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러시아 파병설을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24년 11월 15일
남한과 북조선 양국은 서로를 향해 ‘남조선’과 ‘북한’으로 호명해왔는데 이는 서로를 통일의 대상이자 헌법상 ‘반국가 불법단체’로 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또한 이는 70년째 휴전 상태인 한반도의 불안정한 조건과 통일 담론의 공백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이 글은 남한 사회에서 ‘북한’으로 통칭하는 휴전선 이북의 정치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조선’으로 지칭한다.
- 최근 북조선 통치세력의 대외정세 인식 변화를 비판적으로 짚고 동아시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사회운동의 시야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점증하는 동아시아 전쟁 위기, 통일 담론이 마주한 한계」를 참고하기 바란다.
- 햇볕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잠재성은 무엇이었는지 되짚고 사회운동이 직면한 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햇볕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사회운동의 새로운 도전」을 읽어보길 권한다.
조·러 조약 체결
지난 2024년 6월 18일 조선과 러시아연방공화국(이하 ‘러시아’)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조선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평양에서 만난 양국 정상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조약에 직접 서명을 하고 비준서를 교환했으며, 이와 즉시 조약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위 조약은 서문과 정치·무역·투자·안보 협력 등을 다루는 23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약문에 따르면 양국은 “직접적인 무력 침공의 위협이 발생할 경우 (…) 즉시 양자 협상 채널을 가동하여 입장을 조정하고 실행 가능한 실질적 조치를 논의”(3조)하며, 어느 한 쪽이 “무력 침공으로 전쟁 상태에 놓일 경우 (상대국은) 유엔 헌장 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및 러시아 연방의 법에 따라 지체 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군사 및 기타 지원을 제공한다”(4조)고 약속했다. 3조가 ‘평시 위기 상황’ 대응 조항이라면, 4조는 ‘전시’ 대비 조항이다.
조·러 조약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다양하다. 특히 조약의 4조 내용을 두고 ‘자동개입’ 조항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왕선택 한평연구소 글로벌외교센터장은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는 부분을 봤을 땐 흔히 말하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에 해당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반면 최규빈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 자동 군사 개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대통령실 역시 자동군사개입은 아닐 것이라고 해석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3조와 4조에 ‘2중의 완충장치’(입장 조정 및 유엔 헌장 51조)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실제 조약에는 “유엔 헌장 51조와 조선·러시아 법에 따라”라는 문구가 삽입돼 있다. 이는 군사적 자동개입을 가로막거나 회피하려는 국제법·국내법적 안전장치일 것이다. 유엔 헌장 51조는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 발생 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인정하고, 자위권을 행사한 회원국은 취한 조치를 즉시 안보리에 보고하며, 이러한 자위권 행사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적용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러시아 입장 에서 보면 이러한 장치는 러시아가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개입하지 않을 여지를 충분히 마련해둔 셈이다. 반면 조선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장치가 부재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해석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사회운동의 견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자신의 정치적·계급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조선과 러시아는 왜 조약을 체결했나
그렇다면 조선이 러시아와 위의 조약을 체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이 기대하는 가장 큰 이점은 ‘안전보장’일 것이다. 러시아와의 군사 동맹 관계를 통해 미국 등 잠재적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높여 안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으라 기대했을 것이다. 리라ㄷ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는 조선 입장에서는 고립 상태에 놓여 있는 대외 관계에서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고,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향후에 재개될 수 있는 핵 협상에서 어느 정도 지원세력을 확보하고, 러시아와의 협력 아래 군사력의 현대화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에 대한 유엔 제재조치로 인해 중국-조선 간 무역은 거의 중단된 상황에서, 그나마 러시아와는 미미한 교역이 이뤄져 왔다. 지난 6월 푸틴은 2023년 조·러 교역량이 9배 증가했고, 올 상반기에는 54% 더 증가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조약은 경제난으로 위협받는 조선 통치체제의 안정성을 높이고, 김정은 리더십의 기반을 다지는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조선은 작금의 국제 정세를 “신랭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된다”고 평가하면서, 이러한 구도와 담론을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신냉전 담론을 통해 진영화된 세계질서에 자신들의 핵보유 정당성을 주장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파생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부전을 파고들어 북조선 핵을 불법화한 매커니즘의 정당성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다극화 세계’에 대한 지향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현 구도에서 ‘신냉전’과 ‘다극화’는 오히려 현 시대를 규정하는 언어가 아니라, 이원화된 구도의 양편을 가르는 구획으로 가시화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3년째 지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름의 활로를 찾는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엄청난 양의 탄약과 미사일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으로부터 군수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 조약이 동북아 역내 러시아의 전략 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CSIS)는 서방에 대항하는 새로운 동맹 축을 형성하고, 대체 무역 및 상호 결제 메커니즘을 통해 국제 제재를 일부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CSIS는 이번 조약 체결이 단기적 전술이 아닌 장기적 전략적 협력을 위한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한편,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는 푸틴의 장기 집권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를 대비하는 전략적 자산 확보 차원으로 평가한다.
지난 10월 말 푸틴은 해당 조약이 “어떤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단지 과거 소련과 체결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쌍무 조약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친러·반미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방위조약’보다 포괄적인 ‘기본조약’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러시아의 유라시아 안보 시스템 구축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한다.
