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민은 좋고, 저 이민은 나쁘다? | 일본 육성취로제도

그 이민은 좋고, 저 이민은 나쁘다? | 일본 육성취로제도

지난 6월 15일 일본 입법부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고, 2027년부터 기존 기능실습제도를 대체하는 ‘육성취로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2024년 8월 9일

[동아시아]일본이주민, 일본, 이주노동자, 사회복지

2010년대 이후 일본에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정부나 언론을 통해 집중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인구와 노동력 문제다. 일본의 경우 출산율 0명대를 기록 중인 한국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1970년대부터 고령화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출산율은 계속해서 1명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인구 구조상 가장 큰비중을 차지하는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 종전 직후인 1947년부터 1949년 사이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 약 800만 명)가 세상을 떠나는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2015년 이래 일본 총인구수는 감소 중이다.

인구 감소가 경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입장이 엇갈린다. 그러나 전 세계 국가 중 몇 안 되게 1억 명이 넘는 총인구수를 바탕으로 일본이 규모의 경제를 꾸려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인구 감소는 어떤 식으로든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서는 특히 고된 직종, 소위 3K 직종(‘きつい’=키츠이=힘들다, ‘汚い’=키타나이=더럽다, ‘危険’=키켄=위험하다의 줄임말로 한국의 3D 업종과 같은 뜻)에 대한 기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3K 직종에 속하는 일자리 상당수는 제조업, 농·어업, 요양서비스 등 사회복지영역의 노동에 속한다.

일본의 제조업 입지는 1980년대 이후 한국, 대만, 중국이 신흥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하며 약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 산업이다. 한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농지 면적을 바탕으로 한 농업, 4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여 발달한 어업 등의 1차 산업도 도외시할 수 없다.

또, 오랜 시간 지속된 고령화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을 돌보기 위한 사회복지 일자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영역은 모두 청년들이 기피하는 3K 직종에 속한다.

설상가상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에서 거품이 서서히 꺼져가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업들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여왔고, 인건비는 가장 통제하기 쉬운 지출 영역 중 하나였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 상황을 제외하고 1인당 일자리수는 항상 1개 이상을 유지해왔지만,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사실 물가는 거의 변동이 없었거나, 오히려 전년 대비 내려가는 디플레이션 상태가 길어졌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조금이라도 임금 상승 여지가 있고 육체에 무리를 주지 않는 사무직에 대한 선호를 키우도록 만들었다.

2024년 6월 기준 일본의 1인당 일자리수는 1.23개였으나 사무직은 0.87개에 그쳤다. 반면 제조업종의 1인당 일자리수는 3.36개, 농립어업은 2.01개, 요양서비스업은 무려 4.79개였다. 수치상으로는 일본의 총 일자리수가 구직자 1인에게 모두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수가 많지만, 대다수 구직자는 사무직을 선호하고 있다. 또, 제조업·농림어업·요양서비스업에서 구인이 필요한 인원 대비 구직자는 현저히 부족하다.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필요한 일본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경제나 사회의 존속에 필요한 업종의 종사자를 어떻게든 유지하면서도, 인건비를 절감할 방안을 궁리했다. 그 해답은 바로 이주노동자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북·서유럽 각국에서 인구 고령화 현상 및 국가 유지를 위한 필수 노동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것에 구직 희망자가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동유럽이나 튀르키예, 아프리카에서 노동자들을 대거 유입시켰던 것처럼,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일자리의 빈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북·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일본은 자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로서 대우하지 않았다. 애초 이주노동자 제도의 이름부터 ‘기능실습제도’였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기술을 훈련받기 위해’ 일본에 온 ‘학생’들로 취급받았다.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한 이들은 일본에서 배운 기술을 자국에서 발휘하기 위해 ‘반드시 자국으로 귀국해야만’ 한다.

물론 실상은 다르다. 아무리 정부가 해당 제도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하지 않을 것’(労働力の需給の調整の手段として行われてはならないこと)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능실습제도가 도입된 순간부터 거의 모든 기업들은 이를 합법적인 저임금 노동자 수급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런 상황이 기능실습제도가 처음 도입된 1993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해 같은해(1993년) 도입한 한국 ‘산업연수생제도' 역시 같은 문제가 계속 빈발하다가 2004년부터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오랜 시간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적 제도를 존속해온 셈이다.

기능실습제도가 시대에 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제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일본 정부는 뒤늦게 법 개정을 시도했다. 결국 지난 6월 15일 일본 입법부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고, 2027년부터 기존 기능실습제도를 대체하는 ‘육성취로제도’(育成就労制度)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미 2010년 미국 국무부 연례보고서에서도 일본 기능실습제도는 ‘인신매매’ 소지가 짙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역시 이 제도의 즉각적인 폐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지적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부분적으로 땜질만 해오던 일본 정부가 2023년부터 전문가 회의를 통해 새로운 이주노동자 관리제도를 만들기 시작해 2024년에야 결과를 낸 것이다.

