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2024년 8월 6일 저녁 열린 플랫폼c 회원 집담회의 발제문에 집담회에 참가한 회원들의 의견을 보태 수정한 것이다.
8월 1일 오후에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2차 회의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 조직위원회 구성 기준에 “22대 총선에서 보수양당과 함께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 정당 역시 참여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서 1시간이 넘는 논의 끝에 찬성 23표, 반대 28표, 기권 19표로 수정안이 부결됐다. 그 후 해당 안건의 상정과 논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과정에서 플랫폼C는 위성정당을 추진하고 가담하는 행위에 반대하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제3지대'와 '위성정당'의 합종연횡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진보정당 내 이런 이합집산이 정치지망생들의 생존 경쟁과 이념적 혼란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선 직전에도 진보당이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한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노동자운동과 진보정치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사회운동 단체들이 연대하여 올바른 정치세력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사회운동 속에서 이런 흐름을 조직하려고 노력했고, 이를 위해 ‘위성정당 지지 비판 토론회’와 ‘위성정당 거부 기자회견’을 주최하고 참여했다. 또, 플랫폼c 회원모임 내에서 위와 같은 내용의 토론을 진행했고, 회원 개개인들과 다양한 장소에서의 토론에 적극 참여했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지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 체제를 유지 및 강화하는 거대 양당을 넘어, 독립적인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중장기적인 전망과 계획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기후정의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강화에 힘쓰는 동시에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를 조직하고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세력화를 모색해왔다.
이번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의 2차 회의 표결에서 플랫폼c는 제출된 수정안에 반대했다. 진보당의 위성정당 참여에 대한 비판을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제척과 결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순된 정치적 결정이 아니며, 독립적인 정치세력화 모색을 방기하는 입장 역시 아니다.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2~3만 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조직하는 역할을 맡은 연대기구다. 조직위는 7월 11일 1차 회의를 열었으며 9월 7일 집회 후 정리와 평가를 거치고 10월경에 해산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협동조합, 연구소, 종교단체, 정치조직 등 다양한 400개 단체(8월 8일 오전 7시 기준)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넓은 범주에서 시민사회 또는 진보진영에 속하지만 활동 방식과 주요 관심사, 정치적 배경 및 지향이 다양하다.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와 같은 연대기구는 참여단체의 독립성과 차이를 존중하면서, 공동행동을 위해 상호 합의할 수 있는 내용과 실천을 중심으로 대중적 운동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조직위원회 구성 기준 수정안은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에서 진보정당 중 하나인 진보당을 배제하자는 제안이다. 위성정당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과 올해 기후정의행진 조직기구에서 진보당을 배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심급의 문제다. 연대기구는 정치적 입장, 조직형태가 다른 상이한 단체들이 참여하여, 해당 시기에 함께 투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어떤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무조건 관철할 수 없고, 그렇게 하려면 연대기구가 와해되어 강력한 운동을 전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907 조직위에는 진보당뿐만 아니라 전환의 경로, 기업 및 기득 정치권과의 재정적·정치적 독립성, 구체적 이슈에 대한 찬반 등에서 서로 다른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쟁점은 907 조직위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의 공간에서 토론과 논쟁, 운동 간 경합을 통해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2023년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가 기본소득당을 제척한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도 플랫폼C는 “기본소득당이 위성정당에 가입한 문제는 크게 비판받아 마땅하나, 조직위 가입에서 배제하는 결정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기후정의행진 조직위 3차 회의에서 제안된 “기본소득당의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 참여가 선거법 개혁과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성찰할 것을 권고한다”는 ‘수정안1’을 지지했다. 그러나 논의과정에서 “기본소득당의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 참여가 선거법 개혁과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에 대해 성찰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을 권고한다. 9월 18일까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시 별도 조 직위원회 의결 없이 조직위원회에서 제척한다”는 ‘수정안2’가 발의되었다. ‘수정안1’ 발의자가 ‘수정안2’를 지지하면서, 결과적으로 ‘수정안2’가 표결에 참여한 54개 단체 중 33개 단체의 찬성으로 의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C 역시 ‘수정안2’를 지지했다. 당시 판단은 2주간의 소통 시간에 기본소득당이 성찰의 목소리를 낸다면 일방적 제척이 아닐 수 있다는 기대가 담긴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특정 조직을 제척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이 결정을 반성적으로 평가한다.
