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날 기념대회 |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모두의 권리!
2023년 12월 22일
지난 12월 17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12월 18일)을 맞아 「인종차별 철폐,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의 세계를 향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가 열렸다. 이날 기념대회에 모인 200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연대단체들은 이주민 차별철폐와 권리보장을 함께 요구했다. 또, 명동성당 투쟁 20주년을 기념해 당시 투쟁 영상을 시청하고, 헌신한 이주노동자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대회에 함께 한 민주노총 이태의 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의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노동자"라면서, "권리 쟁취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 발언했다. 또, 청주에서 온 한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은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날"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회는 '2023년 이주노동자 투쟁'을 정리하는 영상 시청에 이어, 비자제도로 인한 각종 인권 침해 문제를 다룬 연극 「My Visa」 공연이 이어졌다. 이 연극은 이주민들이 직접 연기한 것이었는데, 이 땅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날 기념대회는 준비된 네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투쟁을 격려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주요 요구
- ILO국제협약준수하고 강제노동금지하라!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하라!
- 고용허가제 말고 노동허가제 실시하라!
-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하라!
- 임금체불 근절하라! 퇴직금은 국내에서 지급하라!
- 근로기준법 63조 폐지하고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하라!
- 건강보험 차별 철폐하고 건강권 보장하라!
- 산재사망 종합대책 마련하고, 모든 이주노동자 산재보험 적용하라!
- 여성이주노동자 성차별 성폭력 철폐하라!
-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단속 중단하고 체류권을 보장하라!
-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하라!
달라진 이주노동 정책과 상황
지난 이주노동자의 날을 돌아보며, 현재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자. 2024년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 규모가 16만 5천명으로 확정됐다. 올해 12만 명과 비교해 4만 5천명이 늘어난 규모다. 업종 범위도 음식점, 임업, 광업 등으로 넓어진다. 지난 11월 27일 정부는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2024년 외국인력도입운용계획안’과 ‘고용허가제 신규 업종 허용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전체 이주민 수는 130만 명을 향해 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여러 비자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많은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사업장은 중소영세 제조업(300인 미만), 농업, 어업, 일부 서비스업, 건설업 등이다. 현재 고용된 이주노동자의 비율은 제조업이 약 80%로 가장 많고, 건설업 2.8%, 농축산업 12.1%, 어업 4.5%를 차지한다.
한국 산업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의 저임금, 열악한 위함노동에 시달린다. 또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의사대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고, 이주노동자에게 책임이 없는 경우(예를 들어 사업장의 파산 등)에만 예외적으로 3회 한도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사업장을 변경하는 권한이 노동자에게 있지 않다보니 어떤 열악한 노동환경, 숙식환경에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제한이 사실상 노동자를 ‘강제노동’ 환경과 인권침해 상황에 놓이게 했다.
지역 제한이 지역소멸 대응책?
그런데 정부는 기존의 사업장 변경 제한에 더해,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지역제한을 두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사용자의 사정으로 사업장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지역소멸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권역별 단위”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허가하겠다는 추가 제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발표된 이 지역제한은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을 수도권, 경남권, 강북·강원권, 전라·제주권, 충청권 총 5개의 권역별로 나눠, 지역이 한 번 정해지면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는 법적 근거도 불분명한 심각한 기본권 침해인데도, 아무런 법개정도 없이 이주노동자에게 ‘권역 내에서만 사업장변경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안내하고 동의서를 징구’하는 것으로 시행하고 있다.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에 올 수 없는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해서 강제동의를 받는 것이다. 12월 6일 이주노조와 시민 단체들은 정부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지역 제한’ 정책의 기본권을 침해를 비판하며,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고용허가제에서도 사업주 동의 없이는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데, 이제는 지역 제한까지 하겠다는 조치”라며 비판했다. “비자발적 노동을 강제하는 것에 더해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해 고용허가제 실시 20년 만의 유례없는 개악”이라는 것이다. 또, 사업장 변경 제한의 강화는 국제인권규약과 권고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업장 변경 제한과 지역제한이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5조,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관리에 관한 국제규약 6·7조,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8조,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29·111호 등에 어긋난다”며 “정부는 기본권 가중 침해 조치인 이번 정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2월 9일에 보신각에서 있었던 ‘세계인권선언 75주년 인권궐기대회’에도 참여해 지역제한이 추가된 고용허가제가 거주이전의 자유 침해, 인종차별적 인권침해라며 정부를 규탄했다.
