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를 몰아낼 수 있을까? | 골든트라이앵글에서의 반격

미얀마 군부를 몰아낼 수 있을까? | 골든트라이앵글에서의 반격

지난 10월 27일 코강족 무장단체인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라카인족 무장단체 아라칸군(AA), 쁠라웅족 무장단체 타앙민족해방군(TNLA)는 이른바 ‘북부형제동맹’을 결성하고, 이들이 군부에 저항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2023년 12월 30일

[동아시아]미얀마시민불복종운동, 소수민족, 미얀마, 중국, 쿠데타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미얀마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이 벌어진 지도 어느새 3년이 다 되어간다. 이후로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서 군부가 시민사회를 압살하고 있다는 소식 정도가 한국 사회가 미얀마에 대해 인지하는 상황이다. 국제적인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민중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저항 세력에 대한 탄압을 이어갔지만, 시민불복종운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지난 8월 중국 전역에서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렸던 영화 <구주일척(孤注一掷)>은 동남아시아 골든트라이앵글 일대에 만연한 대규모 사기범죄를 소재로 삼는다. “도박은 나쁘고, 사기는 사악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의 경우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킬만큼 불편하게 여겼는데, 사실 이 영화는 온라인사기 범죄가 횡행하는 미얀마 샨주를 배경으로 한다. 이 지역은 20세기 내내 세계적인 아편 생산지였고, 오늘날에는 합성마약과 통신사기, 도박의 본거지다. 지금 이곳에서는 세 개의 전쟁이 벌이지고 있다. 이 셋은 제각각 동떨어진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결되어 있다.

영화 『구주일척』 속 불법 보이스피싱 조직의 모습
영화 『구주일척』 속 불법 보이스피싱 조직의 모습

골든트라이앵글

첫 번째 전쟁은 대규모의 통신 사기와 인신매매 범죄, 그리고 이것이 낳은 사회적 문제를 방관할 수 없는 중국 정부 사이의 모호한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다. 지난 11월 12일 그는 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 중국 경찰은 미얀마 북부에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통신 사기 작전을 주도한 혐의로 코캉(果敢)자치구 정치인 밍쉐창(明学昌)과 그의 자녀 3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고액의 급여를 미끼로 중국인들을 현지로 불러들여 감금한 뒤 중국인 대상 온라인 사기를 벌이고, 구금한 중국인들을 폭행 및 살해한 혐의다. 밍쉐창은 친군부 정당 소속 전 의원이기도 한 거물급 인사다.

10월에도 샨주에 위치한 20여 곳의 사이버범죄 소굴에 와주연합군과 중국 공안이 투입됐다. 이를 통해 23명의 후원자들을 비롯해 4,600여 명의 사기죄 용의자가 체포됐는데, 이 중엔 와족 반군 리더 2명도 포함돼 있다.

국경 너머에서 이뤄진 이 조치로 인해 인질로 잡혀 사이버범죄에 동원됐던 수백여 명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는 속임수나 납치로 끌려와 억류된 채 하루 10시간 이상, 일주일에 6일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이다. 9월 5일과 9일에도 샨주 일대 11곳과 자치구역 ‘와족특별구(Wa State)’에서 1400여 명의 중국인이 체포돼 중국 정부에 인계됐다. 유엔 인권사무소(OHCHR)가 8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인 12만 명을 비롯해 수십만 명이 사이버범죄에 강제 동원되고 있다. 심지어 범죄조직들은 다른 경쟁 조직들과 인신매매를 벌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카지노를 통해 우회되고, 다시 암호화폐로 전환된 후 방콕이나 싱가포르 같은 대도시에서 부동산이나 사치품으로 바뀐다. 지난 9월엔 이렇게 세탁된 돈을 갖고 싱가포르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일당 10명이 미화 13억 달러 어치의 현금 및 명품 시계를 갖고 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중국 당국에 체포된 사이버범죄 용의자들
중국 당국에 체포된 사이버범죄 용의자들

