다. 또, 학생들을 위한 주요 재정 지원 프로그램은 계속 운영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충족될 때까지 거리에서 시위를 계속할 것을 맹세하고 있다.
나딘 셰라니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위대를 만나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이 대규모 시위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직접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민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학생들이 제기한 13가지 요구사항을 수용해야 합니다.”
1966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수하르토의 ‘신질서’ 독재 통치 시기, 인도네시아 군부는 이른바 ‘이중 기능(Dwifungsi)’ 정책에 따라 광범위한 권한과 권력을 행사했었다. 군부 독재가 종식된 이후 군부는 민주 주의가 회복되면 병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이는 불완전한 상태다. 반년 전 프라보워 대통령의 당선은 어쩌면 이 ‘이중 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군부 권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선을 고조시켰다. 실제 프라보워의 예산 삭감 대상에 경찰이나 군대는 포함돼 있지 않다.

다크 인도네시아
마이클 G. 반은 <자코뱅>에 기고한 칼럼에서 “다크 인도네시아 운동은 펑크 미학이 강하며 인도네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깊은 비관주의와 냉소주의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다크 인도네시아의 스타일과 메시지는 프라보워의 대선 캠페인 메시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통령 선거운동 시기 프라보워는 자신에게 씌워져 있던 ‘학살자’의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상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게모이(gemoy)를 채택한 바 있다. 이는 2014년 파시스트 이미지화를 통한 선거운동의 실패, 2019년 대선에서 반동적인 이슬람주의 캠페인의 실패로 인한 반면교사였다. 프라보워 홍보팀은 캐주얼한 스웨트셔츠를 입고 사랑하는 고양이에게 점을 찍는 당황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사진을 활용하며 이런 이미지를 중화시키고자 했다. 제복을 입은 남성들 앞에서 백마를 타고 집회에 참석하는 대신, 가족 댄스 파티 분위기의 행사에서 키치한 테크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다크 인도네시아 시위대는 프라보워의 이런 이미지 전략과 정반대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들은 검정색 옷을 입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모든 Z세대는 군주제를 반대한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급진적 시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펑크적인 태도와 ‘조코위-프라보워’를 겨누는 풍자적인 소셜미디어 캠페인은 권력집단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들 활동가들은 풀뿌리 조직화와 소셜미디어 활용을 통해 인도네시아라는 대국 전역의 수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조직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부패한 정권을 노골적으로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엄연히 불평등에 맞서고, 공공성을 제고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반신자유주의적 대중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과 2017년, 보수주의적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주도한 대규모 집회와 달리, 다크 인도네시아는 구체적이고 보편적인 타겟을 겨누고 있다.
정리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