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극으로 점철된 총선 정국, 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2024년 3월 21일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 상황은 우리가 예측한 것보다 더 나쁘게 흘러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의 패악에 분노하면서도 이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고, 사회운동은 이 불만을 능동적으로 조직하는데 까지 나아가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체제전환운동으로의 사회운동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활동가들은 최선을 다 하여 상황에 대응 하고 있고, 희미한 희망의 근거를 지키고 있다.
위성정당에서 벌어진 촌극
민주당 위성정당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자 상상 이상의 일들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연합이라고 명명된 이 위성 텐트가 후보로 내세우기로 한 30명 중 민주당 몫은 20명, 진보당과 새진보연합은 각각 3명, 그리고 민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조응해 위성정당을 추동한 연합정치시민회의가 4명의 후보를 추리기로 합의했다.
- 💀 친명계는 비명계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과정에서 소란을 겪을 것임을 예상했을 것이다. 더구나 거대 정당의 비례용 위성정당은 그 자체로 선거제 개혁을 위한 약속을 스스로 붕괴시키고 분파적 진영논리에 조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분 없는 선거를 치르게 된다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같이 비례연합정당을 꾸린다'는 알리바이는 이 모든 걸 면피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명계에게] 나쁠 게 없다.
연합정치시민회의는 ‘슈퍼스타K’같은 ‘공개 오디션’ 방식을 차용해 이들에게 할당된 비례후보들을 뽑았다. 그 결과 전지예 청년겨례하나 대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정영이 구례군농민회장이 선출됐다. 사실 이 4명 중 2명은 진보당 출신 인사였는데, 이들은 문자 투표(20%)와 배심원단 투표(30%)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심사위원단(50%) 평가에서 고득점을 받아 앞 순번을 배정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 우언론들과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이념 공세를 쏟아냈다. 전지예에 대해선 “종북, 반미단체 출신”이라고 낙인찍었고, 정영이에 대해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면서 비난했다.
북조선 정권의 군비 확장과 핵무기 개발에 대한 사회운동의 입장은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군비 증강은 전쟁 위기만 고조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의 군비 증강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통일운동을 펼치거나, 미국의 패권적인 군사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펼쳤다고 해서 “종북”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극우적이고 메카시즘적인 선동일 뿐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운동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 정책에 맞선 중요한 투쟁이었다. 이런 투쟁의 여파 때문에 대통령 당선 전인 2016년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부는 사드배치 결정을 재검토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며 철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고, 이재명 현 대표는 후보 시절 “사드 배치 철회”를 약속한 바 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으레 그렇듯 당선되고나면 헌신짝 팽개치듯 약속을 깬다.
진보당이 위성정당 참여라는 심각한 오판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오판 속에서도 악질적인 비난 공세에 대해선 당당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진보당은 그러지 않았다.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후보들은 일사분란하게 사 퇴 입장을 내놨다. 자칫하면 이 논란이 비례연합 위성정당 기획을 무산시킬까봐 두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극우 혐오세력은 임태훈에 대해서도 비난 공세를 쏟아부었다. 혐오세력에겐 성소수자이기도 한 임태훈이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조직을 비판하고 개혁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온 것이 ‘비판거리’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기실 한국 사회에서 ‘군대 비판’은 여전히 금기처럼 간주되고 있다. 한데 민주당은 이에 곧바로 화답하며 임태훈 전 소장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공천관리위원회는 부적격 사유가 “병역기피”라고 들이댔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임 전 소장은 1996년부터 동성애 차별에 맞서 활동했고, 2003년 7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 규칙에 저항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해 구속된 바 있다. 연합정치시민회의를 중심으로 구성된 후보추천 심사위는 민주당의 공천 탈락 입장을 강하게 비판하며 ‘재추천’했지만, 민주당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당은 공천관리위원회 서류심사 결고를 통보하는 문자메시지에서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오기하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위성정당의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후보 결정과정에서 민주당이 보인 행보는 그 자체로 기만적이다. 색깔론이 제기되자 민주당의 김민석 총선 상황실장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후보’ 4명의 선정 결과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논의가 있었다”며 사퇴를 압박했고, 임태훈 전 소장에 대한 혐오세력의 비난에 동조해 탈락 시켰다.
