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청년들
2024년 2월 29일
이 글은 최근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편집위원회와 일본의 「팔레스타인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청년학생모임」 간 서면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이토츄 이토츄 갸구사츠 가탄츄!” (이토츄상사는 학살 가담 중!)
약 한 달 전인 2024년 1월 15일, 일본의 청년들이 이토츄상사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토츄상사(伊藤忠商事)는 2021년 기준 연간 매출액 3조5천억엔(한국돈 31조원), 계열 기업들을 모두 합해 10조엔(89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이토츄상사의 자회사 이토추에비에이션과 또 다른 방산기업 일본에어크래프트서플라이(日本エヤークラフトサプライ株式会社)는 2023년 3월, 일본에서 열린 무기전시회에서 이스라엘의 엘빗시스템즈와 MOU(협력에 관한 각서)를 맺었다. 같은해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벌어진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폭격과 민간인 학살에 분개한 일본 시민들은 곧바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모여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위에서 만난 청년들은 「팔레스타인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청년학생모임」(이하 '청년모임')을 결성하고, 세미나와 집회를 병행하며 활동했다. 그러던 12월 21일부터 청년모임은 "이토추상사는 이스라엘 무기회사 엘빗 시스템즈와 거래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온라인 및 거리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1월 15일, 이토츄상사 본사에 2만5천여 명의 서명을 제출한 후 1월 18일부터 본격적으로 이토츄상사 계열사나 브랜드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2월 5일, 이토츄상사는 2월부터 엘빗시스템즈와의 MOU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곧이어 일본에어크래프트서플라이사도 MOU 종료를 선언했다.
‘청년모임’은 지난 1월 대전 방위사업청 앞 집회에도 연대 성명을 보냈다. 플랫폼C는 이 청년들이 어떤 연유로 팔레스타인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성과를 이뤘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활동할 것인지 서면으로 질문했다. 그들에게 보낸 질문과 답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한다.
플랫폼C : 안녕하세요. 「팔레스타인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청년학생모임」에서는 10월19일 트위터에 "가자를 알자"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10월 23일에 개최하겠다고 게시하셨는데요.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에 열린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처음 만난 분들이 ‘청년모임’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만나서 세미나를 개최하기 까지의 과정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처음에 몇 분이 어떤 집회에서 만나서 ‘청년모임’을 만들자고 이야기를 하게 된 건가요? 그리고 결성했을 때부터 세미나를 계획하셨던 건지도 궁금합니다.
- 역주: 이 단체의 정식명칭은<パレスチナ>を生きる人々を想う学生若者有志の会이며, 약칭 有志のかい(유시노카이- 같은 뜻, 관심, 의지를 지닌 사람들의 모임)이다. 의미전달을 위해 편의상 ‘청년모임’으로 번역했다.
청년모임 : 10월 16일, 도쿄에 위치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시위한 것을 계기로 ‘청년모임’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날 시위에 대학생과 청년들이 많이 참가한 것은 아니었고,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학살, 인종청소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한데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시위의 모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3명의 학생들은 ‘팔레스타인을 기억하는 동지’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위해 ‘청년모임’을 결성했고, 세미나를 열기로 기획했습니다. 이틀 후인 10월 18일, 미국대사관 앞 시위에서 만난 대학생, 청년 및 그 친구들이 이 행사를 함께 준비하고 도우면서 10월 23일 ‘인간의 수치를 드러내는 가자를 알자’라는 제목의 긴급세미나를 개최했는데요. 개최를 결정한 이후 세미나 당일까지 1주일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한 점도 많았죠. 하지만 세미나 개최 후에도 자원해서 영상을 편집하고 자막을 만들어 준 많은 청년들 덕분에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플랫폼C : 11월 24일자 『주간금요일 』 기사에 따르면, 11월 16일 외무성 앞 집회 150명, 17일 이스라엘 대사관 앞 집회 900명, 18일 신주쿠역 앞 집회에 1500명이 모였습니다. 평일에도 젊은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많이 참가하고 인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 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고: 팔레스타인 학살과 식민점령에 반대하는 동아시아의 연대]
청년모임 : 지금도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일본에서 행동(집회, 행진,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금씩 집회 참가 인원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학살, 인종청소, 페미니스트, 퀴어, 인종차별, 식민지주의, 기후위기, 노동문제 등과 관련이 있고, 평소에 이러한 사회운동에 매진하던 활동가와 시민들이 연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시위에 나가면 "Queers Against Pinkwashing"(퀴어는 핑크워싱에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나 무지개 깃발, 팔레스타인국기를 함께 들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식민주의와 차별문제, 기후위기와 노동운동에 전념하는 활동가와 시민이 집회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도시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만 주목받기 쉬운데 도쿄뿐만아니라 일본의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행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집 근처 역에서 날마다 한 시간씩 시위를 하는 사람, 여러 곳-백화점 앞, 사거리등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사람한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형태로 행동하고 있는 덕에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랫폼C : 엘빗시스템즈와 거래하는 이토츄상사에 항의하는 서명을 모으고 BDS운 동과 군축운동이 결합하여 기업에 항의서명을 전달한 행동은 한국과도 매우 비슷합니다. 실제 방위사업청에 서명을 전달한 날과 일본에서 이토츄에 서명을 전달한 날은 하루 차이 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굉장히 짧은 시간에 2만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목표 1만5천명에서 1만명이 추가된 것을 보면 ‘청년모임’에서도 이렇게 서명이 많이 모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명운동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청년모임 : "이토츄는 팔레스타인 학살 가담을 중지하라", "‘죽음의 상인’ 엘빗 시스템즈와 거래를 끊어라!"라는 요구로 서명을 받기 위해 했던 모든 행동이 서명 참가 인원을 늘렸고, 결국 MOU중단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서명 개시, 항의 행동, 기자회견, 강연회를 주최한 ‘청년모임’뿐만 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여러 장소에서 직접 서명을 받았고, 함께 행동했습니다. 이토츄상사 본사와 지사, 유관 기업 앞에서 항의시위를 했고요. 이토츄상사 취업설명회 장소에서도 항의행동을 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의 문의 메일과 팩스에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죠. 정말 다양했습니다. 