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지와지! 미군 성범죄 은폐한 일본 정부에 분노한 오키나와 주민들

와지와지! 미군 성범죄 은폐한 일본 정부에 분노한 오키나와 주민들

“전쟁이 끝난 지 80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오키나와는 버려진 땅이구나.”

2024년 10월 21일

[동아시아]오키나와성폭력, 오키나와, 일본, 국가폭력

2023년 12월 24일, 오키나와에 있는 가데나 미군기지소속 병장 브레논 워싱턴이 일면식도 없는 16세 미만의 소녀를 자택에 데려가 성폭행(비동의 성관계)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6개월이 조금 지난 2024년 7월 12일에 피고인의 첫 공판이 나하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공판에서 브레논 피고인은 “나는 무죄다. 유괴도 성폭행도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공판 진술에 따르면 소녀는 당일 모친과 말싸움을 한 뒤 집을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때 지나가던 피고인이 다가와 “몇 살이냐?”고 묻고 번역앱 등을 통해 소녀와 대화를 한 뒤 자신의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갔다. 소녀가 귀가한 후 모친에게 울며 피해 사실을 말하자 모친이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법정에서 피고인은 “18세(성인)라고 들었다. 성적인 접촉은 했으나 성관계는 하지 않았고 사전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했으며 일본 검찰은 공원 폐쇄회로카메라와 소녀에게서 채취한 DNA를 증거로 제출했다. 피고가 무죄를 주장할 경우 미성년이라도 의무적으로 법정진술을 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소녀가 가림막을 두고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이미 7월에 또다른 성추행 피해를 입었음을 밝혔다. 소녀는 “7월에 성추행했던 미군이 ‘자신의 집’이라고 가리킨 장소가 12월에 끌려간 집과 같아서 동일인임을 알았다”라고 진술했다. “소녀가 18세라고 말했고, 동의 없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는 미군과 “자신의 나이를 속이지 않았고, STOP이라는 의사표시를 했으며, (두 번이나 피해를 당해)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소녀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공판에서는 피고인이 12월 당일에 츄하이(탄산과 증류주가 혼합된 알콜음료) 3캔을 마셨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조직적인 성범죄 은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12월에 일어난 이 사건이 다음 해 6월 25일까지 오키나와 현민에게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고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 지사조차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키나와현 경찰은 외무성에게는 보고하면서도 현청에는 알리지 않았다. 외무성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사건이 드러나기 이틀 전인 6월 23일, 오키나와 ‘위령의 날(1945년 오키나와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날)’에 참석하여 일본의 미군기지 중 70%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이 같은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이며 오키나와의 부담을 덜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성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에 어떤 항의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키나와에서 기시다 총리가 다마키 지사를 만났을 때도 역시 어떤 언급도 없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위령의 날 직후 이 주간에 오키나와 신문 사법담당 기자에 의해 작년 12월 이후 미군에 의해 일어났으나 은폐된 3건의 성범죄 사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소녀 성폭행 사건 외에도 지난 1월에는 성폭행 미수 혐의로 기소된 사건, 5월에는 상해 혐의로 불기소된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2015~2024년) 오키나와 주둔 미군에 의한 성범죄 추이
최근(2015~2024년) 오키나와 주둔 미군에 의한 성범죄 추이

일본 언론의 반응

이번 사건을 처음 폭로한 <류큐신보>는 물론, 동 지역 언론인 <오키나와 타임스>는 1면 탑기사로 제목을 달고, 연관 기사를 수 페이지에 걸쳐 게재했다. 그러나 <마이니치>, <산케이>, <닛케이> 등의 본토 신문들은 미군기지가 집중되어 있는 오키나와와는 달리 이 사건을 그다지 비중 있게 보도하지 않아 큰 온도 차를 보였다. 미군기지 주변 오염 문제 및 일본 군비확장을 비판해온 <데모크라시 타임즈>는 7월 18일 유튜브 채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이날 방송을 진행한 미야케 변호사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산적하여 지적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며, 다음과 같이 일본 정부의 이중잣대를 규탄했다.

“경찰이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현에) 알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총리에겐 보고하면서 오키나와 지사를 배제시킨 것은 오키나와를 우습게 보는 처사다. 또한 도주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높은 피의자를 석방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녀 성폭행 사건의 경우 소녀를 유괴한 장소(피의자의 집)가 소녀의 생활권 내에 위치하므로 피의자가 소녀에게 접근할(합의 종용 등) 가능성이 높고, 더욱이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공판 전에 석방하는 일은 전례가 없다. 그동안 일본에서 무고하게 범죄자로 몰려 구속되었던 일본인 사법 피해자들에겐 보석을 허가하지 않던 사법부가 미군에게만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또한 5월에 발생한 미 해군의 폭행 사건을 6월 17일에 가서야 기소한 이유가 오키나와 국회의원선거(6월 16일 시행)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죄’ 없는 기자회견과 주민 항의

6월 25일 첫 보도가 나온 이틀 뒤 가데나 기지의 사령관은 오키나와현청을 방문해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이다”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죄 표현이나 (성)범죄 재발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고, 오키나와의 시민들은 즉각 항의행동을 시작했다. 성폭력 근절을 외치는 [플라워데모 in KOZA💬]의 회원들은 다음날인 6월 28일, 피고인 중 한 명이 소속된 가데나 미군기지 2번게이트 앞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SNS를 통해 모인 100명 남짓의 사람들이 노랑, 분홍 등 색색의 꽃을 들고 피해자를 생각하며 미일 정부와 미군에 분노와 불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소녀의 존엄을 되돌려놓아라! 기지 반대! 강간 반대!”의 영어구호를 외쳤다. 주최자 중에는 “범죄가 끊이지 않아 두고 볼 수가 없다.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다.” 며 한탄하는 이도 있었다.