애초부터 진보진영과 기후정의운동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진보당을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참여단체 간 합의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위성정당 참여 찬반을 넘어서는 역사적, 조직적, 정치적 측면에서 단기간에 감축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기후정의행진을 제안한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의동맹에 참여하고 있고, 많은 사회운동 연대체에 속해 있으며, 노동운동과 농민운동·빈민운동 대중조직에도 주요하게 포진하고 있다. 해당 안건이 제기되었을 때부터 이후 진행될 우려스러운 일들은 명약관화했다. 많은 단체가 적절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토론에 참여하게 되고, 합의와 절충이 어려워 결국 입장이 갈리는 표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으며, 표결의 결과는 진보당을 배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정은 위성정당 참여에 대한 정치적 승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성정당이 조직위 참여 자격으로 시비가 붙었기 때문에, 위성정당 참여를 간접적으로 승인해주는 정치적 결정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결국 수정안에 찬성한 측은 진보당 제척에 실패하고, 위성정당 참여를 비판하지만 조직위 참가 자격과 결부하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에 수정안에 기권이나 반대한 측도, 표결의 의미에 대한 제각각의 해석으로 인해 추가 입장을 내놓고 있다. 누구도 원치 않는 과정과 결과 아니었을까.
기후정의운동은 운동 속에서 토론과 실천을 통해서 서로를 설득하고, 동시에 더 많은 시민들을 조직해서 기득권력과의 대결을 고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천적 과오를 저지른 조직이나 상이한 입장을 가진 세력이라도 투쟁의 전선에 함께 서서 싸우면서 운동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지향과 세력화 방안에 따른 경합도 이루어진다. 이는 지금까지 기후정의운동이 거쳐온 과정이다. 기후정의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기후정책 및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한 입장, 생계비 위기 시기 무차별적 에너지 요금인상의 정당성, 이번 총선에서 기후유권자와 기후선거 전술의 타당성 등으로 논쟁해왔다. 이런 토론과 논쟁은 기후정의운동의 분화와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기후정의운동은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상설적 연대체를 구성하면서도, 기후정의행진이라는 공동행동에는 하나의 기구를 구성해 함께하고 있다.
진보당의 위성정당 참여 문제는 우리가 답해야 하는 과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진보당을 비판하고 배척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차원이 아니다. 물론 진보당의 지향과 여러 현장의 실천 양태, 위성정당 참여에 대해 비판할 바가 많다. 그러나 잠재적 경쟁자를 대중조직과 대중운동에서 배척하는 방식으로 우리 노선과 실천의 타당성을 입증받을 수는 없다. 위성정당 사태가 제기하는 것은, 기후정의운동 또는 체제전환운동의 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자기 과제에 관한 질문이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다른 진보적 정치세력화 시도도 부침 끝에 변변치 못한 현실이다.
시민사회운동과 좌파적 사회운동의 현재 역시 왜소하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좌파적 사회운동을 강화하고, 다른 정치세력화를 추구할지에 관한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운동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이를 모으고 발전시킬 권력 형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치세력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우리는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및 다양한 정치·사회운동과 함께 이를 모색을 해야 한다.
기후정의운동 강화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에서 기후정의운동이 부상한 것은 2018년 이후 세계적인 기후운동의 새로운 물결에 힙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흐름을 운동의 과제로 제기하고, 대규모 집회로 시민을 조직하고, 그 안에 기후정의 및 체제전환, 그리고 대중적 주체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것은 플랫폼C를 비롯한 사회운동과 활동가들의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서 가능했다. 지금은 기후정의운동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시기다. 세계적으로 기후운동의 사이클은 하락했다. 여기엔 신자유주의적 전환 정책으로 인한 대중들의 반발(그린래시), 기업과 금융권력을 활용한 시장주의적 전환 기획의 무능, 좌파 정당운동과 사회운동의 부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국도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사회적 의제가 주는 긴장감이 이완되고, 보수정부와 자본의 전횡이 계속되는 속에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경로와 사회적 힘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도약을 꿈꿔야 하지만, 손쉬운 지름길은 없다. 9월 7일 기후정의행진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예년보다 보름가량 당겨진 일정 속에서 많은 조직과 활동가들이 집회 조직화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더욱 강력한 기후정의행진을 위해 흩어진 마음을 모으자. 9월 7일 우리의 요구를 외치고 힘차게 행진하자. 그리고 한 번의 집회에서 멈추지 말고, 민중을 조직화해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의 주체를 형성하고 아래로부터의 권력을 만드는 긴 여정에 힘을 모아 함께 나서자.
플랫폼C 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