사업주만을 위한 고용허가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E-9비자), 계절근로제도(E-8비자), (준)전문직(E-7비자), 선원(E-10비자), 방문취업제(H-2비자) 등으로 들어온다. 동포(F-4비자), 영주권자(F-5비자), 결혼이민자(F-6비자), 유학생(D-2비자) 비자 등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노동을 할 수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이주노동제도가 고용허가제이다. 이 제도를 통해 동남아,서남아 16개 국(몽골, 중국,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스리랑카, 네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비전문 인력 생산직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며, 전체 이주노동자 중 약 25%를 구성한다.
2004년부터 실시된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제도이다. 고용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으며,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제한된다. 이주노동자를 오로지 기업의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의 자유와 인권,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노동허가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려는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 한국어능력시험과 기능테스트에 합격해야 한다. 합격하면 2년간 구직자 명부에 올라 사업주에게 선택을 받아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3년간 일할 수 있고, 사업주의 계약연장시 1년 10개월간 고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4년 10개월이 되었을 때, 사업주가 재고용을 해주면 1개월 간 출국했다가 다시 재입국 특례로 사업장에 올 수 있다. 이 재입국 특례로 사실상 10년 가까이 장기체류하는 노동자들이 많지만, 정부는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비전문 단기고용’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이주노동자도 국내노동자와 똑같은 노동자이기에 직장 선택과 변경의 권리, 지역 이동권리, 주거권(안전한 기숙사 제공), 건강권, 쉴 권리, 강제노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노동 3권 등 모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현 고용허가제는 이런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용에 관한 모든 권리가 사업주에게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오려면 사업주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할 수 밖에 없다. 일단 한국에 오면 사업장을 변경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위험한 근무환경, 부당한 처우와 업무 지시가 있어도 항의할 수 없으며,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계약기간까지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은 늘 위태로우며 병에 걸리거나 죽을 때까지 일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정도 되지만 이주노동자 산재 사망률은 내국인의 3배이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를 옭아매는 고용허가제는 제한적 ‘합법’이주노동자들조차 불법체류자로 만든다. 사업장을 이탈하는 순간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사업장을 이탈해 3개월 내에 구직을 못하면 비자를 잃게되고, 결국 미등록 상태로 초과체류를 하게 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노동자 중 한 해 평균 1만 명 가량의 미등록 체류자가 발생한다.
임금 체불과 노동강도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임금체불도 심각한 문제다. 임금체불 액수는 한해 1000억이 넘는다. 임금을 못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도 많다. 농어업 5인 미만 사업장 이주노동자에게는 임금채권보장법이 적용되지 않아 체불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노동부가 산재보험법만 손봐도 훨씬 많은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노동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퇴직금제도의 경우 사업주가 의무가입하게 한 ‘출국만 기보험’으로 퇴직금을 적립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퇴직금을 출국 후에 받게 되어 있고, 신청 절차를 몰라 못받는 노동자가 대다수다. 현재 250억이 넘는 보험금이 미수령액으로 쌓여 있다. 이에 이주노조는 퇴직금 국내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또, 고용허가제 외에 계절근로제도(E-8), 외국인 선원(E-10), 최근 구직난이 심한 조선업 등으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약 800-1,800만원에 이르는 브로커 비용을 제공하고 들어온다. 선원의 경우 해양수산부가 수협에 위탁을 주는데 수협이 다시 민간 관리업체에 재위탁을 주고, 국내 민간업체가 현지 송출업체에 위탁 모집부터 도입까지를 맡기고있는 다단계 위탁 구조다. 국내의 필요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임에도 굳이 비자제도에 차등을 두어 외국에서 일하려는 이주노동자에게 고액의 중개비용까지 부담시키는 것이다.
다른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와 같이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선원의 경우 최저임금 차별, 조선업의 경우 이탈금지 각서를 쓰는 등의 차별이 추가된다.
이주노동자의 거주시설 역시 열악하다.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숙소의 70%는 임시 가건물이다. 지난 2020년 12월 캄보디아의 30대 여성 이주노동자 속행씨는 영하 18도의 한파 속에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목숨을 잃었다. 제조업 종사자의 숙소 역시 열악한데, 냉난방 장치, 샤워실, 화장실 등이 매우 부실하다. 방한과 방열이 안되는 열악한 숙소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건강을 잃고 있다. 이들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제대로 된 숙소가 필요하다.