이토츄상사가 (이스라엘의) 학살에 가담하는 것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 언론들에 서명운동을 알렸고, 이토츄상사 관련 기업들의 제품을 불매한 시민 개개인의 힘이 서명을 확산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엘빗시스템즈와의 거래중단’을 이뤄낸 거죠. 또, 캐나다에서는 이토츄상사의 사무실이 있 는 건물을 한 시간 동안 점거하는 등 해외 지역에서도 서명운동과 관련 행동에 참가한 분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서명운동을 통해 「Decolonize Recruitment」(탈식민 취직)이라는 학살, 점령, 식민주의 등 모든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예비취업인들의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취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토츄상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의 팔레스타인 학살, 인종청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서명운동이 빨리 확산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플랫폼C : ‘청년모임’의 활동을 계기로 멤버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청년모임 : 회원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여기에 다 설명할 수 없으니 제 개인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0월 7일까지 저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제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구체적으로 행동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월 7일 이후 시위에 나가고 ‘청년모임’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에 무관심했던 나와 우리 사회가 이스라엘의 학살과 인종청소를 용인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회, 세미나,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문제가 식민주의, 차별, 페미니즘, 퀴어, 환경문제와도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식민지배를 했던 과거에 대한 국가적, 역사적 성찰과 반성이 미미한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동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세계가 지금 저 자신에게 답을 묻고 있다고 생각했죠.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세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고, 모든 억압에 맞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플랫폼C : 우리의 운동이 강력해져 휴전이나 종전 상태가 되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줄어들텐데요. 그 후에는 어떤 식으로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장해 나갈 계획이신가요? 예를 들어 일본 국내의 다른 사회문제와 연결짓는 것도 고려하시나요?
청년모임 : 이후에 어떻게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운동을 해 나갈 지에 대해서는 '청년모임'에서도 아직 답을 내지 못했어요. 계속 답을 찾아가야 하는 과제라고 봅니다. 우선은 휴전을 호소하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러한 이야기를 할 여유도 없는 상황입니다.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일본 국내의 다른 사회문제와 연결짓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문 제는 일본 사회에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식민주의 문제와 매우 관련있습니다. 일본 사회는 일본군 성노예제나 조선인 강제동원 같은 역사적 기억을 계승하기는커녕 기억을 말살하고 망각하는 행태가 가속되고 있어요.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도 여전히 뿌리깊이 남아있습니다. 최근 식민 지배 하 강제연행되어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 위령과 추도를 위해 세워진 추도비를 일본 정부가 철거해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오키나와와 아이누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주의 문제도 무지와 망각이라는 폭력이 만연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식민주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식민주의 문제에 관심 갖는 것과 관련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주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일본에서도 이스라엘에 의한 핑크워싱과 그린워싱, 퍼플워싱(시장 페미니즘; 핑크워싱처럼 페미니즘 친화성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정치·경제적 과오를 정당화하고 활용하는 것)이 여러 형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마이너리티(소수자)운동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의 인종청소를 덮으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에 맞설 수 있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과 퀴어, 환경운동가들과 연대해 (팔레스타인 해방의) 목소리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겁니다.
플랫폼C : 한국의 청년들, 그리고 여러분처럼 팔레스타인 해방과 국제법을 위반한 이스라엘(동조자 미국)을 규탄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청년모임 :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항의행동을 소셜미디어상에서 보고,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No one is free until we are all free”(모두가 자유로울 때 까지는 한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말처럼 팔레스타인 민중과 세계 각지의 억압과 차별을 없애지 않는 한, 우리의 자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 그리고 세계 사람들이 연결되어 더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여러분과 연대하겠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돌진하는 이들의 행동이 전례없이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행동이 도를 지나쳐서 미국과 친이스라엘 국가들이 더 강력하게 감싸주기 힘들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바위를 향해 돌진하는 계란들의 숫자가 예상외로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숫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된 일본-팔레스타인 민간단체의 직접적인 교류와 연대, 팔레스타인 연구자 양성, 세미나 등 축적된 노력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 일본 전역에선 이스라엘의 식민지지배와 일본 보수우익의 식민주의와의 유사성을 알리는 행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고 있다. 그리고 세미나는 젊은이들이 더 이상 보수우익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열정을 가진 새로운 세력으로 키워나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며칠 전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선 "자민당없는 나라"를 외치는 청년들의 시위도 등장했다[아래 영상 참고]. "인권 지키지 않는 정치는 싫어!", "시민에게 거짓말하는 정치는 싫어!", "시민은 보고 있어. 우리는 보고 있어. 잘가라 자민(당)!", "학살을 외면하는 정치는 필요없어!" 등 구호를 외치는 청년들은 이 운동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들의 계란 던지기가 일본 시민사회와 정치에 어떤 바람을 가져올지 주목해야 한다. 한국 사회운동은 이들과의 연대를 확장해야 한다.
참고 자료
-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무기가 된 무지개를 거부한다", 오마이뉴스, 2023. 10. 17.
- <일본 군마현, ‘강제동원 조선인 추도비’ 산산조각 냈다>, 한겨레, 2024. 2. 2.
인터뷰 및 정리 : 박근영
교열 : 김지혜, 홍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