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24년 10월 11일
지난 9월 20일 월례포럼에서는 위험이 아래로 전가되는 산업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고,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에 대해 아리셀 참사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손진우 활동가의 강연을 듣고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은 이 강연을 들은 활동가의 후기이다.
1993년 5월 10일, 태국에서 는 홍콩 자본인 케이더그룹이 운영하던 봉제공장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188명(이 중 184명이 여성 노동자)이 사망했고, 469명이 다쳤다.
당시 사측은 노동자들이 일당보다 비싼 인형을 훔쳐 갈 것을 우려해 공장 출입문을 잠갔을 뿐만 아니라, 비용 절감을 위해 화재에 취약한 건물을 지었다. 심지어 화재 대피 훈련도 실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모아졌다. 1996년 4월 28일, 국제자유노련(ICFTU) 대표들은 산재 사망 노동자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이 날을 ‘세계 산재사망 추모의 날’로 공식화했다. 그 결과, 매년 4월 28일 각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안전운동 활동가들은 이 날을 기억하는 행동을 열어왔다.
이날 강연자인 손진우 활동가는 한국 사회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앞서 소개한 과거의 중대재해 참사와 닮아있다고 역설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진상규명·재발방지팀의 1차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 수많은 경고와 위험신호에도 사측은 불법적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 안전교육은 내팽개쳤고 법·제도와 관리 감독은 허술했다.
참사가 벌어지기 불과 3달 전 소방 당국은 아리셀에 화재폭발로 인한 인명피해를 경고한 바 있다. 2021년부터 참사 이틀 전까지 공장 안에서는 네 차례 걸쳐 화재 폭발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만큼 위험천만한 공장이었지만, 아리셀은 이를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공장 안을 넘어 에스코넥 아리셀이 군에 납품한 리튬 전지는 군부대 내에서 보관 중3차례 나 폭발했다. 그 와중에 국방부에 납품해야 할 생산 물량을 맞추기 위해 숙련되지 못한 노동자들을 고용해 불량률은 높아졌다. 사측이 검사용 전지 시료를 바꿔치기 하다가 국방부에 적발됐지만, 납품 계약은 유지됐다.
참사 전에 아리셀을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 없었을까? 어이없게도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산업안전공단은 위험성 평가를 통해 아리셀을 3년 연속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했다. 그 덕분에 아리셀은 산재 보험료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아리셀은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지난 3월에 위탁받은 민간기관을 통해 1차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을 받았는데, 컨설팅 비용 3만 원을 지급하지 않아 6월로 예정된 2차 컨설팅이 중단되기까지 했다. 참사 직후에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했지만, 당시 안전 컨설팅 비용 3만 원은 아낀 것이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전가한 원인으로 지목된 불법적인 고용 형태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법파견 위반 사업장 점검 수를 줄여왔다.
강연의 말미에서는 ‘23명의 희생자들은 왜 대피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으로 고용되어 리튬전지의 위험성에 대한 안전교육과 대피 훈련은 전무했고, 참사 당시 비상구로 향하는 길목에는 정규직 노동자만 열 수 있는 문이 가로막고 있어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발표가 이어지던 도중 손진우 활동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이 붉어졌고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났다. 참사 초기부터 유가족 곁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면서 활동해 온 활동가의 슬픔이 느껴졌다.
유가족들은 매일 화성시청과 아리셀의 지분 96%를 소유한 모회사 에스코넥 본사, 오랫동안 에스코넥과 협력사 관계를 맺어온 삼성과 국방부 앞, 뒷짐 지고 있는 용산 집무실과 국회 앞을 오가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월례포럼에 참가하면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했지만,‘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반복하지 않기 위해’우리가 곁에서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 시간이었다.
글 : 고갑호
[월례포럼 이후]
아리셀 지분의 96% 소유한 ‘지배회사’ 에스코넥은 참사의 책임 주체임에도 박순관 대표이사 사임으로 꼬리를 자르며 가족협의회의 실무교섭 요구에 어떤 답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가족협의회는 참사의 주범인 에스코넥에 책임을 묻는 전면적인 투쟁에 돌입했다. 에스코넥이 사과하고 실질책임자로 나설 것, 개별 합의를 철회하고 집단 교섭에 나올 것 등을 요구하며 에스코넥 본사 앞에서 선전전과 무기한 농성을 비롯한 항의 행동을 진행 중이다. 제대로 된 사과와 교섭이 진전될 수 있도록 투쟁에 많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에스코넥 본사(경기도 광주) 앞 항의 행동과 삼성전자 본사 앞 시민 추모제가 매주 1회 진행된다고 한다. 이 행동에 함께 할 수 있다.
- 매주 화요일(19시): 삼성전자 본사 앞 집중 시민추모제
- 매주 목요일(19시): 에스코넥 본사 앞 집중 시민추모제
- <대책위 투쟁 기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31-0670528 박세연
아리셀 참사 주범 에스코넥을 처벌하라!
실질책임자 에스코넥은 유가족과 교섭하라!
에스코넥은 유가족에 사과하고 대화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