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이 한국 사회를 달구고 있다.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역사학자 김형석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놓고 광복회와 정부가 갈등을 벌이다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 (김 태효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실 제1차장, 2024년 8월 15일) “일본이 수십 차례 사과해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 (대통령실, 2024년 8월 18일) 같은 발언이 쏟아졌다. 식민지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던 일본 니가타현에 위치한 사도광산(佐渡金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도 외교부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식민 지배의 어두운 과거를 묻으려는 행태를 보인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이런 시기에 어울리는 영화다. 이 영화는 일제 강점기의 수많은 민중 가운데서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 식민지 조선에서는 먹고살기 힘들어 오사카 방적공장으로 건너간 여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희망을 찾아 떠난 일본에서의 삶은 그러나 가난과 차별, 착취로 가득했다. 먹을 게 없어서 일본인들은 오사카 사투리로 ‘쓰레기(호루몬, ホルモン)’라 부르며 버리는 돼지 내장을 먹었고, 공장 벽에는 ‘조선인은 돼지다’ ‘조선인이 사람이라면 잠자리도 새인 것이다’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과중한 노동을 하다가 깜빡 졸아 실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욕설과 폭력에 노출됐다. 기계에 팔이 끼여서 다쳐도 위로와 걱정 대신 “네가 졸아서 그렇다”는 차가운 말을 들었다. 조선인으로 겪은 차별, 노동자로 겪은 착취 말고 여성이기에 겪었던 고통도 있었다. 정치깡패로 악명 높았던 박춘금 등의 친일파 조선인으로 구성된 노무관리 담당 단체 ‘상애회’(相愛会)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돈을 받고 조선인 여공을 강제 혼인시키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성폭력이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목화솜이 눈처럼 날리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결핵에 걸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결핵이 불치병이었던데다, 여공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영양상태가 나빠 많은 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갔다. 회사는 이들의 장례식을 간단히 치렀지만, 제대로 된 무덤을 세워주지는 않았다. 조선인 여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단 하나 남아 있을 뿐이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이국땅에서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도 알 수 없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은 처연하다. 조선인 여공들의 역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 히구치 유이치(樋口雄一, 작중에서는 ‘히구치 요이치’로 등장하지만 이는 이름을 잘못 표시한 것이다.)는 직접 묘지를 방문하고는 “책으로만 읽던 내용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그저 피해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이들은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기 삶의 주체로 서기 위해 분투한다. 야학을 조직해 한글을 배우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다. 당시 이들의 요구사항은 ▲임금 삭감을 철회할 것 ▲통근 수당, 주택 수당, 식비를 줄 것 ▲점심, 저녁때 30분간 휴식을 줄 것 ▲목욕 시설, 세탁실을 마련해 줄 것 등이었다.
특히 해고된 일본인 동료를 위해 파업한 일화는 제국 본토와 식민지의 민중들이 보여준 국제연대의 좋은 사례로 기억할 만하다. 일본인 여공들은 조선인 여공처럼 차별과 혐오를 겪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처지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목화솜이 일본인, 조선인의 폐를 구별하지는 않으니 일본인 여공들도 결핵에 많이 걸렸다. 특히 야채를 주로 먹었던 일본인 여공보다 ‘쓰레기’라 불리는 돼지 내장을 먹었던 조선인 여공들의 영양상태가 더 좋았다는 역설은 제국 출신의 하층 노동자들 또한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구조적 빈곤의 피해자였음을 암시한다.
조선인 여공들이 벌인 몇 차례의 파업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나, 영화는 그들의 투쟁을 실패로 묘사하지 않는다. ‘여공들은 뒷머리에 붉은 댕기를 찬다. 기록에 따르면 그 댕기들이 바람에 흔들렸다고 한다. 결코 지지 않겠다는 붉은 마음의 소리 없는 포효일 것이다.’ (이송희일, <조선인 돼지의 붉은 댕기>, 노동과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