두번째는 마약 생산과 유통을 통해 자금을 융통하는 소수민족 반군과 마약의 무분별한 양산을 막아야 하는 주체들과의 전쟁이다. 샨주는 동아시아의 메탐페타민 등 합성마약 생산기지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는 지난 6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대량의 메탐페타민이 이 지역 안팎에서 계속 생산되고 밀매되고 있으며, 합성마약 생산이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UNODC의 동남아 및 태평양지역 총괄 제레미 더글라스(Jeremy Douglas)는 기자회견에서 마약 단속이 전례없이 감소됐다고 지적하면서 우려를 표명했다. NGO인 국제위기그룹(ICG)에 따르면, 중국 국경을 통해 마약 생산에 사용되는 대량의 화학물질이 유입되고, 이를 통해 양산된 마약이 친군부 민병대(SDF)에 의해 거래돼 세계로 퍼진다.

중국 공안부의 「마약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약물 남용자 중 약 80%가 합성마약 중독자다. 공안부 반마약국은 자국에서 적발되는 마약의 90% 이상이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다고 보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에 따르면, 가격이 저렴한 희석 필로폰이 동아시아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주된 소비자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타락해서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과 힘든 일과에 지쳤을 때 ‘기분전환제’로 메탐페타민을 복용한다.

미얀마 군부는 샨주의 마약 생산기지를 정리하는데 실패해왔다. 버마민족주의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군부가 자치권과 연방 민주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점증해온 소수민족 반군세력들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일 때마다 군부는 휴전을 대가로 이들 단체와 마약 생산과 밀매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하기도 했고, 동시에 2009년부터 군부는 반정부 세력과의 전투에 동원하기 위해 샨주에서 수만 명의 민병대를 모집했으며, 그 대가로 헤로인과 메탐페타민 거래를 묵인했다. 소수민족들 간의 연방제 민주주의 합의를 위반한 대가로 마약의 무분별한 양산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랫동안 동남아 마약 카르텔을 연구해온 패트릭 윈(Patrick Winn)은 “소수민족에게 더 많은 자치권을 허용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샨주에서 적발된 5억 달러 어치의 마약을 태우는 모습
샨주에서 적발된 5억 달러 어치의 마약을 태우는 모습

반격

세번째는 소수민족 반군들과 미얀마 군부 간의 전쟁이다. 지난 10월 27일 코강족 무장단체인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라카인족 무장단체 아라칸군(AA), 쁠라웅족 무장단체 타앙민족해방군(TNLA)는 이른바 ‘북부형제동맹’을 결성하고, 이들이 군부에 저항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미얀마 동북부 샨주는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 지대로 소수민족 무장단체인 와족 연합군이(UWSA) 4,600명 규모의 중국 온라인 사기(보이스피싱)단체를 체포해 중국으로 인계한 바 있다. 군부의 집권 이후 동북부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사기, 마약 거래, 인신매매를 하는 중국 거대범죄조직과 미얀마 정부군 내 동조세력이 늘어났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에 이 지역의 특별단속을 요청했으나, 군부는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중국이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드론 등의 무기를 암묵적으로 지원해 줬다고 판단해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군정의 승인 하에 양곤에서 반중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후 중국 정부가 직접 개입에 나서자, 미얀마 군부는 뒤늦게 이 사건의 배후를 앞서 언급한 ‘형제동맹’ 3개의 무장단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소탕으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 한 것이다.

