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화된 대학, 어떻게 단결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2024년 6월 25일
2018년 결성되어 지난 5년간 차별의 구조를 넘어 생명 안전과 건강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해 온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 그동안의 노학연대 활동에 기반해 대학 내에서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제안한다. 이 글은 대학체제전환운동포럼 2024 “현장에서 묻고 실천으 로 답하라”의 제2세션 <청년·학생운동과 대학 민주주의> 토론문으로 제출되었다.
2018년 서울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성과를 자랑할 때 그 한계를 지적하며 결성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이하 비서공)은, 비정규 불안정노동이 만연한 대학사회의 구조에 균열을 내고자 5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비서공은 노동자와 학생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이 상호의존성에 기반해 공동의 권리를 구성하고, 차별의 구조를 넘어 생명 안전과 건강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학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위한 고민을 재활성화하기 위해 그동안의 노학연대 활동에 기반해 대학 내에서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고민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대학의 책임을 묻다
2021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2019년 열악한 휴게공간에서 발생한 공과대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에 이어, 2년도 채 되지 않아 사망 사건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2021년의 사망 사건에서는 196명 정원의 건물을 혼자 외곽까지 청소해야 했던 높은 노동강도, 그리고 심한 스트레스를 야기한 부적절한 인사관리가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으로 제기되었다.
당시 각종 언론 보도를 거치며 갑질 및 직장 내 괴롭힘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망 사건에 책임이 있는 보직교수들의 부적절한 발언도 인사관리 문제의 연장에서 도마에 올랐다. 물론 인사관리 과정의 폭력에 대한 상세한 진상규명은 당연히 필요하며, 실제로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의 자체조사와 고용노동부의 조사를 통해서도 인권침해가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인권침해가 전체 인사관리의 구조 속에서 파악되지 못한다면, 대학 측의 '꼬리 자르기'로 인해 문제가 개인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사관리의 위계적 구조 속에서 '윗선'의 문제를 규명할 때 대학이 무엇에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제대로 묻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무기계약직 중간관리직원의 '일탈'로 책임을 축소할 경우 책임의 구조를 짚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평소 서울대학교는 무기계약직 직원은 정규직 법인직원의 업무를 보조할 뿐이라며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노동조건을 정당화해왔다. 그러나 인권침해의 가해에 있어서는 자체직원이었던 중간관리자가 보직교수나 법인직원의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일탈적 권한을 행사했다며 책임을 개인화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
2021년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대학이 중층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통해 책임을 회피해왔다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독립채산제 기숙사인 관악사가 시설관리직원을 기관장발령으로 채용함에 따라, 인력 충원을 대학본부가 직접 책임지지 않게 되고, 결국 기숙사와 대학본부가 책임과 권 한을 서로에게 전가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위계화된 구조가 안전과 건강, 생명의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대학본부에 책임을 회피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사망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대학 휴게공간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대학의 책임을 묻는 일은 공간에 대한 민주적 권리로부터 배제된 구성원들을 가시화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 누군가가 권리의 배제 상태에 놓였을 때, 개인이나 특정 기관의 책임으로 귀인하는 대신, 구성원들의 연대를 구성해 대학과 사회에 권리 보장의 책임을 묻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망 사건이 개인화되지 않도록 대학을 압박한 시설노동자들과 행정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연대, 그리고 죽음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명확하게 만들었던 유족분의 손해배상소송은 그런 의미에서 유의미했다.
생협 조리노동자 투쟁
올해 6월, 먹거리운동 주체들로 구성된 “이야기숲”의 제안 덕분에 비서공 학생들과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학생식당 조리노동자들이 함께하는 밥상회가 열렸다. “식탁을 돌보는 이의 식탁”을 주제를 한 밥상회에선 단체급식 사업장에서 밥을 짓는 노동의 어려움 뿐 아니라 일상적인 식사의 경험과, 더 나은 식사를 위한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식탁을 돌보는 노동이 우리의 일상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감각은, 복지와 생활권이 노동권과, 그리고 식사가 만들어지는 생태적이고 윤리적인 고민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상기하게 만든다. 우리는 상호의존성을 발견함과 동시에, 대학 구성원들이 공동의 권리를 구성하고 요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된다.
