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보는 피해자들의 마음

일본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보는 피해자들의 마음

일본 정부는 세계적인 '평화상' 위상에 걸맞게 핵무기 금지 조약 체결하라!

2024년 11월 29일

[동아시아]일본탈핵운동, 일본, 반전평화, 사회운동

[번역자의 말] 지난 10월 11일 일본 히단쿄(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日本原水爆被害者団体協議会)의 노벨평화상 수여가 발표되었다.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작가 미야자키 소노코가 피폭지·히로시마에서 받아들이는 노벨평화상의 의미에 대해 <주간금요일>에 기고한 내용을 번역했다.

일본 히단쿄가 202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미국과의 핵 공유를 지론으로 펼치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선출된 직후다. 핵무기로 보장되는 안보체제를 부정해 온 피폭자들은 기쁨에 겨울 틈도 없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니혼 히단쿄!” 노벨위원회 요르겐 왓네 프리드네스 위원장이 평화상 수상 단체명을 호명하자 순식간에 이 소식이 세계를 누볐다. 위원장은 가끔 원고에 눈을 내리뜨리면서도 정면을 바라보며 7분 가까이 수상의 이유를 밝혔다.

“(히단쿄의 운동은) ‘히바쿠샤-원폭피해자’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들에 의한 풀뿌리 운동이었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내왔습니다.”

1954년 3월 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일본 참치잡이 어선이 피폭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 내 각지에서 원자&수소폭탄 금지를 호소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서 일본 히단쿄가 결성됐다. 원폭이 투하된 지 11년이 지났을 때였다.

“(원폭이 떨어진)그 때 죽음을 면했던 우리가 이제 떨쳐 일어나 모였다.” 결성 당시 이러한 문구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인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를 한 이후에도 이러한 핵실험을 통해 오히려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시켜왔다. 이러한 세상의 현실 앞에 “우리의 체험을 드러내어 핵의 위협에서 인류를 구하겠다는 결의를 서로 다진다”는 마음이었다.

그로부터 약 70년의 세월 동안 일본 히단쿄는 각 광역자치단체마다 협의체를 두고, 원폭 피해에 대한 국가 보상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 정부와 유엔 및 각국 정부에 핵무기 폐기를 요구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피폭 체험을 증언했다. 그러나 피폭자의 평균 연령이 85세를 넘은 지금, 이미 지역 히단쿄 일부는 해산되어 전체 조직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의 운동이 이해받았다’

노벨평화상 위원장은 히단쿄의 역사와 현재를 언급하면서 “육체적 괴로움과 아픈 기억을 평화를 갈망하는 행동으로 승화시키는 선택을 한 모든 피폭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젊은 위원장이 우리의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서 감동했습니다.” 일본 히단쿄 대표위원의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13세 때 나가사키에서 피폭한 다나카 테루미 씨(92세)가 말했다. 원폭이 투하된 중심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피폭되어 5명의 친족을 잃었다. 일본 히단쿄가 결성되었을 때는 도쿄에 있는 대학교 1학년생이었다. 고향 나가사키에 잠깐 들렸던 무렵, 우연히 히단쿄 결성 대회에 참가했다.

다나카 씨는 도호쿠 대학에서 공학계통 연구자로서 일하면서 1970년경부터 일본 히단쿄 활동을 했다. 1985년에는 사무국장을 맡았고 2017년부터 대표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다나카 테루미는 일본 정부에 요구사항을 보내는 일정을 마치고 사이타마현의 자택에 돌아온 직후에 노벨상 발표를 들었다. 기자가 전화로 노벨상 소식을 알려줬다. 한바탕 취재 소동이 벌어진 후 다음 날 아침 뉴스를 보았다. 「노 모어·히바쿠샤」라고 유엔에서 힘차게 호소했던 나가사키의 야마구치 센지 씨나 국내외를 분주히 다니며 활동했던 히로시마의 이토 사카에 씨 등 지금은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20여년 전 노벨평화상을 전한 외신 보도에서 당시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을 놓친 일본 히단쿄에 대해 ‘미국의 원폭투하에 항의하는 단체’라고 설명한 것을 본 다나카 씨는 나토 회원국이기도 한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의 정세가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또다시 핵무기 사용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는 지금 시기의 수상에 다나카 씨는 마음이 무겁다.