기존 기능실습제도가 이주노동자들이 원칙적으로 회사를 옮길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육성취로제도는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면 이주노동자들의 의향으로 회사 전직이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아직 조건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과 후생노동성은 약 1-2년 간의 연속적인 근무를 이행한 이주노동자 중, 기능검정시험과 일본어 시험에서 모두 합격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최대 5년간의 체류가 보장되는 ‘특정기능1호’, 제한 없이 체류가 가능한 ‘특정기능2호’ 비자가 기능실습제도와는별도로 운영되었던 것과 달리, 육성취로제도는 제도의 목적 자체를 비자와 결합했다. 해당 제도로 이주노동자들을 일본에 부른 기업들은 특정기능비자 취득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를 적절하게 지원할 의무가 발생한다. 특정기능비자 취득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는 3년 안에 기능검정시험이나 특정기능1호 비자 평가 시험, JLPT N4 이상에 해당하는 일본어 능력검정시험에서 합격하는 등 일정 기준을 만족하면 특정기능1호 비자를 취득할 수 있다. 특정기능1호 비자로 노동이 가능한 5년 동안 비자 취득을 위한 일련의 기준을 만족하면 체류 제한이 없는 특정기능2호 비자의 취득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허용된 일자리에 대한 분야별 세부 관리 지침 책정, 업종별 이주노동자 상한선 등을 마련하고,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이 이번 육성취로제도에 담겨 있다.

왜 일본은 이제야 이주노동제도를 도입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국내는 물론, 외부로부터의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을 무시할 수 없다. 또 하나는,일본의 이주노동자 수급은 시간이 갈수록 그 중요도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5년부터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제조업은 처우나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자국민들의 선호가 낮아진 지 오래다. 이를 메우기 위해 1990년대부터 기능실습제도를 도입해 이주노동자를 불러오게 되었지만, 오랜 기간 이들을 제대로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는 상황은 점차 이주노동자들의 일본에 대한 선호를 떨어뜨릴 위험이 커지도록 만들었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한국과 같은 대체 선택지가 존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의 인구 감소 폭이커질 것이 분명하고, 당연히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시대에 뒤쳐진 제도를 유지하는 한, 이주노동자의 수를 늘리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육성취로제도’, 다른 이민과의 차별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육성취로제도에는 이전의 기능실습제도보다 나아진 부분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능실습제도의 수정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이직이 불가능했던 기능실습제도와 달리 육성취로제도에서는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이직이 가능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기능실습제도처럼 육성취로제도 역시 기본적으로 최대 3년 동안만 근무가 가능하다. 1~2년 연속 근무해야 이직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빠른 이직을 꿈꿀 정도의 직장이면 결코 근무 환경이 좋다고는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직을 위해서는 1-2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어떻게든 부당함과 열악함을 참고 버텨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떠나고 싶어 하는 회사는 아무리 법적으로 의무를 부여한다고 해도, 노동자의 의향에 맞게 이직에 필요한 여러 시험 준비를 얼마나 성실하게 지원해 줄지 의문이 남는다. 기능실습제도가 30년 넘게 이어지며 자잘한 수정이 이뤄지고, 그와 함께 회사가 준수해야 할 여러 의무가 점차 늘어났지만, 최저임금 미만으로 임금을 지급하거나 제대로 된 기숙사를 제공하지않는 등의 문제는 계속 반복되었다. 설사 간신히 이직을 위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도, 만약 이직에 필요한 기간이 2년으로 확정되면 단 1년 동안 일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를 어떤 기업이 받아주려 할까. 특정기능비자를 취득하면 체류기간 연장이 가능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고된 업무 속에서 체류 연장을 위한 각종 시험 준비에 전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육성취로제도의 많은 내용은 기능실습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기능실습제도와 똑같이 육성취로제도에서도 육성취로 3년간 가족 동반 입국과 체류가 불가능하다. 열심히 노력하여 특정기능비자를 취득해도 특정기능1호 비자로는 여전히 가족을 동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일본에서 8년 동안 쭉 일을 하면서 체류기간 연장을 위한 온갖 시험에 모두 합격해야지만 가족들도 같이 일본에 부르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에 지난 6월 육성취로제도가 일본 국회를 통과하기 전부터 일본의 이주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강력하게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일본에서 이주노동을 비롯한 다양한 노동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POSSE의 대표 콘노 하루키(今野晴貴)는 지난 4월 기고문을 통해 “일본 정부가 여전히 ‘노예노동’의 존속에 집착하고 있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새로운 제도에는 임신한 기능실습생의 98%가 출산 이후에 복직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인식도, 이주노동자 산재 문제에 대한 접근도 없다”면서 해당 법이 여전히 일본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이나 권리 증진으로는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실질적인 권익 개선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2012년부터는 ‘고도인재 포인트제도’(高度人材ポイント制度)를, 그리고 지난 4월부터는 소위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デジタルノマド) 비자로 칭하는 ‘특정활동’ 재류자격을 신설했다. 이를 통해 전문직, 고소득 노동력 유치에 전념하려는 것이다. ‘고도인재 포인트’는 전문직이나 학술연구자, 경영 관리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영주권 제도다. 카테고리마다 일정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들만 해당 포인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QS(Quacquarelli Symonds)나 THE(The Times Higher Education) 같은 세계 대학랭킹 중 2개 평가기관에서 300위 이내 대학/원을 나온 이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 명문대 졸업자들을 유치하려는 강한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의 경우 역시 선진국이나 중견국으로 분류되는 특정 국가 출신의 사람들 중 연 수입 1000만 엔이 넘어가는 사람에 한정된다. 최대 체류기간은 6개월이며, 배우자나 자식의 동반 체류도 가능하다. 물론 디지털 노마드 비자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일본보다 더 앞서서 한국에서도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등 본국을 떠나 해외에서 관광 겸 원격근무를 하는 고소득자를 노린 비자의 유형이다.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미적지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직·고소득자 대상의 체류 제도 신설은 일본 정부의 차별적인 자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떤 이민은 좋고, 또 다른 이민은 완강히 거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 역시 일본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근래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 사고를 비롯한 자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분명하게 마주보고, 근본적 개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참고 자료

글 : 성상민

교열 :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