서울대 생협에선 2019년 가을, 그리고 2021년 가을 파업이 진행되었고 학생들의 연대 활동도 활발했다. 조리노동자들의 투쟁은 수당 차별 개선과 생활임금 쟁취 요구는 물론이고,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식사 차별의 시정, 인력 충원과 노동안전 개선을 통한 건강권 확보를 중요한 요구로 제기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2021년에 조사한 보고서에서 잘 드러나듯,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은 과도한 중량물 취급이나 지나친 노동 강도 등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을 비롯한 직업병과 산업재해에 매우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다. 파업 후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생협 노동자들이 다시 피켓을 들고 인력 충원을 요구한 이유도 노동안전 및 건강권과 관련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며 학식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인난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높은 노동강도가 이직을 초래하고 인원 부족이 다시 노동강도를 높이는 악순환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노학연대 활동은 학생의 복지와 노동자의 권리가 '제로섬' 관계가 아니란 점을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했 다. 대학본부가 정책 결정권을 독점하는 가운데, 서울대 생협은 협동조합으로서의 민주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과거 대학이 직접 운영해온 후생복지 사업을 도맡은 외주기관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중층적 고용구조와 구성원 복지에 대한 대학의 무책임을 양산하고 있을 때, 노동자와 학생들은 '생협 직영화', 혹은 보다 낮은 단계의 요구로서 생협 노동권 및 복지사업에 대한 대학의 재정적 책임을 요구했다. 파업 시기 연대장터 사업을 통해 노동자와 학생의 상호의존성을 체감한 이들은 특히 코로나19 시기 생협 구조조정에 대항해 이와 같은 공동의 요구를 가시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2020년 식대는 인상됨에도 식사의 질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자, 노동자들도 함께 구성원 생활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요구하며 학생들과 연대했다. 식대가 인상된다면 대학도 학생복지를 위해 생협에 재정지원을 확장하라는 요구를 함께 제기하는 가운데, 학생 주체들은 생협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사진전을 열고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학과 생협 간의 구조를 알리고자 노력했다. 권리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묻는단 점에서 학생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던 것과 맥이 닿아있는 실천이었다.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넘어, 상호의존적인 구성원들이 공동의 권리를 구성해나가고, 요구를 만드는 주체들 속에서 서로 돌봄의 관계를 발견하며, 그럼으로써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또 심화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최근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확장되어가는 가운데, ‘천원 학식’의 부담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과도하게 전가되는 것은 아닌지, 대학 간 불평등이 학식의 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학식에서 채식 권리의 보장이나 먹거리 생산에 대한 생태적 고민이 얼마나 미흡한지, 대학 밖 공공급식의 권리는 충분히 조명되고 있는지 등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권리가 지닌 상호의존성을 발견함으로써 공동의 권리를 구성해나가는 연대로 대학 내의 다양한 구획을 넘고 또 한 대학의 담벼락을 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더 나은 복지를 이야기하고, 담론화할 수 있길 염원한다.
불안정노동 없는 대학
‘정규직화’는 여러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도출되어 온 구호였고, 2017년과 2018년 사이 여러 국공립대 및 국공립대법인에서 이루어진 고용형태 전환은 그러한 요구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사례만 보아도 이는 매우 불완전한 전환으로 무기계약직의 '중규직'을 양산하는 형태였으며, 전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계약만료를 감내해야 하는 노동자도 많았다. 전환의 성과는 사립대학으로 퍼져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간접고용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자회사 고용과 유사한 형태로 직종별 차별과 위계화된 중층적 고용구조를 대학가에 만연하게 만들었다. 이마저도 당시 전환자가 점차 퇴직하는 가운데 투쟁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고, 일부 기관에서 용역업체 간접고용이 새로 도입되거나 재도입되면서 퇴색하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일자리의 질과 노동의 권리를 지속적으로 확장해가지 않는 이상 일회적인 '정규직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전통적인 비정규직의 범주와는 다른 형태로 수많은 불안정 노동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또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에서는 자살방지 긴급상담을 담당하는 전화 상담원을 최저임금 미만으로 고용하면서도 ‘프리랜서 고용’을 통해 노동법을 우회한 사실이 공론화되었다. 학생의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감정노동이 저임금 불안정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플랫폼 노동이나 '위장 프리랜서 고용'을 비롯해 노동의 권리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고 오히려 노동자에게 개인화하는 파편화된 고용이 대학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대학 내의 중층적 고용구조에 또 다른 복합적 위계화의 층을 부가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원생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저임금 노동착취나 인권침해도 대학의 노동에 기입된 복합적인 위계화와 차별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통적인 비정규직과는 구분되는 다양한 노동 형태가 등장하는 조건에서도, ‘비정규 불안정노동 없는 대학’이란 구호는 여전히 중요하다. 대학 내 질 낮은 일자리와 불안정한 노동이 만연한 가운데, 우리는 대학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학 내의 비정규 불안정노동에 대한 대학본부와 사회의 책임 회피가 학생의 복지와 교육권, 민주적 권리, 그리고 인권에 대한 책임 회피와 이어져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학생의 요구가 노동과 결부된 지점들을 살펴보며 연대를 확장하고 또 심화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과정에서 노학연대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과 고민은 대학에서의 체제전환이란 구호와 만나게 된다. 노동자의 휴게공간 등 대학 내 공간의 양과 질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면서, 공간에 대한 권리의 평등성을 질문하고 이를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 대학이란 공간 내에서 연결된 공동체 구성원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는, 혹은 아픈 몸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보편적 건강권에 대한 대학의 책임을 구성해나가는 것. 밥과 반찬을 만드는 조리노동을 비롯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생활 재생산을 책임져온 돌봄노동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고, 돌봄 비용의 일방적인 전가를 넘어 상호돌봄의 관계성이 가능한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 일회적인 사업이나 투쟁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과제들이지만, 지속적인 연대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대학에서의 체제전환의 상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파편화되고 중층화된 차별의 구조 속에서, 각자도생과 갈라치기가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상이한 위치와 입장의 주체들이 노학연대를 통해 공동의 권리를 구성하고, 그 권리를 보장할 '대학의 책임'이란 요구를 만들어나갈 때, 대안으로서의 대학 체제전환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불안정노동의 모순에 맞서 대학과 국가에 대한 요구를 중심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운동의 주체들 간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공동체를 조직해야 한다. 이는 대학 민주주의의 급진화,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성찰, 평등과 돌봄과 살림의 공동체를 만드는 실천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다. 체제전환운동의 기조가 보편적인 권리와 정의를 실현할 주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때, 대학에서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교열 : 차송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