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여공의 노래 | 그곳에 모순과 억압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 | 그곳에 모순과 억압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영화평] 이원식 감독의 다큐멘터리 <조선인 여공의 노래>

2024년 9월 15일

[읽을거리]비평영화, 제국주의, 역사, 일본, 일제강점기, 식민주의, 여성노동자

한·일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다.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역사학자 김형석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놓고 광복회와 정부가 갈등을 벌이다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 (김태효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실 제1차장, 2024년 8월 15일) “일본이 수십 차례 사과해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 (대통령실, 2024년 8월 18일) 같은 발언이 쏟아졌다. 식민지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던 일본 니가타현에 위치한 사도광산(佐渡金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도 외교부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식민 지배의 어두운 과거를 묻으려는 행태를 보인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이런 시기에 어울리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의 수많은 민중 가운데서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 식민지 조선에서는 먹고살기 힘들어 오사카 방적공장으로 건너간 여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희망을 찾아 떠난 일본에서의 삶은 그러나 가난과 차별, 착취로 가득했다. 먹을 게 없어서 일본인들은 오사카 사투리로 ‘쓰레기(호루몬, ホルモン)’라 부르며 버리는 돼지 내장을 먹었고, 공장 벽에는 ‘조선인은 돼지다’ ‘조선인이 사람이라면 잠자리도 새인 것이다’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과중한 노동을 하다가 깜빡 졸아 실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욕설과 폭력에 노출됐다. 기계에 팔이 끼여서 다쳐도 위로와 걱정 대신 “네가 졸아서 그렇다”는 차가운 말을 들었다. 조선인으로 겪은 차별, 노동자로 겪은 착취 말고 여성이기에 겪었던 고통도 있었다. 정치깡패로 악명 높았던 박춘금 등의 친일파 조선인으로 구성된 노무관리 담당 단체 ‘상애회’(相愛会)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돈을 받고 조선인 여공을 강제 혼인시키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성폭력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목화솜이 눈처럼 날리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결핵에 걸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결핵이 불치병이었던데다, 여공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영양상태가 나빠 많은 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갔다. 회사는 이들의 장례식을 간단히 치렀지만, 제대로 된 무덤을 세워주지는 않았다. 조선인 여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단 하나 남아 있을 뿐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이국땅에서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도 알 수 없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은 처연하다. 조선인 여공들의 역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 히구치 유이치(樋口雄一, 작중에서는 ‘히구치 요이치’로 등장하지만 이는 이름을 잘못 표시한 것이다.)는 직접 묘지를 방문하고는 “책으로만 읽던 내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그저 피해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기 삶의 주체로 서기 위해 분투한다. 야학을 조직해 한글을 배우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다. 당시 이들의 요구사항은 ▲임금 삭감을 철회할 것 ▲통근 수당, 주택 수당, 식비를 줄 것 ▲점심, 저녁때 30분간 휴식을 줄 것 ▲목욕 시설, 세탁실을 마련해 줄 것 등이었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특히 해고된 일본인 동료를 위해 파업한 일화는 제국 본토와 식민지의 민중들이 보여준 국제연대의 좋은 사례로 기억할 만하다. 일본인 여공들은 조선인 여공처럼 차별과 혐오를 겪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처지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목화솜이 일본인, 조선인의 폐를 구별하지는 않으니 일본인 여공들도 결핵에 많이 걸렸다. 특히 야채를 주로 먹었던 일본인 여공보다 ‘쓰레기’라 불리는 돼지 내장을 먹었던 조선인 여공들의 영양상태가 더 좋았다는 역설은 제국 출신의 하층 노동자들 또한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구조적 빈곤의 피해자였음을 암시한다.

조선인 여공들이 벌인 몇 차례의 파업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나, 영화는 그들의 투쟁을 실패로 묘사하지 않는다. ‘여공들은 뒷머리에 붉은 댕기를 찬다. 기록에 따르면 그 댕기들이 바람에 흔들렸다고 한다. 결코 지지 않겠다는 붉은 마음의 소리 없는 포효일 것이다.’ (이송희일, <조선인 돼지의 붉은 댕기>, 노동과세계)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한편으로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는 현재의 한·일 과거사 논쟁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를테면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결핵에 시달렸던 이들의 상황은 과거 동대문 평화시장의 ‘시다’를 연상케 한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화시장 노동자 126명(시다, 미싱사, 재단사 포함) 중 96명이 진폐, 폐결핵 등 기관지 계통의 질환에 시달렸다. 노동시간도 작업량이 많은 기간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14~15시간으로 조선인 여공들의 노동시간과 비슷했다. 말하자면 오사카 방적공장의 조선인 여공들은 조국 근대화, 경제 성장이란 미명 아래 희생당한 평화시장 ‘시다’들의 선배였다.

과중한 노동을 하다가 기계에 팔이 끼여 다쳤다는 대목에서는 사고가 끊이질 않던 1980년대의 공장들도 떠오른다. 가령 인천의 경동산업은 ‘1년에 잘려 나가는 손가락이 양동이로 하나가 된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고 할 만큼 산업재해가 자주 일어났다. ‘육중한 프레스 밑으로 철판을 집어넣고 스위치를 밟고 철커덩 소리와 함께 다시 철판을 빼내고, 새 철판을 집어넣고 이 짓을 하루 종일 하다 보면, 내가 일하는지 프레스가 일하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위험한 순간은 철야 작업의 마지막 새벽. 일 끝나면 영희를 볼까, 누구하고 소주 한잔 걸치나 생각하다 그만 사고가 나는 것이었다.’ (황광우,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창비, 114쪽)

물론 이는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업종과 사고 유형과 질환은 다를지언정 한국 사회에서는 매년 2천여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리튬배터리에 붙은 불 때문에 23명이 사망한 경기도 화성시의 삼성전자 하청 업체 아리셀의 노동자, 배송을 독촉하는 원청 직원에게 ‘개처럼 뛰고 있다’는 답장을 보낼 만큼 과중한 노동을 하다가 사망한 택배 노동자, 폭염 속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다가 온열질환으로 숨진 20대 노동자의 이야기와 조선인 여공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자본의 이윤 앞에 노동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가혹한 현실을 통해 연결된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스틸샷 중

또한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학교 이전에 이미 일본에서 한글 교육을 시도했던 재일조선인 1세의 이야기이며, 일본인 여공의 해고를 막기 위해 혹은 일본인 여공들과 손잡고 파업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국제연대운동이기도 하다. 조선인 여공들이 지금도 존재하는 성폭력의 피해자였기에 여성운동의 관점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는 좀 더 널리, 깊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오랫동안 잊힌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새롭게 기억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이야기다. 이 조선인 여공들은 모순과 억압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는 진실, 어떤 투쟁도 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앞선 이들의 투쟁에 빚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지금 우리의 싸움 또한 무언가를 남기며 미래의 또 다른 투쟁들과 연결되리라는 희망을 묵묵히, 그러나 뚜렷하게 증명한다.

참고 자료

  • 김상목, <‘조선의 돼지들’ 멸시 받은 여공들은 이렇게 버텼다>, 오마이뉴스, 2024.08.06.
  • 이송희일, <조선인 돼지의 붉은 댕기>, 노동과세계, 2024.08.07.
  • 이세아, <100년 전 가혹노동·차별 맞선 조선 여공들>, 여성신문, 2024.08.25.
  • 황광우,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창비, 2007
  • 조영래, 『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1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포스터
조선인 여공의 노래 A Song of Korean Factory Girls 포스터

글 : 김경훈 (뉴스레터 동동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