정 부는 지금 당장 고용허가제를 포함한 모든 이주노동자정책에서의 차별정책을 철폐하고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고, 사업장 이전의 권리, 주거권, 건강권, 노동권 등을 제공한다면 불법체류자가 양산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인력난이 심각한 부문의 일자리를 저렴한 비용으로 충당하고자 하는 국내 사업주와 정부의 이해관계 때문에 한국에 온다. 이들은 국내노동자의 공백을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동으로 메우려 한다. 이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일자리를 떠나야 했던 국내의 노동자와 구직 포기자들, 끝없는 차별과 장시간 위험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이주노동자 모두에게 대안이 아니다. 국내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두에게 동일임금 동일노동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며,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보장이 필요하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 같은 노동자이다.” 국내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연대로 모든 노동자의 평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싸움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차별과 억압에 맞선 연대
올해 윤석열 정부는 외국인센터 관련 예산을 0원으로 책정했다. 방위산업에 열을 올리며 국방비는 늘리고 부자들을 위한 종부세는 깎아주면서 사회에서 더 차별받는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관련 예산 등을 모두 삭감하고 있다. 여성, 장애인정책에서 남성과 여성,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대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노동자를 국내노동자와 이주노동자로 나누고 차별하고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과 탄압 속에서도 연대의 경험은 있었다. 2010년 베트남 건설노동자들은 정당한 파업에도 구속되었고, 이들의 무죄석방 운동을 주도한 민주노총과 시민단체의 연대로 무차별적 업무방해죄 적용불가의 선례를 남겼다. 이 과정에 민주노총과 베트남 노동자와의 연대감이 생기고 일부는 건설노조에 가입하기도 했다.
정부가 건설노동조합을 탄압하면서 그 일환으로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고의로 고용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에 대해 민주노총은 “자본의 이윤을 위한 갈라치기”라 주장하면서, “민주노총이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 모든 동지들이 함께 단결해 투쟁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에서도 이주노동자와 국내노동자 모두에게 똑같이 노동조건 후퇴없는 양질의 일자리와 동일임금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7월 대구성서공단의 한 식품회사에 취직한 인도네시아 여성이주노동자 2명은 회사 사장의 임금체불과 성희롱으로 고민하다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와 함께 투쟁을 시작해 승리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금속노조는 조선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실태를 조사하고, 여권을 빼앗아가는 하청업체 업주들에게 인권침해를 멈추라고 경고했다. 조선업종노조연대와 함께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조선산업 종사자 차별 처우 금지,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 등 법과 제도를 통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선산업 기본법’을 준비중이다.
또, 사업장변경지침과 퇴직금 출국 후 수령제도 철회투쟁, 농축산업 노동착 취에 대한 캠페인과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버스 운행, 어업 이주노동자 노동착취 실태조사와 기자회견, 열악한 주거실태 고발 캠페인 등 고용허가제 및 이주노동제도를 비판하는 이주노동단체들의 항의과 규탄도 계속되어 왔다.
차별과 억압에 맞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가 확장될 때, 사회적 파급력은 커질 것이며, 더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정부의 잘못된 이주노동 정책에 맞서 사회운동 역시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곧 우리 모두의 권리다.
참고 자료
- 김해정,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인력 38% 확대…업종 범위도 넓혀, 한겨레신문, 2023.11.28
- 김지환,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올해 처음으로 1300억원 넘기나, 경향신문, 2023.09.19
- 강석영, 이주노동자 직장 지역 제한 “인권위가 막아 달라”, 매일노동뉴스, 2023.12.07
- 우라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이주노동자는 기계나 노예가 아니다’ , 오마이뉴스 , 2023.09.21
- 이태현, 땀의 가치에 국적이 있나요, 한겨레신문, 2023.12.11
- 박중엽, ‘성희롱·임금체불’ 성서공단 이주노동자, 금속노조 조끼입었더니, 뉴스민, 2023.07.28
-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 ‘세계인권선언 75주년 인권궐기대회’ 발언문, 2024.12.11
- 민주노동연 구원, 고용허가제 대안 연구 최종보고 발표회, 2023. 12.13.
글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