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늘어나는 반도체공장, 간과되는 환경과 노동

일본 | 늘어나는 반도체공장, 간과되는 환경과 노동

환경과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지점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채, ‘국익’만을 강조하는 움직임은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2024년 6월 4일

[동아시아]일본일본, 반도체, 노동안전

최근 일본의 반도체 공장 건설 속도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 첫 걸음을 뗀 것은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Taiwan Sen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다. TSMC는 타사의 반도체 생산 의뢰를 위탁받아 제조하는 ‘파운드리’(foundry) 영역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굴지의 제조공장이다.

2021년 12월, TSMC는 소니, 덴소, 토요타와 합작하여 일본 현지법인 JASM(Japan Advanced Seniconductor Manufacturing)을 설립했고, 2022년 4월에는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착공할 때에는 공사 기간을 5년으로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착공 22개월 만인 올해(2024년) 2월에 완공됐다. 공장 완공 전인 지난해 TSMC는 구마모토현에 추가적으로 공장을 짓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더니 완공되기 무섭게 두 번째 공장의 착공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구마모토현 지사 등이 TSMC와 협의해 발 빠르게 3공장 유치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TSMC 공장에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악수하는 TSMC CEO 웨이저자
TSMC 공장에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악수하는 TSMC CEO 웨이저자

TSMC에 이어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선 곳은 ‘라피더스’(Rapidus)다. 라피더스는 2022년 8월 토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오시아, NTT,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8개 대기업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반도체 기업이다. 이중 소니와 키오시아는 현재에도 반도체를 제조·생산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라피더스는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아 미국 IBM, 벨기에 IMEC와 기술제휴 협약을 맺었고, 이어서 작년 9월부터는 홋카이도 치토세에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특혜를 주는 등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2022년 라피더스의 설립 이래 2024년까지 총 9200억엔(약 8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라피더스가 정부 보조금 이상으로 손쉽게 민간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개별 기업에 보증을 서는 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키오시아(구 도시바메모리)가 2022년과 2024년에 각각 새로운 반도체 제조공장을 완공했고, 소니가 2023년 이미지센서 전용 반도체 공장 신설을 선언하는 등 5년도 안 되는 사이 빠른 속도로 반도체 산업 인프라가 커지고 있다.

일본은 왜 이렇게 반도체 공장 신설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일본 반도체 산업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의지를 말한다. 1989년까지만 해도 세계 점유율의 52.1%를 차지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버블경제가 꺼지고, 한국·대만 등 인근 아시아 국가들이 급속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2022년 기준 일본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6% 수준에 그친다. 물론 여전히 소니가 이미지센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키오시아가 낸드플래시 메모리에서 3위의 점유율을 행사하고 있다. 2019년 한·일 간 무역분쟁에서 주목받았던 것처럼 일본은 여전히 반도체 원재료나 제조장비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반도체 상품을 제조·판매할 수 있는 회사가 쇠퇴한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원자재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세계 각지의 반도체 제조공장에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반도체 생산 역시 큰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반도체 재고를 제 때 확보할 수 없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받는 경우가 빈번했다. 일본에서도 자동차 생산이 반도체 수급 문제로 지체되는 것은 물론, 2024년 현재까지도 반도체 수급 문제로 교통카드 제조 및 판매가 제약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2019년 한·일 무역분쟁을 비롯해 근래 급속도로 확산된 미국-중국 간 갈등 상황이 더욱 일본 내에서 다시 반도체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다시 발생한다거나 하는 갈등상황 속에서 반도체 수급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어떤 식으로든 일본에 자체적인 제조 공정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국내외 반도체 제조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과 주요 플레이어 [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세계 반도체 시장과 주요 플레이어 [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환경과 노동이 배제된 반도체산업 열풍

그러나 반도체 공장 건설 붐에 간과되는 요소가 있다. 우선 반도체 공장은 생각 이상으로 환경에 무수한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으로 반도체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공업용수가 필요하다. 조그마한 크기의 칩에 각종 회로를 촘촘하게 새겨 넣고, 큰 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칩에 먼지나 흠집이 있으면 안 된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류가 흘러 오작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노동자들의 새하얀 방진복, 조금의 먼지도 허용하지 않는 ‘클린 룸’은 이를 막기 위한 장치들이다.

이렇게 하고서도 혹시 생길 수 있는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공정에서는 수 차례에 걸쳐 세정 작업이 이뤄진다. 외부에서 유입된 먼지뿐만 아니라, 각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나 미세 연마 작업에서 발생하는 분진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도 세정 작업이 이뤄진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 기업의 국내 물 사용량은 2020년 기준 하루 107만 톤에 달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1인당 하루 평균 물 사용량이 295L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반도체 공장은 하루 362만 명이 쓸 물을 한 번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양의 물을 쓰는 셈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가뭄 등 극단적 기후가 빈번해졌고, 전 세계적으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반도체 제조 공정 과정에서 대량으로 사용되는 공업용수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2020년대 이후 대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본래도 대만은 UN이 지정한 세계 18대 물 부족 국가이다. 연평균 강수량으로만 따지면 세계 평균 대비 2.5배 많으나, 인구밀도가 높아 개인당 연평균 강수량이 세계 평균의 1/6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대만은 2021년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수자원 부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만에서 TSMC같이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많은 농민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 정부는 반도체 생산의 유지를 명목으로 농업용수까지 끌어다 TSMC에 투입하고 있다. 농민들에게 쌀 재배를 줄일 것을 호소하며 그 대가로 손실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이것만으로 대만 농민들의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만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작년 2023년 3월, 일본공산당의 구마모토현 위원회와 지방의회 대표단은 공동으로 구마모토현 지사에게 JASM과 지하수 보전에 대한 협약을 맺을 것을 촉구했다. JASM은 1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이후 하루 12000t의 공업용수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 추산했는데, 이는 JASM이 위치한 주변 마을의 1일 물 사용량과 비슷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마모토현은 일본을 비롯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남긴 수은중독 질병이자 대표적인 공해병 ‘미나마타병’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당시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水俣市)에 위치한 신일본질소비료(현 칫소-JNC) 공장이 바다에 무단으로 메틸수은을 방류했는데, 공식적으로 인정된 환자만 총 2,265명에 달한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만큼 구마모토의 시민들은 수질오염으로 인한 문제를 각별히 신경쓸 수밖에 없다.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에 새로 건설된 TSMC 공장
일본 남서부 구마모토현에 새로 건설된 TSMC 공장

