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인도공장 노동자들이 한달 여 간 파업을 벌여 승리했다. 인도 동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의 삼성전자 가전 공장에서 9월 9일부터 벌어진 이번 파업은 노동자 1,000명 이상이 함께 했는데 최근 수년 간 인도 삼성공장에서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파업이었다. 첸나이 가전 공장은 삼성전자의 인도 공장 두 곳 중 한 곳으로, 매년 인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약 120억 달러, 한화 16조 4000억원)의 3 분의1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내건 주요 요구사항은 새로 결성한 삼성인도노동복지조합(SILWU) 인정, 단체 교섭 허용, 임금인상, 8시간 근무제 도입 등이다. 인도노동조합센터(CITU)에 따르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월평균 2만5000루피(약 41만원)인 임금을 월 3만6000루피(약 58만원)로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CITU는 2024년 2분기에만 연간 순이익이 9조 8,400억 원인 것을 볼 때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함을 지적했다.
한 달이 넘는 무기한 파업은 삼성전자의 상품 생산에 큰 타격을 주었다. 파업 시위 과정에서 지도자들과 100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구금되기도 했으나 파업 대열을 굳건히 유지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사측으로부터 임금 인상, 의료 보험, 복리후생 등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 사항에 대해 논의할 것,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을 약속받은 후 파업을 종료했다. 인도의 삼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무노조원칙을 가졌던 글로벌 대기업에 맞서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인도 정부의 친기업 정책과 삼성의 노조 탄압
한때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의 중추였다. 글로벌 기업들은 발 빠르게 중국에 투자했고, 중국은 제조업의 기둥이 되어 세계 곳곳에 완제품을 공급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과잉투자와 과잉생산을 불러왔고 중국 제조업은 둔화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인도와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할 차세대 제조업 기지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동안 인도는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산업구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 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14년 모디 정부 출범 후에는 제조업 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무엇보다 도시 산업화율과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중국에 비해 낮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투자처가 되고있다.
모디 총리와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인도가 경제 강국이 되고 글로벌 리더십을 맡기 위해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2020년 9월, 기존 노동법을 폐지하고, 최저임금과 근무시간, 사회보장, 단결권, 단체협상권, 파업권 등 법이 정한 권리를 직간접적으로 없애려한 노동법 개정이 시도된 바 있다. 당시 이는 노동조합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되긴 했지만, 인도 정부는 여전히 노동법 개악을 시도 중이다.
모디 총리의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 역시 인도 노동자들의 저렴한 노동력을 희생양 삼아,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인도의 “고용없는 성장”은 경기를 더욱 침체시켰다. 2022년 기준 인도의 25세 미만의 대졸자 실업률은 40%를 넘어섰고, 25세 이하 전체 청년의 실업률도 10~20%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제조업 부문의 상당수가 중소 영세기업이었는데, 2022년 기준 중소기업 1만여 곳이 폐업했다.
경제위기와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은 지난 2024년 4월 총선에서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모디가 집권한 10년 동안 폭스콘(Foxconn)에서 마이크론(Micron Technology)까지, 많은 기업들이 친기업 정책과 저렴한 노동력에 이끌려 인도에 투자했다. 애플(Apple)과 아마존(Amazon) 등 굴지의 다국적기업들도 자신들의 공장을 인도에 설립했다. 인도 노동법은 노동자들에게 결사권과 단체 협상권을 허용하지만, 인도에 공장을 세우는 다국적기업들은 종종 노동법을 따르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다국적기업 다수가 현지 노동자들에게 적은 임금과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고, 주정부와 결탁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탄압한다.
삼성 역시 발빠르게 인도에 공장을 설립하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파업이 발생한 삼성전자 공장은 타밀나두(Tamil Nadu)주에 있는데, 현재 타밀나두주 정부(인도는 8개 연방직할지를 이끈느 중앙정부와 28개 주로 구성된 연방정부 구조를 따름)는 2021년 5월 이래 DMK(Dravida Munetra Kazhagam; 드라비다 진보당)가 집권하고 있다. 주지사 무투벨 카루나니디 스탈린은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해 타밀나두주를 매력적인 글로벌 투자지로 홍보하고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한데 바로 이때, 삼성전자 인도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한 것이다.
인도의 노동경제학자 샤얌 순다르(S. Shyam Sundar)는 다국적기업들이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노조 결성을 막고자 다양한 방식의 “인적자원 전략”을 구사한다고 설명한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지원을 받는 상급노조에 가입하는 것에 격렬히 반대하며, 노동자들에게 회사 내부에서의 노조 활동만 하도록 유도한다. “이 경우 경영진이 노조의 활동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다국적기업들은 분할 통치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수시로 고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는다. 인도의 고용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 후반에 고용된 노동자의 80% 이상이 비정규직에 해당한다. 기업들은 미숙련 청년 노동자, 특히 농촌 지역 청년 노동자들에게 평균 임금보다는 높고 정규직보다는 적은 초봉을 제시해 현장에 투입한다. 이렇게 해서 노동조합의 협상력을 낮추려 하는 것이다.