  • 💬 여기서 KOZA란, 가데나 미군기지 2번게이트를 기점으로 오키나와 중심 시가지에 있는 메인스트리트의 이름이다.

하지만 오키나와 시민들의 이런 항의에도 미군의 성범죄는 반복됐다. 미군 사령관이 유감 표명을 한 일주일 뒤인 7월 3일 밤에 미국 독립을 기념하는 프리덤 페스티발과 불꽃놀이가 펼쳐졌는데, 다음날 술에 취한 미군이 낯선 여성의 가슴을 만진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2024년 8월 열린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 성범죄 규탄 집회
2024년 8월 열린 오키나와 주민들의 미군 성범죄 규탄 집회

부조리와 싸워온 주민들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성)범죄 문제는 양국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1995년 미군 세 명이 오키나와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오키나와 현민 8만 5천 명이 운집하였고 이러한 항의행동으로 1997년 각종 문제를 일으켰던 후텐마 비행장의 이설이 결정되었다.

2016년에는 산보 중이던 여성이 미군 소속 가해자에게 성폭행당한 후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나 이 해에 열린 현민대회에도 7만 5천 명가량이 모였다. 2016년 이후에는 몇만 명 규모의 현민대회는 개최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도 헤노코 기지 공사장 앞에는 날마다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행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중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오키나와와 대만이 중국에 침공받을 수 있다는 ‘전쟁위기설’을 부추기며 매우 강경한 태도로 빠르게 오키나와 전 섬을 요새화하는 중이다.

도시 가운데 있는 후텐마를 대신할 공군기지로 선정된 헤노코가 지반이 약하며 기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수차례 받았음에도 일본정부는 오키나와현의 전체 의견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헤노코 매립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급기야 미군범죄은폐 폭로 직후인 6월 28일에는 헤노코 기지 앞에서 항의행동을 하던 시민과 경비원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다. 기지 공사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바다 매립에 동원되는 공사 트럭을 몸으로 막는 항의행동을 벌여왔다. 정부도 이들의 안전을 위해 트럭의 속도와 숫자를 제한해왔다. 지금까지의 룰을 깨고 공사를 서두르면서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도 발생하는 미군기지 범죄

미군기지 범죄는 오키나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나가와현 즈시시에서는 2022년 7월 요코스카 기지 소속 미군이 도로에서 지나가던 남녀 4명을 차례로 밀어 넘어뜨리고 발길질을 하여 큰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있었다. 그 판결 공판이 지난 9월 26일, 요코하마 지방 법원에서 열려 크리거 다니엘 피고(31)에게 징역 2년 4월, 집행 유예 4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사건 발생부터 판결까지 2년 2개월 동안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보상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 당일 밤 피고는 경찰관과 즈시경찰서까지 갔지만, 허위로 이름과 주소를 댄 후, 음주 측정을 거부한 채 택시로 귀가했다. 미일지위협정 제17조 5-c는 '일본이 재판권을 행사해야 할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이나 군속의 신병 구금은 그자의 신병이 합중국의 수중에 있을 때에는 일본이 공소를 제기할 때까지 합중국이 계속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가나가와현에서도 올해 5월 미군에 의한 뺑소니 사건이 있었고, 9월 18일에는 요코스카시에서 미군에 의한 차량 충돌 사고로 일본인이 사망했다. 어느 사건에서도 미군은 체포되지 않았다. 다음 주 10월 18일에는 요코하마 지방 법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 재판이 열릴 예정이며, 이 법원에 신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는 서명한 사람이 3천 명을 넘었다.

미군기지 범죄를 뿌리뽑으려면

한국에서는 90년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각종 미군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이를 알리고 한미지위협정을 개정하도록 촉구했다. 일본에서도 미일간의 심각하게 불평등한 협정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협정을 개선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평화롭고 자주적인 방위’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지금 일본은 한국정부처럼 점점 더 미국에 깊게 의존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은 나날이 강화되며 군사 훈련의 강도와 군비는 증강일색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기지가 있는 곳에 평화와 안전과 평등을 기대하는 것은 허무하다. 오키나와 주민의 안전을 위해 방공호를 설치하고, 군사기지건설을 서두른다는 핑계는 미군성범죄 은폐 사건으로 인해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버렸다.

와지와지(화난다는 오키나와 사투리), 전쟁이 끝난 지 80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오키나와는 버려진 땅이구나.“

플라워 데모에 나온 66세 참가자의 말이다. 오키나와 시민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 절망과 체념이 아닌 ‘동아시아 평화의 구심점으로서의 오키나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번 미군 범죄 사건에 대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대응과 본토의 기지 및 해외의 기지반대 시민들과의 연대를 주목해야 한다.

글 : 박근영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