조선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설
이런 상황에서 10월 17일 젤렌스키는 브뤼셀에서 열린 NATO 정상회담에서 지상군과 기술 인력 등 약 1만 명의 조선군 병력이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10월 18일에는 국가정보원이 김정은의 직접 시찰이 이뤄지는 가운데 “북한이 훈련을 위해 러시아 선박 7척에 특수부대원 1,500명을 수송했다”면서, “최근 총 12,000명 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의 러시아 파병설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주재해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10월 23일, 미 백악관 역시 10월에 최소 3,000명의 조선군 병력이 러시아 동부에 도착했으며, 그들이 뭘 할지는 불분명하지만 우크라이나와의 전투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발표했다. 이즈음 조선의 러시아 파병 여부는 동북아 정세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10월 25일,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은 러시아군 통신 감청 데이터를 공개하면서, 조선군 부대 가 러시아의 쿠르스크 지역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도청 자료에 따르면 조선군은 10월 24일 아침 쿠르스크 지역의 포스토얄리예 드보리 야전 캠프 지역에서 이동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러시아군은 조선군 병력 30명당 통역 1명과 고위 장교 3명을 배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도청 자료에서 러시아 군인들은 ‘K대대’라는 코드명으로 투입되는 조선 군인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며 “빌어먹을 중국인들”이라고 불렀다.
11월 4일 미 국방부 대변인인 팻 라이더 공군 소장은 “최소 1만 명의 북한군이 러시아 극동에서 수천 마일을 이동해 우크라이나가 8월에 국경을 넘나 드는 기습 공세를 시작한 이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로이드 J.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조선의 참전을 “매우 심각한” 격화로 규정하고, “이는 유럽과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확실한 판단을 공개하지 않던 미국의 입장에서 이런 평가는 변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양한 위치에 있는 전문가들은 이것이 그때그때 미국이 갖고 있는 전략적인 목표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조선의 러시아 파병설에 대한 각국의 정보 평가는 갈수록 변화한다. 한국과 미국 정보당국이 말하는 수치가 다르고, 그 수치마저 계속 뒤바뀐다. 무엇보다 확증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정보의 비대칭성과 불확실성
일련의 폭로에 대해 푸틴은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듯한 뉘앙스로 말을 흘리고, 명확하게 ‘전투병 파병’이라고 밝히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보다 더 많거나 더 나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보 비대칭성이 유지될 경우, 정보를 갖고 있는 쪽은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처럼 불확실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조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능력이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유지함으로써 상대방의 행동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언론이나 정치인, 사회운동 등 누구든 한쪽의 정보를 편향적으로 취득해 이를 근거 삼아 즉자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한국 주류 언론들의 습관적인 서구 언론 받아쓰기는 널리 알려진대로다. 서구 언론발 국외 뉴스에 대한 정보 검증 과정이 전무하고, 받아쓰기에만 몰두하다보니 이리저리 휘둘린다.
한데 이에 대한 그 반대편의 반응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긴 마찬가지다. 10월 말,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나 외신들로부터 온갖 말들이 쏟아질 때 이 사안에 대해 쉽게 확증하는 듯한 여러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파병은 없다"거나 "모든 것이 음모"라는 단정, 전투병이 아니라 건설인력이라는 주장까지. 조선군이 일찌감치 지난해부터 러시아에 진지 보수 등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공병부대 역시 군의 일부다. 또, 전투부대인지 공병부대에 한한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쉽게 단정짓는 태도 역시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서구언론을 받아쓰기만 하는 국내 언론들에 대해 강한 비판의식은 존중할 만하지만, 푸틴을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하는 듯한 편향성과 이원대립 구도에 갇힌 정세 판단, 친러적 입장의 과잉된 확신 등은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사회운동이 그런 섣부른 태도를 갖는다면 더 위험할 것이다.
지난 10월 29일, 진보당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해영 등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참가자들의 논리를 뜯어볼 때 “전투병 1만 명이 파병됐다”(젤렌스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파병은 없다”고 단정할 만한 여지 역시 없어보인다.
이와 반대로 지난 11월 9일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우크라이나·국정원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입장을 내면서, 이를 근거로 우크라이나 지원을 강화하려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우회적 무기 지원에 대해 '규탄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사회진보연대의 모순적인 입장을 반영한다. 노동자민중이 자국 정부의 군사 지원을 긍정하면서 반전평화를 말할 순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반전평화운동의 길은 분명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정보들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이는 진위 파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는 조선이 전투병을 보냈을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되지만, 너무 쉽게 단정해서도 곤란하다. 더구나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영상이나 음성 모두의 조작이 가능한 상황에서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혹은 러시아쪽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정보들 중 상당수는 허위 정보였다. 젤렌스키 도피설, 프랑스 용병 투입설, 푸틴 심정지설, 그리고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각각 양측 국민들에게 배포하는 가짜 뉴스들이 그것이다. 따라서 한쪽의 정보를 갖고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 태도로 언론 보도를 반복하거나, 사회운동의 입장을 정해선 안 된다.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정세에서 사회운동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현재의 전쟁위기 정세를 확산시킬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을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설령 조선의 러시아 파병이 공병부대 수준일지라도, 이러한 간접적 참전은 (윤석열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한·미·일 군사연습이 그렇듯) 동북아시아 긴장을 고조시킨다. 공병부대에 참전한 평범한 노동자들은 전쟁통에 너무 쉽게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사회를 지지하는 이들의 입장이 될 순 없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서도 불가했듯, 조선의 파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판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현 상황을 지렛대 삼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파병을 꾀하거나 살상무기 지원을 확대하려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규탄하고 반대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이런 시도는 윤석열이 국내에서 처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케 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고, 외부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전을 야기한다. 또한 이는 한반도 정세의 심각한 위기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한반도에 서 전쟁이 발생하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의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그 영향은 반세기 이상 지속될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근거 없는 확신을 바탕으로 논박을 지속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안보 불안이라는 요소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정권의 작태를 저지하는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이 즉각 휴전을 이루는 동시에 러시아가 철수하도록 압박하고, 양국 사이의 오래된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양국 민중의 무의미한 죽음을 멈출 수 있으며, 살상무기 지원이나 파병은 공멸의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