진보당이나 위성정당에 동조한 시민사회 원로들은 이런 모욕적이고 원칙에도 반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굽히고 있다. 특히 연합정치시민회의는 당장이라도 판을 깰 것처럼 떠들었지만,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퇴진”이 이런 모든 반동에 눈감게 하는 명분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민주적이고 반동적인 위성정당 대응이 윤석열 퇴진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아마 ‘반윤석열’ 기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위성정당을 그 도구로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지난 3월 7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이름을 딴 ‘조국혁신당’을 창당하고 총선 대응에 나섰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를 내건 이 당의 인기는 민주당이나 친민주당 시민사회 인사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총선 비례대표 정당 투표 의향 조사에 따르면,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26.8%로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31.1%) 다음이다. 그 뒤로 더불어민주연합 18.0%, 개혁신당 4.9%, 자유통일당 4.2%, 새로운미래 4.0%, 녹색정의당 2.7%순이다. 이는 불과 한 달 전만에도 상상할 수 없는 수치다. 어쩌면 3주 후인 총선 당일까지도 격동이 이어질 수 있지만, 민주당 위성정당의 품으로 들어간 이들이 좋은 성적표를 내기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한편, 녹색정의당은 얼마 간 내부 논쟁 속에서 판단하지 못하는듯 하다가 다행히도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녹색정의당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지역구에서의 협의는 열어놓겠다’는 모호한 결정을 하는 바람에 이 결정의 의미가 조금 퇴색될 뻔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녹색정의당을 진보당이나 새진보연합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녹색정의당이 지역구에서의 단일화 협의까지 종료하겠다고 선언해 논란의 불씨는 꺼졌지만, 보다 단호하게 ‘독립적이고 좌파적인 진보정당 노선’을 천명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성정당에 동조한 정당과 위성정당을 거부한 정당을 도매금으로 취급하는 것은 과도하다. 사회운동 좌파는 이런 아쉽고 무른 결정에 대해 비판하더라도, 비판의 수위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사실 민주당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녹색정의당(구 정의당) 내의 스펙트럼은 항상 폭이 넓었다. 민주당과 강력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참여계 등 일부 그룹은 정의당이 독립적인 진보정당 노선으로 회귀할 것이 분명해지자 탈당 후 ‘사회민주당 건설 준비위원회’를 꾸린 바 있다. 얼마 후 이들은 기본소득당과 합당해 ‘새진보연합’이라는 친민주당 위성정당을 자처해서 만들었다. 비례 순번 10번의 댓가는 진보정당 노선에 대한 완전한 기각이나 다름없다. 한편, 민주당에 비판적이었다고 생각하던 의견그룹 ‘세번째권력’은 국민의힘 이탈세력인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일련의 이탈 흐름 이후에도 정의당의 입장이 완전히 정리 된 것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조직력이 이완된 이후 정의당은 항상 구심으로부터 벗어나는 모습들을 응집하지 못했다. 지난 3월 14일 배진교 국회의원이 윤석열 정부 심판을 명분으로 인천 남동구을 선거구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반보수 전선’ 이데올로기의 잔여라 할 수 있다.
총선 이후 녹색정의당 등이 사회운동과 함께 좌파정치와 체제전환운동이라는 중장기적인 비전 속에서 ‘정치세력화 2기’를 개시하려면, 과거의 오류를 정정하고 정치적 비전을 새로 다듬어야 한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좌파정치의 존재 가치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이런 혁신은 녹색정의당이나 녹색당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회운동이 자본주의 모순에 맞선 체제전환운동으로 재구성되고, 대중의 열망을 조직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싹을 티울 수 있다.
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으로 크게 재편됐다. 기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가계급의 권력이 복원되고 재편되는 과정이었으며, 전 사회적인 규범으로 자리잡는 과정이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민주화’라는 과제는 일정하게 ‘시장의 자유화’라는 지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때 민주주의는 정치적 논리와 힘이 시장에 개입하는 걸 막으면서 시장을 그 자체에 일임하는 경향을 갖게 되고, 정치와 정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심화시킨다. 지난 수십 년, 경쟁·효율성·성장 등 시장적 가치를 국가나 정치에 대립하는 것으로 인 식하는 경향이 심화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위기는 자본주의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목하고 공격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민중의 생존권을 추락시킬 뿐이다.
부르주아 정치가 스스로 붕괴하는 국면에서 사회운동이 할 수 있는 일은 달라져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다양하고 복합적인 모순들에 맞서 ‘사회’를 재건하려면, 사회운동을 재구성하고 민중의 역량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총선 정국 한복판에서 시민사회 일부 원로 인사들이나 진보운동의 주류 세력은 되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조응하는 길을 종용하고 있다. 설사 이들이 한두 석의 국회의원 자리를 더 거두더라도, 이는 사회운동 자신의 후퇴를 낳을 수밖에 없다. 즉, 오늘날 사회운동을 공격하고 민중의 역량을 신자유주의 세력에 헌납하는 주체는 아무 토론 과정 없이 시민사회의 ‘대표성’을 강탈한 시민사회 원로 및 진보정당세력 자신이다.
사회운동 내의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활동가 집단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계속해서 체제의 모순에 맞선 저항을 견지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재구성을 통해 시민사회의 독자적 전망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몇몇 원로 인사들이 강탈한 사회운동의 ‘대표성’을 되찾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조직되지 않은 민중의 삶이 맞닥뜨린 모순에 맞선 대중운동을 건설할 수 있고, 지배체제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국면은 그러한 저항들을 연결하고, 체제전환운동으로의 재편을 도모하는 출 발선이 되어야 한다.
글 :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