“지금의 심각한 핵 위기 속에서 피폭자들이 역할을 발휘했으면 하는 마음이 노벨위원회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수상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이시바 총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노벨상 수상 축하 인사를 건네며 자신이 어릴 적 원폭 피해를 기록한 영화를 보았고 수학여행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시바 총리는 핵 억제론을 긍정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는 궁극적으로 핵을 폐기해야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핵 보유 자체가 금기다

노벨위원회가 발표한 ‘핵 금기(Nuclear Taboo)’라는 표현을 납득하기 어렵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일본 히단쿄 회원들의 노고로) 핵무기 사용은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낙인을 찍는 강력한 국제 규범이 점차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히단쿄는 “핵 사용이 금기인 것이 아니라, 핵 보유 자체가 금기”라며, “[핵 억지]는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핵을 쓰겠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결코 용서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핵무기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 기자 | 지난 몇 년 동안 이러한 핵 금기가 약화되었나요?
  • 히단쿄 | 우리는 핵무기 사용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낙인찍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국제 규범이 위협을 받고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노벨상 수상 이유에 대한 인터뷰에서 핵사용에 대한 금기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지만 핵보유 금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달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상식에는 일본 히단쿄 대표들뿐만 아니라 운영위원들 모두 참석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히단쿄 운영위원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비용(9백만엔~1천만엔)을 2배 넘게 모아 모두 31명이 현지 수상식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노벨평화상을 계기로 유일한 전쟁 피폭국의 간판을 내걸면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겠다는 일본 정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것이다. 드디어 핵무기금지조약까지는 만들어졌다. 일본 정부가 이 조약을 비준하도록 해야 한다. 그 필요성을 일본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역주] 1994년부터 31년간 일본은 유엔에 [핵무기 폐기를 위한 결의안]을 매해 제출하여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가 이에 찬성해왔다. 그러나 정작 일본은 히단쿄가 강력히 요구하는 핵무기금지조약(TPNW)엔 가입하지 않았다. TPNW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나아가 핵무기 개발·생산·비축·사용·위협 등의 활동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약으로 2017년 유엔에서 채택됐다. 비준국이 50개국을 넘으면서 2021년 1월 발효됐다. 그러나 미국·중국·러시아 등 핵무기 보유국과 일본·한국 등 핵우산을 제공받는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2024년 11월 1일, 핵전쟁이 일어났을 때 벌어질 상황에 대해 내년부터 과학적으로 연구·조사하겠다는 유엔 결의안에는 영국·프랑스·러시아가 반대, 미국은 기권했다. 결국 핵보유국들은 말로는 핵무기를 폐기하자고 하면서 실제적인 행동은 거부한 것이다. 이 뉴스와 관련된 한국어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https://www.reachingcriticalwill.org/news/latest-news/17267-new-un-panel-will-study-the-effects-of-nuclear-war

노벨평화상 수상에 임해 히로시마에서는 10월 17일, 핵무기 반대 서명운동 등을 함께 진행한 「히로시마 피폭자 일곱 단체」가 공동으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공동 성명에서는 일본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일본이 평화외교력을 강화하고 핵무기금지조약을 체결하고 다른 핵보유국을 함께 참여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노벨상이 주는)국제적인 명예와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한국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의 4대 위원장이자 히로시마 피폭 2세인 권준오(75세) 씨는 “노벨상 수상 이유를 말하면서 피폭자 중에 한반도 출신자가 많았다는 것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매우 섭섭했다”고 말했다. 일본 히단쿄가 피폭자 원호(보상)의 확충과 일본국가의 보상을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일했지만, 일본인으로 취급되어 피폭한 후 고향(한반도)에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뒤로 밀려나곤 했다. 한반도 출신 원폭 희생자는 2만 명에서 3만 명 수준으로 가늠되는데, 제대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 때문에 주한 피폭자, 재일 피폭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싸워왔다. 권준오 씨는 “앞으로도 한반도 출신 피폭자의 투쟁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5월, G7 히로시마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핵보유국 미국·영국 등의 수뇌와 손을 맞잡고 핵 억지력을 긍정하는 내용을 담은 「핵군축에 관한 G7 정상 히로시마 비전(G7 Leaders’ Hiroshima Vision on Nuclear Disarmament)」을 발표했다. 하지만 유일한 전쟁 피폭국인 일본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빠른 시일 내에 실현하겠다는 각오가 있는가? 그리고 피폭자의 바람을 이어받은 우리 일본인에게 핵무기뿐만 아니라 전쟁 자체, 그리고 차별과 억압, 인권 침해도 단호히 부정하는 신념이 있는가? 일본 히단쿄 노벨평화상 수상을 맞이하여 우리를 향한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글 : 미야자키 소노코

번역 : 박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