결국 구마모토현은 지역 사회의 요구에 따라 작년 5월 JASM과 지하수 보전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또, 작년 10월에는 대만 TSMC 공장에 시찰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시찰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TSMC 공장의 배출수는 대만 현지 기준은 물론 일본 기준도 충족하고 있어,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수자원이 고갈되거나 오염될 여지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자원에 대한 우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1공장은 물론 새롭게 착공에 들어갈 2공장 역시 인근에 다량의 논밭이 있다. 또, 구마모토현 주민들의 생활용수 대부분이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구마모토현과 JASM은 지하수 고갈을 막기 위해 지하수 수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물 부족 사태로 큰 홍역을 겪은 대만의 사례를 볼 때, 주민들의 불안감을 쉽게 불식시키기란 어려워 보인다.

반도체 공장 건설로 인한 환경 영향에 대한 우려는 라피더스의 공장이 지어지는 홋카이도 치토세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홋카이도 어엽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한 지역의 3개 어민 단체는 홋카이도에 라피더스 공장에서 사용될 공업용수의 취수와 배출을 철저히 관리할 것을 요구했다. 라피더스는 공장 부지의 강에서 공업용수를 취수하고 배출할 예정인데, 이 강은 전통적으로 연어와 송어가 잡히는 어장이다. 공장에서 배출할 공업용수를 잘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어민들은 강에 서식하는 어류에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구마모토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과연 제대로 처리될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노동 제끼고 ‘국익’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일본의 반도체 건설 열풍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환경만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서 설명한 TSMC와 JASM의 구마모토 1공장이 대표적 사례다. 본래 5년간 지어질 예정이었던 공장 건설이 반도 안 되는 시간에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 정부가 공사비의 4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등 빠르게 공사를 촉진했던 원인도 있지만, 휴일 없이 24시간 공사를 실시한 영향도 적지 않다. TSMC는 약 7,000명의 건설 노동자를 3교대로 돌리며 끊임없이 노동력을 투입했다.

많은 사례와 연구 자료에서 드러나듯, 야근은 어떤 식으로든 노동자의 신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신체에 미치는 강도가 큰 건설 작업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TSMC가 노동자를 전방위로 투입하여 계획보다 훨씬 앞서 공사를 마친 모습에 일본 메이저 언론들은 해당 사례를 하나의 귀감으로 조망하며, 다른 공장 건설에 있어서도 이러한 ‘스피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닛케이비즈니스>에서는 TSMC가 구마모토에 이어 미국 애리조나에도 같은 시기에 착공에 들어갔음에도 일본에서 훨씬 빠르게 공장을 완공한 것을 두고,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상대적으로 강성이라 기업이 빠르게 일을 추진하기 어렵지만, 일본은 그러지 않다"고 비교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인용하며, 한국 역시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물론 대만, 미국, 유럽도 자체적인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앞다투어 움직이고 있다. 가령 미국은 화웨이같은 중국 기업을 상대로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설비의 반출 통제에 나서는 등 매우 적극적이고 전투적으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반도체 경쟁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반도체는 현대 자본주의 산업구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됐으며,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대두되면서,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각종 전자산업 제조 공정이 환경과 노동에 미칠 사회적인 영향은 계속 간과되고 있다. 2007년 출범한 이래 삼성전자 등 반도체 제조 공정의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를 제기해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올해 3월 금속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삼성-전자계열사 노동안전실태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조사 결과보고서는 전자산업 제조 공정이 내포한 위험성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제조 공정, 삼성SDI의 배터리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유해화학물질을 조사한 결과, 발암물질이 차지하는 비율은 16%, 생식독성을 지닌 물질은 21%였으며, 또한 삼성전자, 삼성SDI 모두 여전히 노동자 안전에 불충분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환경과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지점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채, ‘국익’만을 강조하는 움직임은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지금의 반도체 열풍을 낳은 근원인 미-중 갈등을 비롯한 국가 간 지속적인 긴장 관계가 각국의 사회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간과한 채, 각국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만 이야기되는 형국이다. 그 이해관계에서 환경과 노동은 쉽게 배제된다. 하지만 환경은 한 번 파괴되는 순간 쉽게 회복할 수 없으며, 사회 전반에 큰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다.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 역시 안전한 노동환경과 충분한 휴식 없이는 질병과 재해로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국가 간 경쟁으로만 반도체 산업을 바라보는 대신, 이러한 산업이 노동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국제적으로 감시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동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피해 노동자 고 황유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피해 노동자 고 황유미 씨와 아버지 황상기 씨

참고 자료

글 : 성상민

교열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