미얀마는 버마족 70%, 소수민족 25%, 중국 및 인도계 이민자 5%로 이뤄져 있는데, 소수민족들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얀마가 독립한 이후 자치권을 요구하는 무장투쟁을 각각 따로 벌여왔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들이 군부의 탄압에 맞서 70년 만에 소중한 연대를 이뤄냈고, 그 힘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의 시민방위군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의 시민방위군

투쟁 의지

교전이 벌어지는 북동부의 중국 윈난성과 접경지대는 중국정부의 ‘일대일로’사업의 요충지 중 하나로,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철도 건설 등 대규모 개발을 진행 중이다. 중국과 미얀마 간 국경무역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양국에 모두 중요한 지역이다. 한데 이곳에서 교전이 확대되면서 국경무역 통로가 다수 폐쇄됐다. 중국은 접경지역의 무력충돌로 미얀마인들이 중국으로 피난하는 것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1027작전’ 한 달 뒤인 11월 25~27일 중국군은 미얀마와의 접경지대에서 실전훈련을 벌여 미얀마인들을 위협했다. 28일에는 미얀마 정부군과 합동연습을 위해 중국해선 함선 3척이 양곤 부근 항구에 입항했다. 지난 12월 6일에는 미얀마 딴 스웨 군정 외교부 장관이 중국 공산당 외교부장관과 회담에서 소수민족 무장단체 공격을 중단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2월 11일 자국의 중재로 미얀마 군부와 소수민족 무장단체 사이 평화회담에서 양측이 일시 휴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형제동맹 관계자는 합의 소식을 부인했다. 회담 이틀 뒤 SNS에 “독재를 종식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글을 올리고,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NUG 역시 투쟁을 지속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미얀마 군사쿠데타 이후 미국 등 서방은 군부를 비난했지만,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까지도 군부의 해외 자금원인 국영가스기업(MOGE)에 대한 제재를 실시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올 2월, 미국 정부는 12월에야 제재를 발표했다. 미얀마가 중국에 완전히 포섭될 것을 우려해 군부와의 끈을 유지하려한 점과 투자수익에 대한 기대가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벌어지는 지금 미국은 동남아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 2020년대 이후 서방의 미얀마 투자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 싱가포르, 홍콩, 중국은 대 미얀마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란창강-메콩강 협력, 메콩강무세~만달레이 철도 프로젝트, 미얀마 만달레이시와 메콩 유역 도시를 무역 루트로 연결하는 GMS(Greater Mekong Subregion)프로젝트, 각종 리조트, 호텔, 복합 쇼핑몰, 주택건설 계획 등 중국은 미얀마 군부정권과 손잡고 일대일로 프로젝트 및 각종 이권 사업을 지속해 왔다.

MOGE가 거둔 수익은 군사 정권 유지를 위해 쓰인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MOGE가 거둔 수익은 군사 정권 유지를 위해 쓰인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

2020년대 이후 서방의 미얀마 투자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 싱가포르, 홍콩, 중국은 대 미얀마 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란창강-메콩강 협력, 메콩강무세~만달레이 철도 프로젝트, 미얀마 만달레이시와 메콩 유역 도시를 무역 루트로 연결하는 GMS(Greater Mekong Subregion)프로젝트, 각종 리조트, 호텔, 복합 쇼핑몰, 주택건설 계획 등 중국은 미얀마 군부정권과 손잡고 일대일로 프로젝트 및 각종 이권 사업을 지속해 왔다.

미얀마를 가로질러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은 미얀마 내정의 안정을 바란다. 하지만 그 ‘안정’은 어디까지나 중국 지배계급의 이익에 비춘 것이며, 소수민족을 일부 지원한 바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군부의 편을 들 가능성이 더 높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얀마 군부를 지지하고 협력해 온 중국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저항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영국의 식민지를 겪으며 분쟁에 휘말렸던 소수민족과 버마인들이 군사적 열세에도 군부를 패배시킨 것은 놀랍다. 이는 미얀마 무장단체와 민중들의 연대에서 비롯한 값진 승리다. 앞으로도 여전히 수많은 고난이 남아있지만, 민족의 경계를 넘어 단결할 때 더 큰 힘으로 군부에 맞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런 대의가 군부를 물리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 군부를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는 중국 정부와의 합의에 기대지 않고, 투쟁하겠다는 미얀마 민중의 용기와 투지가 계속 될 수 있도록 전 세계 사회운동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글 | 김지혜 · 홍명교