사측은 청년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지만 처음부터 계약직 또는 유연화된 노동 형태로 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기란 쉽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전체 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 추세인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 노동소득 비중은 2000년대 초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보수언론들이 이번 삼성전자 인도공장 파업을 비난하는 이유 중에는 '고용 세습 요구'가 있다. 인도 노동자들의 고용 세습 요구는 인도의 신분제도 '카스트'의 영향에서 기인한다. 공식적으로 카스트 제도는 사라졌지만, 오랜 시간 착취와 차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불가촉 천민, 소수민족, 수공업 종사자 등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카스트제도의 특혜를 통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해온 상류층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과 빈곤에서 비롯된 고용 세습 요구를 단순히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는 사회 불평등의 본질에 대해서는 그대로 둔 채 현상만 탓하는 것이며, 자본의 반노동 프레임을 재생산할 뿐이다.
노동조합의 힘
인도에는 수많은 정당과 노동조합이 있고, 그 이념 역시 매우 다양하다. 인도 중앙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조합운동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대량해고 위기를 겪으며 노동자들은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난 2011년 2월에는 11개 노동조합이 단결해 물가 인상,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직 확대, 실업증가 등 친기업-반노동 정책에 맞서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2015년에도 총파업을 벌이는 등 소중한 연대의 경험과 짐재력 또한 갖고 있다.
이번 파업에서 삼성 사측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거부하자 노동자들은 투쟁 경험이 풍부한 CITU(인도노동조합센터)를 상급단체(교섭력을 증가시켜 단체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단체교섭 권한을 위임할 수 있음)로 지정하고, 지원받았다.
CITU는 CPI-M(인도공산당 맑시스트; 케랄라주 의회 다수당이며, 7개주 의회에서 교섭단체지위를 유지하고 있음)와 친연성을 갖는 대중조직이다. 노동자계급의 착취는 모든 생산수단, 분배와 교환을 사회화하는 국가를 수립함으로써만 종식될 수 있다고 여기며, 모든 착취에 맞선 운동을 지향한다. 과거 타밀나두주 집권당인 DMK와 우호적 관계를 맺었지만, 글로벌 투자 유치와 노동자의 권익 사이에서 주 정부는 결국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자들은 정부의 노동 정책이 해고를 쉽게하고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친기업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CITU는 2024년 10월 8일 삼성인도노동복지조합(SILWU)과 연대해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으며, 주 정부가 개입해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옹호할 것을 촉구했다.
SILWU가 노동조합으로 등록되면 파업 중 민형사상 소송에 대한 면책을 받게 된다. 노조는 단체교섭권과 쟁의시 조합원을 대표할 수 있는 권리도 얻게 된다. 법적으로 노조 설립 신청을 하면 45일 내에 허가를 내줘야 하지만, 실제 노동자들은 90일이 넘도록 승인을 받을 수 없었다. 삼성전자 사측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일부 노동자 단체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경험 많은 상급노조가 개입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단체협약을 거부하고 노조를 고소했다.
CITU의 칸치푸람(Kancheepuram)지부 서기이자 SIWU의 리더인 N. 무투쿠마르는 삼성전자 인도공장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사측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요구 사항을 제기한 직원들은 신규 업무관련 교육도 없이 다른 곳으로 재배치됐습니다. 질문 하나를 위해 혼자 방에서 몇 시간 씩 기다려야 했습니다. 휴가를 거부당했고, 가혹한 초과 근무를 강요받았으며, 동료들로부터 고립됐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이번 파업은 노조에 관한 것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무투쿠마르는 "노동자에게는 노조와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인도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지난 7월, 한국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가 임금 인상과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은 삼성전자 인도공장 파업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SIWU는 한국 내 삼성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며,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 노동자들 역시 인도공장 파업 지지 성명으로 화답했다.
해당 성명에서 전삼노는 "SIWU의 삼성전자 무노조 경영에 맞선 저항에 함께하며, 전세계 어디에서든 반노동적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덧붙여 "이번 인도삼성노동자 파업은 노동자 권리회복을 위한 정당한 투쟁으로 사측이 신속하고 성실하게 이를 해결해 줄 것"을 촉구했다.
주류 언론들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를 폄하하고 축소하기 바쁘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인도 내 다른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동자들이 CITU와 같은 경험 많고 규모있는 노조와 함께 해 자신감을 얻었고, 연대를 확산시켜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른 글로벌 기업들 역시 삼성과 유사한 노동자 투쟁에 직면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친기업 정책을 따르고 있는 한국과 인도 정부는 재정, 통화, 산업 정책 등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임금 하락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경기침체 극복과 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들에게만 양보하고 타협할 것을 강요한다. 삼성 자본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윤을 축적해 글로벌 기업이 되는 동안 무노조 경영으로 자사 인권과 노동권을 무시해 왔으며, 한국 정부는 삼성의 노동 탄압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인도 정부 역시 삼성과 같은 다국적기업들이 자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시되고, 많은 경우 공권력에 의해 탄압받는다.
모디 총리와 윤석열이 만드려는 국가는 기업하기 좋은 국가, 노동자들이 기업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국가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파업 투쟁에 나선 한국과 인도의 삼성노동자 역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언제나 양보할 것을 강요받는 노동자이면서, 글로벌 삼성의 이윤을 만드는 핵심 동력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삼성 인도공장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는 것, 노동자들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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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혜
교열 : 박성우,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