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기 | 아리셀 희망버스를 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2024년 8월 27일
리튬 배터리를 만들던 공장에서 불이 나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총 23명이 죽었다. 뉴스에서 본 당시 CCTV 기록 속, 아주 작았던 첫 폭발이 연쇄작용을 일으킨 후 이윽고 카메라 렌즈가 연기로 덮일 때까지 걸린 시간은 42초다. 본질적인질문이 든다. 화면 속 저 위험한 작업을 왜 원청이 직접 하지 않고 위장도급을 주는 걸까? 위험을 감수하기에 이익을 본다면, 그 위험의 책임도 가장 이익을 많이 가져가는 곳에서 져야 하지 않는가. 배터리 산업이 그렇게 전도유망하다면서, 어떻게 실제로 이 물질을 다루는 공장에 정부 감독이 한 번도 없었을까?
리튬 배터리가 얼마나 중요한 물질인지 주식시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동안 막상 이 물질을 다루는 사람은 고려되지 않고 있었고, 나는 그걸 몰랐다는 게 이상했다. 화면 속 빨간 소화기를 끝까지 붙잡고 불을 끄려고 했던 노동자의 모습을 보면서, 기사에서 본 의용소방대의 추모 현수막을 보면서, 23명이라는 사망자 숫자를 보면서, 늘 그렇듯 답해야 할 곳이 답하지 않아, 나는 질문을 간직하고만 있었다.
아리셀 희망버스를 탄 건 순전히 우연이다. 팔레스타인 집회에서 만난 인연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집회에도 아주 가끔만 나갔는데, 캄캄밴드에서도 활동하는 노고지리 학생이 팔레스타인 연대행진 때 같이 북 칠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위에서 북 치는 사람들을 남몰래 부러워하던 차에 옳다구나 싶어 “나!” 하고 나갔다. 사전집회에서 노고지리 깃발을 들고 서 있던 와중,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는 학교 후배가 다소 뻘쭘해 하며 다가왔다. “저희 단체 사람들 다 바빠서 희망버스 혼자 타게 생겼어요. 아···. 혹시 가세요? 저랑 같이 앉아서 가실래요?” 하기에 거절하면 얘도 안 갈 것 같아 호기롭게 또 가겠다 해 버린 것이다. 아직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나도 사회성 없는데. 오전에 일어나는 걸 제일 힘들어하는 주제에 내가 미쳤지.
당일 아침 기적적으로 기상에 성공했다. 너무 예쁘게 뽑힌 팔레스타인 연대 티셔츠를입고 광화문역에 도착하니, 우리 ‘동료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집단학살을 옹호하는 작은 집회를 열고 있었다. 째려보면서 해병대 ‘동료시민들’을지나쳐 서울 희망버스 집결지인 동화면세점 앞에 가니, 같은 팔레스타인 연대티셔츠를입은 사람들과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이 돌아가며 짧게 자기소개를 마친 후, 옆에 앉은 후배와 최근 나간 연대 이야기, 방학인데 어떻게 사는지, 바빠 죽겠다, 졸업하면 뭐 할까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화성에 도착했다.
깃발들이 향하는 대로 따라 걷자 바로 아리셀 공장이었다. 맨 위층 외피가 녹아내리다 멈춰 매달린 그대로, 공장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건물 전면 외피는 다 떨어져 내려 철골만 유지된 채 안이 훤히 보였다. 그곳에서 원래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는 과거도, 23명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공장이 말해줄 수는 없었다. 공장 앞 설치된 간이 분향소에 놓인 영정들이 말해주었다.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부터 진보정당까지 깃발이 정말 많았다. 특히 서울 촌놈이 마주하기 어려운 깃발들이 참 많았고, 또 누군가의 꼬임에마침 시간이 돼 따라갔던 순회투쟁에서 만났던 평택, 울산, 구미 등지에서 온 동지들도 만났다. 일하는 사람들이 주말에 버스를 타고 다른 노동자의 사회적 타살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함께 분노하려 모였다는 게 요즘 세상에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행진 후 땡볕이 내리쬐는 본 무대에서 마지막 유가족들의 말들이 이어졌다. 본국에서 겪어도 처참할 일을 해외 임시거처에 머물며 겪는다면 그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텐데. 어디 나서서 목소리를 낼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을 텐데. 몇 번이고 반복했을 당부의 말을 무대 위에서 전하는 유가족들이 가장 강해 보였다. 가족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알면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다른 이의 가족에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다른 노동자들의 앞에서 발언하는 유가족의 모습이 저 멀리서도 무척 커 보였다. 그 옆에 계속 서 있으려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공장을 보고, 또 유가족의 말을 듣고 주제넘게 화재 당일의 현장을 상상해 보게 됐다. 노동현장에서의 여느 인재(人災)가 그렇듯, 일하는 사람들은 평소처럼 일했을 테다. 이게 잘못하면 불이 날 수 있단 걸 누군가 인지하고 있지만 그걸 조심하다가는 납기를 맞추기도 어렵고, 어떻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 연쇄폭발의 위험이 있으니 불이 붙자마자 바로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누구 하나 알려주지 않았으니 그냥 하던 일을 평소처럼 했을 테다. 안전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고 공정의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비상문 앞에 물건을 쌓아두지않고, 더 안전하게 일할 방법을 모색해 동선을 마련하고···.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노동자에게 작업 시작 전 ‘안전!’이라는 구호를 외치게 할 것이 아니라, 사측에서 사업장 자체의 위험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만일 사고가 난다면 어떤 소화기를 사용해야 하며 그 소화기는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 알렸어야 한다. 아리셀에서 고작 3만 원 아끼자고 안전 컨설팅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당연한 말들이 너무 공염불처럼 느껴져 아득하기만 하다.
민주노총에서 제작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응 투쟁 교육지 첫 장 두 번째 요구사항은 ‘위장도급 불법파견 근본 대책 마련하라’이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얼마 전 급전이 필요해 쿠팡 물류센터에 일일 소분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다. 첫 근무 때에는 반드시 온라인으로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막상 현장에 가면 그 모든 안전교육이 다 무용지물이 된다. 예컨대 안전교육 영상에서는 “롤테이너를 조립할 때에는 꼭 손가락이 끼이지 않게 확인하고, 아래 걸쇠가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하세요!” 외치지만, 막상 일에 투입되면 밀려오는 상자들이 파손되기 전에 빨리빨리 롤테이너를 꺼내 밑판을 던지듯 내리고 아래 걸쇠는 발로 밟아 제대로 걸리든 말든 대충 고정시킨 후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해야 한다.
- 📋롤테이너 : 바퀴가 달린 이동식 운반장비로 삼면이 철망으로 되어있다.
안 그러면 내 앞에서 같은 벨트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두 배로 고생하니 위험해도 미안해서 안 그럴 수가 없다. ‘위험하다!’ 싶으면 이미 때는 늦을 테다. 그 안에 누구도 고의로 나쁜 노동자는 없다. 일용직으로서너무도 미숙한 나의 기술력,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해당 일자의 납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위험을 외주화해 놓고는 수많은 언어를 쓰는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공장 내에서 알아서 해결하기를 바라는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아무리 기술력을 높이더라도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근본 대책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영정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날은 언제 올 것인지. 모두가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할 곳에서 제대로 된 답이 오지 않는다.
글 : 김한울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